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그 오브 워 - The Fog of War: Eleven Lessons from the Life of Robert S. McNamara (2003)
리뷰/다큐멘터리 2008/09/25 11:52시대를 움직인 명사가 들려주는 교훈
원래 에롤 모리스는 케네디와 존슨 시절 국무장관이었던 로버트 S. 맥나마라를 PBS 시리즈 <퍼스트 퍼슨>의 에피소드를 찍기 위해 만났습니다. 하지만 일단 맥나마라를 그의 발명품 인터로트론 앞에 세우고 나니 인터뷰 시간이 엄청 길어지기 시작합니다. 20시간이 넘는 인터뷰 양을 검토하던 모리스는 이것을 극장용 장편영화로 확대할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그 결과가 바로 이 작품 <포그 오브 워>이고, 모리스는 이 영화로 첫 번째 아카데미상을 수상하게 되지요.
영화의 기본 설정은 앞에 나왔던 <퍼스트 퍼슨> 시리즈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인터뷰 대상을 인터로트론 앞에 앉혀 놓고 이야기를 하게 유도하는 것이죠. 가끔 카메라 뒤에서 에롤 모리스가 질문을 던지는 걸 들을 수 있긴 합니다만, 우리가 보고 들을 수 있는 건 맥나마라 자신의 목소리입니다. 영화를 보다보면 관객들은 이 맥나마라라는 남자를 굉장히 친근하게 받아들이는데, 그건 인터로트론의 효과입니다. 이 기계는 텔레프롬프터와 비슷합니다. 단지 원고대신 에롤 모리스의 얼굴을 투영하는 것이죠. 그 결과 인터뷰 대상자가 관객들의 눈을 보고 직접 대화를 하는 효과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맥나마라가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은 건 그가 85년의 세월을 살면서 배운 인생의 교훈입니다. 그리고 자연인 맥나마라는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입니다. 그는 80대라는 나이가 믿겨지지 않을 정도 지적이고 명쾌하고 에너지가 넘치며 기억력도 뚜렷합니다. 대부분 노인네들이 그러는 것처럼 젊은 시절에 대해 감상적이 되지도 않고 배를 산으로 몰지도 않죠. 그가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은 11가지의 교훈 역시 새겨들을 만합니다. 아마 맥나마라와 모리스는 이라크 전쟁에 휘말려 있는 부시 행정부에게 그 교훈을 들려주고 싶었는지도 모르죠.
당연하지만, 맥나마라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11개의 인생교훈은 그의 인생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포드사에서 근무하던 시절, 쿠바 미사일 사태 그리고 베트남 전. 성공했건, 실패했건, 현명한 사람에게 그 경험의 가치는 대단할 수밖에 없겠죠. 교훈의 가치도 대단하겠지만 재미도 있습니다. 그는 이야기 보따리를 한아름 안고 있는 할아버지와 같습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재미있는 건 우린 그가 하는 이야기를 전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미국 역사상 가장 끔찍한 실수로 기록된 베트남 전을 일으킨 사람들 중 한 명입니다. 결국 영화 속에 그가 하는 이야기 대부분은 그의 변명일 수밖에 없어요. 이 영화가 논쟁적인 것도 그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그의 말을 얼마나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가 이야기하는 일화들이 과연 얼마나 사실과 일치할까요? 그가 제시한 '교훈들'은 결국 그가 저지른 실수를 정당화하기 위해 불려온 것이 아닐까요?
에롤 모리스는 여기에 대해 굳이 설명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는 관객들과 비평가들이 맥나마라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압니다. 대신 그는 과거를 회상하는 맥나마라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잡습니다. 관객들이 볼 수 있는 건 주름진 영감님의 얼굴뿐이지만 그 안에서 펼쳐지는 광경은 상당합니다. 아마 인간 얼굴을 읽을 수 있는 보다 과학적인 장치가 개발되면 우린 이를 통해 맥나마라의 또다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식의 모호함은 영화의 내용이나 주제와도 어울립니다. 어떻게보면 맥나마라가 직접 말하는 '사실'보다 더 어울리며, 그 자체가 독립된 드라마를 형성하지요. 하긴 우리가 이처럼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끔찍한 실수를 저지르며 사는 것도 인간이라는 동물이 모호하기 짝이 없는 동물이기 때문일 겁니다.
기타등등
영감님의 교훈을 들으세요. 1. Empathize with your enemy. - 2. Rationality will not save us. - 3. There's something beyond one's self. - 4. Maximize efficiency. - 5. Proportionality should be a guideline in war. - 6. Get the data. - 7. Belief and seeing are both often wrong. - 8. Be prepared to reexamine your reasoning. - 9. In order to do good, you may have to engage in evil. - 10. Never say never. - 11. You can't change human n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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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안개라는 제목에서부터 어떤 가치판단의 모호성을 이야기하는 것 같네요.
개인적으로 어떤 가치관이나 의견을 주장하는 다큐멘터리보다는
관객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관조적인 다큐멘터리가 좋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