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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귀사리
제2장 액막이 (1)
제2장 액막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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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액막이
선일은 폭마술의 주문을 외우며 붉은 기운이 넘실대는 방 앞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양손은 엄지, 검지, 약지의 끝을 붙이고 나머지 손가락은 깍지를 끼는 수형(手形)을 맺은 다음 검지와 약지에 대운기(大運氣)의 기운을 집약시켰다.
선일은 손끝에 백색의 기운이 응축되기를 기다렸다가 맞잡은 양손을 얼굴로 당기더니 앞으로 힘차게 내뻗으며 소리쳤다.
“뇌전(雷電)!”
순간 그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곧고 눈부신 섬광을 닮은 기운이 방 안으로 뻗쳐 들어갔다. 방 안의 붉은 기운 한가운데를 뚫고 들어간 백기(白氣)가 뻗어나갔고 악령의 입에서 괴성이 터져 나왔다. 선일의 주문소리는 더욱 힘차고 또렷하게 공(空)의 세계를 압박해 들어갔다. 이제 방에 있던 붉은 기운이 걷히고 본래 방 안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선일은 주문을 통해 악령이 달아나지 못하도록 방문을 제외한 사방 벽에 주술을 걸었다.
악령의 환술에 사로잡혔던 공표도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 비록 기운은 하나도 없었지만 몸엔 별다른 이상이 없어 보였다. 악령이 달아나기 위해 방문 앞으로 달려들자 선일이 노란색 물건을 앞에 들이밀었다. 그건 바로 진희네 대문 앞 땅 속에 묻혀 있던 금귀부(禁鬼符)였다. 선일이 위엄 넘치는 음성으로 선언했다.
“선의 이름으로 악과 저주를 영원한 어둠 속에 봉하라!”
순간 악령이 비명을 질렀다. 방의 한가운데는 영적인 힘을 가진 블랙홀이 생겼다. 선일이 주문을 외우자 블랙홀에서 엄청난 압력이 분출되더니 악령과 붉은 기운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악령은 끔찍한 비명소리와 함께 구멍 속으로 사라졌다. 악령을 빨아들인 구멍은 ‘훔’ 하는 소리와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제야 공표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이제 정말로 끝난 건가요?”
선일이 대답 대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진희 아빠를 노려보며 말했다.
“아니. 아직 다 끝나지 않았어! 이 모든 비극을 잉태하게 만든 진짜 악이 여기 남아 있거든!”
선일은 진희 아빠에게 다가서며 말했다.
“액막이 인형을 조종해서 악행을 저지르게 하고 도와준 무당의 영이 바로 여기 진희 아빠의 몸속에 숨어 있어. 이 악귀를 없애지 않으면 인형은 언제 다시 살아날지 몰라!”
그 소리에 진희 아빠가 히죽 웃으며 여자 음성으로 말했다.
“달린 입이라고 잘도 지껄이는군! 내가 자그마치 187년을 이승을 떠돌며 살아왔는데 네깟 놈 따위에게 당할 것 같아?”
진희 아빠의 몸을 빌린 무당이 도망치듯 마당으로 내려섰고 선일과 공표가 뒤를 따랐다. 도망치던 무당은 갑자기 돌아서서 팔을 들어 올렸다. 무당의 손짓에 주변에 있던 나무상자 하나가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제야 선일이 긴장된 음성으로 말했다.
“젠장맞을! 아까 액막이 인형의 염체가 어떻게 환술을 썼을까 의아했는데 저 무당한테 배운 거였군! 공표야, 조심해! 비록 환술이지만 맞으면 실제로 치명상을 입을 수가 있어!”
말을 마치는 순간 무당이 팔을 움직이자 공중에 떠 있던 나무상자가 무서운 속도로 선일을 향해 날아들었다. 선일이 옆으로 쓰러지며 가까스로 몸을 피하자 나무상자는 벽에 가 부딪혔고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형체가 사라졌다.
선일이 미처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또다시 무당의 손이 움직였다. 이번에는 마당에 있던 곡괭이가 날아왔다. 피한다고 피했지만 곡괭이는 선일의 어깨를 치고 지나갔다. 선일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공표가 놀라서 선일에게 달려갔다.
“법사님, 괜찮으세요?”
무당이 낄낄거리며 말했다.
“주제를 모르고 아무 데나 끼어들다니! 이제 죽으면 네놈의 영도 내 밑에 두고 마음껏 부려먹어야겠다!”
곡괭이에 얻어맞은 선일의 어깨가 시커멓게 변하며 금방 부풀어 올랐다. 공표가 소리쳤다.
“어떡하죠?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나요?”
선일은 고통을 참으며 말했다.
“네가 주술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공표가 결연하게 말했다.
“해볼게요!”
“이건 환술이고 현실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공간이야! 따라서 육체적인 힘이나 능력이 아닌 기(氣)나 정신력으로 싸워야 해! 뭐든 마음과 정신으로 움직여야 해!”
“마음과 정신이라고요?”
무당이 손을 움직이자 이번에는 마당에 있던 커다란 돌멩이가 공중으로 떠올랐다. 선일이 말했다.
