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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은 현실의 또 다른 얼굴

‘환상’이란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그다지 좋은 의미가 아니다. ‘현실적인 기초나 가능성이 없는 헛된 생각이나 공상.’ 세간의 통념이 그러니, 환상문학에 대한 인식도 좋았을 리가 없다. 뭔가 황당무계한, 아이들이나 보는 판타지 같은 것을 대체로 ‘환상문학’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문학이라고 말을 붙여도, 허무맹랑하고 비현실적인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솔직한 심정을 말하자면, 그런 인식에 굳이 반기를 들 생각은 없다. 현실적인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리얼리즘에 입각한 소설을 보면 된다. 철저하게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이야기를 원한다면, 그런 것들을 찾아보면 된다. 구체적인 현실의 문제를 짚어주고, 실질적인 해결책이나 깨달음을 주는 책을 원한다면 그것으로 좋다. 현실이란 대단히 중요하고, 절대적인 것이니까.

하지만 한 가지만 말하고는 싶다. 환상문학은, 인간이 가장 먼저 시작한 이야기였다고. 우리가 민담, 설화, 전설, 신화로 알고 있는 이야기들이 사실은 환상문학이라고. 왜 그랬을까? 과거에는 그 모든 것이 현실이었다. 이성과 합리성이 모든 것을 지배하게 된 근대 이전까지는, 용과 기사의 이야기가 현실이었다. 신과 악마는 단지 종교의 문제가 아니라, 일상을 규정하는 중요한 조건이었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고, 신과 인간뿐만이 아니라 요정과 괴물까지 공존하는 세상이었던 것이다. 근대 이전의 환상은 ‘현실적인 기초와 가능성이 있는 생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환상문학’이란 말이 생겨난 시대는 필연적으로 근대 이후일 수밖에 없었다. 리얼리즘의 원리로 만들어진 근대 소설의 틈바구니에서, 여전히 비이성과 광기에 매혹된 환상소설이 살아 있음을 알린 것이다. 서구에서 환상문학에 대한 정의를 내릴 때 ‘현실의 삶의 범주 속으로의 신비의 갑작스러운 침입’, ‘인간 이성의 한계에 대한 상상적 체험’, ‘명백하게 비논리적인 모든 현상들을 우리의 인식 체계로 환원시키는’ 문학이라고들 한다. 즉 환상문학은 현실, 이성, 논리의 바깥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된다. 또한 장르적으로 본다면 환상문학은 SF와 판타지, 공포문학을 아우를 정도로 광범위하다고 할 수 있다. 톨킨의 <반지의 제왕> 같은 전통적인 판타지에서부터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와 월폴의 <오트란트성> 같은 고딕소설 때로는 SF의 영역까지 포괄하는 것이 환상문학의 영토다.

사실 근대 이후 문학에서 ‘환상성’은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환상문학은 장르문학의 작가들만이 썼던 것이 아니다. <해저 2만리>의 쥴 베르느, <어셔가의 몰락>의 에드거 앨런 포, <잃어버린 세계>의 아서 코난 도일, 공포소설의 H.P. 러브크래프트 같은 장르문학의 대가들부터 도스토예프스키, 투르게네프, 찰스 디킨스, 오스카 와일드, 프란츠 카프카, 톨스토이 같은 순문학의 거장까지 모두 환상문학의 계보에 포함된다. 마찬가지로 지금도 스티븐 킹, 알랭 로브그리예, 보르헤스 등이 환상문학이라는 테두리에서 하나로 묶일 수 있다. 특히 마술적 리얼리즘이 지배하는 보르헤스와 마르께스의 중남미 문학과 커트 보네거트의 포스트 모더니즘 문학 등은 환상문학과 떼어놓을래야 놓을 수가 없는 근친관계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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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왜 환상문학은, 특히 국내에서 아이들이나 보는 소설 정도로 폄하된 것일까? 이유는 몇 가지 있다. 일단 엄혹한 근현대사를 거쳐 온 한국에서는 ‘현실’의 문제가 너무 컸다. 환상과 공상의 세계를 즐기는 것보다는,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중요했던 것이다. 게다가 80년대를 지배했던 민족문학은, 우리 민족이 당면한 문제를 풀어내는 한 방법론으로서 문학의 임무를 강조했다. 환상문학 같은 것은, 감히 현실을 무시하고 몽상에 젖어든다는 이유로 폄하되었다. 90년대 이후에는 작가의 내면이 보다 중시되었지만, 내면의 환상을 구체화한 소설은 여전히 환영받지 못했다. 21세기 들어 박민규, 천명관 등이 등장하긴 했지만, 기존 순문학계에서 ‘환상’은 여전히 현실을 반추하는 하나의 아이템 정도로 쓰이고 있다.

