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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불운한 제임스 본드 배우, 죠지 레젠비)     

 

안녕하세요. 그동안 사용하던 제목 but 굿에서 “007리포트 제목을 바꿔봤습니다. 오늘은 007 시리즈 22 중에서 국내 팬들에게 가장 알려진 1969년작 여왕폐하 대작전”(On Her Majesty’s Secret Service) 심층 탐구하기에  앞서서 2 제임스 본드로 캐스팅되었던 죠지 레젠비의 불운한 인생 이야기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이래저래 이영화 정말 얘기가 많은 작품입니다.)

 

가장 불운한 제임스 본드 배우 : 죠지 레젠비 스토리

 

1962년에 시작된 007 시리즈는 1967년에 5번째 작품 두번 산다까지 제임스 본드로 출연했던 코네리가 본드 역활에 대하여 싫증을 내고, 자신의 앞길에 자칫 제임스 본드= 코네리라는 공식이 배우 인생의 폭을 좁히게 되지 않을까하는 우려에서 이상의 007 영화를 찍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떠나게 됩니다. 제작자인 솔츠맨과 브로콜리 두사람은  두번 산다까지만은 제발 출연해달라고 코네리에게 사정을 하다시피 설득하고  출연료를 파격적으로 인상하여 출연시켰지만 다음 편인 여왕폐하 대작전에는 새로운 본드를 물색해야 한다는 절박한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gaming_frwl_connery.jpg(숀 코네리의 본드 역에서 보여준 강렬한 이미지는
그의 후임자들에게 큰 부담감을 주게 됩니다.)

 

수백명에 달하는 당시 얼짱, 몸짱의 남자 배우들을 서류심사와 인터뷰를 거듭하였고 최종적으로 올라온 몇명의 후보들은 스크린 테스트까지 거치면서 코네리가 심어놓고 강력한 섹스 심볼과 슈퍼 히어로이미지의  제임스 본드를 찾던 중에 최종적으로 호주 출신의 모델이었던 죠지 레젠비가 2 본드로 결정되게 됩니다.

6-usquad.jpg("여왕폐하 대작전" )

 

죠지 레젠비로 최종 결정되기 전에 제작자들은 과거 첫번째 작품 닥터 제작 시작 전에 코네리를 제임스 본드를 맡을 배우로 결정하기 앞서서 심각하게 고려했던 로저 무어(그는 결국 1973년작 죽느냐 사느냐에서 3번째 제임스 본드로 등장하게 되지만…) 다시 고려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1962년부터 1969년까지 영국 TV에서 인기를 누렸고, 미국 NBC TV에서 방송된 후에는 미국으로까지 인기가 이어졌던 스파이 드라마 세인트”(The Saint : 1997년에 킬머가 출연하여 영화화 되기도 .)에서 한참 상한가를 달리던 때였으므로 로저 무어는 007 출연 제의를 거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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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인트 출연 중인 로저 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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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모시 달튼)
 

이어서 영국 출신 신인 배우였던 티모시 달톤에게도 출연 제의를 하게 됩니다만 당시 23세에 젊은 나이였던 그는 제임스 본드를 연기하기에 자신이 너무 젊다고 판단하고 거절하게 됩니다. 그는 그때부터 19년이 지나서 충분히 나이 먹은 다음에 “ 1987년에 리빙 데이 라잇”(The Living Daylights)에서 로저 무어에 이어서 4 제임스 본드로 출연하게 됩니다.

 

그외에 오드리 헵번이 출연한 뮤지컬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1964) 등장했던 제레미 브렛을 잠시 고려한 적도 있었고, 그외에 서너명의 무병 배우들이 캐스팅 직전까지 가게 됩니다.

