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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만에 신작을 내놓았다. <부러진 화살>에 이르는 여정은 어떠했나.
13년만이라고? 글쎄, 나는 영화를 떠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 동안 작품을 꾸준히 준비하면서 지냈다. <아리랑>의 경우 8년을 준비했고, 광주를 다룬 <은지화>라는 작품은 캐스팅 단계에서 엎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사극 시나리오를 하나 쓴 것이 있었는데, 제작비가 많이 필요한 작품이라 어려움을 겪었다. 이런 상황에서 문성근 씨가 서형의 르포 <부러진 화살>을 건네줬다. 그걸 읽어보니 ‘바로 이거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러진 화살> 제작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제작 현장이 적잖이 낯설었겠다.
10여 년 만에 영화 현장에 도착하니 익숙한 배우 외에 현장에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더욱이 제작과 감독을 겸한 터라 정신이 없었다. 좋은 환경을 갖추지 못한 채 작업을 하게 돼 우선 미안했고, 오랜만에 현장으로 돌아온 사람과 작품을 같이 해줘 무척 고마웠다. 초반엔 현장이 어색하기도 했지만, 금방 적응이 되고 분위기도 좋았다. 작품을 같이 하다보면 언제나 식구처럼 느끼게 된다. 여러모로 좋지 않은 여건 속에서 무리 없이 진행돼 정말 다행이다.
‘석궁 사건’은 TV에서 여러 차례 보도된 사건이고, 언급한 책자도 나와 있다. 굳이 영화라는 옷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세 가지 이유를 들 수 있겠다. 물론 석궁 사건은 TV에서도 여러 차례 다뤘고, 신문 지면에도 많이 실렸던, 소위 잘 알려진 사건이다. 게다가 책으로까지 나왔으니 아는 사람은 다 알만한 상활이다. 하지만 르포를 읽고 느낀 건 내가 사건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 말은 나처럼 사건의 본질을 모르는 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걸 의미한다.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제대로 모르는 사건이라는 점이 중요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제대로 알려야겠다는 것, 그것이 첫 번째 이유다. 두 번째는 공판집의 흥미진진함이다. 세상에 이런 재판이 있나 싶을 정도로 재미있었다. 세 번째 이유는 실존 인물의 특성이다. 제작에 들어가기에 앞서 김명호 교수와 박훈 변호사를 만났는데, 이 사람들 자체가 진짜 재미있는 캐릭터를 지닌 인물이었다. 그 때 바로 ‘이건 영화감이다!’라고 느꼈다.

현실 정치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자칫 시류에 편승한다는 오해를 살 법하다.
그런가? 오해를 하든지 말든지, 솔직히 신경 쓰지 않는다.
‘사법 피해’를 몸소 겪은 사람으로서 석궁 사건을 어떻게 보는가.
원래 권력과 개인의 자유에 관심이 많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사회에는 지배층이 존재한다. 헌데 그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런 문제 제기의 습관 같은 게 있다. 소수자 편에서 일을 하는 데서 생긴 습관인데, 그래서인지 내게 아웃사이더 기질이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석궁 사건의 재판 과정에서 사법부는 한 개인을 희생자로 만들었다. 나 자신이 재판을 받은 적도 있고 해서 석궁사건에 자연스레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서양에서는 100년 전에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인데, 우울하게도 21세기의 한국에서 석궁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다. 판사가 법을 무시했으니 말도 안 되는 세상인 거다. 권력에 의한 개인의 희생은 과거에 빈번히 일어났다. 군사독재가 끝난 지금, 많은 사람들은 민주화와 자유에 별 의문을 품지 않는 것 같다. 사법부가 한 개인에게 행한 짓을 보고도 그런 생각을 할까?
사건의 진실이 담긴 순간을 의도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그 순간에 가장 중요한 사실은 화살을 쏘았는지, 혹은 반대로 쏘지 않았는지의 여부다. 진실은 두 사람 외에 아무도 모른다. 진실을 모르는 사람으로서 내가 그 순간을 어떻게 묘사할 수 있겠나. 화살의 발사 여부는 미스터리로 남기고 싶었다. 나는 누군가의 편에 서서 <부러진 화살>을 연출하지 않았다. 다만 객관적 자료만 가지고 영화를 만들었다. 감독이 김 교수의 편에 서 있다고 느낀다면, 안성기라는 배우가 연기하는 인물에 감정이입이 돼 그런 것으로 보인다.
