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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귀사리
제2장 액막이
제3장 뺑소니 (1)
제3장 뺑소니 (2)
제3장 뺑소니 (3)
제3장 뺑소니 (4)
제3장 뺑소니 (5)
제3장 뺑소니 (6)
제3장 뺑소니
하지만 인하는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고 앞만 쳐다보고 있었다. 언뜻 본 그녀의 옆얼굴은 마치 인형처럼 차가워 보였다. 공표는 인하의 화가 아직도 안 풀린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공표의 마음을 읽은 것처럼 인하가 입을 열었다.
“아까 버스 안에서 화낸 것 미안해.”
예상치 못한 말에 공표는 허겁지겁 변명을 했다.
“미안하긴. 니 말대로 내가 음흉한 놈이고 나쁜 놈이지. 사실 남자들은…….”
“그게 아니고…….”
공표는 얼른 입을 다물었다. 인하의 목소리가 울먹이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너 때문이 아니라 예전의 안 좋은 기억이 떠올라서 괜히 너한테 심통 부렸던 거야.”
“안 좋은 기억?”
“실은 두 달 전에 여기서 사촌동생이 죽었거든.”
인하가 뺨 위 눈물을 손등으로 훔쳤다. 그제야 공표도 고개를 들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다니는 차들도 많지 않고 주변에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는 을씨년스러운 거리였다.
“이모 아들이었는데 교통사고였어. 겨우 일곱 살밖에 되지 않았고, 얼마나 귀엽고 날 잘 따랐는지 몰라.”
인하의 마지막 말은 흐느낌에 가까웠다. 공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인하가 다시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렸다.
“실은 찾고 싶다는 사람이 바로 걔야. 이름이 성훈이거든?”
인하가 눈물이 그렁거리는 눈으로 공표를 쳐다봤다. 어느 책에선가 여자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눈물이란 말을 본 적이 있었는데 공표는 이제야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 그녀가 죽으라면 당장 죽는시늉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성훈이는 죽었다며? 죽은 애를 어떻게 찾지?”
“그래. 죽었어. 그러니까 너한테 부탁하는 거야. 넌 죽은 사람과 연결이 되잖아.”
“그건 네가 잘못 안 거야. 죽은 사람이라고 모두 연결이 되는 건 아냐. 게다가 두 달 전에 죽었다고 그랬지? 그랬으면 사십구재도 지났을 테고. 지금쯤 성훈이의 영혼은 이승에 없고 아마도 좋은 곳으로 갔을 거야.”
“성훈이 죽고 나서 우리 이모네는 말 그대로 엉망이 돼버렸어. 성훈이가 외동아들이었기 때문에 이모와 이모부 두 분 다 충격이 컸지. 덕분에 이모부는 회사도 그만두고 이모는 우울증으로 자살시도까지 했어. 지금은 병원 다니면서 치료를 받고 있지만 언제 또 자살시도를 할지 몰라.”
“이해해. 만약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우리 아빠도 그럴 테니까. 하지만 그건 누구도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아니, 네가 도와줄 수 있어!”
인하가 워낙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해 공표는 오히려 주눅이 들었다.
“실은 이모가 우울증에 걸린 건 매일 밤 꿈에 성훈이가 나타나기 때문이야.”
“매일 밤 꿈에 나타난다고?”
공표는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어쩌다 하루도 아니고 매일 밤 꿈에 죽은 사람이 나타난다는 건 죽은 이의 영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긴 징조라고 선일이 말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응. 하루도 빼지 않고 매일 밤 나타난대. 언제나 꿈의 시작은 이모가 집을 나서면서부터 시작된대. 이모는 그게 꿈이라는 걸 알면서도 스스로를 통제할 수가 없어서 성훈이가 죽은 횡단보도로 달려간대. 그럼 성훈이가 횡단보도 한가운데 서서 이모를 기다리고 있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슬픈 표정으로 그저 바라만 보고 있대. 그런데 이상한 건 이모는 횡단보도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는 거야. 덕분에 이모는 꿈을 꾸는 내내 횡단보도 밖에서 성훈의 이름만 부르며 대성통곡을 하다가 잠에서 깬다는 거야. 생각해봐. 매일 밤 그런 꿈을 꾼다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겠어? 이모가 자살을 기도했던 곳도 바로 이곳이야. 갑자기 도로로 뛰어들었는데 마침 운전자가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핸들을 꺾는 바람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지. 이모는 아직도 성훈이가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 죽으면 성훈이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 공표야, 부탁이야. 우리 이모를 도와줘!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나도 모르겠어. 하지만 너라면 왠지 우리 이모를 도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리고 성훈이의 영혼도 편히 잠들었는지 알아봐주고.”
슬퍼하는 인하의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가슴이 저릿해졌다. 공표는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 싶다는 비장한 심정으로 스산한 바람이 부는 횡단보도로 눈길을 돌렸다. 차도 많이 없고 사람도 없는 황량한 도로 위로 차들이 엄청난 속도로 질주해 지나갔다.
하지만 공표는 죽은 성훈의 영을 볼 수 없었다. 주술을 수련하지 않고 선천적인 초능력만 가진 공표는 묘화처럼 이승을 오래 떠돌아 귀기가 강한 영만 볼 수 있는 것이다. 성훈의 영을 보려면 선일이나 묘화를 불러야 했다.
