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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력' 연상호 감독 인터뷰

익스트림무비 익스트림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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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편 실사 영화 <부산행>으로 천만 관객을 동원하고 세계적으로도 주목받는 연상호 감독과 익스트림무비가 만났다. 과거 애니메이션 감독으로서 사회성 짙은 작품을 그려온 그는 실사에서도 날카로운 풍자를 선보이면서 상업영화로서의 오락성도 빠트리지 않고 있다. 신작 <염력>은 한국영화에서 보기 드문 초능력 슈퍼 히어로물인 동시에 감독에 선호했던 1990년대 B급 코미디의 페이소스를 담으려 했다고. 이 인터뷰를 통해 남다른 도전을 이어가고 있는 연상호 감독이 좀 더 많은 지지를 받았으며 하는 바람이다.

 

(본문은 영화의 내용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으니 스포일러에 주의하세요)

 

인터뷰어: 이용철 평론가(ibuti)

정리: golgo

사진 제공: NEW

 

들썩들썩할 정도로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으면

 

반갑다. 익스트림무비 자주 들어오나? (※2016년 4월 연상호 감독이 직접 회원 인증 - http://extmovie.maxmovie.com/xe/10821304 )

 

그렇다. 영화에 대한 여러 정보들, 특히 해외 소식들을 많이 본다. 전에는 글도 남기고 그랬는데, 이제는 그게 민폐 같다.

 

어째서?

 

많은 분들이 (내 영화에 대해) 좋은 이야기든 나쁜 이야기든 자유롭게 나눠야 하는데, 당사자가 나타난다면 한다면 오히려 부담스러워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그렇긴 하다. 익스트림무비 초창기 때는 스탭으로 있는 평론가들이 자주 글 올리고 토론도 했지만 지금은 커뮤니티 자체가 커져서, 스탭인 줄도 모르는 분들이 많다. (웃음)

 

예전에 영화 마니아들이 모이는 사이트에서 많이 활동했다. <지옥 - 두개의 삶>(2003)이라는 단편 애니메이션을 만들었을 때, 영화제 같은 데서는 별로 주목을 못 받았지만 호러 영화 사이트에서 관심을 가져 주기도 했고.

 

익스트림무비 전신이 호러 영화 전문 사이트였다.

 

<부산행> 이전에 마이너한 영화들을 만들 때는 영화 사이트에서 직접 활동하는 걸 즐겼지만, <부산행> 이후부터는 내 의도와는 좀 별개로... 민폐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눈팅만 하고 있다.

 

그런 감독들이 많다. 직접 글을 쓰는 건 부담스러워서 와서 보기만 한다는 분들이 꽤 있다. <부산행>이 세계적으로 큰 주목을 받고 인기도 많았다. 그 덕분에 차기작을 찍으면서 편했던 점과 반대로 힘들었던 점 같은 게 있었다면?

 

아무리 흥행한 영화를 내놓아도 그 다음 작품을 할 때는 투자단으로부터 냉정한 심사를 받아야 한다. 작은 거 하나라도 새로운 걸 제안하면 눈치가 보인다고 할까. <염력>이라는 영화를 처음에 제안했을 때도 당황해 했다. ‘부산행 2’ 같은 걸 만들기를 바라더라. 그게 뭔지는 나도 모르지만. (웃음)

 

<부산행>이란 영화가 대히트한 건 정말 운이 좋았던 거고, 그 운 때문에 중압감을 느낄 필요는 없겠다고 생각했다. 전작이 크게 히트한 덕분에 투자자나 배우들에게 제안할 때 편한 측면은 확실하니까, 그 이점을 어떻게 살릴까 했을 때 ‘원래 내가 좋아했던 걸 해보자’란 생각을 많이 했다. 개인적 욕심일 수 있겠지만 내 또래의 감독들이 좋아했던 장르를 살려보고 싶었다. 예를 들어 장선우 감독의 <너에게 나를 보낸다>(1994), 여균동 감독의 <맨?>(1995) 같은... (웃음)

