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대한 새로운 시선
Cléo de 5 à 7 (아네스 바르다, 1961)
내가 처음 아네스 바르다Agnès Varda 감독의 영화를 언제 보았을까? 아마도 초등학교 때 텔레비전에서 <행복>(Le Bonheur)을 보았을 때가 아닐까 싶다. 한 행복한 가족이 있다. 그 가족의 아버지이자 남편인 남자는 아내 몰래 애인을 만난다. 남편에게 애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내는 결국 물에 빠져 죽는다. 그것은 자살이었을까, 아니면 사고였을까. 그런데 아내가 죽고 난 후 남편과 그의 아이들은 애인인 여자와 함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야외로 소풍을 간다. 나중에 아네스 바르다 감독의 인터뷰를 보니 그녀의 남편이었고 <쉘부르의 우산>을 만들었던 자끄 드미는 이 영화를 싫어했다고 한다. 윤리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그리고 세월이 지나고 나는 대학생이 되었다. 아직 80년대가 끝나지 않았던 그 시절에 종로의 어느 작은(오래 전에 사라진) 극장에서 <아무도 모르게>(Kung Fu Master)의 포스터가 붙어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러나 그 극장에서 그 영화를 보지는 못했다. 이 영화는 나중에 출시된 비디오 테이프로 보았다. 물론 나는 이 테이프를 가지고 있다. 이 영화 <아무도 모르게>는 제인 버킨이 주연을 맡고 있다. 제인 버킨과 세르주 갱스부르의 딸이기도 한 샤를롯 갱스부르가 딸 역할로 출연한다. 그리고 아네스 바르다 감독과 자끄 드미의 아들인 마티유 드미 역시 연기를 한다. 이 마티유 드미는 계속 배우의 길을 걷고 있다. 이 영화는 딸의 어린 남자친구를 사랑하게 되는 중년여성의 심리를 섬세하게 그린다. 사실 나로서는 그녀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는 없었다. 여기에도 윤리적 문제는 개입된다. 그러나 무엇이든 마찬가지이지만, 사람의 마음을 간단히 재단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세월이 흘러 나는 프랑스 영화에 대해 조금은 더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앙드레 바쟁과 누벨바그에 대해 글을 쓰기도 했다. 그러던 중 제3회 여성영화제에서 아네스 바르다 회고전을 했다. 그 때 아네스 바르다 감독도 한국을 방문했다. 가까이서 아네스 바르다 감독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행복했다. 그 때 바르다 감독의 데뷔작 <라 푸앙트 쿠르트>(La Pointe Courte)를 보게 되었다. 책에서만 읽었던 그 영화, 바로 누벨바그의 제작방식을 논의할 때 선구적인 역할을 했던 그 영화를 드디어 보게 된 것이었다. 또 어린 시절 라디오에서 듣던 영화음악으로 친숙했던 <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여자>(L'une chante, L'autre pas)를 보고 나서, 그 노래가 낙태를 다룬 매우 슬픈 노래였음을 알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70년대 페미니즘을 총결산하는 그 영화는 무척 재미있기도 했다.
바르다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도 매우 흥미롭다. 비교적 최근작인 <글라네르와 글라네즈>(Les Glaneurs et la glaneuse)는 환경과 음식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준다. 감독 자신이 캠코더를 들고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담는 과정은 말 그대로 영화글쓰기cinécriture가 어떤 것이지 보여준다. 그 회고전에서 <집도 없이 법도 없이>(Sans toi ni loi)를 보았는지는 기억에 나지 않는다. 이 영화는 프랑스문화원에서 빌린 테이프로 보았던 것도 같다. 이 영화도 특히 주목을 해야 하는 작품이다. 상드린 보네르가 배낭 하나 메고 세상을 떠도는 소녀로 나온다. 그녀는 법과 제도를 거부하며 살고 있다. 이 영화는 독특한 형식을 가지고 있는데, 한 시퀀스가 시작할 때 주인공인 모나Mona를 목격했던 사람이 증언을 하고 바로 과거로 돌아간다. 플래쉬백이긴 한데 그야말로 특이한 플래쉬백인 것이다. 그 황량한 프랑스 시골의 풍경과 함께 모든 사회적 체계를 거부하는 한 영혼의 이야기가 바로 <집도 없이 법도 없이>다.
