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꿈과 악몽이 현실로
지난날의 꿈들이 나를 밀고 간다, 는 말이 있다. 어린 날이나 젊은 시절에 간직했던 꿈. 지치고 힘들 때면 그 시절의 순수했던, 정열적이었던 '꿈'을 되살리며 발걸음을 내딛는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기분을 한 두 번씩은 느껴보지 않았을까. 삶에 지쳐 각박함을 느꼈을 때, 어딘가 바삐 가다가 문득 창밖으로 흐르는 풍경이 눈에 박힐 때 등등. 그럼에도 과거는 잊혀지기 마련이다. 추억을 떠올리고, 지난날의 꿈들로 힘을 얻는 것도 자꾸 하다 보면 효력이 없어지니까.
그런데 지난날들의 꿈이, 지금 현실로 이루어진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그 꿈들이 화사한 꿈이었다면 좋을 것이다. 꿈을 싫어할 사람은 없으니까. 한때 '록으로 세상을 변화시킨다'라고 믿었던 켄지이지만, 지금은 사라진 누이의 아이를 돌보며 편의점 점장으로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런 켄지에게 과거의 꿈이 찾아온다. 혹은 예언이라고 불러도 좋다. 어렸을 때 만화잡지에 흔히 나오던 '세계 멸망'의 시나리오를 만든 적이 있었는데, 그게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과거가 떠오를 때마다, 켄지는 경악스럽다. 이미 잊어버린 과거를 기억하려 애쓰면서 그는 공포에 사로잡힌다. 과거의 꿈이, 악몽 같은 현실로 도래한 것이다.
본격과학모험만화라고 이름 붙여진 <20세기 소년>의 작가는 <해피> <야와라> <마스터 키튼>과 <몬스터> 등 수많은 걸작을 창조한 우라사와 나오키다. 아버지가 운영하던 술가게를 편의점으로 바꾸고 열심히 살아가는 청년 켄지에게 사건이 닥친다. 어린 시절의 친구이며 고등학교 교사인 동키가 자살을 한 것이다. 동키는 죽기 전에 켄지에게 편지를 보냈다. 거기에는 이상한 마크가 그려져 있다. 눈 위에 하늘을 가리키는 손이 들어 있고, 다시 그 안에 눈이 그려져 있는 마크. 그 마크는 계속해서 켄지의 앞에 나타난다. 일가족 전체가 사라진 집의 벽에 그려져 있고, '친구'라는 이상한 종교집단의 상징으로 쓰이기도 한다. 기억을 되살려가던 켄지는 마침내, 그 마크가 켄지와 친구들이 어린 시절 '우리는 친구'라는 표시로 만든 것임을 알아낸다. 그 마크를 상징으로 사용하던 집단은 마침내 세균병기를 이용하여 샌프란시스코, 런던, 오사카를 공격하고 세계의 종말을 준비한다.
그런데 이건, <20세기 소년>의 간단한 프롤로그에 불과하다. <20세기 소년>을 펼치면 처음에는 1973년이 나온다. 몇 장을 넘기면 이번에는 21세기가 나온다. 몇 장 뒤에는 정확히 알 수 없는 시대가 나오고, 다시 97년이 등장한다. <20세기 소년>은 일단 1997년을 현재시점으로 진행된다. 켄지가 칸나를 키우며 편의점을 운영하던 때, 동키가 죽고 '친구'라는 집단이 세력을 넓혀가던 시기. 그러면서도 <20세기 소년>은 수없이 시간을 옮겨가며 진행된다. 특히 켄지와 친구들이 공터에 비밀기지를 만들어 '친구'의 마크와 파멸의 시나리오를 만들던 69년으로는 쉴 새 없이 플래시백이 이어진다.
워낙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하고, 수많은 정보가 제시되기 때문에 이야기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은데도 <20세기 소년>은 독자를 확 빨아들인다. 처음에는 그냥 엽기적인 사건이 벌어지고, 과거와의 연관성이 밝혀지면서 조금씩 수수께끼가 풀리는 것 같다. 하지만 모든 인물과 사건들 사이의 '붉은 실'이 조금씩 밝혀지면서도, '핵심'은 여전히 남아있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상황이 던져진다. 절로 탄성이 나올 만큼 정밀하게 진행되는 <20세기 소년>은 플롯과 연출의 테크닉이 절정에 달해있는 느낌을 준다.