 

‘포르노 맨’ 말인가? (웃음) (※1990년대에 심의 때문에 쓸 수 없었던 <맨?>의 오리지널 제목)

 

<사이비>(2013)를 만들면서 권해효 선배랑 처음 만나 이야기할 때 <진짜 사나이>(1996)를 정말 좋아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권해효 주연 액션 코미디)

 

권해효 배우가 안 좋아했을 것 같은데. (웃음)

 

아니다. 권해효 선배는 그 영화를 어떻게 알았냐며 깜짝 놀라더라. 그 시절에는 그렇게 사회성이 짙은 B급 코미디들이 많이 나왔다. 그 사회성이 정교하게 묘사되진 않았어도 독특한 묘미가 있었다. 그런 작품들의 맥락이 <반칙왕>(2000), <지구를 지켜라!>(2003) 등으로 이어졌지만, 어느 순간부터 B급 코미디에 사회적인 이슈를 담는 것 자체가 금기시된 듯하다. <부산행>으로 내게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런 걸 되살려보고자 하는 욕심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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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으로 표현한 B급 정서의 히어로물

 

한국에서 좀비물이나 초능력자가 나오는 슈퍼 히어로물은 상업적인 소재로 꺼려지고 있는데, 연속해서 그런 소재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우선 <부산행>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단편 <지옥 - 두개의 삶> 이후 차기작으로 ‘서울역 좀비’라는 단편 애니메이션을 오랫동안 기획해왔다. <사이비>로 배급사 NEW와 처음 만났을 때 그 제안을 했더니 돈이 안 되는 소재이니 절대 하지 말라고 하더라. 그리고 몇 년이 지난 뒤에 분위기가 바뀌는 것 같았다. 브래드 피트의 <월드워Z>(2013)가 흥행이 잘됐고, 좀비 소재의 웹툰이나 미드 <워킹 데드>를 젊은이들이 즐기는 것을 보고서 이제는 (좀비 영화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잘 먹힌 케이스가 <부산행> 같다.

 

철거촌을 배경으로 하는 초인의 이야기는 대학 시절부터 생각해왔던 거다. <부산행> 이후에 예산이 많이 투입된 B급 코미디를 해보고 싶다는 게 가장 컸고. 요즘 마블 슈퍼 히어로 영화들에도 대부분 B급 정서가 녹아들어 있는데 관객들도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B급 정서의 히어로물을 한국적으로 어느 정도 선까지 정리할까라는 고민의 결과물이 <염력>이다. 흥행이 어떨지는 두고 봐야지. (도전이) 매번 성공한다면 주식을 해야 하는데. (웃음)

 

<염력>의 후반부 배경이나 장면 묘사는 2009년의 용산 참사를 직접적으로 상기시킨다. 대학 때부터 구상해온 이야기를 발전시키면서 9년 전 사건을 접목시킨 건가?

 

그렇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는 사회적 이슈를 다룬 단편을 만드는 게 유행이었고 그중에서 도시개발로 인한 철거촌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당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981), <상계동 올림픽>(1988) 같은 작품이 내 또래들에게 많은 영향을 줬다. 나와 친한 최규석 작가도 학창 시절에 그런 소재의 만화를 그릴 정도로 사회적 이슈들을 다룬 작품 활동을 하는 게 보편적이었다.

 

용산 참사라는 큰 사건이 벌어졌지만 아직까지도 그와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염력>에서는 용산 참사와 얼마나 비슷하게 묘사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너무 똑같이도, 너무 다르게 다뤄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다른 비슷한 사건들도 참고했지만 아무래도 진압용 컨테이너가 주는 이미지가 강해서 그런지 용산을 언급하시는 분들이 많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요즘 세대들은 잘 모를 영화다. <염력>을 보고 나도 생각난 작품인데 먼저 언급해주니 놀랍다. <부산행>을 좋아했던 이들 중에서 <염력>이 ‘올드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연상호 감독이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는 과거의 망령 같은 걸 정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이비> <돼지의 왕>은 물론이고 <부산행>도 6.25를 은유하고 있다고 여기니까. <염력>이 다루고 있는 용산 참사가 아직 끝나지 않은 현재 진행형 사건이기도 하지만, <상계동 올림픽>이 나온 80년대를 지나 21세기에 상업영화로 그런 이야기를 한다는 게 놀라웠다.

