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위아저씨의 리뷰쓰기 강좌
몇 년 전에 저는 주제 넘게도 '수위아저씨의 글쓰기 강좌'라는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익무 어딘가에 있습니다만 어딘지는 안 알려줄겁니다). 글밥 먹으며 사는 입장에서 제가 배운 지식을 조금이라도 전달하면 좋을 것 같아 올린 글이었습니다. 사실 글쓰기 강좌는 그 글에서 다 끝났습니다.
제가 지금 쓰는 이 글은 '글'이 아닌 '리뷰' 쓰기입니다. 이것은 누구에게 배운 것도 아니고 제가 리뷰를 쓸 때 이렇게 쓴다는 취지입니다. 때문에 이것은 온전한 정답이 아니고 그저 '제안'에 불과한 수준입니다. 가볍게 참고하셔서 본인만의 리뷰쓰기 원칙을 확보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올려보는 글입니다.
그럼에도 제목에 '강좌'라는 단어를 붙인 것인...마땅한 제목이 생각이 안 나서입니다. ...쉽게 말해 어그로 끄는 셈이죠.
1. 영화에는 많은 정보가 있다
- 모든 영화가 그렇진 않겠지만 한 편의 영화에는 생각보다 많은 정보가 있습니다. 이것은 설령 감독이 의도하지 않은 부분이라도 관객이 겪고 있는 시대성이나 영화 속 배경, 감독의 삶이 반영되면서 나타난 정보들이죠. 어떤 관객은 이 정보를 조합하는 작업을 합니다. 이것을 소위 '해석'이라고 부르죠. 해석을 하며 영화를 보는 것은 영화를 즐기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정작 영화를 완전히 이해하겠다고 덤비면 자칫 산으로 가는 해석이 나오기 쉽죠. 실제로 많은 유튜버들이 '완전 해석'이랍시고 내놓는 썰들은 대부분 산으로 가버린 이야기입니다.
- 그렇다면 관객은 영화를 이해하는데 그 많은 정보를 모두 습득해야 할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영화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것은 단 한 가지 정보입니다. 잘 만든 영화라면 하나의 정보는 모든 정보와 그물처럼 얽힐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쓴 '미드소마' 리뷰의 경우 공간의 이질감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고 거기서 리뷰를 시작했습니다. 굳이 공간의 이질감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미드소마'는 그것이 아니어도 이야기를 시작할 꺼리는 아주 많습니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기생충'을 쓸 때도 마케팅 단계에서 언급한 몇 가지 키워드로 시작했습니다. '가족희비극', 부자와 가난한 가족 등이죠. 난해하다 싶으면 쉽게 풀어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영화를 보다 보면 한 가지 콕 박히는 키워드가 있습니다. 그것을 물고 늘어지면 영화를 풀어 쓰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2. 메모하는 버릇은 좋다
- 실제로 언론시사회를 가보면 영화를 보면서 실시간으로 메모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는 메모를 하진 않습니다만 그런 버릇은 좋다고 생각합니다. 취재의 연장선상으로 영화보기라고 생각하거든요. 영화를 즐기려는 입장이라면 이는 다소 방해가 될 수 있지만 난해한 영화를 볼 때나 "내가 이 영화에 대해 잘 써보고 싶다"고 한다면 메모를 하는 버릇은 필요합니다.
- 여담이지만 넷플릭스로 영화를 보기 시작하면서 좋은 점이 하나 있습니다. 글을 쓸 때 언급돼야 할 정보를 다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인데요. 최근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를 쓰면서도 마지막 장면을 바탕으로 미국 근현대사와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바람에 지리와 역사적 정보가 필요해서 영화를 다시 돌려 봤습니다. 실제로 영화 글을 제대로 쓰는 사람은 같은 영화를 몇 번씩 봅니다. N차를 한다면 이런 작업은 더 쉬워질거라 생각합니다.
3. 글의 시작은 환기, 끝은 요약
- 이것은 제 글쓰기 버릇이기도 합니다만 다른 사람에게 권장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글을 쓸 때 꽤 어려운 부분 중 하나가 도입부입니다. 소위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하지"라는 고민이죠. 저는 글을 시작할 때 본문과 상관은 있지만 다른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분명 제목에서 어떤 영화에 대한 리뷰로 알고 들어왔겠지만 전혀 딴소리를 시작하니 당황스러울 수 있습니다. "이 새끼는 뭔 소리를 하는거지?"라는 호기심을 만들다가 점차 영화 이야기로 들어가는 셈이죠(가끔은 아예 영화와 상관없는 영화이야기를 할 때도 있습니다). 환기를 하는 이 도입부는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제 글의 경우에는 재미가 없을때도 많습니다). 때문에 글을 쓰는 입장에서는 한 가지만 기억하면 됩니다. "도입부에서 어그로를 끌겠다". ...도입부는 어그로를 끌어야 합니다.
- 글의 주제가 어디에 있는지는 쓰는 사람의 자유입니다. 시작할 때 나와도 좋고 끝에 나와도 좋습니다. 제 경우에는 주로 끝에 두려고 합니다만 사실 정리가 안됩니다(리뷰 쓸 때 번호를 붙이는 이유도 정리가 안돼서 붙인 겁니다). 그래서 사실 제 리뷰는 마지막만 읽으면 됩니다. 제 감상은 거기에 들어있죠. 그리고 조금 똘똘하게 쓴다면 서두에서 쓴 환기가 마지막에서 영화와 만나는 것도 좋습니다. 수미쌍관까지는 아니어도 시작할 때 던진 퍼즐이 마지막에 영화와 이어지는 셈이죠. 이렇게 쓰면 꽤 똑똑해 보일 수 있습니다.
4. 영화마다 태도는 달라야
- 제가 한창 영화 글쓰기에 빠져있던 학창시절에는 소위 '해석하는 글'이 대세였습니다. 그 시절 씨네필 필독서였던 박찬욱 감독의 '영화보기의 은밀한 매력, 비디오드롬'(훗날 '박찬욱의 오마주'로 재출간된)은 모든 영화를 기호화 해서 프로이트적 관점으로 해석했죠. 여기에 영화잡지 '키노'도 기름을 부어서 많은 씨네필들이 영화글을 해석하면서 써댔습니다. 저는 영화글도 트렌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많은 영화유튜버와 블로거들이 해석하면서 글을 써대서 똑같이 쓰면 자신만의 개성을 찾기 어렵습니다.
- 그래서 제 선택은 감성을 살린 에세이 형태로 쓰거나 역사적 배경을 '억지로' 찾아내서 영화를 확장시키는 방식입니다. 궁극적인 목표는 영화글이 영화로부터 독립하는 형태입니다. 영화글은 사실 기생적입니다. 영화가 없이는 존립하기 어렵죠. 그래서 제 글은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도 재밌게 읽히길 바라고 있습니다(물론 제 소양이 부족해서 아직 그 경지에는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아마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도 많이 느낄 겁니다. 영화를 해석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말이죠. 그렇다면 개성있는 영화글을 쓸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글을 쓸 지는 독자의 선택이고 영화의 선택이겠죠.
우선 제가 리뷰쓰는 방식은 이 정도입니다. 워낙 막 쓰는 편이라 도움이 될 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여지껏 제 리뷰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글 막 쓰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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