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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음악에 감사를.

‘아바’의 마지막 스튜디오 앨범의 타이틀 - <The Visitors>는 의미심장하다. 이미 지칠 대로 지치고 사이가 벌어질 대로 벌어진 그들이 팬에게 고하는 작별의 인사가 ‘방문자들’이라니. 당시에 그 레코드를 구입할 때는 제목에 대해 별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맘마미아>를 보면서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언제고 팬들을 다시 찾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지. 결과적으로 그런 바람을 현실화한 건 남자 멤버들이었다. 서둘러 솔로 앨범을 발표했던 프리다와 아그네사는 이후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보다 개인적인 삶을 택했다. 반면 베니 안데르손과 비욘 울바에우스는 탁월한 비즈니스 마인드를 잃지 않았다. 뮤지컬 <체스>를 마친 그들은 제작자 주디 크레이머의 설득에 못 이기는 척 뮤지컬 <맘마미아>에 참여한다.

아바의 노래를 뮤지컬로 만든다고? 따지고 보면 이보다 안전한 장사가 있을까. 음반 판매와 라디오 방송 등을 통틀어 이들보다 대중적인 인기가 높은 그룹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유럽과 아시아 지역에서 이들의 인기는 가히 독보적이다).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와 <샤인 어 라이트>의 한국관객 반응을 접한 나는 그들 대부분이 ‘비틀즈’와 ‘롤링 스톤즈’의 노래에 익숙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아바는 다르다. 그들의 노래엔 불세출의 멜로디가 있다. 한번 들으면 결코 잊혀지지 않는 멜로디, 때때로 흥얼거리기에 더없이 어울리는 멜로디. 그 멜로디가 뮤지컬의 옷을 입은 순간, 멜로디로만 사랑받던 아바의 노래는 또 다른 출구를 찾는다.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메시지는 전무하지만, 오로지 사랑의 설렘, 환희, 상처, 추억으로 가득한 노랫말들이 하나씩의 이야기와 의미를 부여받기 시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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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의 런던 초연 이후 단시간에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뮤지컬 중 한 편으로 자리 잡은 <맘마미아>가 영화로 무대를 확장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뮤지컬의 주역들인 주디 크레이머, 베니 안데르손, 비욘 울바에우스, 그리고 필리다 로이드는 내친 김에 영화의 제작, 음악, 감독까지 겸했다. 결과는 예상한 대로다. 미국에선 박스오피스 수위를 놓쳤으나(미국에서 아바의 인기는 다른 나라에 비해 낮다는 걸 기억하자), <맘마미아!>는 유럽과 호주를 중심으로 개봉하는 나라마다 돌풍을 일으켰다. 영화의 만듦새와는 별개로, 세계의 아바 팬들이 아바의 노래를 따라 부르고, 각자의 추억에 잠기고, 이야기의 전개에 미치도록 흥겨워했을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맘마미아!>의 이야기에 새로운 건 없다. 내용이라고 해봐야 아바의 노랫말에 역으로 끼워 맞춘 것이니 어쩌겠나. 그리스의 섬에서 작은 호텔을 경영하는 도나는 외동딸 소피와 살고 있다. 결혼을 앞둔 스무 살 소피는 그녀 인생의 허전한 부분을 채워줄 누군가를 갈망한다. 그녀는 식장에서 자기 손을 잡고 입장해줄 아버지를 찾고 싶었고, 마침내 엄마의 일기장을 보다 세 남자의 이름을 발견한 소피는 도나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초청장을 보낸다. 결혼식 전날, 세 명의 멋진 남자가 정말로 섬에 도착하자, 소피는 기뻐 어쩔 줄 모르고, 도나는 난데없이 나타난 그들 때문에 당황한다.