아네스 바르다 감독
우리는 영화를 잘 이해하려면 일단 감독의 말을 잘 들을 필요가 있다. 물론 감독이 항상 진실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또 위대한 평론가는 감독보다 더 논리정연하게 그 감독의 영화에 대해 잘 설명하기도 한다. 앙드레 바쟁이 장 르느와르의 영화들을 설명했던 것이 그 예이다. 그러나 그 때 여성영화제에서 보았던 그 사람들은 바르다 감독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고, 그 영화들을 잘 설명할 능력도 없어 보였다. 그럼 일단 감독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가지고 그에게 가르침을 청하는 것이 옳다. 언제나 그렇듯이 영화에 대한 예의의 부족이 우리 영화문화의 발전을 가로막는다.
그 다음 해인가 나는 아내와 함께 파리 여행을 갔다. 몽파르나스에 갔다가 나는 아네스 바르다 감독의 영화사인 시네-타마리스Cine-Tamaris의 사무실이 그 동네에 있다는 것을 기억했다. 그리고 그 사무실 앞까지 갔다. 물론 약속을 잡은 것도 아니고 그냥 무작정 간 것이다. 옆에 있는 카페에 가서 커피를 한잔 마시고 카페의 아주머니에게 아네스 바르다 감독을 알고 있냐고 물어보았다. 그녀는 바르다 감독을 잘 안다고 말하고 가서 초인종을 눌러 보라고 일러 주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초인종을 눌렀다. 안에서 어떤 중년 여성이 나왔다. 영화사의 직원인 그녀는 바르다 감독이 편집실에서 작업을 하고 있어서 사무실에는 없다고 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칸영화제 방문 차 파리를 떠난다고 했다. 우리는 그저 한국에서 온 바르다 감독의 팬이라는 것을 밝히고 지나는 길에 들렀다고 말했다. 그 직원은 멀리서 바르다 감독의 팬이 찾아온 것이 신기한 듯 미소를 지었다. 나와 내 아내는 바쁜 바르다 감독을 귀찮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그 사무실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묵고 있던 호텔로 돌아갔다.
끊임없기 환기되어야 할 바르다 감독의 영화
나는 언젠가는 아네스 바르다 감독에 대한 작가론을 써볼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녀가 만든 다큐멘터리 작품들이 많은데 그것들을 아직 구해서 보질 못했고 과연 그게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그 작업을 위한 스케치로서 지금 이 글을 쓴다. 나는 바르다 감독의 모든 영화가 걸작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중에서 <5시에서 7시까지의 끌레오>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 이 선택은 단지 한국에서 DVD로 출시된 작품이 바로 이 영화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더 많은 사람들이 아네스 바르다 감독의 영화를 보기를 바라는 마음의 발로이기도 하다. 사실 한국에서 프랑스 영화는 이상한 오해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니까 프랑스 영화는 재미없다는 고정관념이 언제부터인가 형성되어 있다. 어느 나라의 영화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프랑스 영화라는 기표 안에는 수많은 경향들이 내재되어 있다. 그 안에서 아네스 바르다 감독의 영화들은 끊임없이 환기되어야 할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의 한 자락을 <5시에서 7시까지의 끌레오>를 통해 잡아보기로 하자.
'죽음과 여인'
이 영화는 시간과 공간에 관한 이야기이다. 영화는 90분 동안 이어지는데 영화 속의 시간 역시 런닝타임과 함께 흘러간다. 영화는 챕터들로 나뉘는데 그것은 자연시간이다. 바로 1961년 6월 21일 오후 5시에서 6시 30분까지 일어나는 사건이 영화의 내용인 것이다. 또한 이 영화는 파리라는 도시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까이에 뒤 시네마에서 출판된 책 『Varda par Agnès』 안에는 이 영화의 촬영지들이 파리 지도 위에 표기되어 있다. 그것은 꼬린느 마샹Corinne Marchand이 연기하는 주인공 끌레오가 이동하는 경로이다. 리볼리 가rue de Rivoli에서 살페트리에la Salpétrière 병원으로 이어지는 그 과정은 도시를 산책하는 한 여성의 이미지를 형상화한다. 파리의 거리를 한가롭게 거니는 끌레오의 이미지는 발터 벤야민이 말한 플라네르flâneur 혹은 플라네즈flâneuse 그 자체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영화가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전반부의 끌레오와 후반부의 끌레오는 그 존재의 성격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영화는 타로카드 점을 보는 곳에서 시작한다. 