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비평가들이 <비상근무>를 <택시 드라이버>와 비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영화를 <택시 드라이버>의 앰블런스 버전 속편으로 여기기도 하죠. <비상근무> 역시 약간 정신이 나간 운전사가 무시무시한 뉴욕의 밤거리를 누비는 이야기니까요. 어떻게 보면 이 영화가 그처럼 좋았던 초반 평에도 불구하고 잽싸게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 명단에서 밀려났던 것도 그 때문일 겁니다. 다들 이미 이 영화를 전에도 본 적 있다고 생각한 거예요.
하지만 <비상근무>는 <비상근무>이고 <택시 드라이버>는 <택시 드라이버>입니다. 폴 슈레이더가 각본을 쓰긴 했지만 분명히 존 코널리라는 원작자가 있는 작품이고 또 이 영화의 주인공 프랭크 피어스는 트래비스 비클과는 전혀 다른 고민을 안고 있는 전혀 다른 사람입니다. 이 정도가 반복이라면 존 포드의 서부극들은 모두 반복이게요.
그렇다면 프랭크 피어스의 문제는 무엇일까요? 그는 자기 직업에 도취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긴급 구조 대원이라는 직업은 정말 대단한 것이죠.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이 그의 손 안에 달려 있습니다. 일단 사람을 한 명 살리면 그는 어마어마한 도취감을 느낍니다. 여기까지야 괜찮습니다. 진짜 골치거리는 그가 몇 달 동안 단 한 사람도 살려내지 못했던 것이죠. 그러니 마약처럼 그를 지켜주던 도취감은 사라지고 주변에 널려 있는 헬스 키친의 끔찍한 모습들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한마디로 균형 감각이 망가진 것이죠.
영화는 프랭크가 사흘 동안 겪은 지옥 같은 야간 근무를 별 스토리 없이 보여줍니다. 그는 매일 같이 파트너를 바꾸어 가며 마약 중독자, 자살 미수자, 총기 피해자들을 태우고 다닙니다. 그러는 동안 그의 머리를 사로잡는 두 여자가 있었으니, 하나는 그가 병원으로 데려간 노인의 딸인 메리, 다른 하나는 얼마 전에 그가 살려내지 못해 죽은 로즈입니다. 그는 끊임없이 나타나는 로즈의 환영을 견뎌내지 못하고 이 끔찍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메리에게 매달립니다.
다른 스콜세지-슈레이더 영화들처럼, 이 영화도 천국과 지옥의 극을 달립니다. 프랭크는 사람들을 살리는 직업에서 신의 권능을 체험하지만 그가 일하는 곳은 사람들이 파리처럼 죽어나가는 뉴욕의 헬스 키친입니다.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은 균형을 살짝 잃어도 중심에서 그렇게 많이 벗어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천국과 지옥을 뒤섞으면서 간신히 평형 상태를 유지하던 프랭크와 같은 사람들에겐 중간은 없습니다. 대부분 지옥으로 떨어져 버리게 되지요.
그는 어떻게 보면 지옥에 떨어진 단테와 같은 사람입니다. 보다 정확한 은유를 위해 연옥이라고 고쳐 말해야 하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군요. 프랭크는 지옥에 완전히 속해있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는 남아 있는 희망에 매달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는 헬스 키친의 죄와 고통을 대신 짊어지고 필사적으로 구원을 향해 자동차를 몰아댑니다. 그는 스콜세지가 다룬 또 한 명의 '성자'입니다.
스콜세지와 슈레이더는 이런 프랭크의 삶을 미치광이의 뮤직 비디오와 같은 정신 없는 화면에 담아냅니다. 많은 스콜세지 비판자들은 온갖 테크닉이 쏟아지는 이런 화면에 투덜거리겠지만 매일 죽은 사람을 보는 정신나간 운전사의 눈이 짐 자무시 영화처럼 정갈한 광경만 본다면 그게 더 괴상한 일이겠지요.
프랭크의 삶은 끔찍하기도 하지만 코믹하기도 합니다. <비상근무>는 굉장히 어두운 블랙 코미디입니다. 제발 해고해달라고 반장에게 빌어대는 프랭크나, 각각 굉장한 개성을 과시하며 매일마다 새로운 '장'을 열어주는 프랭키의 파트너들이나, 끝없는 갈증으로 물을 찾아 헤매는 노엘이나 굉장히 웃기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지옥의 사람들은 원래 웃기는 법입니다. 보쉬의 그림들을 생각해보세요. 따지고 보면 영화의 코믹함은 소재의 끔찍함을 더 강조합니다.
결말은? 프랭크는 트레비스처럼 아무에게나 총을 쏴갈기거나 하지 않습니다. 그는 보다 건전한 방식으로 성스러운 사람입니다. 끝에 가서 그는 희미한 해결책을 찾는 듯 합니다. 결국 그는 사람 하나는 살리고 슬럼프에서 탈출하는 듯 하며, 끊임없이 삶과 죽음의 경계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던 메리의 아버지의 문제 역시 나름대로 해결합니다. 물론 아주 밝지는 않지만 앞으로 이 미친 일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정도는 되지요. 아마 많은 영화팬들은 이런 결말을 싫어할 겁니다. 이 터에서 노는 사람들은 가필드도 아니면서 성숙함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사람들이 성숙하고 유연한 태도를 보이면 그게 망가지는 징조라고 보죠.
물론 그렇다고 스콜세지의 이 영화에 <택시 드라이버>나 <성난 황소>만큼의 영화사적 가치가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전 <성난 황소>나 <택시 드라이버>를 정말로 좋아한 적은 한번도 없었어요. 그러나 <비상근무>는 좋아할만한 기분이 드는군요. 그건 프랭크를 연기한 니콜라스 케이지나 그의 세 파트너를 연기한 굿맨, 라임즈, 사이즈모어의 기가 막힌 프릭 쇼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스콜세지식 선곡 사이에 끼어드는 엘머 번스타인의 50년대식 고아한 음악 때문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적어도 전 <택시 드라이버>의 핏물보다는 <비상근무>의 핏물 속에서 목욕하는 게 더 좋습니다. (00/07/25)
기타등등
<E.R.> 사람들이 참 잘 참아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긴 그들은 프랭크처럼 미친 사람들은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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