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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필자는 상업영화에 대해 정치적 생각을 대입시켜 말하는 것을 참 싫어한다. 최근들어 생각한 점이지만 그렇게 글 쓰는 사람은 참 찌질해보인다는 생각이 든다. 한 예로 "'지붕뚫고 하이킥'은 좌익세력들의 선전용 시트콤"이라는 식으로 쓴 한 보수논객의 글을 보고 진심으로 '이뭐병'이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그후로 "상업영화만큼은 정치색을 빼고 상업적으로 써보자"라는 모토를 세우게 됐다.
<데이브레이커스>는 이런 필자의 신념에 큰 갈등거리가 된 영화다. 분명 이 영화는 아무 생각없는 무상무념의 뱀파이어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피부로 와닿는 '인류와 환경에 대한 문제제기'를 빼놓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참을 고민해 본 결과, 그냥 생각나는 이야기는 다 적어보기로 마음먹었다.
인터넷 상에 떠도는 기발한 발상들 가운데 눈에 띄는 이야기가 있다. 인간이 소나 닭처럼 누군가의 고기가 되는 상상이다. 만약 인간보다 더 월등한 존재가 있었다면, 인간도 분명 그들의 식재료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들이다. 이성적 사고를 가진 인간을 식재료로 전락시킬 수 있는 존재는 어떤 것이 있을까? 물론 괴물이나 좀비처럼 생고기를 먹는 존재들은 배제하기로 한다. 우선 고도의 과학문명을 가진 외계인이나 교양있는 유럽귀족이 원조인 드라큐라(뱀파이어) 등이 있을 것이다.
영화 <데이브레이커스>는 세상의 대부분은 뱀파이어가 지배해버리고 인간이 식재료가 되어버린 세상에서 이야기가 시작한다. 약 10년전 의문의 바이러스가 세상에 퍼지고 사람들은 모두 뱀파이어가 되어버렸다. 뱀파이어가 되기를 거부한 인간 생존자들은 뱀파이어들의 인간사냥을 피해 이리저리 도망다니며 생활하고 있다. 도시문명은 더 이상 인간의 기준이 아닌 뱀파이어에 맞춰서 개발되어있으며, 생활패턴 또한 뱀파이어의 생활에 맞춰져 있다.
서기 2019년, 뱀파이어가 세상을 지배해버린 이 사회에는 심각한 사회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뱀파이어들의 무분별한 인간혈액 섭취로 혈액을 공급할 인간들이 점차 줄어들면서 세계적으로 혈액부족 사태가 오게 된다. 혈액이 부족하게 된 뱀파이어는 생김새가 변하게 되고 이성적 사고를 못하게 되는 서브라이더, 즉 괴물로 변하게 된다. 돈이 없어 혈액을 구하지 못하는 가난한 뱀파이어들은 배고픔에 못 이겨 제 살을 뜯어먹다가 서브라이더로 변하게 되고, 이들은 다른 이성적 뱀파이어들을 위협하는 사회문제로 부각되게 된다.
에드워드 달턴(에단 호크)은 '브롬리&마크 제약회사'의 혈액분야 수석연구원이다. 에드워드는 현재 극심한 부족에 시달리는 인간혈액을 대체할만한 물질을 개발하는 연구에 몰입하고 있다. 연구가 계속 난항에 부딪히던 어느날 에드워드는 우연히 도망가던 인간무리를 만나게 된다. 평소 인간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뱀파이어 존재에 회의감을 갖고 살던 에드워드는 이들 인간이 도망갈 수 있도록 돕느다. 인간 무리의 일원인 오드리 베넷(클로디아 카번)은 에드워드를 믿을만한 뱀파이어라고 판단하고 그를 어떤 인물에게 소개한다. 에드워드가 만난 라이오넬 '엘비스' 코맥(윌렘 데포)은 뱀파이어였다가 우연한 사고로 다시 인간이 된 인물이며, 그는 에드워드에게 자신을 이용해 치료제를 만들어줄 것을 부탁한다.
사실 뱀파이어가 지배한 세상은 관객들에게 매우 낯설다. 우선 뱀파이어의 생활에 맞춰진 도시문명 자체가 매우 낯선 풍경이며,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위기도 매우 낯설다. 이 낯선 세상을 바라보게 된 관객들은 영화가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간의 시선이 아닌 뱀파이어의 시선을 갖게 될 것이다. 뱀파이어의 시선으로 이 영화를 보는 순간, 관객은 너무 익숙하고 심각한 사회적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그 문제는 다름 아닌 '식량난'이다. 인간의 환경오염으로 지구는 점차 사막화되고, 오염되어 생존할 수 있는 생물이 점차 줄어들게 되고 그만큼 인간들의 먹거리도 줄어들게 되어 결국 '식량난'이 도래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데이브레이커스>는 바로 이 '식량난'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마 영화 속 뱀파이어들이 처음 뱀파이어로 변한 순간은 질서와 이성이 붕괴된 채 무분별하게 인간들을 잡아먹는 '아비규환'의 세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던 가운데 누군가가 식량고갈을 우려해 체계적인 식량관리를 주도하고, 뱀파이어는 다시 문명인으로서의 생활을 시작하게 되고 효율적인 식량관리를 통해 이성적 뱀파이어로서의 생활을 이어나가게 된다.