점쟁이는 타로카드를 통해서 이 영화의 이야기를 미리 암시한다. 이것은 끌레오의 암에 대한 공포를 더욱 강화시킨다. 끌레오의 직업은 가수이다.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그녀의 상황을 영화는 거울을 통해 드러낸다. 계속해서 거울에 비춰지는 끌레오의 모습은 그녀 자신이 타자에 의해 보이는 존재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녀는 불안하다. 표정과 시선도 또한 불안하기 그지없다. 택시를 타고 가다가 그로테스크한 분장을 한 학생들 때문에 크게 놀라기도 한다. 택시를 통해 흘러나오는 뉴스는 알제리의 정치적 불안을 전해준다. 프랑스의 식민지에서 벗어나려는 알제리의 투쟁은 프랑스인들에게는 불안의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이었다. 이것은 마치 월남전에 대한 미국인들의 불안과 비견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식민지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제국주의 국가의 불안이다. 여기서 새삼 환기해야 할 것은, 누벨바그의 영화들은 이 알제리 전쟁에서 시작한다는 것이다. 프랑스인들이 애써 외면하려 했던 그 알제리에 누벨바그 감독들은 그것을 피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아네스 바르다 역시 거기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끌레오는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작곡가와 연습을 한다. 그 작곡가를 연기하는 사람은 바로 음악을 담당한 미셸 르그랑이다. 극도의 불안감을 보이는 끌레오는 악보도 볼 줄 모르는 그녀를 은근히 무시하는 작곡가와 작사가에게 불만을 터뜨린다. 이 때 그녀가 부르는 노래는 ‘Sans Toi'이다. 이 노래는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그 노래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Toutes portes ouvertes 모든 문이 열려 있고
En plein courant d'air 바람이 가득 들어오는데
Je suis une maison vide 나는 빈 집에 있네
Sans toi.... 당신 없이..
Sans toi 당신 없이...
Comme une île deserte 쓸쓸한 사막처럼
Que recouvre la mer 바다로 뒤덮인
Mes plages se dévident 나의 해변은 쓸려가 버리네
Sans toi 당신 없이
Sans toi 당신 없이
Belle en pure perte 쓸모없이 아름답고
Nue au coeur de l'hiver 겨울의 한 복판에 벌거벗은
Je suis un corps avide 나는 갈망하는 몸이라네
Sans toi 당신 없이
Sans toi 당신 없이
Rongée par le cafard 슬픔이 갉아먹고
Morte au cercueil de verre 유리로 된 관에서 죽은
Je me couvre de rides 나는 주름으로 가득하네
Sans toi 당신 없이
Sans toi 당신 없이
Et si tu viens trop tard 그리고 만약 당신이 너무 늦게 온다면
On m'aura mise en terre 나는 땅에 묻히고 말거라네
Seule, laide et livide 외롭게, 추하게 또 창백하게
Sans toi 당신 없이
Sans toi 당신 없이
Sans toi 당신 없이
(이 가사의 번역은 내가 한 것이다. 그러니 좀 어색하더라도 이해해주기 바란다)
이 노래를 끌레오는 울면서 부른다. 그리고 스튜디오 밖으로 나간다. 이 시점이 이 영화를 나눈다. 검은 옷으로 갈아입고 가발을 벗은 끌레오는 다시 거리로 나간다. 이때부터 영화는 끌레오의 시점 쇼트를 보여준다. 이제 그녀는 보이는 여성woman seen이 아니라 보는 여성woman seeing으로 변화한다. 죽음에 대한 공포, 자신을 인형처럼 대하는 주변의 시선에 대한 거부 등의 복잡한 감정이 그녀로 하여금 세상을 새롭게 보게 만든다. 그렇지만 그녀는 한결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파리의 거리를 걷는다. 여전히 불안하기는 하지만, 무언가 벗어던진 기분은 그녀에게 여유를 안겨준 것이다.
끌레오는 도로시란 친구를 찾아간다. 도로시는 조각을 하는 사람들 앞에서 누드 모델을 하고 있다. 이 누드의 의미는 영화를 통해 강조된다. 그것은 부서지기 쉬운 것이지만 또한 순수한 것이기도 하다. 끌레오와 도로시는 <엘머 겐트리>가 상영되고 있는 극장으로 간다. 그곳에서 장-뤽 고다르와 안나 까리나가 나오는 무성단편영화를 본다. 선글라스 때문에 세계를 제대로 못 본다는 이야기를 담은 그 영화는 끌레오의 삶에 어떤 암시를 주는 것 같다. 그 무성단편영화 속에서 장-뤽 고다르는 검은 선글라스를 벗어던진다. 그것 때문에 하얀 세상을 검게 보았기 때문이다. 세상을 다르게 보기 위해서는 우리가 쓰고 있는 색안경을 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의 아집 속에 갇혀 있게 될 뿐이다.
