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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보기에 <쓰리 킹즈>는 무척이나 고전적인 이야기로 보입니다. 기획부터 그렇지 않습니까? 조지 클루니 주연의 전쟁 영화라잖아요. 줄거리를 봐도, 영화는 백 여년이 넘게 작가들이 써왔던 구식 플롯을 그대로 끌어와 쓰고 있습니다. 탐욕스러운 보물 사냥꾼들이 보물을 찾으려 헤매는 동안 보물보다 더 소중한 것에 대해 알게 된다는 거죠. 이국적인 배경에서 싸우는 앵글로 색슨 영웅들이라는 구도는 키플링 소설들만큼이나 오래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안이한 기대를 품고 <쓰리 킹즈>를 보다보면 영화가 자꾸 엉뚱한 길로 가게 된다는 걸 알게 되어 당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영화가 그럭저럭 헐리웃 상업 영화의 성격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전통적인 플롯이 영화가 딴 길로 가지 못하게 필사적으로 얽매고 있기 때문이죠. 이게 조금만 느슨했어도 그 결과는 어처구니 없었을 겁니다.

어떤 내용이길래? 대충 이렇답니다. 걸프전이 끝난 뒤, 네 명의 미군이 포로 몸수색 과정 중 발견한 보물지도를 들고 사담의 금을 훔치러 떠납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 사담에게 쫓기는 반군과 민간인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의 목적은 조금씩 바뀌어갑니다.

이런 이야기가 '새롭고' '자극적'일 수 있었던 이유는 셋입니다. 데이빗 O. 러셀의 현란한 MTV식 연출, 걸프전에 대한 비주류적인 해석, 그리고 구식 액션 영화의 클리셰들을 타파하려는 의식적 노력.

이들 모두가 100 퍼센트 성공적으로 구현되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러셀의 스타일은 가끔 도가 지나쳐서 스토리의 진행을 막기까지 하고, 걸프전에 대한 해석이나 클리셰 타파도 구식 플롯과 결말에 의해 약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쓰리 킹즈>도 어쩔 수 없는 주류 헐리웃 영화라, 아무리 공정해지려고 노력해도 우리와 같은 외국 관객들의 눈에는 여전히 조금씩 꼴사나워 보이는 거죠. :-) 꼭 영화 탓은 아닐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나 이 정도만 해도 흥미진진하기 짝이 없습니다. 러셀의 스타일만 해도 그냥 MTV식은 아니거든요. 생각 없이 카메라만 휘둘러대는 동료들과는 달리 러셀은 그 스타일을 통해 진짜 내용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거친 입자의 필름과 흔들리는 카메라가 잡아내는 것은 과장된 남성성과 멋진 폭력이 아니라, 겁에 질리고 어리둥절한 캐릭터들의 혼란스러움과 육체적 고통, 전쟁과 폭력에 대해 그들이 품고 있는 순진한 환상이 폭로되고 박살나는 과정입니다.

러셀의 이죽거리는 듯한 블랙 유머 때문에 스타일은 보다 의미있는 것이 됩니다. 게이츠가 총에 맞은 몸에서 일어나는 파괴 과정을 설명하는 부분이나 트로이가 총에 맞는 장면에서, 우리는 몸 속으로 들어간 총알이 신체 내부를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직접 볼 수 있습니다. 가짜 피를 흘리면서 아픈 척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거죠. 육체적 고통이 전면으로 등장하면, 우린 더이상 총질을 게임으로만 볼 수는 없습니다. 심지어 그것이 스크린 위에서 펼쳐지는 것이라도요.