대신 한국의 환상문학은 인터넷에서 발아했다. <드래곤 라자> <퇴마록> 등이 오프라인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되고, 판타지와 퇴마소설의 독자들이 대거 작가로 전환하면서 새로운 문학이 등장했다. 거칠게 말하면, 그들은 스스로 보고 싶은 소설을 쓰게 된 것이다. 인터넷 출신 작가들은 기존의 신춘문예 등을 통해서 등단한 작가들과는 다르게 정통적인 문학수업을 별로 받지 않았다. 문장력이나 구성력 등이 부족한 작가들도 많았다. 컴퓨터 게임과 할리우드 영화에 익숙한 세대가 만들어낸 인터넷 문학은, 기존 문학계에서 보기에는 저급하고 비현실적인 오락물에 불과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모든 것은 그렇게 발전해 간다. 처음부터 걸작이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쓰레기 취급을 받는 오락물들이 융성하면서 독자적인 성취를 이루어내고 거장과 걸작들도 탄생한다. SF, 추리소설 모두 마찬가지다. 20세기 초 <디텍티브> <어메이징 스토리> 같은 싸구려 오락잡지에나 실리던 추리, 호러, SF, 판타지 등의 장르소설들은 긴 세월을 거치면서 순문학이 무시하지 못할 성취를 이루어냈다. 추리소설의 레이먼드 챈들러나 SF의 어슬라 르 귄 같은 작가들은 기성 문단에서도 거장으로 평가받았다. 추리와 SF, 판타지의 기법을 차용하여 자신의 문학을 완성시킨 작가들은 너무 많아서 이루 다 열거할 수가 없을 정도다. 게다가 환상은, 비현실적이지만 현실의 투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니 우리가 현실적이라고 믿고 있는 소설이나 영화 역시, 교묘한 판타지이고 허구일 뿐이다.

첨단의 시대인 21세기에도 여전히, 아니 더욱 더 환상소설이 매혹적인 이유는, 과학이 발전하고 인간의 인식이 더욱 넓어져 갈수록, 우리가 모르는 것이 많고 이성과 합리성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가득하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신비와 기적으로 가득 차 있다. 아무리 그것을 무시해도, 우리는 어딘가에서 그런 ‘환상’을 만나게 된다. 가끔은 비루한 현실 때문에 환상으로 도망치기도 하지만, 그런 도피도 잠시의 일탈이라면 전혀 나쁠 것이 없다. 환상은 ‘비현실’이 아니라, 가면을 벗은 현실의 또 다른 얼굴이니까.

Posted by makene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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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의 영화, 다섯 번의 드라마로 만들어져 기록적인 흥행을 올린 일본 추리소설 사상 불후의 걸작. 명탐정 긴다이치 코스케의 대활약을 그린 요코미조 세이시의 <이누가미 일족>은 막대한 유산 상속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연쇄 살인의 음모를 박진감 넘치게 그린 작품으로, 추리 소설 팬이라면 필견의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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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글 잘 읽었습니다.
    이런 환상문학이 단순히 현실도피적이 아닌 오히려 아이러닉하게 현실에 더욱 다가가기 위한 비현실을 매개로 한 문학의 한 장르겠죠..