“거짓과 환술은 육신의 눈이 아닌 마음의 눈으로 보아야 그 실체를 제대로 볼 수가 있어. 마음으로 상대를 제압한다고 생각해! 내게 상처를 입힌 것도 실은 진짜 곡괭이가 아닌 저 무당이 주술로 만들어낸 영적인 무기인 셈이야! 확신만 있다면 너의 염력으로 저 무당을 이길 수가 있어!”
공표는 무당을 노려봤다. 그 순간 무당의 손이 움직였고 공중에 떠 있던 돌멩이가 날아들었다. 공표는 기합과 함께 손바닥을 들어 기운을 불어넣었다. 순간 날아오던 그 커다란 돌이 공표의 손바닥 앞에서 딱 정지했다. 돌은 마치 시간이 정지된 것처럼 공중에 머문 상태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무당과 선일, 심지어는 공표 스스로도 믿기지 않는 힘이었다. 아마 이 자리에 선일이 있었다고 해도 저처럼 압도적인 힘을 보여주진 못했을 것이다. 막았다 해도 어느 정도의 충격을 받았을 테니까. 공표가 기합과 함께 기공을 날리자 반대로 돌은 무당을 향해 날아갔다. 엄청난 속도와 기세로 돌이 진희 아빠를 후려쳤고 충격을 받은 무당의 영은 밖으로 튕겨 나갔다.
진희 아빠는 그 자리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졌고 비로소 무당의 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짙은 화장을 하고 오색의 옷을 입은 무당이 고통스러운 듯 버둥거렸다. 선일이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주문소리가 커지면서 공간의 왜곡과 떨림이 생겼고 이윽고 영의 뒤편으로 구멍이 생겨났다. 구멍에서 엄청난 압력이 뿜어져 나오더니 무당의 영을 빨아들였다. 무당의 영은 비명과 함께 점점 오그라들더니 구멍으로 빨려 들어갔다. 187년 동안 이승에서 온갖 악행을 저질러온 악령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14
수정이 눈을 감고 손바닥을 아래로 향한 채 액막이 인형과 그 염체가 남긴 잔류사념의 흔적을 추적하며 나아가다가 한 지점에서 딱 멈춰 섰다. 수정이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
“여기 같아요!”
진희네 식구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과 마을의 이장도 일제히 수정이 가리킨 지점으로 다가갔다. 선일도 뭔가 느껴지는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수정이 가리킨 곳은 밤나무집 대문으로부터 10여 미터쯤 떨어진 곳으로 지난 밤 선일이 숨어 있을 때 갑자기 액막이 인형의 염체가 나타난 곳이기도 했다.
마을 사람들이 삽을 들고 땅을 파기 시작했다. 땅을 판 지 십여 분쯤 지났을 때 부적으로 입구가 봉인된 커다란 항아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머리가 희끗한 이장이 앞으로 나서더니 말했다.
“설마 했는데 사실이군요. 아무리 옛날 일이라도 우리 마을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게 부끄럽군요.”
선일은 깊게 숨을 내쉬고는 천수경에 나오는 신묘장구대다라니의 염불을 독송했다. 신묘장구대다라니는 불교의식에는 거의 빠지지 않는 근본 염불로 세상의 모든 업장을 소멸시키고 공덕을 쌓게 한다는 진언으로 알려져 있다.
대다라니를 세 번 독송한 선일은 조심스럽게 항아리의 입구에 봉해진 부적을 벗겨냈다. 항아리 안에는 187년 전에 묻은 액막이 인형과 기석으로 추정되는 어린아이의 시신이 좁은 공간에 꽉 들어차 있었다. 인형의 악한 기운을 극대화하기 위해 무당이 매장된 기석의 시신을 파내 인형과 함께 다시 묻은 모양이었다. 덕분에 기석은 죽어서도 고통과 저주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다.
기석의 시신은 몸을 웅크리고 거의 원형 그대로 미라처럼 잠들어 있었다. 어느새 옆으로 다가와 시신을 본 수정이 흐느꼈고 진희도 울음을 터뜨렸다. 수정이 감정을 추스르려 애쓰며 말했다.
“기석이군요. 이 아이는 태어나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을 거예요. 죽을 때까지 누군가의 저주와 액운을 한 몸에 받으며 고통 속에 죽어간 불쌍한 아이니까. 심지어는 죽어서도 악령에게 사로잡혀…….”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다들 한동안 할 말을 잃고 있었다. 어렵게 진희 엄마가 입을 열었다.
“똑같이 자식 키우는 사람으로서 말이 안 나오네요. 대체 누가, 왜 이런 끔찍한 짓을 저질렀는지.”
이장은 혀를 찼고 마을 사람들도 탄식을 했다.
선일은 그 자리에서 인형을 불태우고 저주받은 기석의 영혼을 위무(慰撫)하기 위한 천도제를 지냈다. 천도제가 끝나갈 즈음 어디선가 구슬픈 새의 울음이 긴 여운을 남기며 산 저편으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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