공표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곳에 영이 있는지 없는지를 감지하는 정도였다. 공표는 그 자리에서 수인을 맺고 눈을 감았다. 인하는 신기하고 긴장된 표정으로 그 모습을 지켜봤다. 공표는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해 주변을 투시했다. 다른 차원의 공간에 존재하는 영혼을 투시로 보는 것이다. 흐릿하게 영의 기운이 감지됐다. 횡단보도 한가운데 흐릿한 기의 덩어리가 보였다. 하지만 그것이 성훈인지 다른 영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이 정도의 약한 기운이라면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영이란 건 확신할 수 있었다.
인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뭐가 있어?”
공표는 어느 정도의 심증을 가지고 눈을 떴다. 만약 성훈이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앞으로도 계속 저기 횡단보도에 머물러 있다면 지박령(地縛靈)이 되고 말 것이다. 사고가 나서 죽은 영혼이 사고 장소를 떠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오랫동안 맴돌면 지박령이 된다. 지박령은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악귀다.
“확실치는 않지만 저기 횡단보도 한가운데 영혼이 하나 있어.”
인하가 놀란 눈으로 신음을 흘렸다. 인하는 벌써 목소리가 잠겨서 말했다.
“그럼 우리 성훈이가 지금 저기 있다는 거야?”
“아니, 그건 몰라. 성훈일 수도 있고 다른 영일 수도 있지. 그걸 알아보려고 저번에 내가 얘기한 묘화를 불렀어. 영들끼리는 금방 알아보거든. 일단 너희 이모도 이곳으로 오라고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만약 성훈이의 영이라면 너희 이모와 만나게 해줘야 해. 저렇게 사고 난 장소를 떠나지 못하고 계속 머물게 되면 지박령이라고 하는 악귀로 변하게 돼.”
“악귀라고?”
“아직은 아냐. 악귀로 변했다면 내가 영을 볼 수 있었을 거야. 보통 어린 영혼은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죽은 장소에 계속 머물러 음기가 쌓여 지박령이 돼. 그러다 자칫 악령에게 발견되면 진짜 사악한 악귀가 되기도 하고. 그 전에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려줘서 이곳을 떠나도록 해야 해. 성훈이의 업장을 풀어주고 저 자리를 떠나도록 할 사람은 너네 이모밖에 없어.”
인하가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당장 이모를 이리 나오라고 할까? 지금 집에 있을 텐데. 저기 위에 구름다리 보이지? 집이 그 구름다리 바로 앞 아파트단지 안에 있거든.”
공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인하가 전화하는 동안 공표는 텔레파시로 묘화를 불렀다. 인하가 전화를 끊고 말했다.
“집에 있는 줄 알았는데 다른 곳에 있나봐. 하지만 지금 오겠대. 그래도 한 30분은 걸릴 것 같아. 그동안 우린 저기 들어가서 기다릴까?”
인하가 가리킨 곳은 도로변에 붙은 카페였다. 카페 입구에서 인하가 공표의 아래위를 훑어보며 말했다.
“난 괜찮을 것 같은데 넌 고등학생이라고 내쫓으면 어떡하지?”
“뭐 어때? 나쁜 짓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우유만 마실 건데.”
인하가 안으로 들어서며 키득 웃고는 말했다.
“너 정말 우유 마실 거야?”
“넌 뭐 마실 건데?”
“난 모카라떼.”
공표도 서둘러 말했다.
“그럼 나도 그거…… 마실래.”
사실 공표는 카페가 처음이었다. 함께 올 사람도 없었고 그를 데려올 사람도 없었다. 둘은 나란히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공표가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이모 나오시라고 해놓고 성훈이 영이 아니라서 실망시켜드리면 어떡하지?”
“설령 성훈이의 영혼이 여기 없다고 해도 이모는 널 원망하지 않을 거야. 오히려 네가 어떤 얘기라도 해주면 이모에겐 그만큼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사실 내 마음 같아선 거짓말이라도 이모에게 성훈이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는 말을 네가 해주었으면 좋겠어.”
“노력해볼게. 그런 거짓말을 할 수는 없겠지만 만약 성훈이의 영을 못 만난다 해도 내가 잘 아는 법사님에게 부탁하면 이모에게 도움을 주실 거야. 혹시 귀신전이라는 소설 알아?”
“귀신전? 알지, 그 책! 너무너무 재미있게 읽고 있는데?”
“내가 아는 그분이 그 책에 나오는 장선일 법사님이거든. 그분은 가위에 눌리거나 악몽에 시달리는 사람을 영능력으로 고칠 수 있으셔.”
인하가 놀란 표정으로 소리를 높였다.
“정말이야? 당연하지, 그분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거야! 근데 대체 니가 어떻게 장선일 법사님을 알아? 나 완전 그 소설 팬인데. 특히 거기 나오는 ‘홍’이란 아이 있잖아. 그 애 너무 좋아. 나이도 우리랑 같고 너무 멋있는 것 같아. 너 혹시 그 애도 알아?”
“알긴 아는데 친하지는 않아.”
거짓말을 하는데 아무리 태연하려 해도 얼굴이 자꾸만 붉어졌다. 학교에 소문이 나면 곤란한 점도 있지만 아빠가 퇴마를 하고 다니는 줄 알면 정말 큰일 나기 때문에 수정에게 일부러 부탁을 해 자신의 이름을 ‘홍’이라는 가명으로 써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인하가 흥분해서 말했다.
“홍이라는 애 잘생겼어? 나 그 애 딱 한 번만 만나보고 싶어. 너무 근사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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