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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중반, 조지 로메로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나 있었습니다. 레이건 정권 시절을 사는 좌파 지식인에겐 당연한 정신 상태였겠죠. 그런 분노가 시체 3부작의 3번째 작품인 <시체들의 낮>에 투영된 것도 그만큼이나 당연한 일이었겠고요.

그 분노의 감정을 표출하기 위해 로메로가 선택한 무대는 좀비를 연구하는 지하 군사기지였습니다. 세상은 이미 좀비 천지가 되었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기지 안에서 좀비들을 연구하고 있는 거죠. 100퍼센트 아귀가 맞아 떨어지지는 않지만, 관객들이 이 설정에서 군수사업과 결탁한 레이건 정권의 모습을 읽어내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결정적으로, 비교적 상식적인 사람들로 묘사되는 민간인들과는 달리, 이 영화의 군인들은 하나같이 무례하고 사악하고 혐오스러운 악당들입니다. 이들이 나중에 군기지에 침입한 좀비들에게 잡아먹히는 장면은 거의 대청소처럼 느껴져요.

아마 <시체들의 낮>이 3부작의 다른 영화들에 비해 인기가 없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겁니다. 당시 대다수의 미국 관객들은 이 영화의 메시지에 거부감을 느꼈을 거예요. 아무런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고 인류의 말살을 냉소적으로 바라보기만 하는 영화의 어투 역시 기분나빴을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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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80년대 관객들의 아둔함만을 탓할 수도 없습니다. 로메로의 <시체들의 낮>은 3부작 중 가장 심심한 작품이거든요. 분노와 메시지가 지나치게 분명했기 때문에 입체성이 심각하게 떨어졌던 거죠. 군인들을 모두 썩어빠진 악당들로 묘사하는 것부터 문제가 있었어요. 분노와 혐오를 표출하는 가장 만만한 방법이었겠지만, 대부분의 손쉬운 방법이 그렇듯 안이했어요. "녀석들은 혐오스럽고 사악하니 죽어 마땅하다"는 결코 좋은 비판 방식은 아니잖아요? 적어도 "왜?"는 보여주어야 하는데, 이 영화엔 그게 불분명했지요. 너무나도 단순하게 경계선을 그을 수 있는 흑백 구조 때문에 드라마의 매력이 사라진 것도 문제였어요. 이 영화에는 앞의 두 편에서 느낄 수 있는 강렬하고 복잡한 인간 드라마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있는 건 캐리커처와 욕설, 살육뿐이에요.

<시체들의 낮>은 자기만의 장점이 있는 영화입니다. 일단 톰 새비니의 특수 분장은 이 영화에서 절정에 달합니다. 좀비들은 <시체들의 새벽> 때보다 훨씬 무섭고, 거의 오페라적으로 느껴지는 화려한 신체 손상의 묘사도 기가 막힙니다. 미치광이 과학자 로건이 길들인 좀비 법과 같은 캐릭터는 같이 나오는 인간들보다 훨씬 강렬한 캐릭터를 갖추고 있으며 섬세한 정치적 은유로도 훨씬 잘 먹히지요. 법이 로즈 대위에게 경례를 올려붙이는 장면 같은 건 이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야유이기도 해요.

그러나 이런 장점들을 고려한다고 해도 <시체들의 낮>은 여전히 미적지근한 작품으로 남습니다. 강한 분노와 혐오의 감정은 훌륭한 예술작품의 엔진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 영화를 만들 수는 없죠. 통찰력과 예술적 통제를 위한 여유도 필요해요. <시체들의 낮>에는 그런 여유가 부족합니다. (04/06/14)

기타등등

<시체들의 낮>이 지금의 어정쩡한 모습으로 완성된 건 제작비 탓이기도 했습니다. 원래 로메로의 구상은 지금보다 훨씬 컸다고 해요. 하지만 절대로 R등급 이하로 내려갈 수 없는 내용 때문에 저예산으로 만들 수밖에 없었고 오리지널 각본의 구상 역시 그 과정 중 많이 잘려나갔다고 하더군요.

Posted by DJU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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