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원혼이 어떻게 서양에 정착했나
호러 영화의 장르적 특성이 무엇인지 탐구해보는 작업은 잠시 미루기로 하자. 대신 이번에는 비교적 최근의 영화를 다룬 짧은 논문을 검토해보려고 한다. 오자와 에이미小沢英実라는 일본 학자가 쓴 "육체성과 공간성을 리메이크하기: 일본 호러 영화의 미국적 각색Remaking Corporeality and Spatiality: U.S. Adaptations of Japanese Horror Films"라는 논문이다. 제목이 제대로 번역된 것인지 잘 모르겠다. 언제나 그렇지만 외국어를 번역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학자는 동경대 소속인 것 같은데 교수인지 연구원인지는 모르겠다. 이 글은 어떤 컨퍼런스에서 발표된 것 같은데 그 컨퍼런스 제목도 모른다. 논문을 카피할 때 제대로 조사를 하지 않아서 그렇다. 이 점은 원저자와 독자들에게 미안하게 생각한다.
이 글은 일본 호러 영화를 할리우드에서 각색하는 현상을 다루고 있다. 그 사례는 <링>이다. 서론에서는 대부분 호러 영화를 다룬 논문에서 나오는 말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호러 영화가 그 사회의 불안과 공포를 담아낸다는 것이다. 이 말은 이제 상식적인 것이 되었다. 미국 사회는 특히 국민들을 불안에 떨게 하는 정책을 사용하는 나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은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를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이다. 있지도 않은 테러의 위협을 과장해서 항상 국민들을 불안에 빠뜨리는 것이 부시 행정부의 전략이다. 이것도 이제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다. 다만 미국인들만 모르는 것 같다. 어쨌든 오자와 에이미라는 학자는 오리지널 <링Ringu>와 리메이크 <링The Ring> 사이의 차이가 무엇인지 밝히려 한다. 이제부터 이 두 영화의 표기는 영어로 할 생각이다. 그래야 구별이 더 쉬울 것 같기 때문이다.
할리우드 호러 영화는 1990년대에 교착상태에 빠진다. 오죽하면 이전의 호러 영화들을 자기-패러디하는 <스크림>이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겠는가. 모든 호러 영화의 장르적 컨벤션은 클리쉐가 되어 버렸다. 이런 상황을 빠져나오는 할리우드의 전략은 리메이크였다. 그 리메이크의 대상은 일본 호러 영화였고, 일본 호러 영화는 피가 낭자한 폭력보다는 모호함과 함축적 의미 그리고 침묵으로 관객들에게 공포감을 주려고 한다는 인상을 주었다. <Ringu>와 <The Ring> 모두 심리적인 측면에서 관객들에게 다가서려고 했다. 또한 보이는 것things being seen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things being unseen을 통해 공포의 분위기를 만들려고 한다. 그래서 미국에서 <The Ring>과 <그루지The Grudge>의 등급은 PG-13이었다. 2003년에 만들어진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과 2005년 작 <랜드 오브 데드>가 R등급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 차이를 알 수 있다.
<Ringu>(1998) <The Ring>(2002)
또한 사다코/사마라를 묘사하는 데 있어서 이 두 영화는 차이를 보인다. 사다코는 18세 정도는 되어 보이는 비교적 성숙한 여성이다. 대신 사마라는 더 어려 보인다. 이 두 소녀는 모두 검은 긴 머리를 가지고 있는, 원한에 찬 복수의 화신이다. 그런데 사마라의 얼굴은 관객에게 온전히 보인다. 하지만 사다코의 얼굴을 관객들은 볼 수 없다. 긴 머리칼이 얼굴을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오직 그녀의 눈만이 극한의 공포감을 조성하는 장면을 구성한다. 이것이 얼굴에 대한 동/서양의 인식의 차이를 드러낸다. 여기서 이 논문의 저자인 오자와 에이미는 레비나스를 인용한다. 레비나스의 '얼굴성'에 대한 설명인데 얼굴이 한 사람의 정체성에 대한 한계 혹은 서술이고 타자에 대한 구체적인 개입이라는 것인데 이런 짧은 인용만 가지고는 그 의미를 잘 파악하긴 힘들다. 따로 공부를 하는 수밖에 없다. 어쨌든 사다코와 같이 얼굴 없는 귀신은 산 자를 공격하기 위해 다른 세상에서 온 존재이다. 그 존재는 이성적인 인식체계로는 설명하기 힘들다. 대신 얼굴을 가진 귀신은 여전히 이성의 체계 안에 머물러 있다.