하지만 그의 실력이 보다 유쾌하게 펼쳐지는 부분은 걸프전의 묘사입니다. 부시의 당시 걸프전 정책에 대한 정치적인 비판이 가장 먼저 들어오는군요. 하지만 영화가 전개되는 동안, 우리는 구체적인 방향이 있는 비판보다는 전쟁의 정신없는 혼란함을 먼저 체험하게 됩니다. 구체적인 적으로는 사담 후세인이 온갖 촌스런 초상화들의 나열로 등장하긴 합니다만, 정작 주인공들이 몸을 부딪히며 싸우고 관계를 맺는 사람들은 때려부술 상대로서의 선명성을 잃어갑니다. 이런 혼란감 때문에 캐리커쳐와 스테레오 타입으로 시작했던 아랍인 캐릭터들 중 일부가 독자적인 생명력을 찾기 시작하기도 합니다. 특히 중반의 트로이와 사이드 대위의 대화는 그 정점을 이룹니다.

하긴 세상에 선악이 분명하게 나뉜 깨끗한 전쟁이 어디 있겠어요. 걸프전 역시 예외는 아니었죠. 쿠웨이트 해방이라는 명분을 내세운다고 해서 폭격으로 아이를 잃은 아버지의 마음이 위로되는 것도 아니고, 군수회사와 석유 이권이 범벅이가 된 전쟁의 뒷면이 깨끗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눈 딱감고 무시했어야 하는 걸까? 그런 것도 아니지 않겠어요? 트로이가 구출된 뒤 사람이 확 바뀐 것도 당연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혼란 속에서 어떤 해결책을 찾아야 할까요? 러셀은 주인공들이 반군들의 이란 망명을 돕는 것으로 스토리를 끌고 갑니다. 이런 결말이 영화의 날카로움을 떨어뜨리는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같은 외국인 관객들에겐 위선적으로도 보이고요.

분명 더 나은 결말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이 결말도 생각만큼 나쁘지는 않군요. 그때까지 관객들과 캐릭터들이 체험한 전쟁의 혼란 속에서, 그들이 택할 수 있는 유일하게 건전한 행동은 저 멀리 있는 명분과 핑계 대신 눈 앞에 서서 살아 숨쉬는 사람들을 돕는 것입니다. 어차피 이 영화가 구식 플롯을 따라가야 하다면 그게 가장 논리적인 해결책이겠죠. 그 과정이 과장된 남성적 액션이 아닌 소극적 희생을 통해 이루어진 것도 나쁘지는 않고요. 결말이 최선의 선택이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적어도 선택된 결말은 괜찮게 다듬어져 있습니다.

플롯이 강요하는 영웅주의를 적당히 죽여주는 또다른 존재는 캐릭터들입니다. 아치, 트로이, 칩, 콘래드는 영웅과도 거리가 멀며, 그들의 폭력 행위는 미화되어 있지 않습니다. 뻔한 제3세계의 이미지에 갇혀 있는 다른 아랍 캐릭터들과는 달리 (긴 영어 대사들이 따라주는) 아미르와 사이드는 괜찮습니다. 심지어 초반에는 크리스티안 아만포어의 야유섞인 캐리커처로 보였던 아드리아나의 캐릭터도 나름대로 자리를 찾는군요. 적절하게 캐스팅된 배우들의 호연도 캐릭터들을 세워줍니다. 조지 클루니마크 월버그는 자기 기존 이미지를 날씬하게 이용하고 있고, 뮤직 비디오 감독 스파이크 존스의 데뷰 역시 인상적입니다.

<쓰리 킹즈>는 완벽한 영화가 아닙니다. 그러나 이 영화가 과시하는 현란한 기교와 정신없는 유머가 적절한 균형 감각과 그럴싸한 조화를 이룬 결과는 무척 근사하군요. 그리고 정말 재미있어요. (00/02/18)

기타등등

이 영화에서 가장 혼란스러운 건 바로 제목이죠. <쓰리 킹즈>라고는 하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은 엄연히 네 명입니다. 노래와 성경 인용을 내용과 끼워맞추기 위해서였겠지만, 그 결과 스파이크 존스가 연기한 콘래드가 마케팅 과정 중 지나치게 무시된 듯한 경향이 있습니다. 아쉬워요.

Posted by DJU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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