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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문학의 어정쩡한 각색

윌키 콜린즈는 동시대엔 찰스 디킨스와 맞먹는 문학계의 인기스타였고 지금도 그의 추리소설들은 많이 읽히고 있지만 정작 디킨즈만큼 자주 각색되지는 못했죠. 이해가 가요. 그의 <월장석>이나 <흰옷을 입은 여인>은 흥미진진한 소설이지만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로 각색하기는 어려워요. 화자를 바꾸어가며 법정진술하듯 진상에 도달하는 스타일은 소설로는 매력적이지만 영상 매체로 옮기면 덜 극적으로 보입니다.

팀 파이웰의 이 2시간짜리 드라마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조금 무모한 방식을 택했습니다. 원작을 해체해 다시 조립한 것이죠.

중반까지는 이야기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화가인 월터 하트라이트는 미술선생 직장을 잡아 시골 저택으로 내려가는데 도중에 신비로운 흰옷을 입은 여인을 만나 돕게 되지요. 저택에 도착한 그는 학생인 마리안과 로라 자매를 만나고 로라와 사랑에 빠집니다. 로라는 이미 퍼시벌 글라이드라는 한참 연상의 귀족과 결혼을 약속한 몸. 하지만 그 퍼시벌 글라이드라는 작자에겐 뭔가 수상쩍은 데가 있고 그가 앞에 만난 흰옷을 입은 여인도 그 음모의 희생자인 것처럼 보입니다. 여기까지는 원작을 거의 그대로 따라가고 있죠. 다른 점이 있다면 원작에서 마리안의 동복동생이었던 로라가 드라마에서는 친동생이 되었다는 거죠. 그 때문에 마리안의 성이 갑자기 바뀌었는데, 이럴 필요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전 친동생이 아니기 때문에 로라에 대한 마리안의 사랑이 더 절실하다고 느꼈거든요. 대부분 그렇게 생각할 걸요.

하지만 중반부터 이야기가 바뀝니다. 더 센세이셔널해졌다고 할까요. 하트라이트가 저택에서 떠나는 이유부터 그렇습니다. 원작에서는 신사답게 조용히 퇴장했지만 드라마에서는 하녀를 강간했다는 누명을 뒤집어쓰고 쫓겨나지요! 원작에서 악당들은 사기꾼들이지만 드라마에서는 살인자입니다. 원작에서 병사한 캐릭터는 드라마에선 저택 옥상에서 떨어져 죽지요. 원작에서는 비교적 빨리 밝혀지는 진실의 발견은 후반까지 연기되고, 악당의 처벌도 훨씬 적극적이 됩니다.

이해가 가긴 해요. 이렇게 고치면 드라마가 더 영상매체에 어울릴 것이라고 믿을 수도 있지요. 어차피 문학작품 각색에 어떤 규칙이나 원칙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문제는 최종 결과가 그렇게 좋지 못하다는 데에 있습니다. 원작 팬들은 사이먼 캘로우와 같은 좋은 배우를 캐스팅했으면서도 악당 포스코 백작을 낭비해버린 것에 대해 불평할 거예요. 이런 식으로 각색하다보니 남자주인공 월터 하트라이트의 위치가 더 좁아졌고요. 재조립한 스토리 라인은 여전히 이음새가 헐겁습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각본이 아니라 이 이야기를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는 <TV 문학관>식 스타일이에요. 전혀 자극적인 스릴러물에 어울리지 않는 어법으로 현대식 스릴러를 하려고 하니 스타일과 내용이 충돌하는 거죠. 긴 이야기를 2시간 안에 묶어내려고 하니 이야기가 너무 성급하고요.

제 대안은 어떠냐고요? 전 여전히 스토리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스타일의 대안을 찾는 것이 더 좋은 해결책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앤드루 데이비스가 <블리크 하우스>에서 했던 것처럼 짧은 호흡의 연속극으로 만들어도 좋았을 것 같아요. 지금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라서요.

캐스팅은 만족스러운 편입니다. 저스틴 워델과 사이먼 캘로우는 그냥 모범적이죠. 타라 피츠제럴드가 마리안 역을 맡기엔 너무 예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전 꼭 마리안이 못 생겨야 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답니다. 원작에서도 마리안이 못 생겼다고 생각한 사람은 월터뿐이고 포스코 백작 눈에는 절세 미인으로 보였을 걸요. 단지 제임스 윌비는 퍼시벌 글라이드를 연기하기엔 너무 젊어보이는군요.

기타등등

소문에 따르면 82년에 나온 5부작 미니시리즈가 원작에 더 충실하다더군요. 이언 리처드슨은 이 작품에서도 프레더릭 페얼리 역을 맡은 모양입니다.


Posted by DJUNA

익스트림무비 추천 도서

세 번의 영화, 다섯 번의 드라마로 만들어져 기록적인 흥행을 올린 일본 추리소설 사상 불후의 걸작. 명탐정 긴다이치 코스케의 대활약을 그린 요코미조 세이시의 <이누가미 일족>은 막대한 유산 상속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연쇄 살인의 음모를 박진감 넘치게 그린 작품으로, 추리 소설 팬이라면 필견의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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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고전은 원작에 얼마나 충실히 또는 새롭게인데..
    문젠..그럴려면 원작을 제대로 이해했느냐가 중요하죠.
    흠...하얀옷을 입은 여인..제목은 동양적인데요^^

  2. 바보초자아 2008/10/01 23:54

    진짜 고전을 영화화한다는 것 자체가 참 어려운 것 같아요.
    당시의 글들은 철저히 문학적 즐거움 위주로 쓰인 것들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