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필자를 잘 아는 사람들은 필자의 영화보는 취향에 대해 "비주얼보다는 이야기를 중요시하는 취향"정도로 정의내릴 것이다. 아마도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오해를 풀어야 할 점이 있다면 필자가 안 내키는 영화는 'CG중심의 비주얼'인 것이다. 즉, 화려한 '비주얼'의 영화는 필자가 매우 좋아하는 영화들 중 하나다. 그리고 본의 아니게 본 영화 <500일의 썸머>는 비주얼이 떡칠된 영화다. 그 비주얼은 왠만한 패션화보나 CF에 버금가는 현란하고 세련된 비주얼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그 비주얼을 바탕으로 시종일관 낚시질을 해대는 영화다. 그러나 크게 걱정할 것은 없다. 이 영화의 낚시질은 관객에게 즐거움과 생각할꺼리를 주는 요소로 작용할테니 말이다.

<500일의 썸머>는 톰(조셉 고든 래빗)과 썸머(주이 디샤넬)가 처음 만나고 헤어지기까지의 500일을 다룬 영화다. 그러나 영화는 500일간의 여정을 초기에서 말기까지 전략적으로 왔다갔다 하며 이들의 연애가 어떻게 시작하고 끝났는지, 연애하는 과정에서 무엇을 놓치고 살았으며 무슨 실수를 했는지 잘 보여준다. 사실 그 연애가 어떻게 꼬여갔는지에 대해서는 관객이 쉽게 파악하기 힘들다. 아마도 톰과 썸머같은 연애를 겪어본 사람이라면 이 안타까운 이별에서 이들이 무엇을 놓쳤는지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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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일의 썸머>는 그리 특별할 것 없는 연애담을 매우 특별한 것처럼 보여준다. 거기에 나름 세련된 비주얼과 올드한 음악이 이 이야기를 특별하게 포장해줄 뿐이다. 이 영화의 첫번째 낚시는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이미 홍보에서부터 시작된 낚시질이지만 "이 영화는 연애를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는 사실이다. 사실 100%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톰과 썸머가 영화에서 보여주는 소소한 행동들은 바다건너 한국에 사는 젊은 관객들도 쉽게 공감할만큼 아주 보편적인 행동들이다. 세상 그 어떤 누구도 연애에 능숙할 수 없으니 그만큼 많은 실수를 하게 되고, 그 소소한 실수들이 부른 오해와 쌓여진 오해로 인한 갈등을 보여주는 영화는 굳이 영화가 아니라도 너무나 흔하고 공감을 이끌만한 이야기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보다 깊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그 깊은 이야기를 마주하는 순간 관객은 아마도 나름 큰 실망에 빠질 것이다.
실망에 빠지는 그 순간이 이 영화의 두 번째 낚시다. 이 영화는 대단히 쿨한 척 한다. 그것은 비주얼과 음악에서 여실히 드러나며, 썸머의 넘치는 애교와 연애에 대한 가치관은 흡사 <아내가 결혼했다>의 주인아(손예진)를 떠올리게 한다. 그토록 쿨한 척, 시크한 척 다 하고서 내리는 결론을 구리게도 '운명론'이다. "결국 너는 내 운명이 아니었어. 너도 언젠가는 좋은 사람 만나게 될거야"라는 헤어지는 여자의 식상한 거절멘트만큼이나 아주 구닥다리스런 결론을 제시한다. 하다못해 톰이 정말 자신의 운명을 만났는지 관객들에게 의문을 갖게 한다. 연애에 대한 주체적 사상을 시종일관 제시해두고서는 결국 운명론이냐는 생각에 급기야 배신감까지 들 지경이다. 아마도 여기서 필자의 생각이 그쳤다면 아마도 폭풍같은 비난과 욕설을 영화를 향해 퍼부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이 운명론 또한 결국 낚시였다.
이 두 번의 낚시가 지나갔음을 느낀 것은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이다. 마치 운명론을 인정하듯 끝을 맺는 이 영화, 그러나 우리가 다시 생각해봐야 할 부분은 톰과 썸머가 어떻게 이별했는가 하는 사실이다. 영화에서도 드러났지만 이 둘의 이별은 사실 서로의 오해로 인해서 시작된다. 연애를 할 줄 몰라서 생긴 오해들이라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서 그 차이를 이해하며 연애를 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필연적 오해들이다. 이 오해를 견디지 못하는 순간은 모든 연인들은 이별을 하게 되는 것이다. 영화의 오프닝 크레딧은 톰과 썸머의 성장과정을 담은 홈비디오를 보여준다. 아주 비슷한 듯 보여지는 성장과정이지만 사실 톰과 썸머는 아주 다른 시간을 보냈다. 