 

영화 일을 하면 할수록 내가 사업가 체질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패션에 따라 영화를 만드는 재능은 없다고 할까. 주위 사람들은 잘 알 텐데 내가 유행에 민감한 사람은 아니다. 늘 똑같은 옷을 입고 다니고 넥타이도 이번에 처음 매봤다. (웃음) 그렇다고 아주 예술적인 사람도 아니고.

 

영화를 찍다보면서 계속 드는 생각은 ‘내가 좋아하는 영화가 무엇인가’라는 고민이다. <돼지의 왕> <사이비> <부산행>을 만들고서 ‘내가 뭘 좋아했었지?’, ‘내가 어떤 작품에서 영향을 받아서 영화 일을 하게 된 거지?’란 생각을 많이 했다. 기왕이면 돈을 많이 벌고 싶고 존경도 받고 싶은 욕심도 있지만, 근원적으로 내가 좋아했던 작품들을 먼저 떠올리게 됐다. 그래서 떠올린 키워드들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부터, 여균동 감독님의 과거 작품들, 또 내가 좋아했던 <노인 Z>(1991) 같은 애니메이션이다. 그런 걸 종합한 결과물이 <염력>이다.

 

앞으로는 더 근원적으로 가보고 싶다. 내가 더 어렸을 때 좋아했던 작품들 쪽으로 말이다. 운이 좋았던 건 그 시절의 작품들 중에 거장들의 명작이 많았다는 점이다. <은하철도 999>(1978~1981), <미래소년 코난>(1978), <빨강머리 앤>(1979)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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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롱받는 걸 겁내선 안 돼

 

한 10년 전 서울아트시네마의 회고전에서 <바람 불어 좋은 날>(1980), <꼬방동네 사람들>(1982) 같은 작품들이 상영될 때, “왜 요즘은 이런 영화를 안 만들까?”라고 질문했더니 김성욱 프로그래머가 오히려 반문하더라. “지금처럼 자본이 많이 투입되는 영화 산업 체제에서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영화를 어떻게 만들 수 있겠냐”고. 물론 그 이야기도 일리가 있지만 과거에는 그런 작품들도 상업 영화였고 또 흥행하기도 했다. <염력>이 그 시절 영화들을 떠올리게 해서 좋았다.

 

요즘은 영화를 만든다는 게 기능화된 것 같다. 또 감독이 영화를 내놓았을 때 받는 평가에도 일종의 기준이 있는데, 거기에 잘 맞추지 못하면 조롱을 받게 된다. 창작자의 입장에선 그게 너무 괴로운 일이어서 어쩔 수 없이 여러 사람들이 인정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게 된다. <부산행>을 만들고 난 뒤에 아무리 영화판 전체가 그렇다고 해도, 또 조롱받는다고 해도 그런 걸 겁낸다면 아무것도 못하겠다 싶었다.

 

<염력> 때문에 과거의 영화를 다시 찾아보던 중에 <병태와 영자>(1979) 중에서 주인공 병태가 자동차를 상대로 달리기를 하는 장면을 보고 무척 놀랐다. 여자 때문에 두 남자가 승부를 하는 건데 아주 긴 시간 동안 망원 렌즈로 롱테이크 촬영을 했다. 그 장면에서 느껴지는 영화적 에너지가 굉장하다. 그런 게 ‘지금 현재에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든다. <염력>에서 석현이 루미를 구하러 가는 과정 혹은 계기가 단순하고 뻔해 보일 수 있지만, 굳이 복잡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석현이 가는 과정을 그저 쭉 따라가면서 보여주는 것이 더 영화적이라고 느꼈다.