영화는 시종일관 신난다. 인물은 활기차고 노래는 즐거우며 배경은 낭만적이어서 <맘마미아>가 데이트무비의 고전처럼 느껴질 지경이다. 문제는 연출이다. 영화에는 도나, 소피, 세 남자 외에도 도나의 두 여자친구, 소피의 약혼자와 두 여자 친구 등 비중 있는 인물들이 여럿 나온다. 그런데 캐릭터 모두가 표피적인 관계에서 조금도 나아가지 못하며, 그들 대부분은 각자의 감정과 마음을 드러낼 기회를 부여받지 못한다. 20년 전의 이별, 옛사랑의 상처, 재회의 기쁨, 젊은 연인들의 갈등, 새롭게 맺어지는 사랑, 흥분과 위로와 유희 등은 별다른 설명을 구하지 못한 채 그냥 극 순서에 맞춰 전개되고 있으며, 배우들은 감독의 지시에 따라 나타났다 노래 부르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필리드 로이드가 이야기의 엉성함을 극복하기는커녕 기계적인 연출을 펼친 탓에, 이야기와 인물은 감정이입하기 힘든 대상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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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장르영화는 현실적인 공간에서 펼쳐지는 비현실적인 이야기이며, 잘 만들어진 장르영화는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빌려 현실을 반추한다. 비현실적인 이야기와 현실의 간극은 뮤지컬의 경우 유독 엄청난데, 떠들썩하고 요란한 분위기 속에서 현실을 어떻게 풀어내는지가 뮤지컬의 관건이라 하겠다. 그런데 아쉽게도 <맘마미아>는 그런 능력이 모자란다. <맘마미아>는 먼 에게해의 섬에서 벌어지는 낭만적이고 즐거운 이야기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럼 점에서 <맘마미아>는 뮤지컬영화의 고전 <남태평양>과 닮았다. 귀에 착착 붙는 음악과 반대로 어딘가 엉성한 구조, 현실의 땅에서 붕 떠있는 인물들은 두 영화의 공통점이다(<남태평양>의 팬에겐 죄송한 이야기지만, 나는 유명 뮤지컬영화 중에 <남태평양>이 가장 어수룩하다고 생각한다). 이국적인 취향과 매끈한 음악으로 <남태평양>이 고전으로 살아남은 것처럼 <맘마미아>도 향후 그렇게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이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맘마미아>에는 거부하기 힘든 매력이 넘친다. 영화의 일등공신은 아바의 노래와 메릴 스트립의 연기다. 아바 음악 특유의 아찔한 인트로 부분이 나올작시면 첫 가사가 절로 떠오르고, 배우의 음성으로 노래가 새롭게 불릴 때면 환성을 지르고 싶으며, 이 다음엔 무슨 노래가 나올지 잔뜩 기대하게 된다. 그렇게 100분여의 상영시간쯤은 쉽게 넘어간다. 낯선 노래라고 해봐야 세 남자 주인공의 발라드인 <Our Last Summer>와 모녀의 노래인 <Slipping Through My Fingers> 정도가 다이며, (<Fernando>, <Knowing Me, Knowing You>, <The Name of the Game>, <I Do, I Do, I Do, I Do, I Do>, <Ring Ring>, <Waterloo>를 제외한) 우리가 좋아했던 모든 아바의 노래가 쉼 없이 흘러나온다. 음악이 마법을 부린다는 말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것 같다.

<맘마미아>에서 메릴 스트립의 연기를 그녀의 베스트로 보기는 힘들다. 중요한 건, 그녀가 연기와 영화를 대하는 자세다. 그녀의 자연스러운 연기에 익숙한 우리에게 그녀가 온몸을 던지며 펼치는 팽팽한 연기는 흥미진진하다. 공중으로 뛰어오르고, 격렬하게 몸을 흔들고, 고음의 발라드를 목청껏 내지르는 그녀의 모습은 가히 새로운 발견이며, 그녀의 열정과 노력을 새삼 평가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탁월한 열연이 다른 배우를 압도한다기보다 도리어 영화의 무개성함을 구원한다. <Dancing Queen>에서의 발랄함도 좋고, <SOS>의 절절함도 좋지만, 무엇보다 클라이맥스에서 부르는 <The Winner Takes It All>은 그녀의 거창한 연기와 가창력을 확인하는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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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 역의 아만다 시프리드는 앙증맞은 용모만큼 당찬 노래솜씨를 자랑한다. 특히 <Lay All Your Love on Me>에서 그녀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제대로 확인할 수 있으며, 출연자 중에선 그녀의 목소리가 아바의 노래에 가장 어울린다(실제로 음성이 비슷하기도 하다). 도나의 여자친구로 나온 줄리 월터스와 크리스틴 바란스키의 코믹연기도 좋다. 때때로 분위기를 전환시키는 데는 두 사람의 역할이 그만이다. 두 배우가 기죽은 메릴 스트립을 위해 부르는 <Chiquitita>는 속 깊은 가사의 내용을 되새기게 하고(이 노래가 왜 OST에서 빠졌는지 모르겠다), 바란스키가 풋내기 소년들에게 들려주는 <Does Your Mother Know>는 영화의 숨은 하이라이트다.

