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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몸 (1)



비디오드롬에게는 죽음을, 새 육신이여, 영원하라!
- 영화 <비디오드롬> 중에서

남편은 왜소했다.

가족성 왜소증. 그게 남편이 왜소한 이유였다. 어쩌면 그 왜소증이 내 모성본능을 자극해 나를 그에게 끌어당겼는지도 모를 일이다. 천성인지 모르지만, 어릴 때부터 나는 작은 것에 관심이 갔다. 작은 강아지, 작은 인형, 작은 선물, 작은 액세서리……. 대학 시절 동기였던 남편 역시 무척이나 작은 체구였다. 수강신청을 하던 날은 아예 남편의 존재조차 몰랐고,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보게 된 남편의 체구는 최소한 170센티미터는 되었던 다른 남자 동기들에 비해 턱없이 작았다. 행여 대학에 입학하는 친형에게 어떤 일이 생겨 초등학교에 다니는 남동생이 대신 오리엔테이션에 참여한 건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였다. 남편의 키는 148센티미터에 불과했다. 게다가 40킬로그램을 갓 넘겼을 법한 체구였다.

헐레벌떡 달려온 그가 우리 과 버스에 올랐을 때 나를 비롯한 동기들 혹은 과 선배들의 시선이 일제히 남편에게로 쏠렸다. 호기심과 황당함 그리고 동정심. 그가 빈자리에 앉을 때까지 그런 심사가 어린 시선들이 줄곧 그를 좇았다. 그네들 중 남편에게서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는 사람은 장담하건대 단 한 명도 없을 터였다. 나를 제외하고는.

“저기…… 잘 부탁합니다.”

오리엔테이션 참가자가 모두 빙 둘러앉은 자리에서 자기소개를 돌아가며 하던 시간에 남편은 자기 차례가 오자, 자리에서 쭈뼛쭈뼛 일어나 떨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곤 쏙 들어가 앉았다. 자기 이름조차 말하지 못했다. 목소리조차 초등학생 계집애처럼 가늘었다. 그 변성도 안 된 듯한 목소리를 듣고 어색해진 분위기를 풀고자 한 선배가 호기 좋게 ‘건배!’를 외치고 모두들 술잔을 들이켰지만, 나에게는 어쩐지 그 광경이 더 어색하게 느껴졌다.

학기가 시작되었지만, 남편은 언제나 혼자였다.

형식적으로 술자리를 권하거나, 말을 거는 동기들은 있었지만, 진심으로 남편을 가까이 하려는 동기들은 없었다. 특히 대학에 와서 누구나 적어도 한두 번은 하게 되는 미팅이나 소개팅에서 남편은 언제나 뒷전이었다. 남편은 늘 인문대 건물 뒤의 잔디밭 벤치에 앉아 홀로 책을 읽고는 했는데, 그 뒷모습은 무척이나 쓸쓸해 보였다. 한동안 바라보다 보면 가슴 한편에 잔물결이 일곤 했다. 어루만져주고, 보듬어주고 싶었다. 햇살이 눈부시던 오후, 나는 벤치에 앉아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을 읽고 있던 그에게 캔커피를 내밀었고, 그런 나에게 남편은 말했다.

“동정심으로 이러는 거면…… 이러지 마.”

그는 그 동안 자기를 따라다니는 나의 시선을 내내 느껴왔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내민 캔커피를 거두지 않았다. 결국 그는 덤덤한 얼굴로 캔커피를 받았다. 하지만 정작 캔커피를 받는 손은 떨리고 있었다. 작은 손이었다. 나는 그 손을 감싸 쥐어주고 싶었다.

사람들의 비뚤어진 시선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다만, 그로 인해 그가 상처받는 게 안쓰러울 뿐이었다. 우리는 어디를 가나 커플이 아닌, 누나와 어린 남동생으로 오인 받곤 했고, 더러 눈이 어두운 호떡장사 노파에게는 모자간으로 오인되기까지 했다. 그와 함께 길을 걷는 나에게 남자들이 접근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들은 전혀 그를 의식하지 않았다. 물론 내 쪽에서 그들을 무시하긴 했지만, 그럴 때마다 그늘지는 그의 얼굴을 볼 때마다 가슴이 저려왔다.

그와 사귀던 대학 시절, 이런 일이 있었다.

그와 함께 밤거리를 걷고 있을 때, 껄렁한 사내 녀석들 서넛이 우리 앞을 가로막았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수백 번은 등장했음직한 장면이었다.

