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키 데스데이] 간략후기
할리우드의 호러 명가 블룸하우스의 신작 호러 <프리키 데스데이>를 시사회로 미리 보았습니다.
<해피 데스데이> 1,2편으로 판타지가 결합된 독특한 호러 오락물을 성공시킨 바 있는
크리스토퍼 랜던 감독이 웃음과 공포 모두 한층 강력해진 19금 호러로 돌아온 <프리키 데스데이>는
고등학교를 무대 삼아 시대를 풍미한 청춘 호러와 청춘 코미디의 결합으로 색다른 재미를 줍니다.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해피 데스데이> 시리즈를 성공시킨 게 아닌가 싶을 만큼,
감독은 호러물로서의 개성, 코미디로서의 재치, 배우의 연기까지 3박자의 균형을 훌륭히 이뤄냅니다.
여고생 밀리(캐서린 뉴튼)는 존재감 제로에 수렴하는 아웃사이더 중에서도 '핵' 아웃사이더입니다.
짝사랑하는 남학생이 있지만 변변한 고백도 못한 채 미식축구부 마스코트 옷 속으로 자신을 감추고 살던 어느 날,
'블리스필드 도살자'라는 별명이 붙은 악명 높은 살인마(빈스 본)가 밀리를 습격합니다.
개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밀리는 다른 호러 영화에서라면 많은 희생양 중에 하나로 취급되었겠으나,
이 영화에선 그렇지 않으니 이유는 살인마가 쓴 신비의 칼로 인해 두 사람의 영혼이 뒤바뀌기 때문입니다.
하루아침에 밀리는 중년의 싸이코 살인마 모습을, 살인마는 새파란 여고생의 모습을 하게 된 것이죠.
신비의 칼에 걸린 저주로 인해 주어진 시간 안에 몸을 되찾지 못하면 영원히 그 모습 그대로 살아야 하는 상황.
살인마가 여고생의 모습을 하고 살인극을 벌일 때, 밀리는 살인마의 모습을 하고 결백을 입증해야만 합니다.
'바디 스왑' 장르라고도 불리는, 두 주인공의 몸이 뒤바뀌는 설정의 영화는 그간 여러 영화에서 봐 왔지만
호러 영화에서는 꽤 신선하게 느껴지는 설정이고 더군다나 그 당사자가 살인마와 여고생이라는,
극명히 다른 입장에 선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프리키 데스데이>는 롤러코스터처럼 꽤 낙차가 큰 재미를 줍니다.
호러 영화들의 오프닝의 강렬함이 으레 그렇듯, 영화는 시작부터 '블리스필드 살인마'가 벌이는
무자비한 살인극을 보여주며 쇼킹한 효과를 전하는데 한편으론 빠른 편집과 어느 정도의 과장된 연출로
리얼리티를 강조하기보다 만화같은 효과를 도모함으로써 '어른들을 위한 예측불허 호러'가 될 것임을 암시합니다.
그런데 사건이 본격적인 국면에 들어서며 그처럼 무시무시한 살인을 저지른 남산만한 덩치의 살인마에
소심하기 짝이 없는 여고생의 의식이 들어가게 되면서, 공포와 코미디가 대등한 비중으로 줄타기를 시작합니다.
뭐 하나 만만하게 보이는 게 없는 살인마 비주얼의 남자가 자신의 본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본체의 소심한 성격이 온갖 행동을 통해 드러나면서도 타고난 힘을 어쩌지 못하는 부분은 웃음을 책임집니다.
반면 그렇게 소심함을 온몸으로 표현하던 소녀 비주얼의 여인이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잔혹한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에서는 그 수위가 '청소년 관람불가' 답게 꽤 임팩트 있어 놀람을 책임집니다.
설정의 신선함에만 의존하지 않고 그로 인해 형성되는 호러 코드와 코미디 코드에 기대되는
모든 부분을 꽤 대담하게 밀어붙인다는 점에서 <프리키 데스데이>가 주는 재미의 개성은 분명합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영화는 시대에 부합하는 전개로 개성 충만하면서도 불편하지 않은 재미를 추구합니다.
밀리의 모습을 하게 된 살인마에게 희생되는 인물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밀리와 얽힌 인물들이 주를 이루며
단지 살인극 장면을 통한 충격 효과만를 넘어서는 독특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합니다.
한편 살인마의 모습을 하게 된 밀리는 지금껏 자신의 모습일 때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들을 알게 되면서 예전의 자기 삶에서 느꼈을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과 마주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밀리가 몸을 쓰게 된 살인마에게 당위성이나 스토리를 부여하는 것 또한 아닙니다.
살인마는 아무 이유나 목적 없이 무작위로 살인을 저지르는 싸이코패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다만 영화는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내몰리거나 하지 않고 대등하게 맞서 싸우는 구도를 통해
완전히 반대의 입장에 서게 된 소심한 10대가 어쩌다가 겪는 육체적, 정신적 성장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이를 통해 내 외관보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 품은 마음과 용기의 크기라는 것을 경쾌하게 전달합니다.
자칫 자극적으로만 소비될 수 있는 '살인마와의 바디체인지'가 나름의 메시지를 남긴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프리키 데스데이>는 설정 특성상 배우들의 '비명 소리' 이상의 고난도 연기를 보여주어야 하는데,
서로의 캐릭터를 유머러스하면서도 그럴듯하게 재현하는 두 주연 배우의 연기가 매우 찰집니다.
살인마 역의 빈스 본은 코미디 배우로 잘 알려져 있지만 활동 초기에는 <싸이코> 리메이크판 등
여러 영화에서 남다른 피지컬을 활용한 무서운 연기를 곧잘 보여주는 배우이기도 했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초반 본래 살인마로서의 모습을 무지막지하게 연출하며 초창기의 모습을 되살리다,
몸이 바뀌게 되면서 나타나는 소심하고 당황스러워 하는 모습을 통해 명불허전 코미디 연기를 선보입니다.
밀리 역의 캐서린 뉴튼 또한 쉽지 않은 살인마 연기를 몸이 바뀐 모습 안에서 능청스럽게 소화합니다.
겉보기에는 그저 강철 멘탈의 여고생처럼 보이는데 가차없이 무자비한 살인극을 벌일 때,
그 모습에서 나타나는 싸늘함과 묘한 쾌감의 결합은 영화에 독특한 긴장감을 형성합니다.
<프리키 데스데이>는 사실상 개점 휴업이나 다름 없는 할리우드에서 날아온 뜻밖의 걸출한 호러입니다.
하이틴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 호러와 코미디 장르의 클리셰를 지킬 듯 부술 듯 아찔한 태도를 취하고,
장르 팬들도 상당히 흡족해 할 호러 장면들을 망설임 없이 연출하다가도 웃음을 참을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는,
적당함에서 만족하지 않는 호러와 코미디의 결합이 기대 이상의 짜릿한 재미를 줍니다.
제목처럼 돌아버릴 설정과 그 설정을 실현하고 응용하는 대담한 연출, 그 연출에 부응하며
물 만난 듯 연기하는 배우들이 어우러져 <프리키 데스데이>는 올해 단연 인상적인 할리우드 호러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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