텔레비전 모니터에서 사다코와 사마라가 기어 나올 때, 희생자 앞에 선 사다코와 사마라를 향해 카메라는 빠른 속도로 다가선다. 사다코의 얼굴은 눈 이외에 다른 부분은 머리카락에 의해 가려진다. 그러나 사마라의 얼굴은 드라마틱하게 변한다. 이 글의 저자는 분명히 그 장면은 두 연기자에 의해 촬영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의 설명은 사마라의 얼굴은 갑자기 무성적asexual하게 보이고 여성적인 면과 남성적인 면이 동시에 보인다는 것이다. 이것은 오리지널보다 좀 더 탈인간적 침입posthuman intrusion에 대한 공포를 극대화하려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이 말을 다르게 표현하면 사이버네틱한 괴물성cybernetic monstrousity이다.
<Ringu>에서 많은 관객들이 공포를 느꼈던 장면은 사다코가 바닥을 기는 것이었다. 이것은 '부토'라고 하는 일본의 실험적인 전위 무용에서 따온 것이다. 부토는 그로테스크하고 어두우며 소멸해가는 세계를 탐구한다. 인간의 육체는 다른 동물이나 곤충, 귀신, 연기 혹은 먼지로 변한다. '살의 반란Revolt of Flesh'이라는 부토의 모토는 인간 육체의 동물성을 회복하려는 시도이다. 이 과정을 통해서 부토는 육체를 숭고하게 하려고 한다. 이렇게 사다코가 기는 것은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귀신이 기는 동작도 가벼이 볼 일이 아니다.
같지만 다른 사다코와 사마라
<Ringu>에서는 이렇듯 공포가 인간 존재의 억압된 동물성에서 비롯된다. 또 복수를 하려고 귀환하는 과정이 수반된다. 이 모든 것은 사다코의 육체를 통해 표현되고 있다. 그런데 <The Ring>에서는 공포를 만들어내는 중심적인 역할은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테크놀로지가 담당한다. 저자는 사마라를 다나 해러웨이적인 용어로 표현하는데, 바로 키메라 즉 인간과 기술의 하이브리드 괴물이라는 것이다. 아, 해러웨이까지 나오면 더 어려워진다. 과연 사마라는 해러웨이적인 사이보그로 볼 수 있을까? 리메이크가 테크놀로지를 강조하는 서구적 이성의 영역 안에 있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사이보그라는 해석까지는 너무 멀리 가는 것 아닐까. 또 저자는 사마라의 아버지가 전기장치로 자살하는 것을 테크놀로지에 대한 공포 혹은 강박 때문이라고 말한다. 자연은 리메이크에서 말들과 아름다운 풍경 그리고 바다로 표현된다. 리메이크는 육체에 대한 통제를 강조하고 이것은 사마라를 정신병원의 하얀 방에 가둬놓는 것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육체는 문명화되고 길들여진 것이다. 그렇지만 스스로 말하는 것은 금지되고 육체성은 부정된다.
이제 공간성의 문제가 남았다. 동물성과 테크놀로지 사이의 길항은 이 두 영화에서 다르게 나타난다. 호러 영화의 모티브는 항상 공간과 연결이 된다. 귀신들은 편재성의 힘을 가지고 있는데, 저주의 기운은 항상 특정한 장소와 관계가 있다. 귀신과 괴물 그리고 시리얼 킬러들도 대부분 공간 이동의 한계를 넘어서곤 한다. 물론 전통적인 고딕 이야기는 특정한 장소, 즉 죽은 자가 매장된 헌티드 하우스를 배경으로 한다.
이 두 영화에서 저주가 퍼지는 것은 정보 테크놀로지를 통해서이다. 이것을 저자는 리좀적rhizomatic이라고 표현한다. 물론 이것은 들뢰즈적인 용어이다. 우물에 갇힌 한 소녀의 원한은 특정한 장소에서 세상으로 바이러스처럼 퍼진다. 원환(圓環)의 이미지는 리메이크에서도 강조된다. 영화의 주인공들은 7일 안에 소녀가 묻혀 있는 곳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이런 플롯이 이 영화를 로드무비처럼 만든다. 원한에 찬 정신의 유동성과 죽은 육체의 부동성은 서로 충돌한다. “내 시체를 찾아 달라”는 죽은 소녀의 메시지는 살아 있었던 육체의 잊혀진 물질성으로부터의 메시지로 이해된다. 그런데 이 말은 너무 어렵다. 왜 학자들은 이렇게 말을 어렵게 하는 것일까. 물론 우리가 알다시피 이 영화들은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보이는 원환의 이미지가 그것을 암시한다. 우리의 육체의 움직임 역시 정해진 원환의 통로를 따라 돌고 돌 따름이다.