“어이, 아가씨, 쌈박한데? 늦었는데 동생은 집에 보내구 우리랑 줌 놀래?”

서너 명의 날라리 사내 녀석들이었다. 여드름 난 얼굴과 어설프게 스프레이로 세운 머리칼. 기껏해야 고1이나 고2로밖에 안 보이는 녀석들은 동네 양아치들을 흉내 내고 있었다. 제법 술 냄새까지 솔솔 풍겨왔다. 그는 당황해하는 얼굴이었지만, 곧 얼굴을 굳히고 짐짓 엄하게 소리쳤다.

“야 이 녀석들아, 어따 대구 반말이야?” 

그러나 가냘픈 그의 음성에 녀석들은 코웃음도 치지 않았다.

“좆만아, 너 어디 초등학교 다니냐. 누나 형들 노는데 줌 꺼져줄래? 확 대갈빡을 뽀사 뻐리기 전에…….”

주먹까지 치켜들고 을러대는 녀석들의 서슬에 그는 주춤 물러섰다. 그들 중 한 녀석은 호주머니에서 주머니칼을 꺼내들고는 그의 눈앞에 흔들어대기까지 했다.

“아가, 이걸로 니 창자 꺼내서 줄넘기를 해주리?”
“야야, 너무 겁주지 마라. 밤에 자다 이불에 오줌 깔길라…….”

낄낄대는 녀석들의 당당함에 비해 그는 잔뜩 얼어붙은 얼굴이었다. 참다못한 내가 나섰다
.
“니네 이 동네서 줌 놀면 덕근이 오빠 알겠다? 용문파 넘버 투 덕근이 오빠.”

역시 애송이들이었다. 예상치 못한 내 으름장에 녀석들은 적잖이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아, 알지. 덕근이 형. 니들두 알지?”
“어? 어…….”

우두머리인 듯한 녀석이 무리를 돌아보며 묻자 다들 동조했지만, 녀석들이 알 리가 없었다. ‘용문파’는 당시 그 지역을 주름잡던 실제 폭력조직이었지만, ‘덕근’이란 이름은 갓 돌 지난 내 조카 이름이라는 것을.

“덕근이 오빠가 우리 친오빤데, 지금까지 나한테 찝쩍대는 새끼들 치구 그 오빠한테 씹창 안 난 애들 없거든?”

고등학교 때 소위 ‘놀던’ 친구들이 쓰던 어휘들을 조합해 허풍을 치기 시작하니, 의외로 술술 흘러나왔다.

“어때, 니들도 발리고 싶으면 말해. 여기서 불르면 1분 안에 튀어오니까…….”
“미친 년, 구라 까구 있네.”

한 녀석이 칼을 내 얼굴에 들이대고 소리쳤지만, 당당한 내 태도에 믿어야할지 믿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는 눈빛이었다. 나는 부디 녀석들이 떨리고 있는 내 종아리만 못 보고 넘어가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이건 안 치워? 셋 셀 때까지 안 치우면 내 얼굴엔 흠집 가구 니들은 오늘 좆 되는 거야.”

내가 말해놓고도 낯이 뜨거워질 만큼 유치한 대사였지만, 싸늘한 내 표정에 녀석들은 기가 질린 모양이었다.

“야, 가자. 이 동네에 냄비가 저년밖에 없냐?”

머뭇거리던 녀석들이 골목 모퉁이 너머로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참았던 한숨을 토해냈다.

“별것두 아닌 것들이 까불구 있어. 그치?”

나는 애써 명랑하게 말을 건넸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자존심이 상할 만도 했다.

“미안해.”

내가 뭐라 위로하기도 전에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총총히 사라져갔다. 그리고 사흘 후 전화로 이별을 고해왔다. 험한 세상에서 나를 지켜줄 자신이 없다는 고백이었다.

“그렇게 자신이 없어? 나는 나 스스로 지킬 수 있어. 내가 너 그렇다는 거 모르구 만났을 거 같애? 내가 지킬게. 내가 나 지키구 너두 지키면 되잖아?”

말할 수 없이 자존심이 상한 모양이었지만, 며칠에 걸쳐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그는 마지못해 이별선언을 철회했다. 사실 나와 헤어지면 아쉬운 건 그이긴 했다.

그 후로 많은 일들을 나 스스로 감당해야 했다.