지뢰도 있다. 여배우들이 꽃피운 분위기를 남자배우들은 재난급의 노래로 망쳐놓는다. 스타들을 동원하느라 피어스 브로스넌, 콜린 퍼스, 스텔란 스카스가드를 부른 건 이해가 되지만, 안타깝게도 이들의 노래실력이 영 꽝인 것. 그나마 콜린 퍼스와 스텔란 스카스가드에게 노래들이 덜 편성돼 좀 괜찮나 했더니, 나머지 노래들이 피어스 브로스넌에게 총집중되는 바람에 듣기 괴로운 장면들이 종종 연출된다(지인은 농담하기를, 브로스넌 혼자 제임스 본드 연기로 튄다고 했다). <SOS>와 <The Winner Takes It All>에서 메릴 스트립과 듀엣하면서 들통 난 실력은 <When All is Said and Done>에 이르러 완전히 바닥을 드러낸다. 아바의 장렬한 종말이 담긴 이 아름다운 발라드가 브로스넌의 숨찬 목소리로 불릴 때 나는 땅을 치고 싶었다.

여기저기 투덜대기는 했으나 <맘마미아!>가 즐기기에 좋은 영화임은 분명하다. 20살 소녀가 20년 만에 보낸 초대장은 아바의 음악이 아바의 팬에게 17년 만에 보낸 초대장과 다름없지 않은가. 혹시 아바의 노래를 잘 모른다고?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다. 아바의 노래는 조금만 들어도 흠뻑 취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으니까. 극장으로 달려가 표를 구하도록, 그리고 이 촌스러운 뮤지컬에 빠져들도록. 2008년 여름의 끝자락을 함께 보내기에 <맘마미아!>만한 친구는 없다. 이건 아바와 동시대를 보낸 꼰대가 향수에 젖어 내뱉는 말이 절대 아니다.

* 본편이 끝난 뒤 나오는 출연자들의 버라이어티 쇼를 놓치지 말 것.

* 그나저나 콜린 퍼스의 팬들은 <맘마미아!>를 보고 어쩌나. 그녀들의 ‘다아시’가 그래도 되는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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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bu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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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와 <샤인 어 라이트>에 보인 한국관객의 반응을 보고 한국 관객이 '비틀스'와 '롤링스톤즈'의 노래에 익숙하지 않다는 말은 이해도 완전 안되고 근거도 전혀 없는 글쓴이의 엉뚱한 상상이라고 생각되네요. 우리가 얼마나 '비틀스'와 '롤링스톤즈'에 노래에 익숙한지에 대한 설명은 자칫하면 코메디가 될듯하여 피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Yesterday, Let it Be, Satisfaction 등등등.. 이런곡들은 말하자면 끝이 안나거든요. 언급된 두 영화와 <맘마미아>를 구지 비교 하려 했다면 '한번 들으면 기억되는 멜로디'의 비교 보다는 각각의 영화가 가진 '드라마'를 비교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사실 드라마의 비교도 멜로디의 비교 만큼이나 어리석은것은 각각의 영화가 개성으로 넘쳐나는데 한가지 잣대로 바라본다면 개성을 잃게 하는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비하 해서 '심은하는 언제 나오지?' 란 시선으로 영화를 본다면 재미도 없고, 이해도 안되고, 음악도 별로고, 연기도 성에 안차고, 블라블라....) 저는 음악을 사랑하는 한사람으로 <맘마미아>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샤인 어 라이트> 모두 재미있게 봤습니다. 그들의 재능, 열정과 사랑 모두 높게 평가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영화를 보고 평론하는건 평론가의 몫이듯 하듯 평론을 보고 평가하는것은 독자의 몫이죠.

