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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구토 (3)



미처 달아나지 못한 모기가 이내 흐물흐물 녹아 남편의 종아리와 하나가 되었다. 남편의 종아리에 돋아난 다리털들이 체액이 흘러내리는 방향을 따라 툭툭 끊어지며 녹아났고, 잠시 후 피부에 숭숭 뚫린 구멍들이 점점 벌어졌다. 커진 구멍들은 서로 합쳐지며, 피부를 체액이 흐르는 방향으로 끄집어 내렸고, 피부는 고정핀이 제거된 텐트처럼 스르르 아래로 벗겨졌다. 처음에 새하얗게 드러났던 속살은 점점 붉어졌다. 속살에서 배어 나온 피가 부글거리며 아래로 흘러내렸고, 속살마저 녹아내리자, 빨간 힘줄과 근육이 드러났다. 체액이 스며들면서 힘줄이 툭툭 잘려나가고, 근육이 푸슬푸슬 녹아내렸다. 이윽고 새하얀 다리뼈가 보이기 시작했다. 다리뼈는 쉽사리 녹지 않았다. 나는 한 번 더 체액을 게워냈다. 다리뼈에 미세한 구멍이 생기기 시작하자, 그 후로는 비교적 순조롭게 일이 진행되었다. 일단 뼈의 단단한 표면이 녹자, 이내 피질골과 골수가 녹아 내렸다. 녹아내린 뼈와 근육과 피부조직들이 하나로 엉겨 붙어 부글거렸다. 피비린내와 고기 타는 내가 났다. 나는 한동안 완전히 절단된 남편의 종아리와 발목 사이를 바라보았다.

남편은 여전히 잠에 빠져 있었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를 터였다. 남편의 허리 아래에 매달린 쓰레기를 더 청소해주는 게 좋겠다. 그래서 다른 쪽 발부터 천천히 체액을 게워내 녹여냈다. 체액은 끝도 없이 용솟음쳤다. 작업 도중에는 내 식도와 입안, 그리고 입술까지도 약간 녹아내릴 정도였다.

한 시간 동안 나는 남편의 발과 발목과 종아리, 무릎, 허벅지까지 완전히 녹여냈다. 비지땀이 이마에서 뺨을 타고 흘러 입으로 스며들었다. 그러나 아무런 맛도 느낄 수 없었다.

남편의 하체는 완전히 녹아 본래의 형체는 온데간데없었다. 침대보를 뒤덮은 시뻘건 덩어리들만이 이따금 부글거릴 뿐이었다. 속이 후련했다. 왜 진작 이것들을 청소하지 않았나 싶었다. 나는 덩어리들을 배출하려고 쓰레기봉투를 가져왔다. 집게로 덩어리를 뭉쳐 봉투에 쓸어 담았다. 콧노래마저 절로 흘러나왔다. 나는 떠오르는 대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다시 태어난 것 같아요. 내 모든 게 다 달라졌어요. 그대 만난 후로 난 새 사람이 됐어요. 쓰레기 처리하는 일이 이토록 즐거울 줄이야!

남편이 갑자기 눈을 뜬 것은 원래 허벅지였던 덩어리를 쓸어 담던 중이었다. 그는 무심히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물 줌 가져와. 목 말러.”

그때까지도 남편은 자신의 하반신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근데 당신 입이 왜 그래?”
“응? 뭐가?”

대답을 하는데, 목소리가 지독히 쉬어 나왔다. 무심결에 손으로 입술을 훑어보니, 입술 주변이 군데군데 녹아 내려 있었다. 그 직후 남편이 미친 듯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으아! 내 다리! 내 다리이이!”

남편은 완전히 녹아 없어진 자신의 하체를 바라보며 미친 듯이 버둥거렸다. 그런 남편의 꼴이 우스웠다. 기껏 쓰레기에 불과한 덩어리를 청소해주었을 뿐인데, 멀쩡한 신체를 망가뜨리기라도 한 양 난리를 칠 건 뭐람. 나는 남편을 진정시키려고 그의 어깨를 잡아 흔들었다.

