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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귀사리
제2장 액막이
제3장 뺑소니 (1)
제3장 뺑소니 (2)
제3장 뺑소니 (3)
제3장 뺑소니
“어차피 사람하고 귀신은 같이 지낼 수 없어. 네 기억을 찾아주고 싶은 건 진심이었지만 방법이 없잖아. 미안해.”
묘화가 울음을 터뜨리며 한참 통곡을 하고 난 후에 말했다.
“그래, 네 말이 맞아. 사람하고 귀신은 함께 할 수가 없지. 귀신은 언제나 사람들을 귀찮게 하고 해코지나 하는 존재들이니까. 귀신은 귀신하고만 어울려야 해. 근데 난 왜 귀신이 무서운 걸까? 왜 사람 옆에만 있고 싶은 걸까?”
공표는 대답하지 않았다. 묘화가 들릴 듯 말 듯한 소리로 말했다.
“그동안…… 고마웠어.”
공표는 대답하지 않고 묘화를 외면했다. 잠시 후 조용해서 돌아보니 묘화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홀가분함보다는 허전함과 외로움이 엄습했다. 묘화를 만난 지도 어느새 1년이 훌쩍 넘어서고 있었다. 외로운 건 묘화만이 아니었다. 공표 주위에도 사람이 없었다. 마음을 털어놓을 친구도, 엄마도 없었다.
묘화는 공표가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누던 상대였다. 그런 묘화가 없는 생활은 얼마나 답답하고 외로울까. 하루 종일 말 한마디 못하고 방 안에 틀어박혀 지독한 외로움과 싸우던 시절로 다시 돌아가는 건 아닐까. 가슴에는 영문을 알 수 없는 증오와 세상에 대한 원망이 쌓이고 염력을 이용해 나쁜 일을 하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진 않을까.
중학교 2학년 때 아이들의 관심을 받고 싶어 시험문제를 투시로 미리 알아내 소위 학교의 짱이라는 형들에게 알려줬다가 얼마나 곤욕을 치렀던가. 그들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얼마나 힘들었고 또 아빠 마음을 얼마나 아프게 했던가.
갑자기 묘화가 정말 가버린 게 아닐까 불안해졌다. 공표는 허공에 대고 가만히 중얼거렸다.
“내가 너무 심했어. 아직 근처에 있다면 다시 돌아와 줘. 내가 잘못했어.”
공표는 가만히 귀를 기울였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귀신은 사람처럼 집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동사무소에서 주소로 찾을 수도 없다. 공표는 벌떡 일어나 초조하게 사방을 두리번거리다 절망하며 주저앉았다. 왜 그랬을까 하는 후회가 일었다. 묘화가 누구보다 소중한 친구라는 걸 왜 진작 몰랐을까.
그때 귓가에 어떤 기운이 느껴지더니 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묘화였다. 순간 공표는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지만 짐짓 표정을 바꾸고 고개를 들었다.
“아직 안 갔어?”
“뭐야? 잘못했다고 돌아오라던 소리는 다 거짓말이었어?”
“너 약속해. 앞으로 절대 아까처럼 막무가내로 사고치지 않겠다고.”
묘화가 기다렸다는 듯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알았어! 절대로…… 절대로 안 그럴게!”
“진짜지?”
“사람 말, 아니 귀신 말 못 믿어? 듣다 보니 정말 치사하네? 솔직히 니가 내 밥을 주길 해, 잠자리를 제공하길 해. 그렇다고 다정한 말상대가 돼주길 해?”
“또 기 살았다!”
“내 얼굴 봐봐. 어때?”
“어떻긴, 무섭지.”
“나도 죽기 전에는 꽤 예뻤을 것 같지 않아?”
“글쎄.”
“피이. 사람이 좀 솔직해지라고.”
묘화 말대로 그녀의 이목구비는 또렷했다. 살아생전에는 상당히 예쁜 얼굴이었으리라고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묘화는 여전히 미련이 남는지 풀이 죽은 소리로 말했다.
“만약 내가 살아 있었으면 너같이 소심하고 왕따인 스타일은 상대도 안 했을 거야!”
“됐다. 나도 너 같은 여자한테는 관심 없었을 테니까!”
그때 등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귀신이 여자인 모양이지?”
공표는 화들짝 놀라 돌아섰다. 뜻밖에도 창고 모퉁이에서 인하가 나타났다. 공표는 못된 일을 하다 들킨 사람처럼 허둥거렸다. 인하가 그런 공표의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고는 상기된 표정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거짓말인 줄 알았는데…… 정말이었네?”
“뭐……뭘?”
인하가 반짝이는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귀신이 붙어 다닌다는 말! 지금도 네 앞에 귀신이 있고 그 귀신과 얘기를 나눈 거지?”
“무……무슨 소리야?”