아마도 세상 어떤 연인도 같은 시간을 보내서 만나지는 않을 것이다. 형제, 자매가 아닌 다음에야 모든 사람의 성장과정은 다르다. 물론 그 서로 다른 사람이 어떤 계기로 만나 연애를 하는 것은 매우 큰 우연이다. 그러나 그 연애가 정말 '운명적 연애'인지 결정짓는 것은 그들 각자의 노력과 배려다. 서로가 어쩔 수 없는 오해가 쌓인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운명이 정해준 것이 결코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톰도 후회를 하고 썸머도 자신을 변화시키기에 이른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영화는 운명론에 대한 영화인 척 하면서 운명론을 뒤집어버린다. "연애에 운명같은 것 없다. 너 하기에 달린 것이다"라는 것이 아마도 이 영화의 결론에 근접해있을 것이다, 관계가 소원해졌음을 느끼는 순간, 모든 연인의 사랑은 시험대에 오른다. 그 시험을 잘 넘기는 것은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연인들 각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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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일의 썸머>는 사실 한국에서 흥행하기 힘든 영화다. 나들이 관객들이라면 이 영화에서 썸머는 전혀 사랑스럽지 않을테니 말이다. 자기 멋대로에 혼자 말도 없이 분위기만 싸하게 만들고, 나는 전혀 눈치도 못 챘는데 자기 혼자 고민하다가 이별을 통보해버리는 여자. 나랑은 운명이 아니었다는 듯 떠나버리더니 금방 다른 남자 만나서 결혼까지 해버린다. 만나는 순간은 너무나 사랑스럽고 애교넘치는 여자지만 떠나는 순간은 모든 정을 지운 것처럼 홀연히 떠나버리는 그런 여자가 썸머다. 아마 연애 좀 해본 남자라면 이런 여자 만나봤을거다. 참고로 필자는 썸머와 소름돋을 정도로 비슷한 여자와 연애를 했었고, 이별 이후까지 매우 흡사했다. 그리고 그 여자는 솔직히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지 않다. 연애하는 동안에는 세상 누구보다 예쁘고 재밌는 연애를 했지만 이별 이후에 겪었던 상처가 아마도 이전의 기억까지 흐려버린 것만 같았다. 물론 그로부터 한참 뒤에서야 영화 속 톰처럼 "내 잘못이구나"라고 후회하긴 했었다.
사실 영화 속 썸머같은 여자는 이별이 다가올수록 남자를 매우 피곤하게 하는 스타일이다. 썸머와 비슷한 연령의 여성관객이라면 썸머의 마음이나 이별을 앞둔 그녀의 심리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남자는 썸머를 절대로 이해 못한다. 즉, 젊은 연인이 영화보러 갔다가는 아주 건설적인 논쟁과 동시에 싸울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는 소리다. 이것은 한마디로 '커플파괴공작' 영화다. 아주 보편적 연애에 대한 서슬퍼런 시선으로 커플들에게 "너희들이 말하는 사랑이라는 것이 이토록 알량하고 소소하다"며 드러내고 있으니 커플들 보기에는 매우 불편할 수 밖에 없다. 더군다나 남자는 짜증낼 요소들만 넘쳐났고, 여자는 좋아할 요소만 넘쳐났다. 한국 극장가에서 연인들 보기 불편한 영화라면 이미 흥행은 글러먹은 것이다.
그러나 실연의 상처가 있는 솔로남자라면 봐두길 바란다. 과거의 그 실연에서 무엇을 잘못했는지 영화 속 톰이 뼈저리게 가르쳐줄테니 말이다.

말랑말랑한 연애무비인척 관객을 낚을 영화 <500일의 썸머>는 알고 보면 젊은 커플들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여실히 드러내주는 영화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불편한 진실을 뚫고 지나가면 관객은 하나의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지금 니 옆에 연인이 니 운명의 반쪽이 될 지 말 지는 니가 결정하는거다"

 

여담 1) 영화 속에서 중요한 키워드로 등장하는 마이크 니콜스 감독의 <졸업>과 연관지어서 이야기해보고 싶은데 <졸업>을 너무 어릴 적에 봐서 도저히 기억이 안 난다. 이런 못난 나를 용서해주길 바란다.

여담 2) 딴 것 보다도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은 근래 보기드문 명반이 될 것이다.

여담 3) 정말 다시 한 번 강조하는데 커플들은 이 영화 볼 거면 잘 생각하길 바란다. 영화보고 싸울 확률 75%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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