  2. 아르떼 2008/10/13 19:43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
    이렇게 조금씩 발전해나가면 언젠간 좋은일이 있겠지요 ㅎㅎ

  3. 반가운 이야기입니다^^
    저는 국내 판타지문학도 정말 우수한 수작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일반 소설에서 찾아볼 수 없는 생각의 참신함, 대하소설적인 구성의 치밀함 등.
    (물론 이것은 아주 일부.. 라고 할까요^^)
    그렇지만 사회적인 편견이 너무나 좋지 않아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전 개인적으로 이영도씨의 드래곤라자, 전민희씨의 룬의아이들 2 데모닉,
    무엇보다 윤현승씨의 하얀늑대들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앞으로 꾸준히 이러한 수작들이 나와준다면야 환상문학이
    현실 속 깊숙히 자리잡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4. 호두과자 2008/10/13 20:32

    환상문학이라고 하면 대놓고 무시하는 분들이 정말로 꽤 있어서 놀란 기억이 있습니다.
    심지어 대학에서 문학 수업을 하는 교수님들까지도 말이죠...
    글에서도 쓰셨듯, 환상문학이야말로 모든 이야기의 원류임에도.... 한국에서는 지나치게 '초딩용'취급을 받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문학상 등의 심사위원 비평을 읽다보면 투고작품의 단점을 지적하면서 '환상적 요소를 차용한 것이 안타깝다'투로 평할 때가 꽤 있기에 때론 황당함을 느낍니다.작가들의 역량이 갈수록 성장한다 해도 이런 여건 하에서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생각도 들고요.

  5. 국내 환상문학 장르가 그 인식이 좀 떨어지는 장르가 된 데에는 일반 사람들의 환상문학 장르에 대한 부족한 인식도 있지만, 근래에는 터무니없이 형편없는 작품의 질과 그에 반비례해서 쏟아지고 있는 양적인 면등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오죽하면 '잡타지'라는 용어가 등장했겠습니까. 전개의 식상함이 극을 달리던 과거 무협지들보다 장르가치가 더욱 떨어지고 있는 데에는 보고싶은 글을 쓴다는 판타지 작가들의 강점이 맹점이 되버린 문제가 큽니다.

    판타지 소설 매니아라고 하는 사람들도 인정하는 작가군이라는 것이, 초창기 이영도나 전민희, 홍경훈 등 지금까지도 왕성한 활동을 벌이며 양질의 작품들을 쓰고 있는 작가들 정도고, 오히려 판타지 장르 소설 매니아까지도 최근 판타지 소설들을 깔보는 경향이 상당합니다. 상업적이고 좀 더 숙련된 프로의식을 보이고 있는 소위 엔티노벨류의 일본 라이트 노벨 등이 주된 독자층인 청소년들의 눈길을 돌려버리고 있고요. 저는 조금 부정적입니다. 국내에서도 빨리 제대로 된 장르소설 작가 등단 시스템을 확립하지못하다가는 일본 만화는 좋아해도 국내 만화는 안 보는 관습이 국내 환상 문학장르에도 적용되버리는 경우가 올 거 같습니다. 이미 그렇게 되 버린 거 같기도 하구요.

    몇몇 뛰어난 작품이야 살아남겠지만 그렇게 되었다간 좀 너무 처참하지 않겠습니까

  6. 환상문학이란 것 이 없으면 또는 앞으로도 없을 것 이라면 분명 영화라는 것 도
    발전이 더뎌질 듯 하네요~

  7. 티엘린 2008/10/14 13:55

    환상문학 나름 좋아하는 장르입니다... 많이 보기도 하지요..
    물론 거의 대부분이 아마츄어 작가들이 활동하기에 무시당하는게 현실이긴합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정말 기존작가들만큼 잘쓰고 작품성있는 작품도 있습니다..
    또한 그 장르로서의 중요성도 저는 인정하고 싶네요...
    더 좋은 작품들이 나와서 한국에서도 좋은 평을 받고 인정받는 그런 장르가 되기를 바랍니다.

  8. 만화가 무시받는 이유와 비슷한 이유로 무시받고 있는 것이겠지요. 진지한 세계관과 메시지를 담고 있는 작품도 많은데 말입니다. 그치만 일부 소설들은...저질 무협소설과 다름 없는 작품들이 쏟아져나오는 것도 부인할 순 없을 듯 싶어요.

  9. 옹호할 필요없습니다
    필요와 요구에 의해 생겨난 것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이상한 겁니다
    문학 = 고상한것, 현실 인식 뭐니 뭐니 그래도 결국 마찬가지입니다
    환상 문학의 역할 중 하나가 또다른 현실에서의 인간을 보여준 다는 것을 이해 못하는 인간들에게는 뭘해봐야 아무 소용없습니다.
    그래놓고도 외국 문학 그러면 우왕굿ㅋ 그럴 사람들에게 뭐라 말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