도로시와 헤어진 끌레오는 몽수리Mont-Souri 공원으로 간다. 나는 파리에 갔을 때 이 공원을 꼭 가보리라 마음먹었었다. 왜냐하면 바로 이 영화 <5시에서 7시까지의 끌레오> 때문이었다. 끌레오가 산책을 하고 알제리에서 휴가를 나온 군인 앙뚜완을 만난 그 공원이 바로 몽수리 공원이다. 그 공원은 아주 아름다웠다. 나는 어떤 영화를 온전히 느끼기 위해서는 그 영화가 촬영된 곳을 가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영화의 자리에 가서 다시금 영화를 음미하며 그 영화를 되새겨야 한다. 그래야 조금이나마 그 영화를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알제리에서 휴가를 나온 앙뚜완 역시 죽음의 경계에 있는 사람이다. 끌레오와 앙뚜완 사이의 공통점은 죽음인 것이다. 앙뚜완은 재치 있는 말로 끌레오에게 위안을 준다. 앙뚜완은 자신이 병원에 함께 가겠다고 제안을 한다. 그들은 버스를 타고 병원까지 가면서 인큐베이터에 있는 아이와 장례식에 쓸 화환을 연이어 보게 된다. 삶과 죽음은 그렇게 하나의 공간과 시간 속에 이어지는 사건들이다. 결국 그들은 병원에 가서 의사의 말을 듣는다. 그리고 그 유명한 후진 트래킹 쇼트가 나온다.
죽음과 삶에 대한 통찰
일반적으로 이 영화는 여성영화 혹은 페미니즘 영화로 분류될 수 있다. 그러나 페미니즘 진영에서 이 영화를 전적으로 환영한 것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전투적인 페미니스트들이 보기에 끌레오는 지나치게 순진하게 보이는 가수일 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가 증명하듯이, 삶이란 어떤 이념이나 주장에 의해서만 해석되고 재단될 수만은 없는 것이 아닐까. 그저 작곡가가 주는 노래를 부르고 돈 많은 부자 애인을 기다리던 여자가 갑자기 여성해방을 위한 투사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삶과 자신을 새롭게 볼 수 있게 되는 것 또한 쉽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끌레오는 다른 이들이 보기에 순진하다고 할 수도 있을 죽음에 대한 공포에 시달렸다. 자신의 굴레에서 벗어나 세상을 새롭게 보게 되고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는 것은 그 자체로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페미니즘 영화일 수도 있지만, 삶 그 자체를 다룬 영화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1962년 4월에 개봉했다. 그리고 다음 달 칸영화제에서 상영되었고 이례적으로 9월에 베니스영화제에서도 상영이 되었다. 프랑스 평론가협회가 주는 멜리에스 상을 받기도 했다. 흥행에도 성공해서 98만명이 이 영화를 보았다. 아네스 바르다 감독은 여성으로서 영화를 만든다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영화제작은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어려운 것이 아니다. 어려운 것은 독립적인 영화제작이다.”(이 말은 BFI에서 출판된 스티븐 웅거Steven Ungar의 책 『Cléo de 5 à 7』에서 인용한 것이다. 독립적인 영화제작independent film-making의 원문은 faire du cinéma libre였나 보다. 그러니까 자유롭게 영화를 만든다는 것 정도의 의미이다) 이 말이 아네스 바르다 감독의 영화정신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다.
아네스 바르다 감독
그러나 이후 이 프로젝트는 진행되지 못했다. 마돈나의 삶이 광기의 혼돈 속에 빠져버렸기 때문이었다. 과연 마돈나가 주연을 맡은 리메이크가 완성되었다면 어땠을까? 바르다 감독은 마돈나를 통제할 수 있었을까? 리메이크가 나오지 않은 것이 다행일까? 어쨌든 1928년생인 바르다 감독은 여전히 현역에 있다. 아직 바르다 감독과 함께 동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에 나는 행복감을 느낀다. 그저 오래 오래 그 행복이 지속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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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국의 영화란 참 어렵게 느껴집니다
우린 헐리우드 영화에 너무 익숙해져 있고 그 문법에 익숙해져 타국의 영화들은
재미있어도 재미있게 느껴지지 않는 쉬워도 어렵게 느껴지는...