김 교수와 박 변호사가 티격태격하는 장면에선 보수와 진보의 씨름을 보는 듯하다.
원래 진보나 보수는 어떤 가치를 향해 얼마든지 같이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의도를 두 인물에 심었다. 김 교수는 스스로 말하듯 굉장히 보수적인 사람이고, 그와 반대로 박 변호사는 진보적인 성향의 인물이다. 이 둘을 붙여놓은 데서 드라마가 절로 나온다. 한국에서 진보와 보수가 만나지 못하는 이유는 서로 색안경을 끼고 보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나쁜 놈, 죽일 놈, 꼴통, 빨갱이’라는 낙인을 찍어놓고 바라보는 탓에 대화 자체가 힘들다. 보수가 현재의 시스템을 깨트리지 않으려 한다면, 진보는 마음을 열어놓는 쪽이다. 서로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할 게 아니라 인정할 건 인정하면서 비판해야 한다. <부러진 화살>의 결말부에서 김 교수와 박 변호사가 ‘국민 참여 재판’을 이야기하며 손을 잡는 것이 한 예다. 보수주의자로서 한계에 부딪힌 김 교수는 한 발 내딛게 되고, 박 변호사는 그런 그를 한 수 접어준 채 받아들인다.
권위적인 권력 앞에서 담담하게 맞서는 인물이 감동적이다.
김명호 교수가 그런 사람이다.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평범한 사람의 눈에 그는 불편한 사람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회의석상에서 그를 만난다면 거북한 상대일지도 모른다. 꼬치꼬치 따지고 들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니까 거대한 권력 앞에서 당당할 수 있었던 거다. 사법부가 권력을 남용하고 있을 때, 그 잘못을 꾸짖는 사람이 필요하지 않겠나. 나도 재판을 받았지만, 피고가 판사에게 따진다는 것은 당시에 상상도 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판사 앞에선 관례처럼 고개를 숙이는데, 자료 준비차 책을 읽다 판사에게 따져도 문제가 없다는 걸 알게 됐다. 김 교수가 바로 그것을 행동으로 옮긴 사람이었다.

올바른 답은 지닌 김 교수에게 대가는 가혹했다. 형을 마치고 나온 그가 지금도 사법 투쟁을 멈추지 않고 있다고 들었다. 감독님에게도 비슷한 에너지가 발견된다. 힘들 때 힘을 내게 만드는 동인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내가 철이 안 들어서 그런 것 같다. 그런 점에서 김 교수와 비슷한 면이 있다고 본다. 20년 정도 늦게 철이 든다고 해야 되나. 그래서 젊다는 말을 듣지만, 나쁘게 말해 철이 없다는 소리다. 원래 사람이란 게 세월이 가고 나이를 먹으면서 좀 둥굴둥굴해지고 그러는데, 나는 그게 늦는 편이다. 예를 들어 이런 정치적 문제가 있을 때마다 반드시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 건 아니지 않나. 그런데 꼭 영화로 표현하려 애쓰기에 이르고, 그럴 때면 가족이나 주변인들이 불안해한다. 김 교수가 날카롭게 판사와 대립각을 세울 때도 그의 가족은 마찬가지로 불안을 느꼈을 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초지일관이다. 몇 년 동안 가족을 고생시켰으니 보통사람 같으면 이제 가족에 충실해야겠다고 다짐할 텐데, 지금도 그는 계속 투쟁하는 중이다. 그는 자신의 정당함을 주장하기 위해 감옥에서 겪은 일들을 책으로 쓰고 있다. 김 교수 같은 사람은 사회에 필요한 존재다. 사회가 유지되려면, 여러 종류의 사람이 공존해야 한다. 철이 없는 사람, 적당히 넘어가는 사람, 꼬치꼬치 따지는 사람. 이들이 한데 어울려야 살만한 세상이 되고, 사회도 안정된다.
드레퓌스 사건을 언급하는 부분에서 수오 마사유키의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가 떠올랐다.
