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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가> <모녀귀> <이프>로 유명한 이종호 작가의 호러 & 판타지 <귀신전>은 7월 21일 랜덤하우스코리아에서 출간 되었습니다(2권은 8월 27일부터 출간). 익스트림무비에서는 작가분과 출판사와의 협의를 거쳐 독점 연재로 공개됩니다. 절대로 퍼가시면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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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귀사리
제2장 액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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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뺑소니


1

아침부터 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늦가을 비였다. 아마도 비가 내리고 나면 겨울의 매서운 바람이 본격적으로 불어 닥칠 듯했다. 하루 종일 내린 비에 나무에 남아 있던 마지막 잎새들이 떨어져나갔다. 덕분에 거리는 노란 은행잎들로 뒤덮였다.

어둠이 내리자 카페 ‘레테의 강’ 앞거리의 가로등에 하나 둘 불이 켜졌다. 떨어진 은행잎들은 더욱 노랗게 빛을 발했다. 소연은 카페 창가에 턱을 괴고 앉아 후드득 창을 두드리는 빗줄기와 노랗게 빛나는 밤의 기운에 흠뻑 취해 있었다. 귀로는 레드 제플린이 들려주는 ‘Stairway to heaven’의 감미로운 기타선율이, 코끝으로는 향긋한 커피향이 흘러들었다. 날씨가 흐린 탓에 오늘 레테에는 손님이 없었고 덕분에 소연은 모처럼 느긋한 시간을 즐길 수 있었다.

대학에 입학해 신입생 환영회다 엠티다 정신없이 끌려 다닌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겨울방학이라니 실감이 나지 않았다. 지난 1년은 그야말로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느라 숨 돌릴 틈 없이 바쁜 일상의 연속이었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 혼자 힘들게 직장에 다니며 뒷바라지하는 엄마에게 조금이라도 부담을 덜어주고 싶어 공부도 아르바이트도 열심히 했다고 생각한다.

다행히 그녀는 노력에 대한 보상을 충분히 받았다. 장학금을 탄 것도 기뻤지만 학교 심령동호회에서 수정을 만나 이런 멋진 아르바이트를 얻게 된 게 소연으로선 무엇보다 기쁘고 행운으로 여겨졌다.

“이야~ 그러고 있으니까 이젠 제법 숙녀티가 나는데?”

돌아보니 찬수가 쟁반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식을 들고 서 있었다.

“처음 레테에 왔을 때만 해도 고등학생이 서빙하는 것 같아서 영 어설퍼 보였는데 말야.”
“피이~ 내년이면 후배도 생긴다고요.”
“나이 먹는다고 즐거워할 때가 정말 좋은 때지.”

찬수가 테이블에 스파게티를 내려놓자 소연이 환호성을 질렀다. 찬수는 커피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요리솜씨도 일품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제 마음을 딱 아셨어요? 그렇잖아도 비도 오고 괜히 우울해져서 기분이 울적해지려던 참인데.”
“날씨 생각하면 김치빈대떡이 딱이긴 한데 카페에서 김치빈대떡은 좀 그렇잖아?”

소연은 입 안에 뜨거운 스파게티를 가득 밀어 넣고는 맛을 음미하며 말했다.

“호호호~ 너무 맛있어요. 역시 우리 사장님 요리 솜씨는 최고예요! 나중에 누구하고 결혼할지 모르겠지만 사장님은 진짜 사랑받는 남편이 될 거예요! 제가 보증해요, 진짜로!”

소연은 입으로 연신 우물거리면서 엄지손가락까지 치켜세우며 호들갑을 떨었다.

“야, 야! 먹으면서 말하지 마. 다 튀잖아! 앞으로도 자주 해줄 테니까 아부 그만 떨고 그냥 먹기나 해!”
“히히. 정말이죠?”

소연은 다시 포크로 스파게티를 말아 입 안에 넣고는 행복하다는 표정으로 오물거렸다. 찬수가 밖을 내다보며 걱정스럽게 말을 이었다.

“근데 장 법사님하고 공표, 수정이는 괜찮은지 모르겠네.”
“지금까지 아무 연락 없었어요?”
“아니, 아까 통화했어. 이번에 상대한 악령이 액막이 인형의 염체였다던데 보통내기가 아니었던 모양이야. 수정이는 몸도 많이 안 좋은가봐.”
“액막이 인형의 염체요? 그게 뭔데요?”
“아가씨는 그냥 스파게티나 드셔.”
“무시하지 마세요. 저도 수정 언니 책 읽어서 저쪽 세계에 대해 대충 안다구요. 그리고 앞으로 공부도 할 거구요. 제가 자그마치 심령동호회 회원이란 거 잊으셨어요?”

찬수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무시하지 않을 테니까 저쪽 세계에 대해 너무 지나친 관심 갖지 마세요! 사는 게 피곤해지니깐!”

소연이 피이, 하고 입을 삐죽거리며 다시 스파게티를 뜨는데 카페 문이 열렸다. 소연이 누가 왔는지 고개를 빼보고는 말했다.