 

<병태와 영자>에서 병태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자동차를 쫓아가는 모습이 굉장히 올드해 보일 수 있지만, 영화라는 것이 논설문이나 책 같은 게 아니지 않나. 글쎄 요즘 사람들은 그걸 안 좋아하려나. (웃음) 머릿속으로는 안 좋다고 생각하더라도 실제 눈으로 보면서 쌓여간다면 플러스로 작용할 거라고 본다. 그것이 감독으로서 할 수 있는 영화적 승부라고 생각한다.

 

맞다. 지금 아무리 세월이 흘렀다지만 7~80년대 하길종 감독의 영화들이 만든 토양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염력>이라는 제목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정신을 집중해서 물체를 움직이는 힘이라고 나온다. 하지만 영화에서 석현은 그러한 힘 이상으로 몸을 공중에 띄워서 날아다니기도 한다. 굳이 ‘염력’이라고 제목을 붙인 이유가 궁금하다.

 

일단 여러 초능력들 중에서 염력을 가장 좋아한다. (웃음) 어떻게 날아다니냐고 한다면... 만화 <드래곤볼>에서 손오공이 ‘무공술’을 쓰기 전에 발로 에네르기파를 쓰는 사례도 있는데 (웃음) 그와 비슷한 원리라고 생각한다. 할리우드 슈퍼 히어로 영화 중에선 <엑스맨>의 매그니토가 금속을 밀고 당기는 힘으로 공중에 뜨기도 하고.

 

<염력>에 나오는 초능력은 만화 <아키라>에 묘사된 것처럼 정신과 에너지의 연결이라고 생각했다. <아키라>에서는 소금물과 전기 자극으로 두뇌의 잠재력을 깨운다고 나온다. 극 중 캐릭터 테츠오가 설명하길, 자신의 힘이 지구의 자전, 공전의 에너지와 연결되는데 그것이 곧 염력이라는 거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애벌레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몸을 뱀의 머리 모양처럼 변화시킨 변태 같은 유전적 진화도, 우리가 잘 모르는 거대한 에너지에 접속이 됐기 때문이 아닐까. <염력>의 초능력도 그런 식으로 할리우드 영화보다는 좀 더 포괄적인 관점으로 그렸다. 나중에 <염력>의 속편이 나온다면 석현의 팔이 뱀처럼 변하는 것도 가능할 것 같다. (※애니메이션이 아닌 만화 <아키라>(1982~1990))

 

‘염력’의 사전적 의미 중에는 불교 용어로 어떤 사람이 정신을 집중하면 산만하고 나쁜 생각 버리고 진실에 도달하는 능력이라고 나온다. 그것이 이번 영화의 의미와 더 맞다는 생각도 든다.

 

<염력>은 전체적으로 봤을 때, 감정을 가진 한 초인적인 인간이 무생물인 조직과 싸우는 이야기다. 눈으로 안 보이지만 엄청난 힘을 가진 체제가 있고 그 사이에 초인적이지 않은 인간들이 있다. 마지막에 석현이라는 초인이 체제와의 싸움에서 패하지만, 결국에는 그런 체제가 가진 텅 빈 허공 같은 느낌과 패배한 개개인들이 모인 행복 같은 걸 대비시켜 보여주자는 게 가장 큰 목표였다.

 

을의 분노가 폭발한 게 초능력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에 대한 문제가 슈퍼 히어로가 필요할 정도로 해결하기 힘든 과제라고 생각하나?