  2. sweet cat 2008/09/07 16:38

    영화만큼 발랄한 리뷰 잘 읽었습니다.
    리뷰 읽으면서도 눈에서 하트광선이 쏟아져 나왔답니다. :)

  3. '어크로스더유니버스'는 개봉관을 찾기가 힘들어서 극장에서 보질 못했습니다. 한국 관객의 입맛에 안맞는다기보단 홍보가 부족했던게 아닐까요, 제 친구들도 이런영화가 있었던줄 아는애가 한명도 없더라구요..

  4. BeamKnight 2008/09/09 23:25

     개인적으로는 뮤지컬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물론 '왕과 나'라든가 '사운드 오브 뮤직' 같은 고전영화들은 뫃아합니다만, 요즘 뮤지컬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여럿 접하는 과정에서 질려 버렸달까요?
     뭔가 사건이 전개된다 싶으면 갑자기 노래가 시작되면서 영화 속의 모든 것이 춤을 추기 시작하고, 그렇게 노래와 음악이 끝나고 나면 어느샌가 상황이 얼렁뚱땅 넘어가 버리는 게 영 마음에 안 들었습니다. 노래가 영화 속의 상황이나 분위기에 전혀 매치가 안 되는 것 같아서 짜증이 나기도 했구요. 그때의 느낌이 아직도 남아 있어서, 뮤지컬 영화 하면 색안경부터 쓰게 됩니다. 뮤지컬 영화 기피증을 치료할 때가 오긴 할까요? ;;;

  5. 솔직히 롤링스톤즈의 노래는 한국관객들에게 익숙하지 않을지 몰라도
    비틀즈 노래도 한국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다고요?
    그건 절대 아닌 것 같네요

  6. 몇가지 2008/09/11 20:54

    님 글에 감사하며 몇가지 씁니다. Fernado는 메릴 스트립이 그 염소우리에 들어가면서 콧노래로 한소절 읊조리고 들어가대요. I Do~도 교회장면에서 짧지만 나오지요. The Name of the Game 도 나오는 것 같고요, Waterloo도 영화 후에 나오지만 나옵니다. 참, The Winner takes all을 피어스 브로스넌이 메릴과 듀엣햇던가요? 기억이... 몇가지 짚고 넘어갔으니 이해 부탁드립니다.

  7. 영화 만듬새가 참 아쉽더군요. 이거 뮤지컬 초연 감독이 연출을 했다고 하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무난하긴 한데 초,중반은 참 못봐주겠더라고요... 대사에서 노래로 들어가는 장면 편집도 엉성하고 그덕분에 더 대사에서 노래로 넘어갈 때 이질감이 크더군요. 그나마 다행인 건 영상은 영화 이미지에 맞게 잘 뽑았다는거 정도... 참 아바 노래의 힘과 원작 뮤지컬이 가지고 있던 그 활기, 메릴 스트립의 열연 아니었으면 거지 같은 영화가 될뻔했어요. 메릴 스트립은 노래도 참 잘부르더라고요 ㅋㅋ 개인적으로 피어스 브로스넌이 너무 노래를 못 불러서 그게 좀 아쉽더군요 SOS 부를 때 참;
    근데 비틀즈나 롤링 스톤즈가 국외의 명성이나 인기에 비해서 국내에서는 좀 인기가 떨어지긴 하죠. 아바 노래에 비해서;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나 샤인 어 라이트는 그 것뿐만이 아니라 맘마미아라는 뮤지컬이 국내에서 큰 히트를 한거에 비해서 크게 화제를 불러올 만한 그런게 없었던 것도 국내에서 흥행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라고 보네요.

  8. 영화의 내용은 뒤로 접어두고라도 음악과 배경만큼은 볼만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