 

여기서 로저 무어와 같은 당대의 최고 스타급 배우까지 고려했던 자리에 영화 출연 경력이라고는 이태리에 B 스파이 영화 한편에 꼴랑 출연했던 경력 외에는 신사복이나 롤렉스 손목시계 광고 모델 정도의 경력밖에 없던 신출나기 호주 배우를 대영제국의 초강력 첩보요원의 역활로 결정한 것은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당시 기록을 보면, 스크린 테스트 중에 격투씬을 연기하는 과정에서 죠지 레젠비가 멋지게 휘두른 주먹이 상대역으로 나왔던 스턴트 맨의 코뼈를 부러뜨리는 모습을 보고 제작자가 캐스팅을 결정했다고도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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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본드 역을 맡았던 코네리가 짙은 눈썹과 강렬한 눈빛, 정으로 깎아낸 조각품 같은 이목구비의 이미지였다면 죠지 레젠비는 길쭉한 얼굴에 별로 카리스마가 느껴지지 않는 두툼한 코와 온화한 눈매등 너무나 다른 이미지였습니다. 어쨌든 호주에 싸구려 모델은 하루 아침에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팬들을 확보하고 있는 할리우드 A 스파이 시리즈의 주인공으로 발탁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죠지 레젠비로 하여금 굴러들어온 떡을 발길로 걷어찬일생일대의 실수를 하게 만들었던 이유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영화 제작이 끝나기 전부터 우쭐해졌고, 제작진과 향후에 무려 7편의 007 영화에서 본드로 출연하기로 하는 파격적인계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매니저와 함께 전혀 엉뚱한 생각을 하기 시작합니다. , 자신이 제임스 본드로 캐스팅할 만큼의 가치가 있는 배우라면 궂이 007 영화를 여왕폐하 대작전다음에도 거듭 출연하여 자신의 이미지를 본드에 못박게 하느니 보다 좋은 개런티와 조건으로 골라 가면서 다른 작품들에 출연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그가 노년이 되어서까지 두고 두고 후회하고 땅을 치는 매우 바보같은 생각이었지만 당시에 언론에서는 새로운 제임스 본드에 대해서 관심이 극대화되고 어느 갑자기 왕자님에게 간택된 신데렐라처럼 그의 사진이 영화 공개 이전부터 온갖 잡지와 신문에 도배하게 되자 점점 자신의 생각에 확신을 갖게 됩니다. 코네리와 같이 뛰어난 배우도 007 영화를 무려 5편이나 출연하면서 쌓은 인기로 시리즈를 떠나서 홀로 서기를 하면 금방 성공적인 앞길이 보장될 것이라 생각했었지만 실상 그가 기대했던 만큼의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제임스 본드를 벗어나서 배우 코네리 이미지를 새롭게 관객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해서 오랜 세월이 흘렀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런데 죠지 레젠비는 자신의 출연작이 공개되기도 전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고,  호주의 풋내기 배우는 작품을 마지막 출연 작품으로 007 시리즈를 떠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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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폐하 대작전 흥행만으로는 결코 다른 007 영화들에 비해서 뒤지지 않았고, 비평가들조차 첨예하게 호평과 악평으로 나뉘어지기는 했어도 역대 작품들 중에서 가장 이언 플레밍의 원작에 충실했던 작품으로 평가되고, 제임스 본드의 결혼과 신부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진지한 스토리는 과거 한방울 흘리지 않고 스펙터의 음모를 분쇄하곤 하던 코네리의 제임스 본드와 비교해서 훨씬 현실감있는 작품이었다는 평가도 받습니다. 하지만 그런 호평 속에서도 죠지 레젠비 자신에 대한 평가는 그리 호의적이지 못했습니다. 특히 코네리가 항상 쿨한 이미지였다면 죠지 레젠비는 아직 자신의 역활에 익숙하지 않은 하고, 코믹하면서도 금욕적인 이미지를 강조한 영국의 계보학자 힐라리 卿을 연기하는 장면에서는 코네리가 쌓아놓은 제임스 본드의 카리스마를 훼손한다는 느낌까지 주었습니다. 게다가 스펙터로부터 탈출하여 마을의 아이스 링크로 숨어들었을 그를 쫒는 악당들에게 공포를 느끼는 듯한 표정으로 허둥지둥 도망가는 모습이 실망스러울 정도입니다.