“시치미 떼지 마. 다 봤다니까? 니가 허공에 대고 누군가와 계속 얘기 나누는 거. 또 지난번에 네 방에서도 봤고. 나한테 더 이상 거짓말하려고 하지 마. 내가 얘기했잖아. 난 그런 거 하나도 안 무섭다고. 오히려 너무너무 신기하고 재밌어!”
공표는 너무 당황스러워 어찌할 바를 몰라 했고 묘화는 눈에 독기를 가득 품고 인하를 노려보았다.
4
무심코 화장대 앞에 앉던 지영은 발바닥에 따끔한 통증을 느끼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바닥을 내려다보니 화장대 위에 올려둔 작은 액자가 떨어져 있었고 그 주위로 날카로운 유리가 흩어져 있었다. 남편이 죽기 얼마 전 함께 놀러가 찍은 사진을 넣어둔 액자였다.
“이게 왜 떨어졌지?”
이상했다. 세수를 하러 가기 전만 해도 액자는 화장대 위에 얌전히 놓여 있었다. 자신이 일어나며 액자를 건드렸다면 깨지는 소리가 들렸을 것이다. 고개를 갸웃하며 발을 쳐다보던 지영은 순간 오싹 하고 소름이 끼쳤다. 유리가 박힌 발에서 새빨간 액체가 방울져 바닥에 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방 안은 텅 비어 있었다. 방뿐만이 아니다. 이 집 안엔 지영을 제외한 그 누구도 없었다.
지영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팔뚝에 오소소한 닭살이 돋았다. 한 번은 몰라도 두 번은 우연이거나 착각일 리 없었다. 설명이 필요했다.
아침에 정혜를 학교에 보내고 나서 대충 집안청소를 마친 후 그녀는 외출준비를 위해 화장대 앞에 앉았다. 그게 불과 5분 전이었다. 느낌이 이상해서 보니 화장대 위에 있던 액자가 엎어져 있었다. 남편이 죽은 지 며칠 되지도 않아 딸 정혜가 수시로 보는 액자였기에 절대로 엎어놓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그 액자가 세수를 하고 돌아왔더니 이번엔 바닥에 떨어져 깨져 있는 것이다. 순간 이 집 안에 자신 말고 또 다른 누가 있는 것 같은 기이한 기분이 들었다. 지영은 화장대에 있던 가위를 움켜쥐고 피가 흐르는 발을 질질 끌며 방을 가로질렀다.
지영은 장롱 앞에 멈춘 다음 심호흡을 했다. 남편은 그녀를 겁쟁이로 알았지만 그녀는 겁쟁이가 아니었다. 오히려 다른 여자들에 비하면 겁이 없는 편이었다. 단지 의도적으로 남편에게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을 뿐.
하지만 지금은 몹시 겁이 났다. 가위를 쥔 손이 파르르 떨렸다. 지영은 손을 뻗어 장롱의 문을 와락 열어젖혔다. 장롱은 텅 비어 있었다. 그녀는 그런 식으로 집 안을 샅샅이 살폈지만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대신 바닥에는 온통 그녀의 발에서 흘러나온 핏자국이 길게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지영은 집 안에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한 다음에야 안도했고 비로소 통증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녀는 그대로 거실에 주저앉아 발에 박힌 꽤 큼직한 유리조각을 빼냈다. 약상자를 갖고 와 간단히 치료를 마친 뒤 살금살금 걸어봤더니 약간 욱신거리긴 했지만 외출을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지영은 액자와 유리조각을 치우기 위해 안방으로 들어갔다. 조심스럽게 주변의 유리를 치운 후 액자를 뒤집은 그녀는 곧 옅은 비명과 함께 액자와 사진을 집어던지고 말았다. 누군가 남편과 찍은 사진을 피로 물들여놓았던 것이다.
사진에 피가 칠해져 있다는 사실보다 더 소름 끼치는 일은 사진에 칠해진 피가 다름 아닌 그녀의 발에서 나온 피라는 사실이었다. 마치 그걸 증명하듯 누군가가 일부러 지영이 방에서 흘린 핏자국을 액자까지 길게 끌고 간 흔적을 남겨놓은 것이다. 말하자면 자신이 집 안을 살피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누군가 안방에 들어와 사진에 피를 칠한 것이다. 지영은 손이 아프도록 가위 손잡이를 움켜잡았다. 몸이 무섭게 떨려왔다.
그때 등 뒤에서 끼기긱 하고 소름끼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영은 비명을 지르며 휙 돌아섰다. 놀랍게도 화장대 거울에 피로 글자가 써지고 있었다.
‘화냥년…… 내가 그렇게 끝날 줄 알았어……?’
5
롯데리아에 들어서자 창가에 앉아 있던 인하가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학교 근처라 가게 안과 밖에서 아이들의 힐끔거리는 시선이 따갑게 느껴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다른 곳에서 만나자고 할 걸 하는 후회가 일었다. 학교 내 모든 남학생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인하와 귀신 붙었다고 소문난 왕따 홍공표가 만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아이들에겐 충분한 흥미 거리가 되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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