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가 잔뜩 있습니다)
<시스터즈>는 브라이언 드 팔마가 만든 최초의 브라이언 드 팔마 영화입니다. 그렇다고 그의 처녀작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드 팔마는 이전에도 좋은 영화들을 많이 만들었으니까요. 하지만 우리가 '브라이언 드 팔마'라는 이름을 들으면 떠올리는 바로 그런 부류의 작품은 <시스터즈>가 처음입니다. 심하게 말하면 팔마가 끌어온 기나긴 히치콕 모방의 시작이라는 말이지만, 그가 트레이드 마크로 내세운 여러 테크닉과 주제가 처음 싹튼 작품이라는 말도 됩니다.
영화는 <피핑 탐>이라는 텔레비전 쇼에서 만난 퀘벡 출신의 모델인 다니엘과 흑인 사업가인 필립이 만나면서 시작됩니다. 처음에는 타인종간의 로맨스처럼 시작된 영화는 다니엘의 쌍둥이 동생인 도미니크가 등장하면서 비틀리기 시작하고 결국 필립은 도미니크에게 살해당하고 맙니다.
필립이 살해당하면서 다음 주인공이 소개됩니다. 지역 신문의 칼럼니스트인 그레이스가 때마침 맞은편 아파트에서 필립이 살해당하는 장면을 목격한 것이죠. 그레이스는 경찰에 신고하지만 이미 시체는 다니엘의 전남편 에밀이 숨겨놓은 뒤였습니다. 경찰이 사건을 종결짓자 그레이스는 혼자 수사에 나서고 그러는 동안 다니엘과 도미니크의 음침한 비밀이 서서히 벗겨지기 시작하죠.
공식적으로 이 작품의 아이디어는 1966년에 라이프지에 발표된 러시아 샴 쌍둥이에 대한 기사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 영감을 준 진짜 원천은 알프레드 히치콕입니다. <시스터즈>는 알프레드 히치콕의 가장 중요한 두 영화를 짜깁기한 듯한 작품입니다. 다니엘의 이야기는 <사이코>이고, 그레이스의 이야기는 <이창>이죠. 물론 후반부의 악몽 장면에서 <스펠바운드>를 연상할 수도 있을 겁니다. 비정상적인 여자에게 집착하는 에밀 캐릭터에서 <마니>의 흔적을 읽을 수도 있을 거고요. 소파에 시체를 숨겨놓고 태평한 척하는 주인공들에서 <로프>의 잔재를 찾을 수도 있지 않겠어요?
브라이언 드 팔마는 스타일만 훔쳐온 것이 아닙니다. 관음주의나 더블 이미지, 집착과 같은 보다 깊숙한 주제도 훔쳐왔지요. 심지어 그는 음악을 위해 버나드 허먼을 데려오기도 했는데, 이는 히치콕의 팔을 하나 썩 잘라온 것과 같았습니다.
굉장히 염치 없어 보입니다. 그렇죠? 하지만 결과까지 염치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드 팔마가 끝도 없이 써먹는 더블 이미지나 이중 인격인데, 이 주제를 히치콕에서 빌어온 것은 사실이지만 정작 히치콕 자신은 드 팔마만큼이나 자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드 팔마는 히치콕이 직업적인 관심만 보였던 대상을 데려와 자신의 세계에서 극도로 부풀린 셈이지요. 드 팔마의 히치콕 표절이 이처럼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드 팔마가 보기만큼 단순한 모방자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시스터즈>는 결국 드 팔마의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 묻어있는 광적이고 비틀린 인상은 히치콕의 그것과 결과적으로 다릅니다.
여기에는 드 팔마 고유의 테크닉도 끼어듭니다. 대표적인 예가 그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는 화면 분할이지요. 필립이 살해되고 그레이스가 경찰들과 함께 다니엘의 아파트로 들어가는 장면까지 이어지는 이 장면은 정말 여러 모로 흥미진진합니다. 분할된 화면을 통해 관객들은 동일한 사건을 다른 시점에서 관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같은 시간에 전개되는 두 개의 액션을 동시에 조망할 수도 있습니다. 이 타이밍의 테크닉을 통해 서스펜스를 증가시키는 방식은 너무 효과적이어서 분할이라는 트릭의 인위적인 느낌도 곧 잊혀질 지경입니다. 아니, 반대로 이 트릭은 더 인위적일 수도 있는 테크닉을 완화시키는 기능을 하기도 하죠. 그레이스의 방에 붙어 있는 칼럼들을 하나하나 소개하며 그레이스를 소개하는 장면은 옆의 화면에서 계속 액션을 지속시키지 않았다면 아주 어색했을 겁니다.
캐릭터들을 성전환시킨 효과 역시 단순한 뒤집기 이상입니다. <시스터즈>는 여러 모로 페미니스트 연구가들에게 흥미로운 소재를 제공해주기도 하죠. 특히 도미니크와 다니엘, 다니엘과 그레이스의 뒤섞인 자매 관계에 에밀의 도착적 소유욕을 더하면 연구할 거리는 정말로 무궁무진합니다.
영화는 그밖에도 히치콕에서 벗어난 다른 요소들로 가득합니다. 후반부의 악몽 장면은 분명 <스펠바운드>와 아이디어는 유사할지 모르지만, 히치콕이 다룬 달리식 화면과는 전적으로 다릅니다.
드 팔마는 결국 영상 세대였습니다. 모든 걸 하나하나 직접 발명해야 했던 히치콕과는 다른 종류의 예술가였지요. 드 팔마가 이미지를 조작하고 구성하는 방식에는 이전 세대의 예술가들한테서는 볼 수 없었던 과격함과 자유가 담겨 있습니다. 이는 디지털 이미지 조작에 익숙한 90년대와 2000년대의 세대가 만들어내는 이미지와는 또다른 성격의 것이기도 해요. 하여간 이 양반이 <미션 투 마스> 같은 메이저 할리우드 영화로 돌아선 지금, 철철 넘쳐흘렀던 당시의 젊음의 열정을 체험하는 기분은 유쾌하면서도 조금은 씁쓸합니다. (00/11/02)
기타등등
제니퍼 솔트와 아주 똑같은 어조와 목소리로 말하던 사람을 한 명 알았었죠. 더 이상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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