 

사실은 초인이라는 실제로는 없는 존재까지 내세워서 체제가 무섭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석현이 초능력을 폭발시키는 과정이 일종의 시위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불안정한 힘이기도 하고 그가 날아가는 상황에서 보통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모습도 시위에 대한 우화인 셈이다. 체제 속에서 체제에 반발할 수밖에 없는 울분 같은 것의 상징이랄까. 석현이 초능력을 얻는 과정도 그런 울분에서 시작된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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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현이라는 캐릭터는 보통의 슈퍼 히어로물, 서부영화 속 정의로운 캐릭터와는 완전히 다르다. 처음 등장할 때라든지 딸을 만나는 장면에서 ‘어떻게 저런 슈퍼 히어로가 있을 수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의감 없는 슈퍼 히어로라는 설정은 이전에도 꽤 많았다. 할리우드 영화 중에서 <핸콕> 같은 작품도 있고. 그걸 한국적으로 그려내자는 것이 가장 컸고, 또 석현보다도 석현을 대하는 다른 사람들의 태도, 특히 홍상무(정유미)의 태도를 보여주고 싶었다. 다른 초능력 영화에서는 보통 사람이 엄청난 능력을 갖게 될 경우 몸이 위험해진다는 등 마이너스 요소도 생기는데 석현에겐 그런 게 없다. 오히려 ‘변비도 낫고 몸이 더 좋아졌다’고 말하지 않나. 그러한 일종의 클리셰를 깨는 한편으로 홍상무를 통해 석현의 마이너스 요소가 언급된다. ‘초능력을 가졌다 한들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다. 국가라는 거대한 체제 앞에선 석현의 특별한 능력도 별 게 아니라는 걸 <염력>이라는 영화를 통해 말하고 싶었다.

 

십대 때부터 그와 비슷한 이야기를 친구들과 나누곤 했다. 이상한 능력을 가졌지만 주민등록이 말소된다든가 (웃음) 세금이 엄청 나온다든가, 그런 식으로 초능력자를 제압한다는 블랙 코미디 아이디어를 어렸을 때부터 떠올리곤 했다.

 

홍상무의 말이 너무 일리가 있어서 묘한 느낌이 들었다. 억지스런 얘기가 아니라서 듣고 있는 석현의 분노가 더욱 쌓이게 된다. 그 뒤에 석현이 홍상무의 차를 뭉개버리는 장면도 말로는 도저히 못 당하니까 그렇게라도 화풀이하는 것 같았다.

 

정확하게 짚었다. 시위의 본질이 그거라고 생각한다. 할 수 있는 게 그 방법 밖에 없으니까 그렇게 하는 거다. <염력>에선 서사의 연결성보다도 하나하나의 장면이 가진 상징성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영화라는 영상 매체가 관객에게 뭔가를 던진다면, 뭉뚱그려진 것일지라도 인상에 남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석현의 행동에 대해 반발감이 생길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시위가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염력>에서 가장 슬픈 건 석현을 가장 잘 이해하는 인물이 홍상무라는 점이다. 석현을 이해해줘야 할 주변 인물들은 오히려 그를 잘 모른다. 홍상무가 자기 차가 뭉개졌음에도 석현에게 짓는 유쾌한 표정이 정말... (웃음)

 

둘 다 ‘을’의 입장에 있는 사람이라서 그렇지 않을까. (웃음) 누군가가 홍상무의 차가 그의 위치를 고려했을 때 “너무 덜 고급이 아니냐”고 지적하더라. “벤틀리 정도는 돼야 한다”고. 하지만 홍상무가 그 정도 위치까진 아니다. 영화에 나오듯이 ‘벤츠’ 정도다. 내 영화들에선 갑과 을의 싸움은 보여준 적이 한 번도 없고 대부분 을과 을, 아니면 을과 병의 싸움을 그렸다. 솔직히 말해서 영화에서 갑이라는 존재를 그리는 것은 낭비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심은경 배우가 연기한 ‘루미’가 초능력자가 됐다면 이야기를 따라가기 편했을 텐데, 왜 굳이 아버지 석현을 초능력자로 만들었냐는 지적도 한다.