“쉬이, 괜찮아, 진정해. 내가 깨끗하게 청소해줬잖아.”

그러나 남편은 쉬이 진정할 기세가 아니었다.

“이 씨발년아, 내 다리 어디 갔어? 내 다리이!”

고함소리와 발작이 더 커졌다. 남편은 완전히 이성을 잃고 버둥거렸다. 아무리 진정시키려 해도 막무가내였다. 남편의 비명소리가 점점 거슬리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사촌 오빠가 집에 놀러 와서 어머니가 라면을 끓여준 적이 있었다. 그 날 텔레비전에서는 <보물섬>이라는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방영되고 있었고, 어머니가 밥상 위에 라면그릇을 올려놓을 때까지 사촌 오빠는 텔레비전에 완전히 정신이 팔려 넋을 놓고 있었다. 한데 사촌 오빠가 만화를 보며 밥상을 향해 무심코 몸을 틀다 팔꿈치가 바로 앞에 놓여있던 라면그릇을 쳤고, 그 바람에 라면그릇이 상 밑으로 엎어졌다. 그릇이 엎어진 곳은 바로 사촌 오빠의 발목 위였다.

“아뜨가아!”

‘아’라는 감탄사와 ‘뜨겁다’는 형용사가 한데 엉긴 비명이 오빠의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는 귀청을 찢는 듯한 괴성을 질러댔다. 어머니가 황급히 물수건을 가져와 발목을 닦아주었지만, 이미 발목의 피부가 시뻘겋게 부어오르고 수포가 허물이 벗겨진 후였다.

그날 사촌 오빠처럼 남편은 비명을 질러댔다. 내가 괜찮다고, 아무 일도 아니라고, 그만하라고 어르고 달래도 소용없었다. 남편은 거품까지 질질 흘려대며 비명을 질렀다. 귀청이 부르르 진동할 지경이었다. 참는 데에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고마워하지는 못할망정 왜 난리를 치고 지랄이야. 화가 났다. 참다못한 나는 결국 남편의 입을 향해 체액을 게워냈다. 체액은 남편의 입이 아닌, 턱 아래의 목에 쏟아졌고, 잠시 후 부글거리며 남편의 목이 녹아 내렸다. 피부 조직이 녹자, 속의 힘줄과 목뼈가 드러났고, 그마저 녹아내리자, 기도와 식도가 허물어졌다.

“컥! 끄억…….”

남편은 목을 감싸 쥐고 컥컥댔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목에 총을 맞고 컥컥대던 병사가 떠올랐다. 식도와 기도가 한꺼번에 녹아내리니 목에 총을 맞은 것보다 고통이 더할 터였다. 남편은 미친 듯이 머리를 위아래로 퉁기며 발작했다. 그러나 체액의 작용을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기도가 녹아내려 몇 번인가 바람 빠지는 소리가 쉭쉭 나더니 이윽고 조용해졌다. 목이 완전히 녹아내리자, 남편의 머리가 몸과 분리되어 침대 밑으로 툭 떨어졌다.

쓰레기가 된 남편을 처리하며 나는 내내 유쾌했다.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었다. 오랫동안 미루어두었던 집안 대청소를 하고난 기분이었다. 약간, 아주 약간이나마 세상은 깨끗해졌다. 비록 과다한 체액 분비로 입술이 녹아내리고, 혀가 떨어져나가고, 턱뼈가 삭아서 빠질 듯 덜그럭거렸지만 상관없었다. 20리터들이 쓰레기봉투를 아파트 앞 쓰레기수거함에 버리고 돌아설 때는 정말 오랜만에 휘파람이라도 불고 싶을 만큼 상쾌했다. 구강(口腔)이 녹아 내려서 휘파람을 불수도 없었지만 여하튼 좋았다. 마스크를 쓰고 있었기에 나에게 일어난 변화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다음날 쓰레기를 수거해 가는 인부들도 내가 버린 쓰레기봉투 속에 담긴 붉으죽죽한 쓰레기가 원래 내 남편이었고, 한때 세상을 정화하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품었던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추호도 알 수 없을 터였다.

