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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타란티노!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의 첫 번째 주인공은 쇼사나 드레퓌스라는 유태인 여인입니다. '유태인 사냥꾼' 한스 란다 대령에게 일가족을 잃은 그녀는 1944년 신분을 위장하고 영화관을 운영하고 있는데, 우연히 그 영화관에서 나찌들이 시사회를 열자 그들에게 대규모의 복수를 할 계획을 세웁니다.

이 영화의 두 번째 주인공들은 알도 레인 중위가 이끄는 특수부대입니다. 이들의 유일한 목표는 프랑스에 침투해서 독일군을 학살하고 그들의 머릿가죽을 벗기는 것입니다. 과연 이것이 전쟁에 도움이 되는 일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프랑스 국민들에게 민폐를 끼칠 가능성이 더 높아보이는데 말이죠. 하여간 그들은 이 일을 꽤 잘 합니다.

따로 전개되던 이 두 이야기는 쇼사나의 극장에서 하나로 연결됩니다. 알도 레인 역시 시사회에서 나찌들을 박살 낼 계획을 세우고 있었기 때문이죠. 단지 이들은 쇼사나보다 더 많은 걸 알고 있습니다. 이 시사회에는 아돌프 히틀러, 요제프 괴벨스와 같은 나찌 수뇌부가 전원 참석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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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되면 두 무리가 힘을 합쳐 나찌들을 때려잡으려 하지만 아슬아슬하게 중요한 역사적 인물은 놓친다는 식의 애잔한 이야기가 전개될 것 같지만, 쿠엔틴 타란티노는 이런 식의 영화를 만들지는 않습니다. 사실 이 영화는 정통 제2차 세계대전 영화의 공식 중 어느 하나도 그대로 따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아주 낯선 것이냐. 그렇지도 않습니다. 반대로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의 모습은 아주 친숙합니다. 우린 이런 영화를 전에도 봤습니다. <펄프 픽션>이 바로 그 영화죠. 타란티노는 제2차 세계대전을 무대로 한 <펄프 픽션>을 찍고 있는 겁니다.

한 번 볼까요? 이 영화는 몇 개의 분절된 챕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챕터는 대부분 커다란 하나의 시퀀스에 종속되어 있고요. 이 챕터들은 연결되어 있지만 그 연결성보다는 독립된 시퀀스의 구성이 더 중요합니다. 종종 각각의 등장인물들이 펼치는 드라마는 그 드라마에 대해 모르거나 신경 쓰지 않는 다른 등장인물들의 개입이나 우연에 의해 단절되거나 엉뚱한 방향으로 흐릅니다. 이들 모두가 수많은 문화적 인용으로 구성된 유창한 대사를 읊는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요.

도대체 이 영화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라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을 즐기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전체 내용이 어떻건 각각의 시퀀스는 모두 박진감 넘치고 재미있습니다. 큰 붓으로 쓱쓱 그린 것 같은 캐릭터들은 인상적이고요. 그리고 모두 타란티노가 직접 선정한 끝내주는 음악들에 의해 지지되고 있지요. 주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대신 영화를 이루는 개별요소들 자체를 즐겨야 할 영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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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하나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영화라는 테마입니다. 타란티노의 영화는 언제나 대중문화의 인용으로 유명했지만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에서는 그 의미가 보다 분명히 들어옵니다. 이 영화에서는 그냥 영화를 인용만 하는 게 아니에요.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영화를 통해 사랑을 하고 놀이를 하고 복수를 하고 사람을 죽입니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의 영화는 폭탄이기도 하고 총이기도 하고 감옥이기도 하며 유령이기도 합니다. 평생을 영화광으로 자란 사람이 세상을 꿈꾸고 맞서는 방식인 거죠.

다른 하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언어유희의 확장입니다. 타란티노는 원래부터 이 방면에서는 유명했죠. 하지만 그는 그것으로 만족할 수 없었는지, 게임의 층을 넓힙니다. 이 영화에서는 최소한 네 개의 언어가 공존합니다. 이들은 중간중간에 멋대로 섞이고 교차하는 동안 교활한 화음을 만들어냅니다. 물론 타란티노가 이 모든 언어에 유창할 수는 없었을 테니 대부분 번역을 통해 가능했겠지만 그래도 한스 란다를 연기하는 크리스토프 발츠와 같은 배우들을 통해 언어들이 교차되고 오가는 걸 보면 괜히 흥분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언급해야 할 것은 역사 왜곡의 문제입니다. 이 영화에서 일어나는 일들 대부분은 실제 역사에서는 절대로 일어날 수 없었던 일입니다. 이건 반칙일까요? 물론 그렇습니다. 그럼 그 반칙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글쎄요. 제 생각엔 이런 식의 변형된 역사는 타란티노의 세계에서 충분히 가능합니다. 목표 의식을 가진 개인들은 존재하지만 스토리를 총괄하는 거대한 흐름이 없는 곳이니까요. 조금만 지지대를 흔들어도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스토리가 흐를 수 있는 세계지요. 하지만 이것이 타란티노의 의도일까요? 아뇨, 전 그냥 타란티노가 나찌들을 때려잡고 싶어서 영화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봅니다.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지.

기타등등

1. 장만옥이 나오는 걸 보고 싶었는데, 결국 그 장면은 잘려버렸죠. 길이 때문이겠지만 전 그래도 중간이 좀 빈 것 같습니다. 어떻게 쇼사나가 엠마뉘엘 미미유라는 가명으로 살고 있었는지 궁금해요.

2. 역사 파괴를 정당화하는 방법을 하나 더 알아냈습니다. 이 영화를 존재하지 않는 40년대 전쟁홍보영화의 타란티노식 리메이크라고 보는 것이죠.

(2009년 10월 29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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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나

SF소설가 /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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