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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귀사리
제2장 액막이
제3장 뺑소니 (1)
제3장 뺑소니 (2)
제3장 뺑소니 (3)
제3장 뺑소니 (4)
제3장 뺑소니
인하는 며칠 전 창고에서 만났을 때 할 얘기가 있다면서 시험 끝나는 날 여기서 만나자고 했다. 만약 안 나오면 자신이 봤던 것들을 죄다 학교에 소문내겠다는 협박성 멘트까지 덧붙였다. 물론 그런 협박이 무서워서 자리에 나온 건 아니었다. 상대가 인하였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인하는 교복 대신 사복을 입고 있었다. 사복을 입은 인하의 모습은 대학생이라 해도 믿을 만큼 성숙했고 교복을 입었을 때와는 또 다른 매력을 풍겼다. 그런 인하와 마주앉자 공표는 심장이 두근거렸고 왠지 주눅이 드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인하가 공표를 뚫어지게 보다가 얼굴을 바싹 앞으로 가져왔다.
“시험 잘 봤어?”
그녀는 생글거리며 웃고 있었고 목소리에선 장난기가 느껴졌다. 인하의 호기심 가득한 눈동자가 바로 아래서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고 정체 모를 향내가 코끝을 간질였다. 공표는 숨이 막히고 얼굴이 달아올랐다.
“난…… 시험 같은 거 신경 안 써.”
찌릿한 전류가 흐르는 것처럼 온몸의 세포들이 요동을 쳤다. 그는 인하와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
“정말? 하긴 귀신하고 친군데 그깟 시험이 무슨 대술까? 마음만 먹으면 시험도 얼마든지 잘 볼 수 있지 않나? 귀신한테 답을 좀 알려달라고 하면 되는 거 아닌가?”
당황한 공표가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리자 인하가 깔깔거리며 먼저 주문부터 하자고 했다. 공표가 오렌지주스를 시키자 인하는 굳이 자기가 가져오겠다며 오렌지주스 두 잔을 쟁반에 받쳐왔다. 인하가 시선을 떼지 않고 쳐다보는 통에 공표는 주스조차 목에 걸려 마실 수가 없었다. 공표는 주스 잔에서 입을 떼고 간신히 물었다.
“만나자고 한 이유가 뭐야?”
인하가 곧바로 대답했다.
“너한테 관심이 있으니까.”
순간 공표는 막 한 모금 들이켠 오렌지주스를 내뿜을 뻔했다. 인하는 배시시 웃었고 공표는 허둥지둥 화장실로 달려갔다. 거울을 보니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이 보였다. 인하가 이 모습을 보고 속으로 얼마나 비웃었을까 생각하니 다시 얼굴이 화끈거리고 달아올랐다. 관심이 있다는 말이 그 의미가 아니었을 텐데 혼자 온갖 오버를 다하다니.
‘어휴, 다시 나가서 뭐라고 그러지? 난 왜 이렇게 소심하고 한심할까?’
공표는 찬물로 세수를 하고 간신히 마음을 진정시킨 후 화장실을 나왔다. 자리로 돌아가던 공표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바로 인하 옆자리에 떡하니 묘화가 앉아 있었던 것이다. 공표의 표정을 본 인하는 뭔가 꺼림칙하고 미심쩍은 눈으로 자신의 옆자리를 돌아보았다.
공표가 허둥대며 자리에 앉자마자 묘화가 빈정대듯 말했다.
“너 이 기집애 좋아하는구나?”
공표는 그런 묘화의 말을 무시하려고 애썼다. 그러자 묘화가 더 집요하게 말을 걸어왔다.
“관심 있다는 말 한마디에 아주 생쑈를 하네!”
공표는 시선을 오렌지주스에 박은 채 안절부절못했다. 인하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내가 너한테 관심 있다고 말해서 놀랐어?”
“응? 아니…… 그냥…… 그게…….”
“물론 다른 뜻이 있는 건 아니고 네가 가진 그 이상한 능력에 관심이 있다는 거야. 하긴…… 아무려면 어때? 관심 있는 건 관심 있는 거지. 네 능력이든 너든.”
공표의 얼굴이 귀밑까지 발갛게 달아오르자 얼른 묘화가 끼어들었다.
“어쭈! 이 기집애가 지금 널 가지고 놀겠다는 거잖아? 설마, 그 말 그대로 믿는 건 아니지?”
인하가 지금까지와 달리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고 속삭이듯 물었다.
“혹시…… 지금 내 옆에 누가 있어?”
그 소리에 공표도 묘화도 깜짝 놀라 그녀를 쳐다봤다.
“왜……왜?”
공표가 반문하자 인하가 약간 겁먹은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그냥 느낌이 이상해서. 목덜미가 서늘한 거 같기도 하고. 애들이 그러더라구. 너하고 있으면 그럴 때가 있다고. 그리고 네 태도도 좀 이상하고. 꼭 내 옆에 누가 있는 것 같은 표정이거든?”
