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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가> <모녀귀> <이프>로 유명한 이종호 작가의 호러 & 판타지 <귀신전>은 7월 21일 랜덤하우스코리아에서 출간 되었습니다(2권은 8월 27일부터 출간). 익스트림무비에서는 작가분과 출판사와의 협의를 거쳐 독점 연재로 공개됩니다. 절대로 퍼가시면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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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귀사리
제2장 액막이
제3장 뺑소니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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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뺑소니


차츰 의식이 돌아오자 상철은 남자들의 대화를 들을 수 있었고 그들이 하는 말이 모두 자신을 가리킨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의식이 돌아오고 기억이 돌아오면서 그 무시무시하던 순간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눈이 부신 불빛과 함께 충격이 그를 덮쳤고 몸이 아득한 허공으로 떠올랐다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 짧은 순간에도 그는 아내와 딸 정현을 생각했다. 모든 장면들이 슬로우 화면처럼 느리게 흘러갔고 얼마 후 감당할 수 없는 끔찍한 고통이 전신을 엄습했다. 차에서 남자가 내려 그의 상태를 확인했다. 차가운 바닥의 냉기가 뺨을 타고 뼛속까지 스며들었고 서서히 의식이 사라져갔다.

소리를 내려고 했지만 커다란 돌덩이가 막고 있는 것처럼 목구멍은 답답했고 가슴이 시큰거렸다. 눈꺼풀 위로 밝은 불빛이 어른거렸고 사람의 그림자가 비쳤지만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알 수 없는 슬픔과 분노가 목구멍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는 서서히 죽음을 실감하는 중이었다. 이렇게 빠르고 허무하게 죽음이 자신을 덮치리라곤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죽었다!

그 짧은 문장이 뇌리에 선명하게 각인되는 순간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이제 그에겐 몸이 없었다. 그저 기억의 덩어리처럼 의식만 남아 있을 뿐이다. 자신을 죽인 그 누군가에 대한 원망이 소용돌이쳤고 딸과 아내에 대한 집착이 그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저, 저기, 한상철 씨…….”

순간 상철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고개는 돌아가지 않았다. 그에겐 고개가 없었다. 무섭도록 떨리는 음성은 낯설기도 했지만 낯익은 음성이기도 했다. 너무나 가까운 사람인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상철은 목소리의 주인을 기억해내려 안간힘을 썼다. 확실히 살아 있을 때보다 의식이 둔감해졌다. 아니면 아직도 사고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인지도 모른다.

“아, 한상철 씨 부인 되십니까?”
“네. 저희…… 남편이 어떻게 되었다구요?”

아내는 툭 건드리기만 해도 그 자리에 무너질 것처럼 무섭게 떨고 있었다. 그랬다. 지금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지난 10여 년 동안 얼굴을 보며 살아온 아내였던 것이다.

“뺑소니 사고입니다. 남편이 확실한지 확인을 해주셔야 합니다.”

밝은 불빛 아래 노출된 눈꺼풀 위로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누군가의 떨리는 숨결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하지만 생전의 그런 생생한 느낌이 아니었다. 파동으로 전해지는 감정의 기복. 상철은 극도의 긴장과 불안상태로 아내의 반응을 기다렸다. 아내의 반응은 생각보다 차분했지만 음성은 분명 떨리고 있었다.

“맞습니다. 남편이 맞아요.”

아내는 울고 있는 것인가, 아닌가. 상철은 아내의 반응에 의아했다. 생각보다 무덤덤한 것 같아 서운하기까지 했다. 상철은 아내에게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이렇게 죽어야 하는 게 너무나 원통하다고. 하지만 모든 감정의 통로가 틀어 막힌 것처럼 슬픔과 분노와 안타까움은 밖으로 표출되지 못하고 가슴속에서만 답답하게 부풀어 올랐다. 한이 맺힌다는 건 이런 기분을 두고 하는 말일까.

“김 계장, 시체실로 옮기자구!”

하얀 가운을 입은 남자가 역시 하얀 가운을 입은 김 계장으로 불린 남자와 함께 이동식 병원 침대를 엘리베이터 앞으로 천천히 밀고 갔다. 침대 위 누렇게 때가 묻은 얇은 시트 아래 누군가 누워 있었다.

아내는 뭘 하는지 조용했다. 아마 평소 성격대로 조용히 눈물만 훔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잠시 후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김 계장은 침대를 엘리베이터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나머지 남자 하나가 아내에게 말했다.

“같이 가셔서 유품들하고 확인하시죠.”