참고삼아 여러 법정영화를 봤다. 수오 마사유키는 극영화를 잘 만드는 감독이다. 그런데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에선 성격을 달리해 대중의 눈에 다소 지루하게 비친 것 같다. 나는 재미있는 법정영화를 만들려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실을 왜곡하고 싶지는 않았다. 배심원제도라 영상으로 표현하기에 좋은 미국 법정영화와 달리, 한국 법정에선 실제로 움직임이 적어 그대로 표현할 경우 지루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인지 리얼리티를 버리고 변호사의 빈번한 움직임을 담은 한국 영화들을 보게 된다. 사실성이 중요했기에 <부러진 화살>에서 실제 상황을 충실하게 재현하려고 노력했다. 어쩔 수 없는 단조로움은 촬영을 통해 보완했다.
드라마와 다큐멘터리의 결합 같은 유행을 따르지 않았다.
의식적으로 다큐멘터리의 느낌을 부여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남부군>, <하얀 전쟁> 때도 그랬거니와, 사실을 바탕으로 하더라도 모든 영화에는 연출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사건을 영화로 옮기다 보면, 특별히 강조해야 하는 부분이 있는가하면 거꾸로 생략을 거쳐야 하는 부분도 있다. 감옥과 법정 장면에는 픽션이 들어갈 여지가 별로 없기에, 카메라의 앵글을 빌려 <부러진 화살>의 본질이 드라마임을 드러냈다. 사전에 철저한 계산을 거쳐 긴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카메라의 움직임을 구사했다. 단순히 재연을 위한 다큐멘터리에서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전체를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했는가.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첫 작품이다. 아직은 필름이 더 좋다. 디지털로 작업하다보니 현장의 긴장감이 많이 떨어지며, 표현력도 필름에 비해 많이 떨어진다. 요즘 영화는 대부분 디지털로 찍는데, 필름이 가진 좋은 점을 다 성취하지 못한 디지털로선 갈 길이 멀다.
안성기 씨와 20년 만에 재회한 작품이다. 그는 어떤 사람인가.
친분이 계속 이어졌기에 그와 오랜만에 작업한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그는 너무 착한 사람이다. 포용력이 넓고 모범적이며 보기 드문 인격자라고 말할 수 있겠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서 봉사를 많이 할뿐더러 영화계의 스타이면서 영화계의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앞장서서 일한다. 다시 말해 그는 김 교수처럼 활을 들고 위협하는 행동 같은 건 결코 못할 사람이다. <부러진 화살>에서 그는 원래의 자신을 완전히 버리고 김 교수가 되어야만 했다. 애초에 김 교수 역으로 그를 욕심내진 못했다. <부러진 화살>이 워낙 저예산 영화라 그를 캐스팅한다는 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러다 주변의 부추김도 있고 해서 그를 찾아가 두 가지를 얘기했다. ‘출연료로 줄 돈이 부족하다’는 것과 ‘작품이 정치적으로 껄끄러울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나와 그가 같이한 두 영화 <남부군>과 <하얀 전쟁>이 정치적 색채를 지녔으면서도 흥행에 성공했음을 상기시켰다. 그리고 다음날, 그의 대답을 들었다.

조연들의 연기 또한 인상적이다. 문성근 씨와는 첫 작업인가.
나를 신뢰한 까닭인지 선뜻 출연해준 배우들이 고맙다. 문성근 씨와는 예전에 작품을 같이 하려다 못한 적이 있다. 이번에 역할을 제의하면서 문성근 씨 실력이면 3일만 찍어도 될 거라고 말했더니 시간을 내주었다. <초록물고기>에서 그가 맡았던 배태곤 역할을 염두에 두었다. 그 인물이 나이를 먹고 먹물이 쌓이면 될 거라고 설명했다.
이번에 <부러진 화살> 외에 두 편의 작품을 더 내놓았다.
<아리아리 한국영화>는 인터뷰를 통해 한국영화사를 풀어보는 작품이다. 뉴욕대 교수인 크리스틴 초이가 한국영화사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교제로 사용한다는 걸 알게 됐는데, 작품을 보았더니 문제가 많았다. 이에 뜻을 함께 한 후배 교수 허철과 2년에 걸쳐 완성했다. ‘한국영화는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놓고 다양한 영화인들을 찾아 인터뷰를 했고 그것을 묶었다. <마스터클래스의 산책>은 ‘서울영상위원회’의 제의에 따라 이두용, 이장호, 박철수 감독과 내가 공동으로 참여한 옴니버스 작품이다.