솔직히 저조차도 영어가 아닌(일어까진 괜찮습니다만...)다른 언어를 들으면
어색하고 뭔가 이상하니까요
하지만 이미지와 느낌 그리고 그 영화의 본질을 볼수있다면 그걸로 충분히
만족할수 있을 것 같습니다
프랑스영화라고 굳이 이브 몽탕,장 가방,장 폴 벨몽도,알랑 들롱만 있는건 아니니까요
어느 나라 언어든 자꾸 들으면 익숙해집니다. 불어도 마ㅏ찬가지구요..
잘 읽었습니다..
이런 류의 영화를 접할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에 뭐라고 말할 건 없지만
인상적인 영화를 만든 감독인가 봅니다...
영화도 인상적이지만 바르다 감독도 아주 매력적인 분입니다. 말로 설명하기는 힘들지만요...
프랑스 영화는 어려워서 내용도 좀 심오하고 그동안 헐리우드의 오락영화에 길들어저서 그런가 봅니다..
이런 영화도 보고 해야하는데 찾아보면 보기도 어렵고...잘읽었습니다..^ ^
잘 지내시죠? 사실 뤽 베송이 시리즈로 제작하고 있는 <택시>도 프랑스 영화입니다. 이 <택시>를 어렵게 생각하는 관객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냥 프랑스 영화도 보시면 됩니다...
좋은 글 정말 잘읽었습니다...
차분히 써주신 글이 너무 좋아서 읽으며 상상의 나래를 펼칠수 있었습니다. ^^
비록 영화에 대해선 문외한이지만...
이글때문에 고정관념이 깨진것같네요..
좋은 영화, 좋은 영화감독님 소개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
혹.. 우리나라에서 상영이 된다면 꼭 소개시켜주세요..
보고싶습니다. ^^
고맙습니다. 일단 이 <끌레오>는 dvd로 출시가 되어 있으니 한번 보시면 좋을 것 같네요. <아무도 모르게> 비디오는 구하기 힘드실거구요....
누벨바그, 아방가르드, 페미니즘...등등 예술영화쪽은 문외한이라
뭐라 끼어들 틈이 없네요. ㅜ.ㅜ
하지만, 프랑스 영화는 내용보다 영상을 좋아합니다.
넘 삼류적 발언일지 몰라도 아름다운 프랑스 여배우들은 몽환적 분위기에
취하게 하거든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ㅎㅎ
프랑스 여배우들 중에 누구를 좋아하시나요? 전 상드린 보네르와 이자벨 위뻬르의 영화라면 다 좋아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예전 동아리 활동때 들었던 얘기들이 조금씩 보이네요,
정말 좋은 글이였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어떤 동아리였나요?
사실 아직까지도 영화는 오락적목적으로 소비를 하고 있어서
이런 영화들에는 흥미가 없었습니다만, 글을 읽으면서 보니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고전 소설들도 처음에는 논술 공부 등과 같은 약간의 의무감으로 시작했다가 어느샌가 지루함보다는 그 속의 즐거움을 더 찾게 된 것 처럼요....물론 지루함이 완전 없어진 건 아닙니다만.^^;
마스터피스에서 제가 모르던 영화들의 걸작을 알게되면서 실제 보지는 않았지만, 그리고 보게 될 지 어떨지도 모르지만 영화라는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입장에서 많은 것을 배우게되어 좋네요. 마치 맨날 판타지 무협을 읽다가 '죄와 벌'을 읽게 된 것 같은 느낌...
영화를 오락적 목적으로 소비를 하는 것은 어쩌면 매우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어떤 직장인이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할리우드 액션영화를 보면서 푼다면, 그것 자체는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 직장인에게 왜 당신은 고다르나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를 보지 않느냐고 말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겠지요. 그런데 우리가 '재미'라는 말을 할 때 그 재미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고다르 영화를 보다보면 어느 순간 고다르 영화가 재미있어질 수도 있습니다. 타르코프스키의 그 지루한 롱테이크에서도 재미를 느끼게 될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것이 의무는 절대로 아니지요. 또 되도록이면 다양한 영화를 보는 것이 좋겠지요. 아무쪼록 이 코너가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앗... 친구가 dvd 빌려줘서 본 영화인데.. 마스터피스 두번째가 제가 본 영화라서 넘 반갑습니다.. 이 코너 정말 기대됩니다.. 다음엔 어떤 영화가 올라올지.. 류상욱님의 글을 좋아하는데 글 잘 읽었습니다. 영화 봤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는군요..
아 dvd로 이 영화를 보셨군요. 그럼 끌레오가 부른 sans toi도 들으신거네요. 노래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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