갑자기 아내가 공포와 두려움이 뒤섞인 음성으로 소리쳤다.

“싫어요. 무서워요! 안 갈래요. 너무 무서워서 못 가겠어요!”

그녀는 정말로 온몸을 벌벌 떨면서 부르짖었다. 뜻밖이었다. 무섭다니. 아내가 남편인 자신을 무서워하다니. 하긴 아내는 평소에도 겁이 많았다. 공포영화도 잘 보지 못했다. 이제 아내에게 자신은 남편이 아닌 무섭고 끔찍한 몰골을 한 시체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왠지 서운하고 화가 났다. 남자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엘리베이터로 돌아가며 사무적으로 말했다.

“그럼 나중에 저희가 따로 유품들을 챙겨 건네 드리죠.”

엘리베이터 문이 굳게 닫히고 아내의 숨결이 아득하게 멀어져갔다. 상철은 엘리베이터가 지하로 내려갈 때 나는 덜컹거리는 기계음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남자들이 자기들끼리 뭐라고 수군거렸지만 그는 더 이상 그들의 말을 알아들을 겨를이 없었다.

상철은 지금 견딜 수 없이 심한 절망과 충격에 휩싸여 있었다. 현재의 상황들이 꿈이라면, 그야말로 아침에 눈을 뜨면 말끔히 사라져버릴 그런 개꿈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남자들이 침대를 거칠게 밀어 시체실의 문을 열어젖히고 안으로 들어갔다. 온통 하얀 페인트로 칠해진 시체실은 마치 죽음의 공포에 저항하려는 듯 눈부신 수많은 형광등으로 실내를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사방에는 은행의 작은 금고를 연상시키는 사물함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고 가운데 공간은 창백하리만치 휑하니 비어 있었다. 남자들은 침대를 가운데 공간에 세워놓고 익숙한 손짓으로 각자의 주머니에서 마스크와 장갑을 꺼내 얼굴과 손에 꼈다.

그들은 익숙하게 상철의 시체를 덮고 있던 가운을 젖혔다. 가운이 젖혀지자 참혹하게 망가진 남자의 시신이 드러났다. 그들은 역시나 익숙한 손짓으로 그의 옷을 겉옷부터 벗기기 시작했다. 그들의 손길은 상철을 더 이상 인간으로 여기지 않는 듯 우악스러웠다. 팔이 빠지질 않자 거칠게 옷을 잡아 젖히는 바람에 팔이 과다하게 비틀렸다. 남자 중 한 명의 음성이 마스크 속에서 새어나왔다.

“어제 점심 먹은 식당 말야, 그 집 음식 괜찮던데?”
“그렇죠? 그 집 은근히 음식 잘 하기로 소문난 집이에요. 순댓국도 잘 하지만 정말 특식은 내장탕이라니깐요? 어때요? 오늘은 내장탕으로 할까요?”
“거 좋지! 하여간 밥 먹는 것도 아주 일이라니깐, 일!”

남자들은 마치 마네킹의 옷을 벗기기라도 하듯 아무런 감정도 없는 기계적인 몸짓으로 할 일을 해내가고 있었다. 마침내 그들은 상철의 셔츠와 바지, 그리고 속옷까지 완전히 벗겨냈다. 이제 차가운 철제침대 위엔 30대 후반에 들어선 한 남자의 초라한 나신이, 삶의 무게에 짓눌려 버둥대며 살아온 어느 가장의 보잘것없는 육신이 볼썽사납게 남았다.

남자들은 알몸인 그의 나신을 시체보관함 앞으로 밀고 갔다. 그리곤 가로, 세로 1미터도 채 되지 않을 것 같은 작고 답답해 보이는 문을 열었다. 안에서 차가운 냉기가 뿌연 서리와 함께 새나왔다. 그들은 침대 시트와 함께 상철의 시신을 그 안으로 밀어 넣고 굳게 문을 닫았다. 시체실 문을 나서며 그들은 다시 대화를 시작했다.

“장미의 김 마담 말야, 볼수록 삼삼하지 않아? 저번에 내가 허벅지를 한번 만져봤는데 몸이 진짜 열아홉 영계 못지않더라구.”
“장미 김 마담요? 총무과 정 차장이 벌써 꿀꺽했다고 하던데?”
“진짜야? 그 인간 그거 평소엔 숙맥처럼 행동하더니 완전히 내숭 떤 거야?”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고 원래 늦바람이 무섭다는 거 아닙니까?”
“하긴 그래. 하하하!”

