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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고 예쁜 로맨스

건설중장비회사 팀장인 박동하는 중국 출장 첫 날에 두보초당에서 관광 가이드를 하고 있는 미국 유학 시절 친구 메이를 만납니다. 둘은 서로에게 여전히 좋은 감정을 품고 있지만 그 감정은 과연 올바른 기억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인지요? 이들의 기억은 어느 하나 일치하는 게 없습니다. 동하는 메이에게 자전거 타는 방법을 가르쳤다고 하지만 메이는 그런 적 없다고 합니다. 동하는 메이와 키스도 해봤다고 하지만 메이는 기억이 안 난다고 합니다. 둘 중 하나, 아니면 두 사람 모두 형편없는 기억력의 소유자거나 한 쪽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겠죠.

그래도 둘은 데이트를 합니다. 중요한 건 감정이고 그 감정을 따라가는 게 중요한 거죠. 하지만 둘 사이에는 자잘한 장애가 존재합니다. 우선 그들은 서로의 언어를 거의 모릅니다. 영어로 소통할 수밖에 없죠. 두 사람의 외국어 악센트가 충돌하는 부분은 귀엽지만 그래도 영어권 사람들은 집중이 조금 어려울 것이고 종종 자막도 필요할 겁니다. 물론 그들이 각자 다른 나라에 살고 있고 그곳에 문화적으로 뿌리를 박고 있다는 사실 쉽게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들의 음식 취향 역시 조금씩 어긋납니다. 모든 음식을 김치와 함께 먹는 남자와 냄새나는 사천의 돼지내장탕을 좋아하는 여자가 서로의 음식에 나는 냄새에 진저리를 치는 장면은 꽤 재미있습니다.

<호우시절>은 기본적으로 청두를 무대로 한 관광영화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이 데이트를 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청두 시내를 구경하게 됩니다. 1년 전의 지진이 할퀴고 간 흔적이 이곳저곳에 남아 있기는 하지만 우리 눈에 청두는 아름다운 곳입니다. 두보초당도 있고, 팬더도 있고, 대나무 숲도 있고, 주연배우 고원원으로 대표되는 사천미인도 있지요. 보고 있으면 동하가 질겁하는 요리에 한 번 도전하고 싶기도 하고요. 둘의 로맨스는 이 관광 여행에 가볍게 섞여 관객들에게 거의 휴식과도 같은 나른한 즐거움을 제공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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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중반 이후 분위기가 갑자기 어두워집니다. 우리가 보고 있던 관광영화가 갑자기 배배꼬인 인공적 플롯의 멜로드라마로 돌변하는 것이죠. 이 부분에는 노골적인 감정의 불연속성이 있어서 조금 당황스럽습니다. 관광영화를 찍는 동안에도 복선을 조금 더 넣어주었다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 멜로드라마는 이 두 사람을 청두의 역사에 보다 깊이 개입시키는 역할을 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조금 거친 느낌입니다.

그래도 <호우시절>은 비교적 밝은 허진호 영화입니다. 해결된 문제는 별로 없지만 그래도 결말은 거의 해피엔딩에 가까운 편이에요. 주연배우 정우성은 감독이 결혼하고 애도 생기니까 세상 보는 눈이 달라졌다고 믿고 있더군요. 그럴 수도 있겠죠. 하긴 이별과 불륜과 죽음에 대한 장편영화를 네 편 연속적으로 만들었으니 이 정도 해피엔딩을 즐기는 것도 나쁠 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타등등

원래 청두의 과거, 현재, 미래를 담은 <청두, 사랑해>라는 3부작 옴니버스 영화의 '현재'편으로 기획되었던 작품이죠. 하지만 중간에 장편으로 확장되는 통에 <청두, 사랑해>에서 빠졌습니다. <청두, 사랑해>에는 지금 과거와 미래 두 편만 남아있는 모양입니다.

(2009년 10월 8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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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나

SF소설가 /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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