공표가 당황해서 아무런 말도 못하자 묘화가 갑자기 눈을 번들거리며 음산한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그래. 이제야 내 존재가 느껴지냐? 이참에 아예 니 몸에 들어가서 한바탕 골탕 좀 먹여줄까? 백주대낮에 미친 짓 한번 하게 해줘? 좋아, 어디 보자!”
순간 묘화의 영이 파르르 불안정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묘화가 정말로 인하의 몸에 들어가려고 비비적대기 시작한 것이다. 인하는 몸을 움츠리곤 겁먹은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갑자기 왜 이렇게 한기가 들지?”
공표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낮게 중얼거렸다.
“하지 마.”
하지만 묘화는 공표의 말에 신경도 쓰지 않았고 오히려 인하가 불안한 얼굴로 반문을 해왔다.
“뭘 하지 말라는 거야?”
공표가 미치겠다는 듯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인하는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꼭 몸살감기에 걸린 것처럼 몸이 으슬으슬하고 아파. 갑자기 왜 이러지?”
묘화의 영은 이미 절반쯤 인하의 몸에 겹쳐지고 있었다. 공표는 그런 묘화를 노려보다가 결국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지 말라니까!”
공표가 옆자리를 보고 소리를 지르자 인하는 비명을 지르며 벌떡 일어섰고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도 일제히 공표를 돌아봤다. 공표의 고함으로 인하의 몸에서 튕겨 나온 묘화는 싸늘한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다가 스르르 허공으로 사라졌다. 인하가 공표와 자신의 옆자리를 번갈아보며 겁먹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지금 누구한테 그런 거야?”
공표가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리자 인하가 자신의 몸을 어루만지며 중얼거렸다.
“이제 몸이 괜찮아.”
가게 안에 있던 아이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공표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밖으로 뛰쳐나갔다.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무작정 화가 났다. 뒤늦게 인하가 그런 공표의 뒤를 급하게 쫓아왔다.
“홍공표! 잠깐 기다려! 얘기 좀 해! 잠깐만 거기 서!”
인하가 숨을 헐떡이며 달려와 공표의 팔을 낚아채서는 돌려세웠다. 공표는 소리를 빽 질렀다.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놀려먹으니까 그렇게 재밌어?”
“미안해. 이런 일이 생길 줄은 나도 전혀 몰랐어. 처음엔 그냥 호기심이었다는 거 인정할게. 하지만 지금은 너무 무서워.”
“그러니까 나한테 가까이 다가오지 말란 말야!”
공표가 손을 뿌리치고 걷기 시작하자 인하는 얼른 옆에 나란히 서서 걸으며 말했다.
“단지 재미로 이러는 거 아냐.”
공표가 인상을 쓰며 돌아보자 인하가 얼른 덧붙였다.
“니 기분 상하게 했다면 미안해. 사과할게. 사실 나 한 가지 부탁할 게 있거든. 너…… 귀신 보는 건 맞지?”
공표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아까 내 몸이 이상했던 것도 귀신이 그랬던 거야?”
“그래. 내 곁에 머무는 영이 있는데 그 영이 네 몸속으로 들어가려고 했어. 흔히 사람들이 그러지? 빙의된다고. 네가 그렇게 될 뻔했다고.”
인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비명을 지르듯 소리를 높였다.
“정말? 아니, 왜?”
“귀신들은 어린애처럼 단순한 구석이 있기 때문에 질투도 많고 시기심도 많고 화도 잘 내. 그 영이 니가 마음에 들지 않았나봐.”
“여자 귀신이야?”
“응.”
“그럼 혹시 질투한 거 아냐? 내가 널 좋아하는 줄 알고?”
“그런 건 아니지만 비슷한 거야.”
“정말 이런 일이 있는 거구나.”
“아까 말했던 부탁할 일이라는 게 뭔데?”
“아, 그거.”
인하의 얼굴에서 빠르게 웃음기가 사라졌다. 인하는 어두운 얼굴로 공표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했다.
“누굴 좀 찾아줘!”
6
커다란 덩치의 용만이 한 손에 사인검을 들고 성큼성큼 레테에 들어섰다. 도복을 연상시키는 복장에 긴 머리까지 뒤로 묶은 탓에 언뜻 조선시대의 무사가 현대에 환생한 것 같은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카페에 있던 손님들도 그 기이한 행색에 너도나도 호기심 어린 눈길을 던졌다.
용만이 카페 입구에서 두리번거리자 소연이 다가갔다. 그녀 역시 그의 특이한 행색에 애써 웃음을 감추며 물었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장선일 법사님이 여기 계신다고 해서…….”
그때 찬수가 주방에서 그를 알아보고 나왔다.
“오용만 씨죠?”
용만은 군기가 바싹 든 훈련병처럼 카페 안의 모든 사람들에게 다 들릴 정도의 큰소리로 대답했다.
“예. 제가 오용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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