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의 일본 제목, 포스터가 촌스러워지는 이유
일본 하버비즈니스라는 사이트에... 한국영화의 일본판 제목과 포스터 디자인을 비판하는 기사가 올라왔습니다.
https://hbol.jp/228954
한국문화에 정통한 타이라 사토코라는 분의 글인데.. 흥미로워서 요약해서 옮겨봤습니다.^^
왜 한국영화의 일본판 제목과 포스터는 ‘그 모양’인가?
너무나 안타까운 ‘개변’의 주범은...
최근 SNS에 “한류 드라마가 일본에 오면 이렇게 된다”는 해시태그가 은근히 퍼지고 있는 게 눈에 띈다. 한류 드라마가 일본에 상륙하면 내용과 상관없이 무조건 (포스터 등이) 러브코미디처럼 된다는 것이 한류 드라마 팬들 사이에서 화제다.
핑크빛에 반짝거리는 디자인이 너무나 싸구려틱해서 오리지널 한국판 포스터의 느낌은 거의 남질 않고 대부분 비슷한 포스터처럼 된다. 이는 시청자들에게 잘못된 이미지를 심어주고, 달달한 러브코미디를 잘 못 보는 시청자들을 배제시켜, 시청자를 (러브코미디를 선호하는) 사람들로 한정지어버린다. 제목과 포스터에는 그럴 만한 힘이 있다.
안타깝게도 이런 사례는 드라마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영화도 일본에 오면 제목과 포스터가 촌스럽게 바뀌어 버린다.
<부산행>(2016)
일본 제목은 “신감염”(新感染)
“새로운 감염”이라는 뜻 + 신감염은 일본식 발음으로 ‘신칸센’.. 동일한 발음의 일본 고속열차를 상기시킴.
(말장난식 유치한 제목이라며 일본에서도 지적이 많았던 제목)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려고 분투하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담은 한국판 포스터가 인간 드라마적인 요소가 강한 작품의 내용을 잘 반영하고 있는 데 반해서...
일본 포스터는 일반적인 좀비 서바이벌 영화 같은 분위기에 그침.
<남자가 사랑할 때>(2013)
일본 제목은 “상처투성이인 두 사람”(傷だらけのふたり)
일본판은 제목도 그렇고 포스터 디자인도 그렇고... 여주인공 한혜진의 모습을 같이 담았지만, 실제 영화는 사채업자인 남자가 한 여성을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라서 어울리지 않음.
또 한국판 포스터의 제목은 주연배우 황정민이 직접 쓴 것이어서 주인공의 성격이 반영된 힘 있는 필체이지만, 일본판에는 그런 느낌이 사라짐.
<미쓰백>(2018)
일본 제목은 “학대의 증명:(虐待の証明)
한국 원제는 억울한 일을 겪으면서 힘든 인생을 살아온 여주인공의 별명에서 따온 제목. 하지만 그 별명이야말로 그녀가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를 잘 보여주고, 학대와 과거 경험에서 생겨난 갈등을 그녀가 어떻게 극복해 가는가 하는 스토리를 훌륭히 제시하고 있는 제목이다.
하지만 일본 제목은 주인공이 보호하고자 하는 소녀의 학대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또 일본판 포스터는 주인공들의 얼굴에 상처, 더러움 등을 일부러 더 추가하여 비참함을 더욱 강조.
한국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본 영화지만, 일본판 제목과 포스터만을 봐서는 솔직히 보고 싶은 마음이 안 들었다.
<증인>(2018)
일본판 제목은 “무구한 증인”(無垢なる証人)
일본 제목의 “무구(순진 또는 결백)한”이라는 말은, 주인공 소녀가 자폐증이라는 걸 제시하고 싶었던 것인지. 결코 나쁜 의미로 쓰인 건 아니지만, 자폐증 소녀가 무구하고 순수했으면 좋겠다는 판타지가 투영돼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쓸데없는 사족이라고 생각된다.
이렇듯 일본 제목에서는 쓸데없는 사족이 붙는 경우가 아주 많다.
