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시골로 이사온 치히로라는 소녀와 그녀의 부모가 버려진 테마 파크에 들어가면서 시작됩니다. 테마 파크는 현실과 환상의 세계가 공존하는 곳으로, 치히로의 부모는 그곳 음식을 먹고 돼지로 변하고, 치히로는 유바바라는 마녀가 운영하는 온천장에서 일하게 됩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미야자키 하야오 버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입니다. 굉장히 강한 일본색을 바탕으로 깔고 비교적 전통적인 동화적 스토리로 끌어가는 <앨리스>죠. 아마 조금만 상상력을 잡아당기면 하트 여왕이나 돼지 아기와 같은 캐릭터들을 마녀 유바바나 유바바의 아들과 같은 캐릭터와 끼워맞출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앨리스>처럼 부조리한 환상의 어긋난 즐거움만을 위한 작품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 영화는 구체적인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작품입니다. 영화는 통과제의적인 성장담이기도 하고, 환경주의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기도 하며, '진짜 이름'과 관련된 어슐러 르 귄 풍의 철학적 성찰을 담고 있기도 합니다.
영화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지금까지 끌어온 경력의 총결산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이 영화에는 그가 만들어온 모든 영화들의 단편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시골에 이사온 가족, 주인공들의 비상, 돼지로 변한 사람(들), 환경주의적 메시지, 토토로 풍의 환상적인 동물들...
그 때문인지, 저에게 이 영화는 은근히 소품처럼 보입니다. 따지고 보면 어처구니 없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지금까지 나온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들 중 가장 강렬한 스펙타클과 시각적 상상력을 제공해주는 작품입니다. 기술적으로도 가장 뛰어나고요. 2시간을 훌쩍 넘기는 러닝타임도 소품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 영화는 여전히 '소품'입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훨씬 작고 소박한 영화였던 <이웃집 토토로>에서 볼 수 있었던 야심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영화는 이미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거장이 자기의 작업 도구들을 긁어모아 특별한 외압없이 가볍게 만든 듯한 느낌을 줍니다. 위에 언급했던 스케일도 어떻게 보면 그런 가벼움의 증거일지도 모르죠. 종종 러닝 타임을 필요 이상으로 늘리면서 느긋하게 옆길로 빠지는 스토리 라인도 그 때문일 겁니다.
소품이건, 대작이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보여주는 세계는 인상적입니다. 굉장히 일본풍이지만 그렇다고 전통적인 요소에 억지로 발목잡혀 있지도 않은 그런 곳이죠. 가분수 마녀 유바바처럼 희극적이고 전적으로 환상적인 캐릭터에서부터 바다 위를 달리는 기차와 같은 초현실적인 정경에 이르기까지 판타지의 스펙트럼도 넓습니다. 더러운 강의 신의 목욕이나 얼굴없는 요괴의 소동처럼 순수하게 상상력의 쾌감을 자극하는 장면들도 많습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미야자키 하야오의 경력에 새로운 획을 그은 작품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 작품이 그의 마지막 영화라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템페스트>처럼 에필로그적 기능이 더 강한 영화처럼 보이더군요. (02/06/12)
기타등등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베를린 영화제 금곰상 수상작입니다. 3대 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은 첫번째 애니메이션 영화라고들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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