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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본색 3 - 英雄本色 III: 夕陽之歌 (1989)

makeneko makene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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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고 싶다

얼마 전에 <영웅본색> 박스 세트가 나왔다. 감개무량하다.

80년 후반, <영웅본색>은 전설이었다. 3류 극장에서 <영웅본색>을 본 녀석들은 입에 거품을 물고 떠들어댔다. 자신의 머리에 총을 들이대는 악당에게 꼼짝하지 못했던 치욕, 그 치욕을 언제나 새기며 살아가는 소마. 다시 한번 후배에게 치욕을 당하면서도, 결코 복수를 잊지 않았던 그 남자. 성냥개비 하나를 입에 물고, 쌍권총을 쏘아대는 주윤발의 모습은 너무나도 환상적이었다. 비루한 현실을 인정하고, 그 현실을 뛰어넘겠다는 무모한 복수심. 그건 도쿄대 강당 벽에 쓰여진 낙서 ‘서서 죽을지언정 무릎꿇지 않는다’는 발악과 일맥상통하는 것이었다. 거대한 체제의 벽에 돌을 던지던 녀석들은, 대체로 소마에게 열광했다. 여자애들은 장국영에게 반했지만.

내가 주윤발을 처음 만난 것은, <영웅본색>이 아니었다. 나는 임영동의 <용호풍운>(나중에 <미스터 갱>이란 제목으로 개봉한)을 먼저 봤다. 쿠엔틴 타란티노가 <저수지의 개들>에서 인물과 플롯을 인용한 <용호풍운>에서, 주윤발은 비굴한 경찰 스파이로 나온다. 정보를 캐기 위해 이수현의 조직에 들어간, 착하지만 비겁한 인물. 나는 그 주윤발이 좋았다. 아니 마음이 끌렸다. <영웅본색>의 주윤발은 굴욕을 견디면서 영웅으로 거듭나지만, <용호풍운>의 주윤발은 추레하고 나약한 인간에 불과하다. 나는 그에게 더 시선이 갔다.

그러나 주윤발은 멋있다. <영웅본색>이건, <용호풍운>이건, 어떤 영화건 간에. <영웅본색2>는 졸작이라 할 수 있다. 이미 죽여버린 소마를 다시 등장시키기 위하여, 쌍둥이 동생을 만들어 주윤발을 출연시킨 <영웅본색2>는 마지막 결전도 그리 감동적이지 않고 이야기도 뒤죽박죽이고 오우삼 특유의 액션도 뻔하다. 게다가 충격으로 정신적 장애를 일으킨 보스의 모습을 보는 것도 씁쓸하다. 그나마 전화부스에서 죽어가는 장국영을 보며 눈물을 떨구는 정도라고나 할까. <영웅본색3>가 실패한 이유 중 하나에는, <영웅본색2>의 실망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영웅본색3>는 1, 2편을 만들었던 오우삼이 아니라, 제작을 했던 서극이 직접 연출을 했다. 그리고 배경을 과거로 끌어간다. 시퀄이 아니라 프리퀄을 만든 것이다. 소마가 홍콩으로 오기 전, 베트남에서 벌어진 사건들. 순수하고 평범한 청년을 ‘싸움꾼’으로 만들었던 사건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신화의 공간에서 갑자기 역사의 현실"로 끌려나온 것에 관객이 당황했기 때문에 <영웅본색3>가 실패했다는 말도 있었지만, 그건 틀렸다. 애초에 <영웅본색>은 정치적 입장이 분명했다. 베트남에서 ‘탈출’하여 홍콩으로 온 서극은, 예정된 미래에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다는 사실을 깊게 자각하고 있었다. 다시 탈출해야만 하는 것은 아닌가. 실제로 80년대의 수많은 홍콩인들은, 캐나다로, 호주로 이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탈출은, 불확실한 미래는 의심의 여지없는 현실이었다. 그런 현실을 하나의 신화로 만들었던 <영웅본색>은 한국에서 또 하나의 신화가 되었다. 그 신화 역시, 80년대의 암울한 현실이 있었기에 수많은 청년들이 공감했던 것이다. <영웅본색>은 결코 허황한 판타지가 아니었다. 싸워야만 함을 자각했던, 겁이 나지만 덤벼야만 했던 젊은이들의 마음을 헤아려준 영화였다.

<영웅본색3>의 젊은 소마는, 갱만이 아니라 베트콩과도 총격전을 벌인다. 명예나 의리가 아니라, 그들은 살기 위해서 방아쇠를 당긴다. 순수했던 젊은이가 어떻게 신화 속의 영웅으로 성장해 가는지를, <영웅본색>은 보여준다. 소마의 트레이드마크였던 검은 바바리를 입은 연상의 여인을 사랑하고, 그녀의 죽음이 그의 기억 아니 ‘몸’에 남았는지를 보여준다. 이미 저 세상으로 가 버린 매염방의 얼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한 여인과 한 남자. <영웅본색3>는 영웅의 과거를 슬프게 그려낸다. 서극의 시선은 언제나 현실에 닿아 있다. 그러면서도 낭만적이다. 80, 90년대 홍콩영화의 흐름을 좌우했던 서극의 영화는, 오우삼을 능가한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2006-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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