두 사람의 목소리가 차가운 복도에 긴 여운을 남기며 서서히 멀어져갔다. 이윽고 침침한 복도와 백색의 공간은 완전한 적막에 휩싸였다. 이곳에서는 살아 있는 그 어떤 것의 숨결도 느껴지지 않았다. 너무나 무섭고 답답했다. 이대로 이렇게 끝낼 수는 없다.

최소한 아내와 정현에게 마지막 인사라도 전해야 하지 않을까. 나를 이렇게 만든 누군가에게 복수라도 해야 눈을 감을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렇게 죽어야 하는가.

왜! 왜! 왜!

순간 눈이 번쩍 떠졌다. 상철은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는 자신의 시신이 들어 있는 시체보관함을 관통해 위층에 있는 시체보관함에까지 머리통을 들이밀었다. 끔찍한 누군가의 시신이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비명과 함께 몸을 솟구쳤다. 아니,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 그저 마음을 먹었을 뿐인데 그는 시체보관함을 벗어나 시체실 한가운데 서 있었다.

그는 육신이 아닌 영체로 땅에 발을 딛고 있었다. 만족스럽진 않지만 아직 자신에게 기회가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른 아내와 정현을 만나러 가야겠다는 생각에 상철의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때 등 뒤에서 섬뜩한 한기가 느껴졌다. 상철이 돌아서자 끔찍한 몰골을 한 뭔가가 시체실 한가운데 신기루처럼 서 있는 게 보였다. 시커멓고 남루한 옷자락과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이 반질거리는 머리를 보면 언뜻 승려가 연상되었지만 그것의 눈엔 눈알이 없었다. 눈알 없는 시커먼 눈구멍 안에는 깊이를 모를 어둠이 담겨 있었다.

그것이 킬킬거리는 기이한 웃음소리를 내자 턱이 없는 것처럼 입이 덜렁거리며 벌어졌다. 시커먼 눈구멍과 늘어진 입. 마치 하회탈을 연상시키는 그것이 소리를 냈다. 소리는 귀가 아닌 상철의 머릿속으로 곧장 스며들었다.

“앞으로 우리, 친하게 될 것 같은데. 킬킬킬.”


3

중간고사 시험시간. 고3을 앞둔 탓에 교실에는 어느 때보다 긴장감이 흘렀고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수학에 자신 없는 공표에겐 가장 괴로운 시간이기도 했다. 공표는 시험시간을 30분이나 남기고 문제를 다 풀어버렸다. 아는 문제가 열 문제도 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식이라면 수학점수가 바닥을 맴돌 것 같았다. 지난번에도 점수가 나빠 아빠에게 엄청나게 혼났던 걸 생각하면 은근히 불안했다. 공표는 기를 불어넣고는 볼펜을 굴리며 모르는 문제의 답을 찍어나갔다.


다음 이야기
제3장 뺑소니 (3)




(일러스트: 이자정)


 

Posted by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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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의 영화, 다섯 번의 드라마로 만들어져 기록적인 흥행을 올린 일본 추리소설 사상 불후의 걸작. 명탐정 긴다이치 코스케의 대활약을 그린 요코미조 세이시의 <이누가미 일족>은 막대한 유산 상속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연쇄 살인의 음모를 박진감 넘치게 그린 작품으로, 추리 소설 팬이라면 필견의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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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재밌어요! 2008/09/05 11:00

    아침부터 새로운 이야기가 올라와서 너무 좋네요..^^
    잘 읽고 갑니다!

    무서워요 ㄷㄷㄷ

  2. 띄엄 띄엄 댓글 다는 애독자.. ^^;
    오늘은 여유가 있어서.. 후다닥 읽고 댓글을...
    재미있게 잘 읽고 있습니다 ㅎㅎㅎ

  3. 항상 재미있게 보고 있어요..
    고맙습니다..화이팅이요!!^^

  4. 항상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감사 합니다~^^

  5. 망부석 2008/09/05 13:52

    아.. 역시 한상철 씨의 영은 원한을 품고....
    아는분과 이름이 같아서 안타깝네요~
    부디 일이 잘 풀렸으면....ㅠ

  6. 재밌군요, 잘 보고 갑니다. 또 오겠습니다.^^

  7. 잼나요!!! 2008/09/06 10:09

    너무 재미 있어서 순식간에 후다닥... 읽고 갑니다.
    매일 들어 와야 될것 같네요... ^^;;;; 자주 업뎃 해주세요~~
    기다려 져요~~ ^0^

  8.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