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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전영록이 한국 호러 영화 팬들의 '대변자'였던 그 옛날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여간 그 양반이 모 영화 잡지(라고 해봐야 <스크린>이나 <로드쇼> 둘 중 하나겠지만)에 꼭 봐야 할 호러 영화 리스트를 하나 올린 적 있었는데, 그 때 1위가 <시체들의 새벽>이었습니다. 이유는? '너무 잔인해서.'

이 양반의 추천은 저에게 먹혔습니다. 정반대로요. 그 때까지만 해도 전 제가 이런 식으로 생살이 뜯겨져나가는 영화들을 전혀 못보는 줄 알았기 때문에 이 영화는 한동안 기피대상이었거든요. 하지만 그런 영화를 꽤 잘 볼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뒤로 그 추천은 다시 제대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순식간에 절대로 안 봐야 할 영화에서 궁금해서라도 꼭 봐야 할 영화로 바뀌었던 거죠. 도대체 골수 호러팬들이 '너무 잔인하다'고 말하는 장면들이 어느 정도인지 너무너무 궁금했던 거예요.

그러다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 느꼈던 건? 글쎄요. 일단 실망했습니다. 그 너무너무 잔인하다는 장면들은 사실 제 기대를 한참 못 미쳤거든요. 물론 그 이전에 AFKN으로 보았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보다는 강도가 훨씬 높았고 톰 새비니의 특수 분장은 멋졌지만, 제가 이런 영화들에서 기대했던 것은 단순히 찢겨나가는 신체들의 모습이 아니라 그를 통해 표출되는 신경을 찌르는 듯한 끔찍한 공포였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엔 그런 게 전혀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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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 전 한가지 분명한 교훈을 깨달았으니... 잔인함의 강도만으로 호러 영화를 저울질하는 사람들을 따를 필요는 전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기준에 기대치를 맞출 필요도 없고요. 우선 잔인함과 공포는 비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호러 영화라고 해서 잔인함과 공포만으로 평가되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는 것이죠. <시체들의 새벽>이 멋진 영화인 이유도 그 두 가지 때문만은 아니니 말입니다.

줄거리는 여러분도 알고 있습니다. 미국은 사람 고기를 먹는 좀비 천지가 되었습니다. 방송국 직원인 프랜과 스티븐, SWAT 팀원인 피터와 로저는 간신히 헬기를 타고 좀비들한테서 탈출합니다. 무작정 북쪽을 향해 날아가던 그들은 비교적 외진 곳에 위치한 쇼핑센터에 착륙하죠. 원래는 잠시만 머물 생각이었지만 쇼핑센터의 풍요로운 상품들에 훌떡 넘어간 그들은 안에 있던 좀비들을 몰아내고 그 안에 안주합니다.

<시체들의 새벽>은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을 일부러 뒤집은 영화입니다. 설정과 스토리가 비슷할지는 몰라도 나머지는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다르죠.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은 컴컴한 밤을 무대로 한 불길하고 음침한 흑백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시체들의 새벽>의 배경은 대부분 낮이거나 환한 조명이 켜진 쇼핑센터 안이며, 그를 묘사하는 화면도 뻔뻔스러울 정도로 노골적인 색조를 강조하는 컬러입니다. 엄청나게 비관적이고 암담했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과는 달리, <시체들의 새벽>은 거의 만화처럼 뻔뻔스럽고 발랄한 블랙 코미디이고 결말도 상대적으로 낙천적인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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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설정은 무대가 되는 쇼핑센터입니다. 이를 통해 로메로는 고전적인 재난소설의 대리 충족 판타지 하나를 근사하게 살려냅니다. 공짜 쇼핑 말이에요. 전에는 피땀 흘려 일해서 번 돈으로 샀던 모든 것들이 이제는 공짜입니다. 저 귀찮은 좀비들만 쫓아낸다면 말이에요. 지옥과 같은 바깥 세상으로부터 숨기 위해 선택했던 은신처가 순식간에 물질주의적인 낙원이 된 것이지요.