 

영화 속에도 잠깐 나오는데, 시위를 하는 사람들의 내부 관계도 굉장히 복합적이다. 강성인 사람은 화염병을 써야 한다고 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고. 그렇게 여러 이슈가 있는데 심은경 배우가 초능력을 쓰면 영화 자체는 시원하겠지만 그런 갈등을 보여주기는 힘들 것 같다. 또 그가 초능력을 썼다면 엄청 폭발했다가 결국에 죽는 이야기가 됐을 수도. 석현이라는 찌질한 사람을 통해 다소 우물쭈물하는 이야기가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염력>이 작년 8월 초에 촬영이 끝났으니까 5개월 만에 후반작업을 마친 셈이다. CG도 많이 나오는데 생각보다 빨리 마무리된 것 같다.

 

후반작업 기간이 보통 그 정도 된다. 원래 계획도 1월까지 마무리하는 거였으니까.

 

CG가 많이 쓰이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보다는 아무래도 배우의 연기에 많이 기댔을 것 같다. 류승룡 배우가 초능력을 발휘하는 연기를 할 때, 후반작업의 CG도 없는 상황에서 배우 입장에서 무척 난감했을 것 같다.

 

그랬을 거다. (웃음) 류승룡 선배가 그런 연기를 정말 잘한다. 심은경 배우가 “한국의 짐 캐리”라고 할 정도로 연기의 폭이 넓다. 자신을 내려놓는다고 할까. 정말 황당하게 웃긴 것부터 진지한 모습까지 다 커버한다. 혀로 염력을 발휘할 때의 표정조차도 애환이 담겨 있다. (웃음) 넥타이로 뱀쇼를 하는 장면을 찍을 때는 스스로 더 막나가는 아이디어도 낼 정도로 병맛 코미디에 있어서는 국내 최고라고 생각한다.

 

쑥스러워하면 그런 연기를 못할 것 같다.

 

<내 아내의 모든 것>(2012) 때부터 대단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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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을 늘 만들고 싶지만

 

연상호 감독과 비슷하게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해외에서 주목받는 중국의 리우 지앤 감독 작품 <해브 어 나이스 데이>가 최근 미국에서 개봉했다. 그 감독의 초기작도 사회적인 이슈들을 많이 다뤘던지라 연상호 감독은 애니메이션 작품을 더 이상 안 만드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애니메이션은 늘 만들고 싶지만 만들 기회가 자주 주어지지 않는다. 그런 아쉬움 때문에 얼마 전에 만화를 그리기도 했고.

 

그랬나?

 

<얼굴>이란 만화책인데 나온 지 일주일 정도 됐다. 비싸다. 2만2천원. (다들 웃음) <돼지의 왕> <사이비> 이후의 차기작 시나리오로 쓴 건데 애니메이션으로 못 만들어서 책으로 냈다. <부산행>을 끝내고 <염력>을 만들면서 꾸역꾸역 그렸던 거고 ‘<염력>에 업혀가자’는 생각으로 지난주에 출간했다.

 

요즘 영화 제작비가 커진 만큼 흥행의 볼륨도 커져서, 히트작을 많이 낸 감독은 부자가 돼서 빌딩도 산다더라. 그런 게 나쁘다는 건 아니고 연상호 감독도 계속 성공하면 부르주아가 될 텐데 앞으로도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작품을 만들 생각인지 궁금하다.

 

대부분의 경우 성공한 감독들은 벼락부자인 셈이다. 갑자기 부자가 되더라도 그 사람이 살아오면서 갖게 된 감수성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맨날 츄리닝만 입고 다니던 사람이 이름도 모르던 명품을 갑자기 걸치고 다닐 순 없으니까. 다른 감독님들도 자신이 부자가 됐는데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는 게 위선적으로 보이는 건 아닐지 걱정들을 많이 한다.

