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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서 없이 쓴 감상문입니다. 그냥 심심풀이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감독: 스티브 마이너

최근 들어 거의 1년에 한편 정도는 좀비를 소재로 한 영화가 만들어 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작년에 나름데로 이슈가 되었던 밀라 요보비치 주연의 영화 '레지던트 이블 3'의 경우를 예로 들 수 있고 얼마 전에는 블래어 위치를 연상시키는 스페인의 좀비 영화가 화재가 된 적도 있다. 조지 로메로 감독이 만든 시체 삼부작 시리즈도 하나씩 리메이크 되고 있으며 연로한 로메로 감독 본인도 좀비 영화에 끊임없는 애착을 보이는 형편을 떠올리면 참 이상한 생각도 든다.

아무튼 스티브 마이너 감독의 'day of the dead'의 경우 조지 로메로 감독이 80년대에 레이건 정부 시절에 만든 동명 타이틀의 영화와는 상당히 다른 스토리로 전개되고 있다. 아예 두 영화를 리메이크적 관점에서 볼 수 없을 정도이며 독립된 스토리로 보아야 타당할 정도이다. 그 줄거리는 대략 아래와 같다.

미국의 한 시골 도시 근처에 위치한 연구소에서 과학자들은 바이러스를 테스트하는 실험에 착수한다. 비슷한 시기에 감기 증상을 호소하는 마을 주민들의 수가 불어나기 시작하여 병원이 북새통을 이루게 된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은 급작스럽게 좀비와 같은 공격성을 보이기 시작하여 정상인들을 공격하고 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군대는 통제력을 상실하게 되고 군인 몇 명과 마을의 주민 몇 명은 생존을 위해 병원을 빠져나가고 마을을 빠져나가는 과정에서 좀비들과 목숨을 건 혈투를 벌이게 된다.

군부대가 개입이 되어 실패한 실험으로 인해 사람들이 좀비가 된다는 것은 '레지던트 이블'과 상당히 흡사한 느낌이 든다. 어떤 바이러스에 의해 감염된 사람들이 좀비로 변한다는 점에서는 영화 '28 주후'와 유사한 설정이다. 하지만 '데이 오브 더 데드'의 경우 위 영화들처럼 화끈한 액션을 선사하는 주인공(밀라 요보비치)이 등장하거나 좀비 영화 특유의 묵시록적인 긴장감을 형성하기에는 좀 부족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스토리 자체는 여전히 흥미로우며 영화에서 전개되는 액션 자체도 지루함을 유발할 정도로 부족하지는 않고 오히려 상당한 고어씬들 때문에 노약자, 임산부는 관람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 호러 영화 팬들이라면 부담없이 볼 수 있는 양질의 작품이며 보고 나서 뭔가 뿌듯한 정도의 느낌은 기대하기 어려운 것같다.

좀비 영화는 그 소재가 참으로 호러 영화에 적합한 것이다. 좀비로 변한 사람들의 광폭성, 공격성과 전염성 등은 박진감 넘치는 장면들을 양산해낼 가능성을 많이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 호러 영화에서 묘사되던 좀비들은 느릿느릿한 산송장들로써 우글거리는 숫자로 밀어붙이던 반면 요즘에는 떼거지로 몰려오는 건 그렇다치고 '지능이 있는 좀비', '엄청나게 빠른 속도와 초인적인 힘을 자랑하는 좀비' 등의 '슈퍼 좀비'들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한 해에 한 편 정도는 나오는 듯 하다. 헐리우드에서 영화로 만들 소재거리가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다시 부는 좀비 영화 바람이 좀 의문스럽다는 생각도 든다. 왜 좀비 영화들이 다시 주목을 받는 것일까?

크게 연관성은 없을지 모르지만 신약 성서에 곧잘 등장하는 '귀신들린 사람'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치유를 받아 귀신 들린 사람을 고쳤다는 대목은 공관 복음에 기록된 이적 설화 중 상당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리라고 본다. 이런 대목에서 묘사된 귀신들린 사람들은 그 전염성을 제외하면 오늘날의 좀비 영화에서 묘사되는 존재들과 상당히 흡사한 면이 있지 않을까 여겨진다. 마르코 복음 5장 첫머리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들이 전해진다.

