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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 배우 다리아 니콜로디는 유명한 피아니스트였던 할머니한테서 이상한 이야기를 들은 적 있습니다. 니콜로디의 할머니는 15살 때, 다니던 기숙학교에서 흑마술을 가르친다는 걸 알게 되자 질겁해서 학교에서 달아난 적이 있었다나봐요. 니콜로디는 이 어처구니 없는 자칭 실화에 영감을 얻어 영화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고, 당시 남자 친구였던 영화 감독 다리오 아르젠토를 끌어들였습니다. 둘이 쓴 각본은 곧 다리오 아르젠토의 최고 걸작인 <서스피리아>로 이어졌지요.

니콜로디와 아르젠토의 공동 작업에 대해서는 다양한 주장들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아르젠토의 <세 어머니> 이부작 (사실은 미완성 삼부작이지만)이 니콜로디의 고안품이라는 사실은 인정해도 될 듯 합니다. 니콜로디가 참여했거나 했다고 여겨지는 작품들과 아르젠토의 다른 영화들 사이에는 주제나 스토리 면에서 분명한 차이점이 존재하거든요. 아르젠토의 다른 작품들이 전통적인 지알로 영화라면, <세 어머니> 이부작이나 <페노미나>와 같은 영화들은 보다 환상적이고 유럽 문화의 전통에 더 강하게 밀착되어 있습니다.

2.

<서스피리아>의 무대는 독일에 있는 발레 학교입니다. 미국인 유학생인 주인공 수지는 학교에 도착하는 날 밤에 숲 속으로 달아나는 학생의 모습을 목격하는데, 그 학생은 곧 처참하게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지요. 학교에서 이상한 일들이 계속 일어나자 수지와 수지의 룸메이트 사라는 학교의 비밀을 캐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수상쩍은 사건들의 뒤에는... 에라, 모르겠다. 그냥 비밀을 밝히죠. 이 학교는 마녀 소굴이었어요. 설마 이런 걸 알았다고 해서 영화 재미가 떨어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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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스피리아>의 각본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 동화적인 분위기입니다. 당사자들도 인정하고 있고 비평가들도 수없이 지적하는 바이지만, 이 영화의 줄거리는 옛 유럽의 동화 분위기를 강하게 풍깁니다. 우리의 주인공 수지는 그림 동화 풍의 호러 세계에 뛰어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인 셈입니다. 실제로 원래 각본에서 주인공은 열 살 정도의 소녀였다고 해요. 어쩔 수 없이 주인공 나이를 올린 뒤에도 아르젠토는 문 손잡이를 머리 높이로 올리는 등의 조작을 통해 여전히 수지와 친구들을 어린아이처럼 다루고 있지요.

우린 구체적인 인용을 찾아낼 수도 있습니다. 마녀들은 백설공주의 못된 계모입니다. 대저택에 숨겨진 비밀을 캐는 사라와 수지는 푸른 수염의 아내들입니다. 선생들의 발자국을 세며 비밀 통로를 찾아내는 사라의 모습은 페로의 엄지 동자와 겹쳐지지 않습니까?

상당히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서스피리아>에서 개념은 그냥 개념으로 남습니다. 이 영화의 각본은 그렇게까지 잘 짜여진 편이 아니거든요. 당연한 일이겠죠. 우선 니콜로디가 그렇게 경험많은 작가가 아니었고, 공동 작가인 아르젠토는 짜임새있는 이야기보다는 멋진 살인 장면에 더 신경을 쓰는 남자였으니 말이에요. 영화의 각본은 종종 길을 잃고 방황하며, 캐릭터들의 행동들은 미심쩍습니다. 후반부에 장황하게 설명되는 진상은 영화 전체에 일어나는 사건을 충분히 받쳐주지 못하며, 결말은 빈약합니다. 이 영화의 각본을 구성하는 개별 요소들은 차곡차곡 쌓여있다기보다는 줄에 매달려 한 줄로 길게 늘어져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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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러나 이탈리아 호러 영화에서 치밀한 각본을 찾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형편없는 각본들에도 불구하고 이 장르를 사랑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어처구니없는 각본과 형편없는 대사들은 엉터리 영어 더빙처럼 이탈리아 호러 영화 고유의 매력으로 다가올 거예요.

그리고 각본이 자기 일을 하지 않았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짜임새없는 각본인 건 분명합니다. 하지만 이 각본은 아르젠토가 그 사람 특유의 압도적인 이미지에 뚜렷한 의미를 부여할 정도의 기반은 충분히 제공하고 있습니다.

아르젠토는 <서스피리아>를 장엄한 바로크적 악몽으로 꾸려내고 있습니다. 네, 그의 스타일은 여러 면에서 그의 스승인 마리오 바바에 큰 빚을 지고 있습니다. 원색들이 대담하게 공존하는 미치광이 조명이나 긴 회랑을 걸어가는 여자 주인공과 같은 건 전형적인 바바풍 이미지죠. 단지 아르젠토는 여기에 자기 색을 분명히 부여하고 있습니다. 조용하고 깊게 울리는 바바의 영화들과는 달리, 아르젠토의 영화는 훨씬 자극적이고 선명하며 선정적입니다.

<서스피리아>는 예쁜 영화입니다. 네, 정말 '예뻐요.' 이 영화는 최신 밀라노 패션으로 쫙 차려입은 패션 모델처럼 예쁩니다. 일단 물감을 뿌려댄 듯한 테크닉칼라 화면에 새겨진 그 정신 나간 세트들을 보세요. 그게 유럽의 발레 학교라는 여성적이고 가냘픈 느낌과 결합하면, 정신병적으로 화사한 일련의 이미지가 만들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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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피의 오페라'라고 불릴만한 아르젠토식 살육이 삽입되는 것입니다. 아르젠토의 많은 영화들이 그렇듯, 이 영화도 상당히 모험적인 살육 장면들이 가득합니다. 어떤 건 그냥 어처구니없지만 도입부에 나오는 첫번째 살인 같은 건 정말로 압도적입니다. 위태롭게 진동하는 아르젠토의 창의성이 종종 그를 잡아끄는 말도 안되는 괴상함과 교묘하게 맞아떨어진 것이죠.

4.

<서스피리아>는 앞으로 어떻게 기억될까요? 흠... 일단 이 영화의 자극이 많이 닳았다는 건 지적해야겠습니다. 적어도 지금 우리가 보는 <서스피리아>는 20여년 전에 사람들이 비명을 질러대며 보았던 그 영화는 아닙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아니,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잘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당시 겁에 질려 떨면서 제대로 보지 못했던 디테일들이 더 잘 들어오니까요.

<서스피리아>는 아르젠토의 최고 걸작일까요? 글쎄요. 그는 <서스피리아>만큼 흥미로운 영화들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딥 레드>나 <페노미나>와 같은 영화들은 <서스피리아>만큼 흥미롭습니다. 취향에 따라 그 영화들에 더 끌리는 사람들도 많을 거예요. 하지만 아르젠토가 <서스피리아>의 압도적인 스타일을 능가하는 영화들을 만든 적이 없었다는 건 분명합니다. 만약 각본만 조금 더 잘 따라주었다면 이 영화는 정말로 굉장한 걸작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결점들이 하나씩 드러나는 흥미로운 수작으로 남아 있지만요. (02/11/08)

기타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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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JU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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