어쩌면 죠지 레젠비의 어리석은 결정 탓이었지만 007 시리즈의 지속적인 성공을 위해서 그가 한편 이상 출연하지않고 떠나준 것이 다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어쨌든 시리즈를 떠난 그에게 그와 그의 매니저만 예상 못한 일이었지만 기대한 만큼 열광적인 출연 제의 쇄도는 없었습니다. 결국 007 한번 출연했다는 것을 경력으로 그는 홍콩으로 날아가서 무협영화 전문 영화사였던 골든 하베스社의 작품들에 출연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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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는 브루스 리라고도 불리는 전설적인 무술 배우 이소룡의 명작들이 속속 발표되면서 홍콩 영화의 황금기를 누리던 시절이었습니다. 1971년에 발표된 당산대형 이어서 정무문”,”맹룡과강”,”용쟁호투 이어지는 황금과 같은 명작들은 미국과 유럽 영화팬들조차 이소룡의 영화들에 열광하게 만들었고, 그가 마지막 작품 사망유희 제작을 시작하려 , 조연급 배우로 죠지 레젠비가 캐스팅되게 됩니다. 하지만 레젠비와 이소룡의 만남이 약속된 날로부터 불과 며칠 전에 갑작스럽게 전설적인 배우는 죽음을 맞게 되고 레젠비는 결국 이소룡의 명작에 출연할 있는 기회가 물거품이 되어버립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홍콩을 벗어나지 못하고 몇편의 무술영화에 출연하였는데 이소룡 만큼은 아니지만 아시아권에서는 제법 인기를 누리던 왕우(王羽) 출연한 영화 홍콩에서 사나이”(The Man From Hong Kong) 출연하기도 합니다. 영화를 모르시는 분들이 거의 대부분이겠지만 지금 40~50 영화팬들 중에서 중학교때 스카이 하이라는 제목으로 글라이더가 처음 등장한 무협 액션 영화를 기억하시는 분들이 더러 있으실 것입니다. 이영화가 바로 홍콩에서~” 한국 제목이었는데 당시로서는 신기한 글라이더의 등장을 제목으로 앞세워 제목을 바꿨던 것입니다. “스카이 하이 실제 이영화의 주제곡(직소우 라는 그룹이 연주함.)으로 제법 국내 라디오 음악 프로에서도 인기를 누렸던 곡입니다. (이당시에 진추하의 사랑의 스잔나 삽입곡들과 함께 팝송 모음집이라는 이름으로 빽판 수록되던 단골 曲이었던 것이 기억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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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쨌든 홍콩에서 입에 풀칠하기 위해서” B 영화들을 전전하던 그는 1977 켄터키 프라이드 무비라는 할리우드 코미디 영화에 출연하기도 합니다. 빅스비가 주연을 맡은 영화는 제법 흥행적으로 성공했지만 함께 출연했던 죠지 레젠비의 배우 인생에는 금전적인 도움외에는 별로 공헌하지 못한 작품이 됩니다.

 

1990년대에 들어서 그는 실비아 크리스텔이 출연하여 히트 쳤던 세미 포르노 시리즈 엠마뉴엘 부인 속편을 무려 7편이나 출연합니다. 이때 원래 오리지날 주연 실비아 크리스탈 조차 떠나고 없는 엠마뉴엘 속편의 속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50대가 제임스 본드 출신의 퇴물 배우 레젠비의 필르모그래피는 이런 영화들로 채워졌습니다. 또한 배트맨 비얀드 같은 애니메이션에 성우로도 등장하고, 간혹 TV 드라마에 조연으로 출연하는 기회를 갖기도 합니다. 흥행적으로 성공은 거두지 못했지만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였던 남북전쟁 역사물 게티스버그 비중 낮은 역으로 출연합니다.

article-0-02633C9300000578-134_468x409.jpg(팜 슈라이버와 단란했던 부부 시절

그리 오래 가지는 않습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서 레젠비는 부인과 이혼한 후에 1988 서울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며 여성 테니스 스타인 슈라이버와 결혼하게 됩니다. 23 나이 차이가 나는 테니스 스타와 어떻게 결혼할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두사람 사이에는 세자녀를 두고 2005년에 이혼을 하게 됩니다. 2008 맨하탄에서 개최된 애플 코믹 콘벤션에 007 전시장에 앉아있는 죠지 레젠비의 사진을 보면서 만약 그가 다른 생각 안하고 일곱편의 007 시리즈에 모두 출연하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007-07.jpg( 애플 코믹 콘벤션, 뉴욕,  2008)

 

다음 글에서 “007 여왕폐하 대작전 대한 심층 탐구를 시작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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