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황당한 저주>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이 영화의 진지함입니다. 네, 이 영화는 조지 로메로 좀비물의 패러디이고 코미디입니다. 하지만 에드가 라이트와 사이먼 페그에겐 이 영화를 ZAZ 사단식 난장판 코미디로 몰아갈 의도는 없어요. 좀비들을 다룰 때 그들은 진지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 영화의 진지함은 로메로 영화들과 거의 맞먹어요.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시체들의 새벽>도 만만치 않은 코미디였잖아요. 라이트의 영화가 로메로의 인용이라는 걸 무시한다면 둘은 특별히 다르지도 않아요. 이들이 또다른 모델로 삼고 있는 리처드 커티스의 로맨틱 코미디들과도 그렇게 다른 편이 아니고.
영화는 오리지널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서 좀비들의 탄생담을 빌려오고 있습니다. 영국에 추락한 미국 무인 우주선 때문에 시체들이 살아났다는 거죠. 로메로 영화에서도 그랬지만, 이 기원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실 우리의 주인공 숀은 자기 앞마당에 좀비가 침입할 때까지 주변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알아차리지 못하죠. 그는 그런 것에 신경 쓰기엔 너무 바쁩니다. 생일을 맞은 엄마를 만나러 가야 하고 헤어지자고 선언한 여자친구도 달래야 하고, 언젠가부터 날아가 버린 듯한 인생의 목적도 되찾아야 하고... 영화는 좀비들이 숀과 친구들을 공격하기 시작한 뒤에도 드라마들을 아주 진지하게 다룹니다. 좀비들도 중요하지만 숀의 인생은 그보다 더 중요해요. 어떻게 보면 좀비들은 숀의 진짜 드라마를 방해하는 훼방꾼 비슷한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영화와 숀이 아무리 진지해지려고 해도 거기엔 한계가 있습니다. 그와 친구들은 코미디의 공식에서 벗어날 만큼 창의적이거나 똑똑하지 못해요. 좀비들이 부글대기 시작하자, 그와 룸메이트 에드의 머리는 아주 단순하게 돌아갑니다. 단골 퍼브인 윈체스터에 가서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리자는 거죠. <시체들의 새벽>의 쇼핑몰은 철저하게 이치에 맞습니다. 자가발전이 가능하고 물과 생필품이 넘쳐나며 창문이 없는 단단한 건물이지요. 하지만 숀과 에드가 택한 윈체스터 태번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심지어 간식거리를 제외하면 먹을 것도 없지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들은 평균화된 영국 중산층 남자들의 표본답게 퍼브로 달려갑니다.
따지고 보면 숀과 에드의 삶은 좀비들이 문제가 되기 이전이나 이후나 특별히 다를 게 없습니다. 영화는 이걸 아주 노골적으로 보여줘요. 좀비들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 전날 밤에 숀이 겪는 일상은 좀비들이 부글거리기 시작한 다음 날, 거의 정확하게 반복됩니다. 일부는 그가 주변의 좀비들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둔감하기 때문이지만, 진짜 이유는 주변 사람들이 좀비들로 변한 뒤에도 그가 통과해야 하는 삶의 조건 자체는 특별히 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노골적인 장르 농담을 남발하는 패러디임에도 불구하고, <새벽의 황당한 저주>가 제대로 된 교훈을 주는 꽤 심각한 영화인 이유도 여기에 있죠.
영화엔 이 주제를 위한 꽤 괜찮은 장치가 있습니다. 장르적 사건이 일어났다는 걸 인식한 숀은 처음에 간단한 계획을 세웁니다. 하지만 좀비가 된 계부를 죽이고 엄마와 여자 친구를 구출해서 남은 시간 동안 윈체스터 태번에서 랄라랄라 놀자는 그의 계획은 결코 제대로 풀리지 않습니다. 좀비들과 치고박는 그 얼마 안 되는 시간 동안 그는 29년 동안 한 번 겪었던 지루한 인생을 좀비들과 함께 그대로 반복합니다. 미치겠죠. 그래도 영화 끝에 가면 그도 뭔가 배운 게 있는 것 같고 여자친구와도 다시 사이가 좋아지지만 이게 얼마나 끌겠어요? 우리를 좀비화시키는 현대 사회의 따분함은 결코 총 몇 방으로 해치울 수 있는 적이 아닌 걸요. (06/06/19)
기타등등
마틴 프리먼과 매트 루카스의 카메오를 찾아보세요.
'리뷰 > 좀비 / 강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8일 후 - 28 Days Later... (2002) (0) | 2007/03/12 |
|---|---|
| 오메가 맨 - The Omega Man (1971) (0) | 2007/03/12 |
| 언데드 - Undead (2003) (0) | 2007/03/12 |
| 시체들의 새벽 - Dawn of the Dead (1978) (0) | 2007/03/10 |
| 시체들의 낮 - Day of the Dead (1985) (0) | 2007/03/10 |
| 새벽의 황당한 저주 - Shaun of the Dead (2004) (0) | 2007/03/07 |
| 새벽의 저주 - Dawn of the Dead (2004) (0) | 2007/03/07 |
|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 Night of the Living Dead (1968) (0) | 2007/03/07 |
| 사이렌 - サイレン (2006) (0) | 2007/03/07 |
| 비욘드 - E tu vivrai nel terrore - L'aldilà (1981) (0) | 2007/03/07 |
| 마스터즈 오브 호러: 해켈의 공포 - Masters of Horror - John McNaughton: Haeckel's Tale (2006) (0) | 2007/03/05 |
|
익스트림무비 추천 도서 |
|
| 세 번의 영화, 다섯 번의 드라마로 만들어져 기록적인 흥행을 올린 일본 추리소설 사상 불후의 걸작. 명탐정 긴다이치 코스케의 대활약을 그린 요코미조 세이시의 <이누가미 일족>은 막대한 유산 상속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연쇄 살인의 음모를 박진감 넘치게 그린 작품으로, 추리 소설 팬이라면 필견의 소설이다. |
|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