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의 다이아몬드들을 빼돌린 석태는 교통사고로 시실리라는 평화로운 작은 마을에 잠시 머물게 됩니다. 다음 날 다이아몬드와 석태를 찾으러 부하들과 함께 시실리로 내려온 양이는 이 마을에 뭔가 이상한 점이 있다는 걸 알게 되지요. 부인하는 마을 사람들을 협박해서 주저앉은 양이는 마을의 비밀이 도망자를 숨겨주었다는 것 이상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시실리 2km>는 잡종 영화입니다. 전형적인 조폭물로 시작된 영화는 석태가 시실리에 도착하면서 <조용한 가족>식의 잔인한 블랙 코미디로 전환됩니다. 양이가 시실리를 방문하자 이 두 장르는 거칠게 충돌하는데, 그러는 동안 수수께끼의 긴머리 처녀귀신이 등장하면서 영화는 다시 공포 영화로 전환되지요. 이게 그대로 가느냐면 또 그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충청도 처녀귀신은 서울에서 온 깍두기 아저씨의 심금을 울릴 정도로 무지무지하게 착하고 예뻐서 영화의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감상적인 멜로드라마로 흘러가거든요.
마케팅 팀의 정의에 따르면 <시실리 2km>는 '신개념 펑키 호러'입니다. 미안하지만 <시실리 2km>는 신개념이라는 딱지를 달만큼 신식도 아니고 펑키하다는 소리를 들을만큼 튀지도 않습니다.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내세울 수 있는 요소는 막나가는 장르의 혼합인데, 사실 그것도 보기만큼 모험적이지는 않습니다. 특히 영화의 기본 장르가 모든 모험에 관대한 코미디일 경우엔 말이죠.
영화는 그렇게까지 모험적이거나 과격한 코미디도 아닙니다. 사실 다루는 소재를 어떻게 팔지 그렇게 깊이 생각하지도 않았죠. 영화는 조폭 코미디 중간에 귀신을 등장시킨다는 아이디어를 낸 데 스스로 대견해할 뿐 그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거나 어울리는 농담을 찾아주지는 못했습니다. 이 영화의 귀신 농담들은 대부분 만연체로 늘어진 설명의 연속이어서 쉽게 맥이 빠집니다. 송이 귀신은 인상적으로 등장하지만 남자들이 이상화시킨 처녀귀신상이라 오히려 어이가 없고요. 예쁘고 착하고 남자에게 쓸데없이 잘해주는데다가 귀신이라 책임질 필요도 없는 시골 처녀란 말이에요.
차라리 이야기가 아주 정통으로 흐른다면 괜찮을텐데, 영화는 그러지도 못합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들인 깍두기 아저씨들이나 그들의 상대인 시실리 마을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우리가 마음을 주고 싶은 사람들은 아닙니다. 사실 전 귀신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모두를 쓸어버리길 바랐어요. 아무리 임창정처럼 친근한 이미지의 배우가 주인공역을 맡았다고 해도요. 전형적인 권선징악 멜로드라마에 이런 사람들이 갇혀 있으니 영화가 끝나도 별로 개운하지가 않아요.
그래도 영화에 남은 게 있다면 적절하게 캐스팅된 배우들일 겁니다. 연기하는 캐릭터가 짜증날 정도로 멋없는 인물이라는 걸 고려한다면 임창정은 이야기를 상당히 잘 끌어가는 편입니다. 임은경의 처녀귀신은 그보다 더 인상적입니다. 현대적으로 업그레이드한 날카로운 처녀귀신 이미지와 느릿느릿한 충청도 사투리의 결합은 분명 신선한 구석이 있거든요. 올해 여름에 나온 호러 영화들 중 사다코 분장이 정당화되는 거의 유일한 영화이지만 (코미디잖아요!) 임은경의 개성강한 얼굴과 이 전형적인 분장이 결합한 결과는 그렇게 진부하지 않습니다.
<시실리 2km>은 전체적으로 싱거운 코미디입니다. 이런 종류의 많은 영화들이 그렇듯, 개념 자체를 과대평가한 결과지요. 차라리 작정하고 날을 세운 빠르고 난폭한 코미디로 끌어갔다면 소재가 더 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04/08/05)
기타등등
임은경의 네 번째 영화인데, 이 사람은 <품행 제로> 때를 빼면 사람을 연기한 적이 없군요. 불평이 아닙니다. 솔직히 이런 식의 역을 몇 편 더 연기했으면 좋겠어요. 꽤 희귀한 이미지인데도 불구하고 영화 속에서 제대로 활용되는 것 같지가 않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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