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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잔뜩 있지만 신경쓰지 마세요.)

<비욘드>는 루치오 풀치의 최고 걸작으로 알려져 있는 영화입니다. 제가 풀치의 모든 영화들을 다 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그 평가는 맞을 거예요. 적어도 제가 지금까지 본 풀치의 '대표작들' 중 <비욘드> 정도의 완성도를 갖춘 작품들은 없었거든요. 그렇다고 '최고 걸작'이라는 표현을 말그대로 받아들이지는 마시길. 객관적으로 보면 <비욘드>는 여전히 어설픈 영화입니다. 편집은 삐걱거리고, 각본은 바보스럽고, 페이스는 느려터졌고, 특수 분장은 노골적이며, 엉터리 영어 더빙은 정말 기가 막힙니다.

그러나 루치오 풀치와 이탈리아 호러 영화의 전체적인 수준을 고려해보면 <비욘드>는 꽤 잘 만든 영화입니다. 이 영화가 쿠웬틴 타란티노의 영화사 '롤링 선더'에 의해 미국에서 재개봉되었을 때, 많은 주류 비평가들은 'Do Not Entry'라고 쓰여진 표지판이나 "You have carte blanche but not a blank check!"과 같은 덜떨어진 대사들을 찾아내고 즐거워했는데, 이 정도가 유치하다고 생각한다면 이 양반들, 이탈리아 호러 영화 장르를 단단히 과소평가한 거죠. <비욘드> 정도면 풀치가 상당히 그럴싸한 일을 해낸 겁니다. 잔인한 장면들은 창의적이고, 스토리는 엉성하지만 그래도 모양은 잡혀 있으며, 분위기는 정말 괜찮습니다.

영화는 뉴 올리언즈의 호텔 이야기입니다. 이 호텔의 지하실은 지옥과 연결된 일곱 개의 통로 중 하나고요. 하여간 호텔은 라이자 메릴이라는 뉴요커에게 상속되고 라이자가 이 호텔을 다시 열기 위해 수리를 하는 동안 기분나쁘고 불쾌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60년 된 시체가 발견되고, 사람들이 사고로 죽거나 다치고, 이상한 콘택트 렌즈를 쓴 장님 여인이 나타나 수상쩍은 경고를 하고... 끝에 가면 좀비들이 잔뜩 등장하는데, 이건 독일 배급업자들의 요구를 따른 것이라고 합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호러팬들이 가장 먼저 주목하는 부분은 신체 손상의 정도일 것입니다. 하긴 세 번이나 나오는 '눈알 조지기' 장면만 봐도 풀치가 최선을 다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눈을 찌른 손가락에 옆으로 튕겨나가고, 거미한테 뜯어먹히고, 뒤통수에 박힌 못머리에 밀려 앞으로 튀어나오고... 물론 풀치는 어린 소녀의 머리를 총알로 날려버리고 엄마의 얼굴에 염산을 쏟아붓는 짓도 서슴지 않습니다.

이런 장면들은 당시엔 엄청난 충격이었을 겁니다. 지금은 어느 정도 효과가 떨어졌지만요. 아무리 생각해도 피터 잭슨의 <데드 얼라이브>가 신체 손상이라는 호러 도구의 수명을 단축시킨 게 아닌가 싶어요. 예방주사 맞듯 그 영화를 일단 통과하고 나면 어떤 종류의 가짜 신체 손상도 그렇게 충격적으로 보이지는 않으니 말이에요.

그러나 잔인무도함의 충격이 떨어졌다고 해도 <비욘드>는 여전히 나쁘지 않습니다. 첫째로, 영화의 창의성과 열의는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조잡한 분장이나 엉터리 더빙처럼 시대에 뒤떨어지고 서툰 부분들은 오히려 흥겹고요. 둘째로, 영화는 잔인무도한 신체 손상 이상의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상당히 효과적인 종말론적 암담함을요. 영화 끝부분에 지옥문은 진짜로 열리고 두 주인공들은 희망없는 지옥으로 떨어집니다. 그 지옥이라는 곳이 장님이 되어 비명을 질러대면서 '존재하지 않는' 것밖에 할 일이 없는, 시체로 가득한 컴컴한 황무지에 불과한 곳이지만... 흠...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죠? 하여간 그 지옥 밑바닥에 도달할 때까지 영화가 자아내는 암담한 분위기는 상당한 수준입니다. 물론 이야기는 말도 안되고 설명되지 않은 부분이 너무 많으며 전체적으로 바보스럽지만, 정신이 멍한 좀비의 회상이라고 대충 우기면 되지 않을까요? 게다가 이런 엉성한 스토리 라인에 얽혀있는 분절된 비주얼은 종종 강한 시적 분위기까지 풍기는 걸요.

아직도 <비욘드>를 보지 못한 분들을 위해 간단한 안내문을 달며 이 글을 마치기로 하죠. 여러분이 장르에 익숙한 호러팬이라면, "The SHOCKING and VIOLENT nature of this film may be too intense for some viewers"같은 경고에 지레 겁을 먹거나 흥분할 필요는 없습니다. 여러분이 이탈리아 호러의 팬이 아니라면 '80년대 이탈리아 호러 무비의 최대 걸작' 따위의 평판에 넘어갈 필요도 없고요. <비욘드>는 루치오 풀치의 최고 걸작입니다. 그리고 풀치 팬들을 제외한 다른 이들에게, 그건 그렇게까지 엄청난 의미가 담긴 표현은 아니에요. (04/04/19)

기타등등

루이지애나엔 원래 지하실이 있는 건물이 없답니다. 해수면보다 낮아서 그렇다나요. 하지만 지옥문 위에 세워진 호텔에 대한 영화를 보면서 그런 데까지 신경쓰는 사람들이 몇이나 되겠어요?

Posted by DJU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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