 

나는 작품 활동을 하면서 가진 자는 무조건 악마, 못 가진 자는 천사 식의 이분법적으로 그려 오진 않았고 체제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영화로 아무리 많이 벌어봤자 갑의 위치까지 갈 수는 없다. (웃음)

 

앞으로도 여러 작품 계획이 있을 텐데, 그 중에서 본인이 가장 욕심을 내서 해보고 싶은 차기작이 있다면?

 

<염력>이 흥행이 잘 되고 투자자 측에서도 많이 밀어준다면 클래식한 호러 영화를 해보고 싶다. <괴물>(1982), <플라이>(1986) 같은 1980년대의 호러 영화들을 무척 좋아한다. 신체 변형의 요소를 담은 작품들 말이다. 하지만 역시나 요즘 한국 영화계에서 돈이 되는 소재는 아니라서...

 

요즘은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이 예술 영화로 인식돼 있지만 1980년대에는 그러한 호러 영화들을 만들었다. 또 그 당시에 흥행이 잘 됐고. 과거에 그런 사례가 있었는데 신체 변형 호러가 흥행이 안 되라는 보장은 없다.

 

나는 물론 흥행할 거라고 생각하고, <염력>도 당연히 흥행을 목표로 만들었다. 그게 계속 통한다면 쭉 밀고 나가는 거다.

 

너무 관객 취향에 맞춘 영화들보다는 다양한 의견이 오가는 작품이 좋다. 그런 점에서 나는 <염력>을 지지한다. 사실 연상호 감독의 장편 애니메이션들을 잘 이해 못했고 싫어한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웃음) <부산행>과 <염력>을 보고 전작들을 이해하게 됐다. 영화라는 게 첫 느낌도 중요하지만 돌이켜서 보는 것도 중요하다.

 

<염력>에 대한 첫 반응들이 마음에 들었다. 어떤 영화가 나왔을 때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오가면서 들썩들썩 하는 게 좋으니까.

 

개봉 후 좋은 반응 얻기를 바란다. 호러 영화를 좋아하는 입장에서 원하는 차기작도 찍었으면 한다.

 

글쎄. 안 되면 또 <부산행> 같은 걸 해야지. (다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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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담 배담님 포함 55명이 추천

댓글 55

댓글 쓰기
2등
잘 읽었습니다. 확실히 <염력>에 연상호감독님의 영화취향이 묻어나왔네요
댓글
13:13
18.01.31.
profile image 3등

연상호감독님만이 만들수 있는 우리영화와 애니메이션, 계속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선 '얼굴'부터 구매하러 달려가야겠네요 ㅎㅎ
댓글
13:15
18.01.31.
profile image
영화보면서 느꼈던 감독님의 의도가 잘못 짚은게 아니구나 싶으니 기쁘네요ㅋㅋ 인터뷰 감사합니다!!!
댓글
13:17
18.01.31.
profile image
좋은 인터뷰 잘 봤습니다. 저에게 연상호 감독은 역시 애니로 기억됩니다. 애니 만들어주세용~~
댓글
13:21
18.01.31.
profile image
인터뷰 잘 읽었습니다
연상호 감독님 애니를 좋아했고 그런 사회성 있는 소재 다뤄 주시는것 감사하게 생각해요
댓글
13:26
18.01.31.
인터뷰 잘 읽었습니다!
+ 조만간 염력 보러 가겠습니다!
댓글
13:36
18.01.31.
profile image
읔. 스포주의를 보고 쓱 내렸네요 ㅎㅎ

보고 제대로 읽어야징~ 
댓글
14:13
18.01.31.
profile image
인터뷰는 잘 읽었습니다만,
'초능력 슈퍼 히어로물인 동시에 90년대 B급 코미디의 페이소스를 담으려고 했다'는
감독님의 의도가 <염력>에서 제대로 구현되었는지 많은 의문을 갖게 되네요. 
댓글
14:28
18.01.31.
profile image
영화를 아직 못봤지만 동세대로서 참 좋은 감독인거 같습니다. 좋은 리뷰 잘 봤습니다.
댓글
14:39
18.01.31.

