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60년대 말, 피츠버그의 동네 사람들이 뚝딱뚝딱 만든 흑백 영화 하나가 전세계 호러 영화계의 지평을 바꾸어놓았습니다. 그 영화의 제목은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이었고 영화가 나온 1968년은 현대 호러 영화의 탄생년이 되었습니다.
지나치게 과장된 표현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하긴 로메로가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을 구성하는 모든 것들을 허공 중에서 만들어낸 건 아니니까요. 그에게는 수많은 선례들이 있었습니다. 허크 하비의 극저예산 호러 영화 <영혼의 카니발>과 그 영화 속에 나오는 유령들이 로메로에게 끼친 영향을 무시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리처드 매서슨의 소설 <나는 전설이다>와 그 소설을 영화화한 <지구 최후의 남자>도 집 안으로 들어오려는 수많은 좀비들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영향을 주었을 거고요. 그리고 작은 건물 안에 갇힌 소수의 우리편들이 무시무시한 외부의 집단과 맞서 싸우는 영화의 설정은 <리오 브라보>와 같은 서부극들이 연상되지 않나요?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위의 표현엔 대단한 과장은 없습니다. 겨우 2년 전에 나온 해머 영화 <좀비의 역병>과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을 비교해보세요. 달라도 어쩜 그렇게 다를 수 있을까요? 이 영화를 통해 로메로는 좀비 영화의 체질을 완전히 바꾸어놓았습니다. 멍한 표정으로 돌아다니다 사람 살을 뜯어먹는 영혼없는 식인 시체라는 현대 좀비 영화의 이미지는 전적으로 로메로의 발명품입니다. 이후에 나온 모든 좀비 영화들이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의 속편처럼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죠.
로메로의 공적은 좀비 영화를 재발명한 것 이상이었습니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은 현대 호러 영화의 공식적인 시조였습니다. 로메로는 당시 사람들이 호러 영화에 대해 품고 있는 모든 고정 관념들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일단 그는 영화의 무대를 관객들이 살고있는 현실 세계로 옮겨왔습니다. 금성 우주선의 방사능이나 살아난 시체와 같은 허황된 설정들이 등장하긴 했지만 그걸 다루는 방식은 지극히 현실적이었죠. 피츠버그의 근방의 작은 농장이라는 산문적이고 일상적인 배경 속에서 주인공들은 어떤 종류의 인공적인 해결책도 용납되지 않는 어둡고 폭력적인 생존 투쟁을 벌여야 했습니다. 게다가 그 폭력의 정도는 당시 관객들의 상상을 훌쩍 넘어서는 것이었지요. 시체의 생살이 뜯겨져나가는 이 영화의 폭력 장면들은 한 동안 관객들에게 넘을 수 없는 알프스 정상이었습니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서 가장 혁명적이었던 것은 그 시대성이었습니다. 로메로의 영화들이 나오기 전까지 호러 영화들은 될 수 있는 한 관객들을 현실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데려가려 했습니다. 하지만 로메로는 현대의 미국 중부라는 일상 세계를 무대로 삼았을 뿐만 아니라 그와 관객들이 살고 있는 세계를 캐릭터와 사건에 투영했습니다. 영화 속의 캐릭터들이 인종 차별이나 베트남전과 같은 당시의 이슈에 대해 직접 지껄였던 건 아니지만, 관객들은 이 황량한 이야기 속에서 수많은 서브텍스트들을 찾아냈습니다.
가장 주목할만한 건 이 영화의 주인공 벤이 미국 호러 영화 사상 최초의 흑인 남자 주인공이었다는 것입니다. 로메로는 듀웨인 존스가 가장 좋은 배우였기 때문에 뽑았을 뿐이라고 주장했지만, 그의 의도가 무엇이건 벤은 영화 전체에 인종 문제의 서브텍스트를 잔뜩 깔았습니다. 낯선 흑인 남자의 등장에 겁을 잔뜩 집어먹고 떠는 금발머리 백인 여성인 바바라의 모습에서부터 마지막까지 살아남았다가 결국 좀비 사냥꾼에게 처형된 벤의 시체가 린치된 흑인처럼 끌려나가 불에 태워지는 장면까지 거의 모든 장면에요.
관객들은 인종 문제 이외의 다른 서브텍스트들도 찾아냈습니다. 동생이 누나를 죽이고 딸이 엄마를 죽이는 끔찍한 설정 속에서 사람들은 가족 해체의 극단적인 은유를 읽었습니다. 되살아난 시체들이 사람들을 잡아먹는 무시무시한 이미지는 베트남전에 시달리는 당시 미국인들의 불편한 내면을 자극했고요. 로메로의 영화는 마치 매정한 예언자처럼 앞으로 다가올 서구 문명의 종말을 예언하는 듯 했습니다.
로메로의 좀비 삼부작 내에서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은 가장 호러영화다운 작품입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잔인함의 정도가 떨어지긴 했지만 영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길하고 무섭습니다. 느긋하게 현대 미국 사회를 풍자하고 고찰할 여유를 가지고 있었던 속편들과는 달리 이 영화는 어떤 농담도 허용하지 않는 극단적인 절망감을 품고 있습니다. 결정적으로 이 영화의 좀비들은 속편들에 나오는 어릿광대들과는 달리 진짜로 소름끼치는 괴물들입니다. 실제 분장은 그저 그랬겠지만 그 분장이 영화의 거친 흑백 화면 위에 투영될 때는 사정이 전혀 달랐던 거죠.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은 아주 젊은 영화는 아닙니다. 이 작품도 세월이 흐르면서 어느 정도 나이를 먹었어요. 당시엔 첨단을 달리던 잔혹한 묘사도 약발이 닳아서 몇 년 전에 잔인한 장면들을 새로 찍어 추가한 특별판이 나왔을 정도니까요. 자주보다 보면 텔레비전과 라디오가 제공해주는 정보의 나열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스토리 전개나 드라마의 빈약함이 눈에 들어오기도 하고요. 그러나 이 모든 건 지엽적인 것들에 불과합니다. 이 극저예산 영화의 처절한 황량함은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별다른 상처를 입지 않고 원래의 어두운 힘을 유지하고 있거든요. 지금까지 수많은 좀비 영화들이 나왔고 앞으로 나오겠지만,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은 여전히 궁극적인 장르의 모델로 남아있을 겁니다. (04/09/29)
기타등등
원래 톰 새비니는 이 영화의 분장도 맡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쟁 사진 찍으러 베트남으로 날아가는 통에 첫번째 좀비 영화의 분장은 다른 사람에게로 돌아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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