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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마>의 내용은... 원한 품은 여자 귀신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영화의 도입부는 그에 대한 정보를 전혀 주지 않고 시작해요. 영화가 시작되면 남자주인공이 텅빈 화랑에 들어갔다가 죽은 전처인 애자의 초상화를 발견합니다. 돌아오는 길에 그는 정체불명의 운전사에게 납치당해 이름모를 화가의 집으로 끌려오죠. 화가는 그에게 억지로 초상화를 맡기고 살해당합니다. 남자는 초상화를 들고 간신히 집으로 도망쳐오지만 진짜 끔찍한 일들은 그 때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많은 한국 호러 영화들이 그렇듯, 이 영화는 페미니즘 연구의 흥미로운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아니, 일반적인 예에서 조금 더 나가죠. 전형적인 여성 잔혹사와 복수극을 다루고 있긴 하지만, 여기서 일차적인 가해자는 조선시대의 봉건윤리가 아니라 거기에서 벗어난 여성들이거든요. 과부가 된 시어머니나 애자의 남편을 탐하는 사촌동생과 같은 사람들 말이에요. 그렇다면 모함받은 현모양처 여자 주인공의 처절한 복수와 보살의 힘으로 남은 가족들이 구원받는 결말은 어떻게 해석될 수 있을까? 그거야 알아서 해보시길.

<살인마>에서 이런 식의 주제보다 더 재미있는 건 그 이야기를 담은 스타일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전형적인 한국 호러영화의 공식들을 기대하고 <살인마>를 봤다면 이 영화의 처음 한 시간에 얼이 빠질 겁니다. 내용만 따진다면 전형적인 소복입은 여자 귀신의 이야기인데도 <살인마>는 이 소재를 전혀 다른 식으로 접근하고 있지요.

<살인마>는 전형적인 한국 호러영화보다는 마리오 바바의 영화에 더 가깝습니다. 전혀 설명되지 않고 이해도 되지 않는 악몽과도 같은 사건들이 거의 자동기술적인 스토리 전개에 의해 마구 던져지는 전반부의 스토리 전개는 거의 <리사와 악마>와 맞먹을 지경이죠. 게다가 당시 만들어진 다른 한국 호러영화들과는 달리 이 영화의 페이스는 굉장히 빠릅니다. 모든 악당들이 죽어나가는 3분의 2지점까지는 거의 전력질주하는 단거리 선수를 보는 기분입니다.

기존 클리셰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뒤섞어 활용하는 방식도 상당합니다. 비교적 도입부에 나오는 긴머리 귀신 장면만 해도 그래요. 보통 한국 호러영화였다면 팅팅거리는 음악과 함께 공들여 묘사되었을 처녀 귀신들이 창밖의 풍경으로 휙 지나가는 장면에서부터 이 영화는 장르에 대한 상당한 자신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애자 유령의 본격적인 등장 장면 역시 인상적이죠. 남자주인공은 병원까지 데려가 엑스레이까지 찍을 때까지 애자가 유령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는 동안 유령이 속해있는 초자연적인 세계는 엄청난 물리적 현존성으로 현실세계를 압박해오는 겁니다. 당시 한국 호러 영화들이 대부분 그렇듯, 해머 뱀파이어 영화들이나 홍콩 액션을 지나치게 흉내내긴 하지만 그 정도는 봐줄 수 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영화는 귀신의 복수가 끝난 3분의 2지점에서 풀어지기 시작합니다. 화가의 수기로 밝혀지는 애자의 사연은 한국 호러영화에서 흔하디 흔한 여성잔혹사 이야기인데, 이걸 꼭 관객들이 다시 봐야 할 필요도 없거든요. 이미 모든 물리적 복수가 끝난 뒤라 뒷북이라는 느낌도 강하고요.

더 심각한 문제는 애자를 복수자 귀신으로 만들기 위해 꾸며낸 이야기가 무척 작위적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이 영화의 심리묘사는 심각할 지경이에요. 아무리 논리를 무시한 초현실주의적인 공포영화를 만든다고 해도 기본적인 심리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에요. 하지만 이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의 행동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특히 큰 언니/누나가 귀신에게 끌려가는 걸 봤으면서도 무덤덤하기 짝이 없는 아이들은 도대체 어느 세계에서 왔답니까? 아이들보다는 조금 낫지만, 남자주인공이나 애자 귀신도 그렇게 이치에 닿는 행동은 하지 않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말할 필요가 없고.

불교의 힘에 의해 모든 것들이 얼렁뚱땅 해결된다는 결말도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여곡성>의 가슴 문신 광선만큼이나 우스꽝스럽죠. 하긴 이런 우스꽝스러운 느낌이 영화에 캠피한 재미를 부여하긴 하지만, 그래도 만족스럽지 못한 건 마찬가지입니다. <살인마>의 첫 3분의 2는 이런 식의 캠피한 느낌 없이도 당당하고 강렬한 호러영화로 설 수 있는 자격이 있거든요. (05/08/26)

기타등등

한국 호러영화에서 동물들이 등장할 때마다 전 언제나 그들의 운명이 걱정됩니다. 이 영화에도 고양이 시체 장면이 하나 나와요. 확신이 서지는 않지만 정말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아니면 다행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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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JU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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