리메이크라는 과정을 통해 영화가 다시 만들어지는 것은 새로운 문화적 배경을 채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The Ring>은 이성의 영역 안에 머물러 있다. 그것을 넘어서는 것은 미국의 관객들에게는 편한 느낌을 줄 수 없고 즐거운 경험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다만 <The Ring>의 성공이 뜻하는 것은 테크놀로지의 지배보다는 자신들이 가진 육체에서 공포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호러 영화는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그리고 인간 육체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다. 귀신은 바로 그런 존재이다. 이 두 영화는 인간 존재와 동물 또는 인간 존재와 테크놀로지 사이의 경계를 다룬다.
그런데 어찌되었든 호러 영화는 그것을 보여줄 때도 육체와 공간성의 물질성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영화라는 매체의 속성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귀신은 육체성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영화는 육체성이 없다면 그저 텅 빈 공간만을 보여줄 수밖에 없다. 호러 영화의 귀신들은 관객들에게 육체와 공간과 시간의 복원을 호소한다. 그들의 죽은 시체 그리고 그들이 머물고 있는 장소, 과거와 현재의 뒤섞임 등을 통해 관객들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관객들 자신이 자신들을 억압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비명을 지르며 땀을 흘리게 만들면서 관객들의 육체를 깨우려고 한다.
결국 우리가 할 일은 그 귀신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볼 수 없고 그리고 알 수 없는, 또 다른 세계의 문이 열릴지도 모른다.
관련 리뷰
2007/03/05 - [리뷰/귀신 / 심령] - 링 - リング (1998)
2007/03/05 - [리뷰/귀신 / 심령] - 링 (1999)
2007/03/05 - [리뷰/귀신 / 심령] - 링 - The Ring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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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Beatmania의 느낌
Tracked from emptyframe's me2DAY 2008/09/17 02:02 삭제'링'을 통해 보는 동양과 서양 호러의 차이. "호러 영화는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그리고 인간 육체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다. 귀신은 바로 그런 존재이다." 일본공포영화열풍도 지난지 오래지. 그런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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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판 링도 꽤나 재밌게봤습니다.고어버번스키감독이 만든 영화중 최고지않나싶을정도로 -.- (캐러비안을 그닥 재밌게 보질않아서 ㅋ)
완성도도 높았단 느낌이구요. 하여튼 사다코-가야코-이 녀석들을 능가할 히로인은 언제쯤 등장할라나요..이 님들 덕분에 귀신캐릭은 십년넘게 답보상태군요 ㅋㅋ
맞습니다. 사다코와 가야코보다 더 대단한 귀신이 나와야 할텐데요...
'사마라'를 일종의 사이보그(또는 미디어 이미지)로 여기게끔 하는 이유가
사마라가 짜잔하고 등장할 때 특수효과 처리된 노이즈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사다코'와 달리 물에 흠뻑 젖은 모습으로 (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우물에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언급하신대로 사마라는 사다코보다 덜 실체스럽죠^^
처음 링을 봤을 때, 떠오른 영화가 '존 카펜터' 감독의 '매드니스'였습니다
'라센'을 보니 유사성은 더욱 커졌고 말이죠
카펜터 감독의 '담배자국 John Carpenter's Cigarette Burns'이 '화룡점정'
이었다면, 링 시리즈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것 같습니다
과연 '나카다 히데오' 감독은 'The Ring Three'로 무엇을 보여줄까요?
(개인적으로 '링 2 The Ring Two'는 그냥 그랬습니다^^)
아주 예리한 지적이시네요. 노이즈까지 알아채시니. 새로운 <링> 시리즈는 아마도 원작을 바탕으로 한다면 거의 SF로 기존 시리즈와는 전혀 다른 영화가 되겠지요. 과연 어떻게 나올지, 아니 나올 수 있을지 두고 볼 일 같습니다.
설마, '루프'로요?
아니, 그렇게 나와준다면 '링' 시리즈 팬으로서 즐거울 따름입니다^^
(흠, 그럼 사마라는 정말 'VR Ghost'가 되는군요ㅋ)
사마라는 모에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