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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파이어>를 보면서 참 즐거웠습니다. 요새는 거의 만들어지지 않는 순수한 영국식 퍼즐 미스테리 영화였기 때문이죠.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스코틀랜드 야드의 민완 형사들이 파견되고 용의자들이 떠오르고... 이 모든 과정들이 군더더기 하나 없는 건조한 기법으로 스크린 위에 펼쳐집니다. 요새 관객들에게는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건조하고 뻣뻣하게 보일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전 이런 식의 순수한 퍼즐 미스테리가 좋습니다. 오히려 추리소설 중간에 연애담이나 다른 감초식 이야기가 끼어들면 짜증이 났어요. 저한테 가장 이상적인 추리 소설은 탐정과 증인들의 대화로만 이루어진 논리적인 구조물입니다. <사파이어>는 그만큼 '이상적인' 추리 영화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꽤 근처까지 갔었지요. 적어도 모양새는요.

스코틀랜드 야드의 분위기를 눈과 귀로 직접 느낄 수 있었던 것도 나름대로 성과입니다. 물론 전 이 영화의 스코틀랜드 야드 묘사가 그렇게까지 사실적이라고 믿지는 않아요 (이 영화의 형사들은 중요한 증거물을 맨손으로 다루기까지 한답니다.) 하지만 거의 문자 매체로만 접해왔던 사람들이 두 다리로 돌아다니는 걸 보니 정말 재미있더군요.

2.

그렇다면 <사파이어>는 좋은 퍼즐 미스테리일까? 그럴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사건의 진상으로 끌어가는 추리 과정은 그렇게 야무진 편이 아니고 마지막 해결 장면도 지나친 추측과 비약으로 끌어가고 있어요. 사건 관계자들의 수상쩍은 행위들도 그렇게 신빙성이 높은 편이 아니고요(대표적인 예가 데이빗 해리스의 증거 은닉.)

하지만 이 영화는 30년대식 퍼즐 미스테리를 의도하는 작품이 아니니까 꼭 훌륭한 퍼즐 미스테리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실제 살인사건 수사도 고전적인 퍼즐 미스테리보다는 이 영화에 가까울 거고요.

3.

<사파이어>에 특유의 성격을 부여하는 것은 소재입니다. 형식은 지극히 공식적인 미스테리 물이지만, 소재는 어울리지 않게 사회성이 짙습니다.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것은 인종 문제. 슬슬 영국에서도 중요한 사회 문제가 되어가고 있던 소재죠.

이 영화의 타이틀롤인 '사파이어'는 이중생활을 하고 있는 음대생입니다. 아버지가 영국인, 어머니가 흑인인 혼혈아지만 백인처럼 보이는 외모 때문에 백인으로 행세하고 다니지요. 참, 고전적인 설정이 아닌가요? 흑인 문학이라는 것이 나온 뒤부터 수많은 혼혈 여자 주인공들이 이 설정 속에서 고민해왔지요.

하여간 이런 여자 주인공이 살해당했으니, 다양한 인종적 편견이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인종 문제는 비슷한 성격의 추리 영화 <밤의 열기 속에서>에서 그려진 미국 남부의 것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비교적 '나이브'하고 관념적이라고 할까요. 적어도 사건의 중심인 사파이어 이야기는 구식 흑인 소설 클리셰를 끌어들인 것 같습니다. 진짜처럼 보이기엔 이야기가 너무 멀끔하거든요.

오히려 인종문제라는 이슈를 더 적극적으로 다루는 부분은 조니 피들의 도주 장면입니다. 경찰에 피해 달아나는 이 흑인 건달이, 그가 동류라고 믿어왔던 하층 계급의 외면과 폭력에 말려드는 장면은 무척 강렬합니다.

영화가 과연 자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인종 문제에 대해 객관적인지도 모르겠어요. 영화는 나름대로 흑인 캐릭터들에게 존엄성을 심어주려 노력하지만 종종 그 자신도 흔한 흑인 스테레오 타입에 말려듭니다. 특히 혼혈 캐릭터들한테 흑인 스테레오 타입을 끼워넣어 그들의 '혈통'을 암시하려는 시도는 그렇게 유쾌해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50년대 후반의 영국에서 만들어진 영화라는 걸 생각해보면 너무 몰아붙일 필요도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정도도 괜찮아요. (00/02/20)

기타등등

<프라임 서스펙트 2>와 이 영화를 비교해도 재미있을 겁니다. <프라임 서스펙트 2> 역시 스코틀랜드 야드의 형사들이 인종문제에 말려드는 이야기니까요. 단지 3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영국의 인종 문제나 그런 이슈를 다루는 방식 모두 '성숙'해졌지요. 과연 '성숙함'이라는 게 여기에 전적으로 어울리는 말인지 모르겠지만요.

Posted by DJU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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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의 영화, 다섯 번의 드라마로 만들어져 기록적인 흥행을 올린 일본 추리소설 사상 불후의 걸작. 명탐정 긴다이치 코스케의 대활약을 그린 요코미조 세이시의 <이누가미 일족>은 막대한 유산 상속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연쇄 살인의 음모를 박진감 넘치게 그린 작품으로, 추리 소설 팬이라면 필견의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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