켄지는 처음에 '친구'의 정체를 오쵸라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 가장 똑똑했고, 친구의 마크도 만들어냈던 오쵸. 그는 몇 년 전 태국에서 행방불명된 적이 있었고, 돌아온 후 회사를 그만두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하지만 '친구'는 오쵸가 아니었고, 오쵸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켄지는 '친구'의 정체가, 어렸을 때에도 늘 가면을 쓰고 다니던 사다키요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실은 알 수 없다. 그 시절 켄지가 다니던 학급의 급식 수저가 초능력이라도 쓴 것처럼 모두 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범인은 알지 못한다. 정체가 밝혀질 듯하면서, 결국 드러나지 않는다.
독자를 사로잡는 탁월한 연출과 디테일
<20세기 소년>은 트릭의 사용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단서를 밝히면서도, 결코 근원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독자가 상상력을 발휘해 모든 단서를 짜 맞춰 어렴풋한 상을 그려내면, 다시 모든 것이 어둠 속으로 흘러간다. 아 이런 이야기였군, 하는 생각이 들자 다시 현재시점이 2014년으로 껑충 뛰어버린다. <20세기 소년>은 독자의 반응과 추리를 염두에 두면서, 언제나 한 발짝을 앞서 달아나버린다. 알 수 없기에, <20세기 소년>은 매혹적이다.
<마스터 키튼>과 <몬스터>이 그랬듯이,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는 현실적이다. 직접 스토리를 쓰지는 않았지만 전 세계를 무대로 한 <마스터 키튼>의 그림은 사진을 보는 것 이상으로 사실적이었고, <몬스터> 역시 희대의 살인마를 등장시키면서도 냉전시대의 씁쓸한 과거와 추악한 사건을 이야기 속에 충분히 용해시켜 놓았다. 이야기의 흥미진진함은 물론이고, 상황과 사건의 디테일에서 우라사와 나오키는 지독하게 현실적이었다.
<20세기 소년> 역시 그렇다. '친구'에 대한 묘사를 보다 보면 옴진리교 생각이 난다. '지구의 종말'을 목표로 세균무기를 만들어 테러를 일으켰던 사이비 종교집단. 만화적인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던 그들을 모델로 우리사와 나오키는 리얼한 악몽을 그려낸다. 만약 그들이 진짜로 '힘'을 가지고 있었고, 치밀하게 준비를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세기말을 앞둔 사람들의 공포심을 자극하고, 그들이 의지할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친구'가 그들 모두를 구원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이 말하는 모든 상황은 아이들이 공상하는 '거짓부렁'에 불과한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 속아 넘어가고, 세상이 그렇게 흘러간다. 다르게 말한다면, 그 '공상'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게 허황된 것들이 실제로 벌어지고, 우리들을 옥죄는 이 세상. <20세기 소년>이 그리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의 우스운 현실인 것이다.
또한 <20세기 소년>에서도 독자의 관심을 끄는 것은, 미스터리 이상으로 등장인물들의 구구한 삶의 궤적이다. 누가 누구를 배신하고, 누구를 사랑하고, 누구를 믿고, 누구를 죽이고 등등에 저마다의 묵직한 사연이 담겨 있다. <20세기 소년>은 너무나 대작이어서 이야기가 흔들거리는 경향도 있고 끝을 맺기도 힘들었지만, 우라사와 나오키는 일본 내에서도 대작을 만들어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작가로 꼽힌다. '대 장편을 만들어내는 재능과 발군의 능력'을 현재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작품을 읽다 보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능력과 적절한 템포를 유지하고 끌어가는 센스에 찬탄하게 된다. 어느 모로 보나, 우라사와 나오키의 작품은 발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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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때는 그냥 만화가 좋았는데 머리가 점점 커지면서 작가를 보고
만화를 보게 되더라구요 인간심리나 현실정 정말 이 만화보면서 작가
천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