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씬 시티>는 매체 호환에 대한 흥미로운 실험입니다. 이 영화의 원작은 프랭크 밀러의 동명 그래픽 노블 시리즈인데, 로버트 로드리게스는 이걸 단순히 '원작'으로 삼는 대신 영화로 충실하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래픽 노블의 그림칸들이 영화에서 그대로 스토리 보드 역할을 한 거죠. 밀러가 실제 촬영에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는 몰라도, 로드리게스는 그를 공동 감독 자리에 앉히기 위해 감독 협회에서 탈퇴하기까지 했지요.
로드리게스는 프랭크 밀러의 오리지널 중 네 가지 이야기를 뽑아 옴니버스로 묶었습니다. 프롤로그엔 단편 <The Customer is Always Right>를 사용했고 그 뒤를 <The Hard Goodbye>, <The Big Fat Kill>, <That Yellow Bastard>가 잇죠. <That Yellow Bastard>가 쪼개져서 앞뒤에 배치되고 후반 액션이 앞의 두 작품과 몇몇 캐릭터들과 사건들을 공유하긴 하지만 이들은 모델이 되었을 <펄프 픽션>처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편은 아닙니다. 그럴 의도도 없어 보이고요.
다들 살벌하고 전형적인 필름 느와르 스토리입니다. <The Hard Goodbye>는 함께 밤을 보낸 매춘부를 죽인 살인범을 찾아나서는 전과자 이야기이고, <The Big Fat Kill>은 거리의 매춘부들과 경찰들의 전쟁에 말려든 남자 이야기이며, <That Yellow Bastard>는 상원의원인 아버지의 비호를 받는 강간살인범으로부터 한 소녀를 보호하려하는 형사 이야기입니다. 모두 피와 총알과 담배와 술과 꿀꿀한 독백이 넘쳐 흐릅니다.
이 이야기들에서 진실성을 가려내는 건 좀 까다로운 일입니다. 영화의 주인공들은 모두 진지하고 이야기 자체도 그들에게 엄청난 냉소를 보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이야기는 결코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게 아닙니다. 모두 이전 필름 느와르 영화나 하드보일드 소설의 과장된 흉내니까요. 캐릭터들은 모두 장르 원형들이고 사건들 역시 도식적입니다.
<씬 시티>는 굉장히 얇은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는 내면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영화의 캐릭터들과 그들이 겪는 액션과 드라마들은 모두 스타일의 일부입니다. 이 영화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게 아니라 필름 느와르의 컴컴한 세계를 프랭크 밀러가 창조한 만화적 과장으로 재현하는 것입니다.
시대배경부터 영화의 성격을 증명합니다. 논리적으로 따진다면 <씬 시티>의 시대는 현대입니다. 비교적 신식인 차들이 눈에 들어오고 한 번은 휴대전화도 등장하니까요(어린 낸시가 코딜리아 그레이의 팬인 것도 힌트가 될 수 있겠군요). 하지만 그만큼이나 많은 구식차들과 구식 복장들이 등장해서 분위기는 훨씬 복고적입니다. 다시 말해, 이 영화는 실제의 세계를 그리는 데엔 별 관심이 없습니다. 로드리게스와 밀러가 그리는 세계는 셀룰로이드와 활자로만 존재하는 가상세계입니다. <씬 시티>는 <반지의 제왕>보다 특별히 더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남은 건 스타일입니다. 아니, 처음부터 끝까지 스타일이지요. 그리고 로드리게스와 밀러는 정말로 인상적인 세계를 창조했습니다. 구식 필름 느와르를 모방한 만화를 부분적으로 색조를 남긴 흑백 디지털 영화로 옮기는 동안 이것도 저것도 아닌 괴물이 탄생한 것이죠. 어떤 장르와 매체를 기준으로 봐도 <씬 시티>는 괴물입니다. 마치 정교하게 사람 흉내를 내는 정체불명의 외계인들을 보는 것 같아요.
물론 이 괴물과 같은 느낌은 작업 방식과도 연결되어 있을 겁니다. 로드리게스는 모든 장면들을 그린 스크린 앞에서 찍은 뒤 그 장면들을 나중에 만들어 넣은 배경 속에 끼워넣었어요. 조지 루카스의 <스타 워즈> 프리퀄과 거의 같은 방식이었지요. 하지만 이 영화엔 루카스의 영화들이 가진 단점들은 없습니다. 배우들의 연기는 단선적이지만 강렬하고 피투성이 장면들은 에너지가 넘쳐 흐르지요. <스타 워즈>의 액션과 연기가 밋밋했던 건 그린 스크린 탓이 아니라 감독의 역량 탓이었나 봅니다.
로드리게스는 앞으로 <씬 시티> 영화들을 두 편 더 만들 생각인 모양입니다. 보다 보면 좀 지칠 것 같아요. 스타일은 이번 영화와 똑같을 게 분명하고 이야기 역시 장르 도식성에서 벗어나지는 않을테니, 결국 같은 영화를 세 번 보는 기분이 들겠죠. 벌써부터 숨이 막히기 시작합니다. (05/06/16)
기타등등
쿠엔틴 타란티노는 클라이브 오웬이 베니시오 델 토로와 차를 타고 달리는 장면을 감독했습니다. 설정부터 그의 히트작 <펄프 픽션>을 연상시키는 장면이죠. 클라이브 오웬이 '필름 느와르 독백'을 소리내어 말하는 것도 타란티노의 아이디어라고 합니다.
'리뷰 > 액션 / 어드벤쳐'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에어 포스 원 - Air Force One (1997) (0) | 2007/03/12 |
|---|---|
| 어썰트 13 - Assault on Precinct 13 (2005) (0) | 2007/03/12 |
| 어벤저 - The Avengers (1998) (0) | 2007/03/12 |
| 알렉산더 - Alexander (2004) (0) | 2007/03/11 |
| 아일랜드 - The Island (2005) (0) | 2007/03/11 |
| 씬 시티 - Sin City (2005) (0) | 2007/03/10 |
| 식스티 세컨즈 - Gone in Sixty Seconds (2000) (0) | 2007/03/10 |
| 시노비 - 忍 (2005) (0) | 2007/03/10 |
| 시간의 도망자들 - Tempus fugit (2003) (0) | 2007/03/10 |
| 스파이 키드 - 3D Spy Kids 3-D: Game Over (2003) (0) | 2007/03/10 |
| 스파이 키즈 - Spy Kids (2001) (0) | 2007/03/10 |
|
익스트림무비 추천 도서 |
|
| 세 번의 영화, 다섯 번의 드라마로 만들어져 기록적인 흥행을 올린 일본 추리소설 사상 불후의 걸작. 명탐정 긴다이치 코스케의 대활약을 그린 요코미조 세이시의 <이누가미 일족>은 막대한 유산 상속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연쇄 살인의 음모를 박진감 넘치게 그린 작품으로, 추리 소설 팬이라면 필견의 소설이다. |
|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