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치와 씨팍' Y2K로의 초대
솔직히 영화 시작하고 30분정도는 대체 이걸 왜 보러왔나 하면서 마왕 팬심으로 본다는 생각 정말 많이 했었어요. 머리가 굳은 꼰대가 되어서 그런 건지, 플롯도 대놓고 B급이고 불편한 요소가 시퀀스마다 걸리적거리더라구요;;
(지금은 '병맛'이라 불리겠지만) 2000년 전후 소위 '엽기'로 통용되는 정서를 가감없이 꽉꽉 담았더군요.
근데 이상하게 영화를 보면 볼수록 빠져들었어요. 추억팔이 하게 만들면서요.
괴짜가족, 이나중 탁구부, 오인용, 쌈지, TTL 무료배포 잡지, 고스트 스테이션, 인디밴드 등등...
한창 중2병 걸려있던 시기의 문화코드라 그런지, 대놓고 B급 범벅인데 곱씹을수록 정이 가고... 회상 버튼이 한번 눌리니까 영화보고 돌아오는 길에 걷잡을 수 없이 많은 생각이 들더군요. 돌아오는 길엔 라디오에서 자우림 노래까지 흘러 나왔던ㅎㅎ
이래저래 참... 이상한 영화였어요...
백과사전처럼 방대한 서브컬쳐 컬렉션에 놀랐습니다. 당시 사회상과 분위기도 떠오르게 만들고...
무엇보다 대놓고 병신같은 세계관을 밀도 있게 담아내요. 나중엔 이게 너무 정성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해서 뒷통수를 세게 맞은 느낌까지 들었던...
1998-2006년까지 8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만든 배짱과 패기가 부러웠고, 그 시대라 용인되었던 자유로움이 그리웠달까요?
개인적으로 어떤 분야든 발전하려면 생태계처럼 다양성이 있고 그 접점에서 진화, 도태를 거듭해야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점에서 이런 작품이 용인되는 다양성의 시대가 그리워지더군요. 어디서 이런 근본없는 돌연변이 같은 작품이 나타났던 건지 생각할수록 놀라울 따름입니다. 비록 호불호는 강하게 나뉠게 뻔하고, 제 취향저격 또한 아니었지만 적어도 이 영화만의 뚜렷한 색깔을 좋게 봤어요.
IMF시대가 훑고간 후 대담한 창의성보단 안정적 수익성에 중점을 맞추다보니, 2010년대 이후론 좀처럼 신선한 느낌을 주는 작품을 만나기 쉽지 않네요. 게다가 요즘엔 조금이라도 튀거나 다르면 대놓고 폄하하거나 조롱하기 일쑤고, 말이 길어지면 쓸데없는 TMI로 치부되기도 하죠. 똘레랑스가 부족한 획일화된 사회적 분위기가 문화의 진화를 막고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다른 게 꼭 틀린 건 아닌데 말이죠...;;
요즘 들어 2000년대 전후 영상을 많이 찾아보는데...
나이드니 그저 추억팔이가 좋아진 건지, 아니면 상상의 한계를 시험하는듯한 문화적 스펙트럼이 그리운 건지 모르겠네요.
유행은 30년 주기로 돌고 돈다는데 또 그런 시절이 다시 돌아올지 궁금하기도 하고...
아치와 씨팍,
개인적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였습니다.
추천인 8
댓글 2
댓글 쓰기정치,종교 관련 언급 절대 금지입니다
상대방의 의견에 반박, 비아냥, 조롱 금지입니다
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자세한 익무 규칙은 여길 클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