영화는 사건의 해결보다도 그 과정에서 두 주인공 사이에서 생겨나는 마음의 교류가 주제이다. 그걸 생각해보면 두 사람이 심각하게 반대 방향으로 서 있는 일본판 포스터보다, 서로를 보면서 미소 짓는 한국판 포스터가 작품의 의도에 훨씬 부합한다고 생각된다.
제목이 스포일러를 해버리는 사례도..
바뀐 제목이 촌스러워진 건 그렇다 치고, 사족 때문에 관객이 영화의 결말을 예측해 버리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 영화가 <침묵>(2017)이다.
일본 제목은 “침묵, 사랑”(沈黙、愛)
한국판 포스터에는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꼭 알아야겠어”라는 강렬한 카피와 더불어, 주연배우 최민식의 날카로운 시선이 인상적.
하지만 일본판 포스터는 “사랑하는 연인이 죽었다. 용의자는 가장 사랑하는 딸. 딸이 정말 범인일까?”라는 걱정스런 문구와 함께 비통한 표정의 최민식의 모습이 담겨 있다.
영화를 보면 왜 일본판 제목과 포스터가 스포일러인지 알 수 있다. 영화 속 주인공의 선택을 보면 한국판 포스터가 딱 어울린다는 게 이해가 된다.
중년 남자들이 “무조건 알기 쉽게” 하도록 요구한다.
다른 사례들도 많지만, 공통적으로 말할 수 있는 건, 한국영화가 일본에 오면 제목도 포스터도 알기 쉽게 된다는 점이며, 그로 인해 작품의 이미지나 메시지를 잘못 인식하게 된다거나, 원제나 한국판 포스터가 가지고 있는 감각이나 분위기를 손상시킨다는 것이다.
한 배급회사 사원의 말에 따르면, 한국판 포스터의 뉘앙스를 존중하려는 사원들도 물론 많지만, 결정권을 쥔 중년 남자들이 “무조건 알기 쉽게”하라고 늘 요구한다고.
그리고 그들이 꼭 알기 쉬운 제목과 포스터여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의 이면에는, 일본인들의 ‘영화 기피’가 엿보이는 걸지도 모른다.
작품의 분위기와 메시지를 정확히 전달하는 제목과 포스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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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중장년층 일본 관객들을 위해서 제목을 알기 쉽게 바꾼다는 기사도 있습니다.
https://extmovie.com/movietalk/33226207
gol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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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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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저렇게 나 있으면 일본이야 문제 없겠지만 한국에선 일단 포스터 심의에 걸릴 수 있겠네요..ㅎㅎ
그런데 <미쓰백> 일본 버전 포스터는 아역배우 얼굴에까지 상처 효과를 더 붙인 건 좀 너무 나간 느낌이네요.
해외 영화 포스터에 더 많은 정보를 넣어서 관객을 극장으로 유인하려는 것이군요.
덕분에 스피드웨건 포스터가 되어버리네여.
일본의 작명 센스는 옛날부터 좀 별나긴 했죠.
존 카펜터 감독의 '괴물(The Thing)'은 우리말 제목도 그렇고 원제목도 그렇고 딱 두 음절로 발음되는데,
일본 개봉명은 '유성에서 나온 물체 X(遊星よりの物体 X)'입니다.
이건 1951년작인 '외계에서 온 괴물(The Thing from Another World)'이 일본에 소개됐을 때의 개봉명인데,
그걸 현대적으로 리메이크한 존 카펜터 감독의 괴물에도 그대로 적용한 거죠.
2011년에 개봉된 프리퀄 영화 '더 씽'에도 이 제목을 그대로 적용했는데, 거기에 부재까지 붙였습니다.
'유성에서 나온 물체 X: 퍼스트 컨택트(遊星よりの物体 X: ファㅡストコンタクト)'라는 긴 제목이 된 거죠.
할리우드 영화도 들어오면 촌스러워지는 곳이 일본인데 하물며 한국영화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