“어, 숙희 언니네? 저 언니가 왜 여기 왔지? 오늘 아프다고 학교 수업도 빼먹은 것 같던데?”
“그래? 너하고 친하니?”
“아뇨. 학교에서 워낙 조용한데다 같이 다니는 사람도 없어서 잘 몰랐어요. 근데 수정 언니가 소개해주더라구요. 앞으로 언니 일도 도와주고 저 없을 때는 레테 일도 도와줄 거라고 친하게 지내라면서.”

찬수는 새벽의 일도 있고 해서 약간 서먹한 기분을 느꼈다. 캡 모자를 눌러쓴 숙희가 두 사람을 향해 다가왔다. 우산을 안 쓰고 왔는지 그녀의 온몸은 흠뻑 젖어 있었다. 찬수가 놀라 말했다.

“우산을 쓰고 오지. 이 비를 다 맞았냐?”

소연도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 물었다.

“언니, 몸은 좀 괜찮으세요? 오늘 수업도 빠지신 것 같던데.”

하지만 숙희는 두 사람을 본 체 만 체 인사도 하지 않고 음식이 놓여 있는 테이블을 내려다보더니 낮고 음습한 소리로 말했다.

“니가 언제부터 내 몸 걱정했니?”
“예?”

소연이 당황하며 반문하자 숙희가 말했다.

“여기가 니네 집 안방이니? 손님들 오면 어쩌려고 홀에서 냄새를 풍기면서 음식을 먹어?”

그러더니 숙희는 소연이 뭐라 변명할 사이도 없이 다짜고짜 다 먹지도 않은 스파게티 접시를 챙기기 시작했다. 그런 숙희의 모습에 놀라 소연도 찬수도 당황스러운 표정을 주고받았다. 보다 못한 찬수가 말했다.

“그거 내가 소연이 먹으라고 만들어준 거야. 어차피 지금 손님도 없고 해서 괜찮으니까 그냥 놔둬.”

찬수의 말에 숙희가 멈칫하더니 말했다.

“그래요, 그럼. 주인이 괜찮다는데 제가 괜한 참견을 했네요. 전 수정이가 자기 없는 동안 카페 좀 잘 지켜달라고 해서 그랬던 건데.”

그러면서 숙희는 치웠던 그릇을 다시 아무렇게나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소연이 황급히 말했다.

“아, 아니에요. 언니, 저 다 먹었어요. 사실 입맛도 별로 없었어요. 그릇은 제가 얼른 치울게요.”

소연은 찬수에게 살짝 눈짓을 하곤 얼른 그릇을 챙겨 주방으로 가져갔다. 찬수가 어색하게 말했다.

“그럼 수정이 부탁 때문에 카페에 별일 없나 살피러 나온 거야?”

숙희는 대답 대신 자리에 앉더니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왜, 무슨 기분 나쁜 일이라도 있었어?”

숙희가 고개를 들고 찬수를 올려다봤다. 캡 모자의 챙에 가려진 탓인지 눈빛이 무척 어두워 보였다. 숙희가 입을 움직여 뭐라고 말을 했는데 소리가 너무 작아 찬수는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찬수가 ‘뭐라구?’하면서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자 숙희가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오빠 원래 그렇게 헤픈 사람이냐구요.”

찬수는 황당한 표정으로 숙희를 바라봤다.

“그게 무슨 소리야?”
“아무한테나 그렇게 친절을 베풀면 상대방이 착각하잖아요.”
“뭐? 지금 소연이한테 스파게티 만들어준 것 갖고 이러는 거야?”
“그럼 제가 뭣 때문에 이런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때 소연이 다가오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놀란 표정으로 멈춰 섰다. 찬수는 소연에게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소연이 얼른 말했다.

“저 오늘은 그만 들어가 볼게요. 어차피 저녁에 손님도 없을 것 같고.”

찬수가 그렇게 하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숙희는 그런 소연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소연이 나가자 찬수가 말했다.

“너 뭔가 오해를 하나 본데 난 나로 인해 다른 사람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아져. 지금도 소연이가 내가 만든 스파게티를 너무나 맛있게 먹어줘서 기분이 좋거든? 물론 지금은 그 대상이 소연이지만 어느 때는 수정이가 될 수도 있고 또 어느 때는 숙희 니가 될 수도 있어. 그냥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근데 그게 뭐가 잘못됐다는 거야?”

테이블만 쳐다보고 있던 숙희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뜻밖에도 증오에 차 있는 사람처럼 그녀의 눈은 강렬하게 빛나고 있었다.

“아무한테나 그런 친절을 베푸는 건 아니잖아요. 오빠가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의 범위에는 예쁘고 날씬한 여자들만 들어가는 거 아닌가요?”

찬수는 한숨을 푹 쉬고 말했다.