그와의 교제 자체를 결사반대하던 내 부모를 설득시킨 것도 나였고, 일주일을 단식한 끝에 ‘결혼을 하든 나가 죽든 니 맘대로’ 하라는 허락 아닌 결혼 허락을 받아낸 것도 역시 나였다.

대학 졸업 후 그는 내 아버지의 연줄을 통해 보수가 괜찮은 중소기업 업무과에 입사했고, 내가 졸업 후 3년간 다니던 직장을 건강 문제로 그만둔 후부터 그는 여느 남자들과 다름없이 가장 노릇을 하기 시작했다.

남편은 좋은 남자였다.

체구가 왜소하기는 했지만, 얼굴은 잘 생긴 편이었다. 왜소한 체구로 인한 것인지 성격이 소심하기는 했지만 심성은 고왔고, 일상생활에서나 잠자리에서도 나를 위한 배려를 잊지 않았다. 결혼 후 4년이 지나자 서로에 대한 열정은 식었지만, 그 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았는 데도 나에게 짜증 한번 내는 일이 없었고, 나를 대하는 태도도 늘 한결 같았다. 퇴근길에 이따금 꽃다발을 사와 내게 안겨 주는 습관도 변함이 없었다.

물론 문제는 있었다. 속에 담아둔 이야기를 잘 털어놓지 않는 성격이다 보니, 더러 나를 답답하게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차곡차곡 쌓여 있던 감정의 앙금들을 술의 힘을 빌어서야 터뜨리는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런 때는 아주 드물었기에 그다지 문제랄 것도 없었다. 가끔 사소한 일에 필요이상으로 집착을 해서 나를 피곤하게 하는 때도 있긴 했지만 그 역시 대단한 건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생각난다.

우리가 살림을 시작했던 임대 아파트에 쥐가 나와 나를 기겁하게 한 적이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나는 설치류라면 질색을 했는데, 그런 나 때문에 남편은 어디에 숨어 있는지도 모르는 그 쥐를 잡기 위해 일주일간 집요한 사냥을 벌여야 했다. 쥐덫으로 시작한 사냥은 쥐약으로 넘어갔고, 끈끈이, 고양이 등등 가용한 모든 수단을 거쳐 망치로 끝을 맺었다. 그렇게 애를 써도 잡히지 않던 쥐는 남편이 벽에 행거를 걸기 위해 의자 위에 올라가 안간힘을 쓰며 못을 박던 저녁, 장롱 틈에서 포르르 튀어 나왔다.

“쥐!”

라고 내가 반사적으로 소리쳤을 때 남편이 쥐를 내려다보았고 그의 눈에서 빛이 났다. 빛이 났던 남편의 눈빛이 면도날처럼 날카로워지는가 싶더니 이내 남편이 의자에서 휙 뛰어내리며 먹이를 낚아채는 독수리의 부리처럼 쥐에게 망치를 내리꽂았다.

“찌이이익!”

쥐는 귀청을 찢을 듯한 소리를 내며 버둥거렸다. 남편의 망치질은 살짝 빗나가 있었다. 쥐는 뒷다리 부근이 망치에 완전히 으깨어져 온몸을 경련하고 있었다. 이를 악문 남편이 그 쥐에게 망치를 내리꽂았다. 한 번. 두 번. 세 번.

눈을 가린 내 손 틈으로 남편이 피가 뚝뚝 듣는 망치를 쥐에게서 거두어 내는 장면이 들어왔을 때 나는 비명을 질렀다.

“놀랬어? 미안해. 이 녀석이 너 놀라게 한 게 괘씸해서 그런 거야.”

남편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지만, 나는 그게 더 소름끼쳤다.

“아우, 몰라! 빨리 그거나 치워!”

그 날 밤 나는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었고, 어쩌다 잠이 들어도 경기를 일으키며 깨기를 반복했다. 남편은 깊이 잠들어 있었지만 그 날만큼은 그가 무섭고 끔찍하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쉬 잠들 수 없었다. 그게 처음으로 본 남편의 어두운 일면이었다. 다행스럽게도 그런 일은 한동안 다시 일어나지 않았고 나는 그 일을 잊고 지냈다.

남편의 어두운 일면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벚꽃이 지던 작년 늦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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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의 공포문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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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이자정)


 

Posted by Jong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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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박노협 2008/09/21 20:05

    구토에 이어 몸....잘 보았습니다..다음편도 기대합니다..^ ^

  2. 비누향기폴폴 2008/09/21 22:03

    드디어 마지막 하이라이트인 "몸"인가요?

  3. 이번에는 어떤 공포를 줄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