<그들은 호수 건너편 게라사 지방에 이르렀다. 
예수께서 배에서 내리셨을 때에 더러운 악령들린 사람 하나가 무덤에서 나오다가 예수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무덤에서 살았는데 이제는 아무도 그를 매어 둘 수가 없었다. 쇠사슬도 소용이 없었다. 
여러 번 쇠고랑을 채우고 쇠사슬로 묶어 두었지만 그는 번번이 쇠사슬을 끊고 쇠고랑도 부수어 버려 아무도 그를 휘어잡지 못하였다. 
그리고 그는 밤이나 낮이나 항상 묘지와 산을 돌아 다니면서 소리를 지르고 돌로 제 몸을 짓찧곤 하였다.>

요즘 여러 영화에서 등장하는 좀비들의 가공할 위력과 광폭함에는 이만한 묘사가 드물다고 여겨진다. 이 대목을 언급하는 이유는 오늘날 좀비 영화가 호러물의 대세를 이루는 현상이 이천년전 귀신들린 사람들을 양산하던 어둠의 시기와 유사한 양상을 보이는 세태를 반영하는 건 아닌지 그저 조그만 궁금증이 들어서이다. 나는 이런 현상을 제대로 해석해낼 능력이 없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그저 일본의 과학철학자인 와다나베 마사오의 저작 '과학기술 속의 현대인'을 인용하여 그 연관성을 희미하게 추정해낼 뿐이다.

<이것을 의학도 발달하지 않았고 사회제도도 확립되어 있지 않았던 옛날 일로만 듣고 넘길 수는 없는 일이다. 방치된 '묘지'에 살고 있었다고 하는 손도 댈 수 없을 만큼 광폭했던 이 인간 속에서 과학기술의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의 모습이 그대로 발견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쉬어야 할 밤과 일해야 할 낮의 분간도 없이 '밤낮을 끊임없이' 소리 지르고 있는 인간이다. 잠시 동안도 조용히 지낼 수가 없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목적도 없이 돌아다니며 의미도 없는 말을 지껄이고 있는 인간이다. 과학기술의 힘에 의해서 헛되이 소음을 더하고 더욱 더 속도를 가하며 조용히 생각할 틈도 없을 만큼 바쁘게 돌아다닌다. 또 낮조차 무색할 밝은 밤을 출현시켜 생활하기 위해서 밤낮의 질서를 상실하고 거기에다 '돌로 제 몸을 짓찧고' 있는 인간의 모습이다. 더구나 그 거처는 '죽음의 재'가 뿌려지고 핵의 공포가 드러난 자연이 파괴되어 가는 '묘지'와 같은 곳이다. '쇠사슬 쇠고랑'이나 법률도 조약의 힘도 그를 붙잡아 둘 수가 없다.>

과학 기술이 극도로 발달한 오늘날 공업화된 국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블루 칼라와 화이트 칼라를 막론하고 와다나베 마사오가 묘사한 바와 같이 묘지와 같은 세상에서 밤낮없이 소리를 지르며 무의미한 일상을 바쁘게 돌아다니는 존재들이라고 본다. 마치 좀비와 같은 속성을 지닌채 무엇을 지향하는지 알지 못하고 스스로를 무엇에 내맡기고 있는지 종잡을 수 없는 광폭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는 현대인에게서 좀비의 속성을 발견하는 것은 나 뿐일까?

이어서 와다나베 마사오는 예수 이적 설화를 언급하고 종교적인 관점에서 스스로를 성찰하자는 식으로 저작을 마무리하고 있다. 하지만 호러 영화 감상문에서 그런 종교적인 입장까지 인용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나는 좀비 영화를 좋아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좀비물들이 리메이크 되고 속속 새로 만들어지는 현실 속에서 오늘날 정신 없이 살아가고 있는 공격적인 성향의 사람들이 자꾸 떠오를 뿐이다. 그들은 현대 문명의 수혜를 받고 사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발달된 기술로부터 받는 혜택을 떠올리면 많지는 않으며 오히려 더 무시무시한 위험에 노출되는 경우도 많다. 우유의 질을 높이기 위해 염소의 골을 갈아 먹인 광우병 소에 무방비로 노출된 우리들의 모습은 영화 '데이 오브 더 데드'에서 처럼 군부대의 실험 실패로 노출된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좀비에 두려워 떠는 영화 속 주인공들과 흡사하다. 광폭한 좀비들과 뇌가 스폰지처럼 변하여 미쳐 날뛰는 소는 공통점이 있지 않은가?

좀비에 물리면 좀비가 된다. 광우병에 걸린 소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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