“무슨 근거로 그렇게 생각해?”
“그냥 보면 다 알아요. 남자들은 다 그렇거든요. 나같이 못생기고 뚱뚱한 여자들에겐 절대로 그런 친절을 베풀지 않죠.”
“멋대로 단정하지 마! 그리고 니가 왜 그런 걸 참견해? 너무 무례하단 생각 안 드니? 우리는 어제 처음 잠깐 만났을 뿐이야. 근데 새벽에도 갑자기 불쑥 찾아와서 자기 할 말만 하고 가버리고 말야. 너 왜 이렇게 사람 당황하게 만드니? 상대방도 네 얘기를 들어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구. 근데 넌 상대의 기분 같은 건 무시하고 니 기분대로만 행동하잖아. 새벽에 너 그렇게 가고 난 다음에 내가 얼마나 기분이 불편했는지 알아?”
“그랬겠죠. 아니, 그랬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새벽에 찾아온 사람이 만약 제가 아니고 수정이나 소연이였다면 반대로 오빠 기분은 오히려 좋아졌겠죠.”

찬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이숙희! 너 보자보자 하니깐 정말!”

숙희도 뒤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안해요. 못생기고 뚱뚱한 게 마음도 뒤틀렸죠? 앞으로 최소한 저한테는 친절하게 굴지 마세요. 착각하고 마음에 상처받을지도 모르니깐. 이건 경고예요!”

찬수가 뭐라고 말할 사이도 없이 숙희는 자기 말만 하고 홀을 가로질렀다. 숙희가 막 카페를 나서려는데 앞에 차가 한 대 와서 멎었다. 수정의 차였다. 운전석 문을 열고 내린 선일이 조수석 문을 열고 수정을 부축했다. 뒷문으로는 공표가 내렸다. 숙희가 밖으로 달려 나가며 소리쳤다.

“수정아!”

수정은 안색이 좋지 않았고 차에서 내리는 것도 힘겨운 듯 보였다. 숙희는 그런 수정을 부축하며 호들갑스럽게 말했다.

“수정아, 왜 그래? 어디 다친 거야? 아저씨, 우리 수정이 왜 이래요?”

수정은 힘겹게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괜찮아. 좀 쉬고 나면 괜찮아질 거야.”

선일이 말했다.

“우선 사무실로 데려가서 좀 쉬게 해. 아마 당분간은 기 치료를 좀 받아야 할 거야.”

숙희는 수정을 부축해서 2층 사무실로 올라갔다. 선일도 컨디션이 좋지 않은지 지친 얼굴로 소파에 주저앉았다. 찬수가 공표를 보고 말했다.

“공표, 너도 갔던 거야?”
“예.”
“넌 괜찮아?”

공표가 씩 웃으며 말했다.

“네. 그럼 전 그만 가볼게요. 내일 중간고사라서 공부 좀 해야 돼요.”

선일이 공표를 돌아보며 말했다.

“역시 젊은 게 좋네. 그러고 가서 시험 공부한다고? 이야~ 체력 부럽다! 잠깐 기다려. 비도 오는데 내가 숨 좀 돌리고 차로 데려다줄 테니까.”
“아니에요. 그냥 뛰어가도 15분이면 되는데요, 뭘.”

찬수가 카페 밖에 서 있는 묘화를 보곤 말했다.

“저 영은 아직도 따라다니네?”
“제가 언젠가 기억을 찾아주겠다고 약속했거든요.”
“그럼 안으로 들어오지, 왜 저렇게 밖에 서 있어?”
“묘화는 레테 안 좋아해요. 지금도 기억을 잃어버렸는데 여기가 기억을 잃어버리는 강이라 싫대요.”

선일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그래도 영이란 건 이승을 너무 오래 떠돌면 자꾸 음기가 쌓여 결국엔 악귀로 변하는 법이야. 적당한 때에 천도시켜줘야 해.”


2

두런거리는 낯선 소음과 목소리들이 커졌다 작아지기를 반복하더니 아득한 느낌으로 주변을 떠다녔다. 이상한 일이었다. 예민하게 살아 있는 청각을 제외하곤 온몸의 감각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눈을 뜰 수도, 손가락을 움직일 수도 없었다. 다만 몸이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것 같은 어지럼증을 느낄 따름이었다.

“어떻게 된 거야? 교통사고야?”
“예. 뺑소니 같습니다.”
“요즘 왜 이렇게 뺑소니 사고가 많아? 가족들한텐 연락했나?”
“예. 지금 부인이 이쪽으로 오고 있답니다. 지금쯤 도착할 때가 됐을 텐데요.”


다음 이야기
제3장 뺑소니 (2)




(일러스트: 이자정)


Posted by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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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망부석 2008/09/03 23:04

    와~~!! 또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었네요~
    매번 새 이야기가 시작될 때마다
    가슴이 새로 두근거린다는..ㅎㅎ

  2. 또 다른 이야기의 시작이군요. 언제나 감사합니다.
    잠시나마 지루하지 않는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 주셔서요 -.-

  3. 매회 잘 읽고 있습니다... 새로운 이야기... 기대 만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