아파트 입구로 막 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한 여자가 튀어나왔다. 아파트 밖으로 뛰어나온 여자는 미친 듯이 차도로 내달았다. 여자의 뒤를 한 남자가 뒤쫓고 있었다. 남자가 거의 여자를 따라잡았을 즈음 과속으로 달려온 티뷰론이 남자를 들이받았다. 허공에 붕 떠오른 남자가 빙글빙글 돌아 도로변에 처박혔다. 남자를 들이받은 차는 바퀴가 멈추고도 한참을 미끄러졌다. 도로변에 처박힌 남자는 형편없이 망가져서 회생 가능성이 없어 보였다. 이 밤중에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인 속사정이야 알 수 없었지만, 남자가 양해해준다면 내가 가서 그를 처리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굳이 남의 일에 나설 필요는 없었다. 나는 주저 없이 아파트로 들어서서 엘리베이터 단추를 눌렀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내 아파트로 들어가려던 나는 현관문 앞에서 동작을 멈추었다. 또다시 쓰레기로 꽉 찬 10리터들이 쓰레기봉투가 복도, 602호와 603호 가운데 지점에 보란 듯이 놓여 있었다. 602호 여자였다. 어째 한동안 안 그런다 싶었다.

나는 결단을 내렸다. 이번에는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쓰레기는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쓰레기가 세상에 존재하는 한 계속 나오게 마련이다. 해결책은 간단했다. 쓰레기를 줄이려면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원흉을 처리하면 된다. 생각이 그 즈음에 미치자, 불쾌함이 사라지고 가슴이 두근대기까지 했다.

나는 602호의 초인종을 눌렀다. 지난번과는 달리 602호 여자는 금방 문을 열어주었다. 나는 슬그머니 602호 현관으로 들어섰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복도에서 쓰레기 처리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602호 여자와 나는 1미터 정도의 사이를 두고 한동안 서로를 노려보았다. 602호 여자의 녹아내린 입과 여기저기 빠진 이빨을 보고 있노라니, 그 어느 때보다 강한 구토가 치밀어 올랐다.

그러나 602호 여자가 나보다 더 빨랐다. 순식간에 엄청난 양의 체액이 602호 여자의 입에서 쏟아져 나와 내 온몸을 뒤덮었다. 가장 먼저 녹아든 건 내 눈이었다. 체액은 내 눈알을 녹이고 들어왔고 눈알 주변을 야금야금 녹여냈다. 머리카락이 녹아 뚝뚝 끊어지고, 피부 조직이 부글거렸다.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성대마저 녹아 내려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나는 602호 현관 안쪽으로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녹아내린 팔의 관절이 서서히 어깨에서 끊어지며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온몸이 부글거렸다. 두개골이 녹고 체액이 내 뇌를 녹이기 시작할 즈음에는 아무런 고통도 느낄 수 없었다.

나는 쓰레기가 되었다.



다음 이야기
7. 몸 (1) 보기


유령의 공포문학 (http://cafe.naver.com/64ghost)
김종일의 공포소설 (
http://cafe.naver.com/kimjongil)

(일러스트: 이자정)


 

Posted by Jong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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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박노협 2008/09/06 11:48

    헐 드디어 끝났군요..잘 잃었습니다...마지막에 급 반전...후 다음편도 기대하고 있습니다..수고하셨습니다...

  2. 이번 편은 특히나 엽기성이 강한 듯합니다..^^;;
    다음 이야기도 기대되네요.

  3. 602호 여자도 같은 특성을 가졌네요. 기발합니다. 아파트에서 달려나간 여자는 '손톱'에 나오는 여자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