그러나 뱀파이어들이 식량을 관리하는 것은 식량의 유한함을 조금 뒤로 미뤘을 뿐, 오랜 시간이 흘러 결국은 영화에서처럼 혈액부족사태를 유발하게 된다. 오늘날 우리 인간들도 마찬가지다. 인간들이 먹는 여러 음식들도 무한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일각에서 보도되고 있는대로 언젠가 우리도 '식량난'에 허덕이게 될 것이다. <데이브레이커스>는 바로 그 '식량난'이 도래한 미래상에 대한 묘사다.
영화에서 이야기하는 식량부족의 미래는 생각보다 끔찍하다. 영화 속 이야기를 인간사회에 대입시켜 설명해보자면 식량부족으로 부유층과 빈곤층의 식량섭취 차이가 확연히 나타나게 된다. 고른 영양소를 섭취하지 못하는 빈곤층 인간들은 특정 영양소 결핍으로 예상치 못한 신종 전염병에 감염되게 되고 이들은 생존을 위해 무력시위를 벌이게 된다. 여기에 상류층과 거기에 기댄 공권력은 가혹한 방법으로 빈곤층을 억압한다.
여기에 한 과학자가 식량의 대체물질을 개발하게 되고, 이를 통해 도시의 혼란상태를 진정시키려 하지만 대기업은 식량독과점을 통한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 이 과학자를 제거하고, 식량 대체물질의 공개를 막으려 한다.
가끔 그런 상상을 해본다. '신종플루'로 인한 사망자가 속출할 적에, 제약회사에서는 신종플루의 완벽한 치료제를 개발했으나 타미플루의 판매량을 유지하기 위해 이 치료제를 공개하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다. 물론 이 말은 근거라고는 개뿔도 없는 쓸데없는 음모이론이다. 그러나 이런 음모이론이 대두되는 것 자체가 부유층에 대한 불만의 표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만큼 <데이브레이커스>는 뱀파이어 사회의 불안을 다루고 있지만 사실상 이 영화의 절망적 사회상은 다른 의미에서 인간들이 겪게 되는 암울한 미래가 될 것이다. 굳이 이것을 뱀파이어에 빗대서 이야기한 이유는 아마도 인간이 식량입장에서 생각해보라는 뜻이 아닐까 싶다. 식량이 되어 바라본 인간사회는 얼마나 부조리에 가득 차 있으며 그로 인해 스스로 몰락하고 있는지 말이다.
상업영화를 지나치게 진지하게 본 무모한 이야기를 많이 늘어나봤다. 이 영화는 엄연히 즐길거리를 갖춘 상업영화다. 디스토피아적 SF영화와 뱀파이어 영화, 좀비영화의 정통성을 적당히 버무려 만들어낸 이 알찬 호러액션영화는 그냥 멍때리고 이야기만 따라가더라도 부담없을만큼 충분히 즐겁다. 그러나 그 장르의 정통성을 잘 버무렸다는 점은 이 영화의 가장 큰 단점이기도 하다. 각기 다른 소스를 섞어놓으면 그 각자의 소스가 자기의 맛을 살려내 아주 독특한 소스가 완성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각기 다른 소스가 서로의 맛을 죽여버려서 이도저도 아닌 맛이 나오기도 한다. <데이브레이커즈>는 후자에 해당할 것이다. 이 영화에 들어간 소스를 두가지로 분류해보자면 SF영화와 뱀파이어 영화다. 물론 이야기의 성격상 어쩔 수 없었겠지만 이 영화의 뱀파이어는 마치 <트와일라잇>의 그것들처럼 참 인간적이다. 이 말은 휴머니즘을 갖춘 인간이라는 말이 아니라 겁나 순둥한 인간들이란 말이다. 물론 굶주림 앞에서 이들은 본연의 야성을 드러낸다. 인간도 미친듯이 배고프면 다른 인간을 잡아먹긴 할 것이다. 뱀파이어가 뱀파이어 본연의 냉정한 이성을 갖춘다면 영화는 좀 더 멋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아무리 배경이 2019년이라고 해도 SF영화만의 현란한 비주얼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2019년이면 원더키디가 하늘을 날던 시기인데 말이다. 즉, 이 영화는 골수 뱀파이어 팬이나 골수 SF 팬이라면 좀 섭섭한 영화가 될 것같다. 그러나 "난 편식하지 않아요"라고 말할 수 있는 잡식성은 알차게 즐길만한 영화다. 물론 필자가 언급한 '인간사회의 식량난에 대한 경고'따위는 잊고 봐도 좋은 영화기도 하다.
가끔 면식(麵食)을 먹을 때 "배는 참 부른데 어째 공복이 빨리 찾아오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데이브레이커스>는 즐겁게 먹을 수 있는 요리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뭔가 하나가 아쉽다"는 허전함은 도저히 지울 수 없을 것이다.
여담1) 그러고 보니 뱀파이어는 밤에 생활을 할 수 있지만 낮에는 집안에서 생활해야 한다. 환경오염으로 오존층이 파괴되면서 자외선이 강하게 내리쬐면 인간 또한 햇빛 보기가 힘들 것이다. 참 그럴싸한 경고다.
여담2) 본문 부제목은 글과는 전혀 상관없다. 그러나 영화와는 상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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