그러다보니 이 영화에서 좀비들의 무게는 팍 줄어들어버렸습니다. 물론 수가 워낙 많고 사람들을 잡아먹으니 여전히 위협적인 존재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그리는 쇼핑센터의 천국에서 이들은 귀찮은 쓰레기에 불과합니다. 좀비들은 죽은 뒤에도 여전히 성실한 자본주의사회의 소비자였던 과거의 기억에 따라 습관적으로 쇼핑센터에 모여들지만 정말로 쇼핑센터 안의 부를 향유할 능력은 없거든요.

쇼핑센터 천국을 붕괴시키는 건 좀비들이 아닙니다. 주인공들과 같은 욕망을 가진 살아있는 사람들인 폭주족 깡패들이지요. 이들이 쇼핑센터를 찾아오면서 이야기는 인간들의 전쟁으로 변해갑니다. 공짜로 얻은 자신들의 부를 지키려는 주인공들과 이를 약탈하려는 외부인들의 싸움으로요. 예정된 대로 이 난투극은 그 틈으로 밀려들어온 좀비들의 만찬으로 끝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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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메로의 이야기가 미국 자본주의의 소비문화에 대한 야유라는 건 분명합니다. 쇼핑센터에 몰려드는 영혼없는 좀비들은 우리 자신입니다. 주인공들과 폭주족 깡패들의 대결은 계급 혁명에 대한 비유로 읽을 수 있을 거고요. SWAT팀에게 몰살당하는 히스페닉계와 흑인 좀비들, 신이 나서 좀비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는 남부인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나와 좀비들의 정체와 그들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 요란한 토론을 벌이는 토론자들은 조지 로메로가 보았던 70년대 말의 미국 모습을 반영하고 있겠지요.

물론 우린 이를 조금 더 확장시킬 수도 있습니다. 주인공들과 폭주족 깡패들의 대결은 작은 스케일로 재구성한 로마 제국의 멸망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결국 우리의 주인공들이 필사적으로 지키려고 하는 것은 공짜 물건들을 통해 그들이 유지하고 있던 문명이니까요. 현대 미국 문명에 대한 직설적인 야유로 시작된 영화는 순식간에 문명의 종말에 대한 묵시록적 비전으로 연결됩니다.

시작했을 때보다 훨씬 거창해졌지만, 역시 야유는 야유입니다. 이 영화가 어쩔 수 없는 코미디인 것도 그 때문이죠. 로메로는 전편에서 너무나도 심각하고 무서웠던 좀비들을 완벽한 코미디언들로 탈바꿈시켰습니다. 밝은 조명 밑에서 그들의 회색 분장은 우스꽝스러워보입니다. 죽은 뒤에도 이전의 유니폼을 그대로 입고 있는 그들은 영혼없는 광대들처럼 살아있었을 때 자기네들이 했던 일들을 희극적으로 반복합니다. 로메로는 얄밉기 짝이 없는 '백화점 음악'을 배경으로 깔면서 그들의 기계적인 희극성을 강조하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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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이 영화가 호러로서 자기 역할을 하지 않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닙니다. 특히 좀비들의 공격이 본격화되는 후반부에서, 내장들이 쏟아져 나오는 톰 새비니의 구역질나는 특수 효과는 빛을 발합니다. 무섭다기보다는 난도질의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 장면들이지만요. 전체적으로 <시체들의 새벽>에서 호러 장르의 역할은 직설적인 자극을 주는 데 있다기보다는 영화에 거창한 바로크적 매력을 부여한 데 있지않나 싶습니다. (04/03/30)

기타등등

이 영화는 로메로의 좀비 3부작 중 유일하게 좀비와 부두교를 언급하는 작품입니다. 물론 각각 한 번밖에 언급이 되지 않고 둘이 연결되지도 않지만요. 피터의 '좀비' 대사도 비유법일 거예요.

Posted by DJU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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