내가 찍은 ‘이헌 기자의 오디세이’는 중앙일보에 재직했던 이헌 기자와의 약속을 담았다. 지면에 인물 오디세이를 진행하던 당시, 그는 내가 새 영화를 완성해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부러진 화살>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이헌 기자의 오디세이’는 이헌 기자 역으로 이경영이 출연해 나와 못 다한 인터뷰를 마친다는 내용이다. <아리아리 한국영화>는 내가 <부러진 화살>을 크랭크인하는 장면으로 끝나고, <이헌 기자의 오디세이>는 <부러진 화살>이 완성된 이후의 시점에서 시작한다. 이번에 나온 세 작품이 연결되어 있는 셈이다.
창작욕이 넘치는 선배 감독들이 정작 영화를 만들지 못하는 현실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영화 제작 환경이 많이 변했음을 느낀다. 우선 실무자들이 나 같은 사람을 만나는 걸 불편하게 여긴다. 하긴 영화계 선배에게 예의를 갖춰야 한다고 생각할 테고, 그러다 보니 자꾸 거리가 멀어질 수밖에 없다. 더 문제는, 급속하게 변화하는 시대라며 옛 감독들의 감각을 의심하거나 감각이 없을 거라고 판단한다는 점이다. 나를 예로 들어보자. 나는 13년간 영화를 안 한 게 아니라 계속 영화를 준비해온 사람이다. 그건 영화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그렇지만 실무자와 만날 길이 막혀 있다. 그런 태도가 줄곧 신인감독을 기용하는 결과를 낳았다. 한국영화계처럼 신인 감독을 죽이는 곳도 없다. 그럴 바에는 검증된 감독을 기용하는 게 나을 텐데, 왜 싹이 트는 감독을 기용해 단번에 죽이고 마는 건가.
A급 배우가 캐스팅되기만 하면 투자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건 시나리오인데, A급 배우의 캐스팅만으로 시나리오도 안 보고 투자를 한다는 거다. 그러니 망하는 영화들이 양산되는 게 당연하지 않겠나. 영화산업이 열악하던 80년대에도 의식 있는 영화들이 대중들과 호흡했다. 대기업이 주도하는 영화계는 상업적이고 오락적인 영화 외에는 대중이 보지 않는다는 고정관념에 빠져 있다. 그들의 기준에서 벗어난 시나리오를 건네면 바보 취급을 받는다. 대기업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탓에 진정 의미 있는 영화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유감스럽다.

젊은 관객들의 열띤 반응이 남다르게 다가오겠다.
솔직히 이런 반응이 올지 몰랐다. 내 영화를 보고 재미있다는 반응을 듣는 게 처음이기도 하다. 예전에 성공한 작품에 대해서도 의미나 감동이 거론됐지 재미라는 말이 불려 나오진 않았다. 어쨌든 재미있다는 반응이 마음에 드는 건 사실이다.
후배 감독들에게 조언 한마디를 부탁한다.
영화를 트렌드라 생각해 그것만 좇다가는 감독의 생명이 짧아진다. 트렌드를 놓치지 않되, 항상 진정성을 가지고 영화를 만드는 자세가 필요하다. 젊은 감독들이 영화를 잘 만들고 있지만, 그런 점에서 아쉽다. 그들의 좋은 재능에 진정성을 불어넣는다면 훨씬 깊이 있고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근래 선보인 한국영화들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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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번 양보해서 밥그릇 문제이니 직배영화를 반대한다는 것까지는 봐줬다 쳐도 왜 뱀을 풀어놓아도 직배영화사 사무실에 풀어놓아야지, 극장 안에다 풀어놓냐지요? 관객들 중 누가 하나 만일 뱀에게라도 물렸으면 진짜 어찌될 뻔 했나요? 직배영화사 사무실이나 그쪽 관계처에 그럴 용기는 없었겠지요? 도대체가 자기들 밥그릇 불려주는 관객, 국민들이 뭔 죄입니까? 뱀을 풀어놓아? 그 일로 이 사람 법적처벌은 어떻게됐는지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