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맨>은 최근에 나온 미국 수퍼 히어로 영화들 중 가장 원작에 충실한 작품입니다. 주인공의 요란한 유니폼도 바뀌지 않았고, 성격도 비교적 원작에 가까우며, 스토리 역시 전형적인 수퍼 히어로 만화 분위기에서 많이 벗어나 있지 않지요.
이런 직설적인 분위기는 원작인 <스파이더맨> 만화가 비교적 늦게 등장한 '현대적 시리즈'였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등장 초기엔 그렇게 새롭게 보였던 주인공의 사실적인 성격이나 가벼운 시니시즘이 세월이 지나자 현대 주류 액션 영화의 기본 공식에 그럴싸하게 들어맞았던 거죠. 특별히 억지로 설정을 뒤집을 필요가 없었던 거예요.
이런 정공법의 느낌 때문에 샘 레이미의 이전 영화들에서 볼 수 있었던 날카로운 개성을 발견하지 못해 실망한 관객들도 몇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레이미의 최근 행보를 따라간 사람들이라면 <스파이더맨>이 그렇게 낯설게 느껴지지는 않을 거예요. 그는 <다크맨>의 감독이며 <헤라클레스> 시리즈의 제작자입니다. 오히려 <스파이더맨>은 그에게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는 프로젝트였어요.
대부분의 수퍼 히어로 영화들이 그렇 듯, <스파이더맨>도 시리즈의 파일럿과 같은 작품입니다. 주인공이 어쩌다가 수퍼 파워를 얻게 되어 수퍼 히어로가 되고 가면 쓴 수퍼 악당과 툭탁거리며 싸운다는 거죠. 대부분 이런 이야기는 지루해지기 쉬운데, 다행히도 <스파이더맨>의 경우는 그런 느낌이 덜합니다. 그건 우리가 관심을 가지는 주인공이 수퍼 파워를 가진 스파이더맨이 아니라 옆집 여자 아이를 짝사랑하는 안경 쓴 고등학생인 피터 파커이기 때문입니다. <수퍼맨>에서 클락 켄트는 수퍼맨의 가면입니다. 하지만 <스파이더맨>에서 스파이더맨은 피터 파커의 가면이죠. 당연히 영화의 촛점은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에게 쏠려 있게 되고 스토리와 캐릭터의 균형은 유지됩니다. 그 때문에 주인공이 수퍼 파워를 얻는 과정 중 발생하는 대리 만족도 더 효과적으로 다가오고요.
영화의 스케일은 비교적 작습니다. 이번 시리즈의 악역인 그린 가블린은 세계 정복의 야망 따위는 품고 있지 않습니다. 당연히 그가 벌이는 소동도 작고요. 스파이더맨과 그린 가블린의 마지막 대결도 아무도 없는 도시 구석에서 소박하게 벌어집니다. 종종 영화는 <수퍼맨>보다 작은 스케일이라는 걸 일부러 드러내며 즐기는 듯 해요. 후반의 케이블카 액션이나 메이 숙모의 "너는 수퍼맨이 아니야"와 같은 대사들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영화는 현실적인 배경과 초현실적인 액션의 차이를 아주 크게 벌리려고 하지는 않는데, 비교적 올바른 선택입니다.
액션은 어떨까요? 최근에 액션 영화들과는 달리, 이 작품은 1.85:1의 화면을 고수하고 있는데, 그건 보기 드물게 수직 운동이 중요시되는 영화였기 때문일 겁니다. 스파이더맨의 활공은 수퍼맨처럼 정말로 하늘을 나는 액션 히어로의 비행보다 더 흥미진진합니다. 그건 거미줄을 타고 미끄러진다는 설정에 어정쩡한 사실성이 녹아 있어서 관객들이 추락과 비상의 아슬아슬한 경계에 선 주인공의 활공을 훨씬 사실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아직 <스파이더맨>의 디지털 스턴트맨은 완전히 완성된 게 아니지만 캐릭터의 유쾌한 비상을 즐기는 데엔 별 문제가 없습니다.
토비 맥과이어 역시 스파이더맨을 비교적 작게 연기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원작에 비교적 가깝게 연기하는 거죠. 맥과이어의 스파이더맨은 가면을 쓰고 있을 때도 여전히 특유의 '기크' 분위기를 유지합니다. 아마 그 사람의 꾸미지 않은 맹한 목소리 때문에 더 그럴 거예요. 하긴 가면까지 쓴 배우가 목소리까지 규격화시키면 정말 재미가 없을 겁니다.
윌렘 드포의 그린 가블린은 조금 더 거대한 악당이어도 괜찮았을 겁니다. 하지만 전체적 스토리엔 그 정도의 크기가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해요. 드포의 팬이라면 그 사람이 거울 앞에서 펼치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 연기를 즐겼을 겁니다.
다른 배우들도 괜찮습니다. 특히 클리프 로버트슨과 로즈마리 해리스의 담담한 연기는 좋습니다. 던스트는 언제나처럼 자기 역할을 하고요. 참, 브루스 캠벨과 테드 레이미가 어디에 나오는지 눈치채셨나요? (02/05/09)
기타등등
무역 센터 장면이 잘린 건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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