신체 변형 호러물은 기대됨. 문제는 염력이 흥행 실패할 분위기인데;; 그래도 한국에서 드문 장르를 계속 시도하려는 점은 좋은 데 완성도가 높았으면.

댓글
16:37
18.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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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초월한듯한 여유가 있으시네요 화이팅입니다
댓글
16:43
18.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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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멋집니다 염력 으아 빨리 보러가야겠습니다!!! 응원합니다 연상호 감독님!!!
댓글
21:37
18.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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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읽으니 영화를 곱씹어보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댓글
22:05
18.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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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균동 감독님의 맨과 권해효 배우의 진짜 사나이를 좋아한다는 얘기부터 스타일이 나오네요 ㅋㅋㅋ 엄청난 영화들이었는데 두 영화다 국내관객들에게 외면받았죠...
댓글
00:37
18.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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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쭉 읽다가 곳곳에 살짝 스포가 있는거 같아 일단 영화를 본 후 다시와서 읽으려고 합니다. 어쨌든 염력 만드는라 고생하셨고, 익무에서 인터뷰를 해주시니 너무 반갑습니당!!
댓글
00:51
18.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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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행에대해 계속 고민해야하는 감독으로서의 고충이 느껴지네요
댓글
02:50
18.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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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고 읽어야지 싶어서 아껴뒀다 어제 영화 보고 막 읽었습니다. 좋은 인터뷰 감사해요. :)
댓글
08:10
18.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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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보고 와서 드디어 정독!

역시나(?) 노인Z 언급이 있군요 ^^

근데... 감독님 '올드'한 건 빼박 사실 맞는 거 같아요. -0-
댓글
11:12
18.02.01.
영화가 재밌어서 인터뷰도 재밌네요!! 인터뷰때문에 영화도 더 재밌게 2차 보러 갑니다. 반칙왕 이전 작품들은 다 못봤는데찾아보러 갑니다
댓글
13:30
18.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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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력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감독님 저도 진짜사나이 진짜 좋아합니다! ^^
댓글
13:45
18.02.01.
연상호 감독님의 신체변형호러물이라..ㄷㄷㄷ

인터뷰 잘 읽었습니다 :)
댓글
16:58
18.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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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인터뷰지만 전부 읽었습니다. 자신만의 주관이 뚜렸 하신 것 같아서 앞으로의 작품들도 기대가 되네요^^
댓글
02:14
18.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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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력도 인터뷰도 잘 봤습니다. 늘 팬입니다.
댓글
08:48
18.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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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영화 관람 후엔 다른 분들의 리뷰보다는 감독 인터뷰를 봐야한다는 ㅋ
댓글
00:52
18.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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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고나서 드디어 인터뷰 보러왔어요.
B급영화 정서가 많이 묻어나서 개연성 없는 부분도 그냥 넘어갔는데
블록버스터를 기대한 사람들이 B급 영화에 대한 면역이 없어서 혹평이 있지않나 싶어요. 저는 신선했구요 재밌게 잘 봤습니다.
댓글
15:56
18.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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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사람도 더 즐길만한 스토리(?), 방법(?)이 필요할것 같은데...
인터뷰 잘 봣습니다
댓글
12:43
18.03.12.

시도는 좋았지만... 그래도 노력은 하셧으니 박수!!

아쉬움이 많은 영화이긴 했어요

댓글
03:14
18.04.02.
염력이란영화 시나리오도좋고 그런데 CG나 아쉬움이 굉장히남는 영화;;;
댓글
01:58
18.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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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있게 읽었어요. 페이스북에서 정유미배우 편집영상을 봤었는데 연기력이 대단하더라구요.

보고싶은 영화리스트추가 !

댓글
00:31
18.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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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너무 재미있게봐서 항상 기대중인 감독입니당

댓글
00:55
18.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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