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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귀사리
제2장 액막이 (1)
제2장 액막이 (2)
제2장 액막이 (3)
제2장 액막이 (4)
제2장 액막이 (5)
제2장 액막이 (6)
제2장 액막이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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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액막이 (10)
제2장 액막이 (11)
제2장 액막이
한 신부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며 늘 몸에 지니고 있던 묵주를 수정의 손에 쥐여주었다. 기도를 많이 한 사람이 지니고 있던 묵주에는 악을 물리치는 기운이 서려 있고 그걸 몸에 지니고 있으면 악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 평소에도 마음이 심란하거나 외로울 때 묵주를 돌리면 어느새 마음이 평온해지곤 했다. 수정은 손으로 묵주를 돌리며 소리 없이 주의 기도를 암송했다.
그믐밤의 어둠이 세상을 뒤덮었고 납덩이 같은 적막은 모든 소음을 짓눌렀다. 서울에선 그믐밤의 어둠과 적막 따위는 느낄 겨를조차 없다. 그믐밤 새벽에조차 취객들의 고성방가와 자동차소리 같은 소음들이 그치질 않는데다 불야성 같은 불빛이 밤새도록 거리를 밝힐 테니까. 그래서 수정에겐 어디를 둘러봐도 불빛 한 점 보이지 않는 이 완벽한 어둠이 더 낯설고 두렵게 다가왔다.
진희와 그녀의 부모들도 숨을 죽인 채 어둠을 응시하고 있었다. 수정은 진희의 머리맡에 있었다. 어둠 속에서 수정과 진희는 서로 손을 마주 잡고 있었다. 마루의 괘종시계가 새벽 1시를 알려오자 수정의 입 안은 긴장으로 바싹 말랐다.
여자의 울음소리가 들려온 건 바로 그때였다. 울음소리가 얼마나 음산한지 겁을 먹은 진희가 수정의 손을 힘껏 움켜잡았고 수정 역시 몸의 솜털이 올올이 일어서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놀랍게도 울음소리는 바로 지척에서 들려왔다. 너무 컴컴해서 누가 내는 소린지는 알 수 없었지만 소리는 바로 곁에서 생생하게 고막을 파고들었다. 이윽고 누군가 이불을 밀어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정의 동공이 저절로 커졌다. 어둠이 너무 짙어 이불 속에서 누가 나온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숨조차 내쉴 수가 없었다. 눈앞에서 어둠이 움직였다. 형체는 보이지 않았지만 뭔가 지나갔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그것이 안방 문을 열고 마루로 나갔다. 밖에서 기다렸다는 듯 뭔가가 소리를 냈다. 사람인지 짐승인지조차 모를, 기이하면서도 소름끼치는 소리였다.
“캑! 캑! 캑!”
수정은 직감했다. 마침내 그것이 온 것이다. 사념의 흔적만으로도 수정을 공포로 몰아넣고 숨조차 못 쉬게 만들었던 그것! 원한령이 또 다른 누군가의 목숨을 거두기 위해 이 집을 다시 찾은 것이다. 누군가가 대문을 열기 위해 마당으로 내려서는 기척이 전해졌다. 순간 진희는 불을 켜서 누구인지 확인하고 싶은 충동과 문을 열지 말라고 소리치고픈 충동을 동시에 느꼈다.
진희가 옆에 누워 있던 엄마를 흔들며 뭐라고 속삭였다. 하지만 진희 엄마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진희가 겁먹은 음성으로 숨죽여 말했다.
“아줌마, 엄마가 이상해요. 엄마가 아무런 말도 안 해요.”
진희의 말에 수정이 어둠을 더듬다가 신음하듯 말했다.
“진희야…… 네 아빠가 없어졌어!”
11
영을 제거하는 일은 또 다른 형태의 살상(殺傷)이고 의도가 무엇이든 스스로의 업보를 쌓는 일이다. 선일은 아직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영을 제거하거나 소멸시켜본 일이 없다. 그만큼 급박한 순간을 맞거나 사악한 영을 상대해보지 않았던 탓이다.
제거되거나 소멸된 영에게는 영원히 다음 생이 존재하지 않는다. 스승인 박두칠 영감은 돌이킬 수 없는 순간에만 사용하라며 폭마술(爆魔術)을 가르쳐주었다. 폭마술은 말 그대로 혼령을 터뜨려 소멸시키는 무서운 주술이다.
선일은 어쩌면 오늘 밤 폭마술을 사용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심란했다. 수정의 말처럼 영이 생전에 지은 업장을 소멸시킨 후 제령하는 게 최선이겠지만 그만큼 위험하다는 게 문제였다. 자칫하면 자신이 치명타를 입을 수도 있고 생명을 빼앗길 수도 있다.
선일은 착잡한 심정으로 어둠속에 도사리고 앉아 상대를 기다렸다. 만약 폭마술을 쓴다면 영이 집 안으로 들어서기 전 밖에서 해치워야 한다. 폭마술은 주변에 있는 다른 영이나 사람에게도 충격을 줄 수 있다. 그때 어디선가 방울소리가 났다.
‘왔다!’
선일은 속으로 외치며 팽팽한 긴장 속에 마음을 다잡았다. 혼령을 이끄는 방울소리가 먼 곳에서 희미하게 들려왔다. 적막한 어둠을 뚫고 들려오는 망자의 방울소리는 듣는 사람의 심장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소리도 아니었다. 방울소리가 또렷하게 들릴 정도로 가까워졌을 때 집 안에서 여자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웃음소리는 끊어질 듯 음산하게 다시 이어지며 사악한 기운을 품고 밖으로 밀려나왔다.
선일은 몸을 꼿꼿이 세우고 기를 불어넣었다. 어차피 다른 세상에 존재하는 영과 사람의 대결은 물리력이 아닌 기와 기의 싸움이다. 아무리 좋은 기운을 불어넣은 부적이라도 사용자에 따라 효험이 다른 건 역시 기와 정신력의 차이 때문이다.
방울소리가 귓가에서 울릴 정도로 가까워지자 선일은 어둠 속 영을 찾기 위해 눈으로 기를 모아 앞을 밝혔다. 현실의 공기층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현실에서는 결코 불지 않는 차갑고 음습한 바람이 축축하게 목덜미를 훑고 지나갔다. 온몸의 감각이 꼿꼿하게 일어섰고 후각을 마비시킬 정도의 피비린내가 덮치는 것처럼 사방에서 밀려들었다.
선일은 그 엄청난 살의의 기운에 자기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피비린내는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짙고 강렬했다. 그만큼 영의 기운이 강하다는 의미였고 악행을 많이 저질렀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선일은 초조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영의 기운이 바로 옆에서 느껴지는데 정작 그 영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바로 그때 눈앞에서 습한 기운의 덩어리가 뭉치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기운 덩어리가 뭉치며 영의 형체와 얼굴이 서서히 드러났다. 영은 바로 그의 눈앞에 웅크리고 있었던 것이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허를 찔린 셈이었다.
영이 어떻게 갑자기 나타났을까 의아한 생각이 들었지만 깊이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바로 코앞에서 영이 선일을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 놀라운 건 영이 사람이 아닌 인형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놀랍게도 원한령의 정체는 인형의 1)염체(念體)였다. 작은 어린아이 크기의 목각인형이 눈앞에서 선일을 조롱하듯 혹은 춤을 추듯 고개를 까딱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흉측한 가면모양의 인형 얼굴에는 액(厄)이라는 붉은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선일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액막이 인형의 원한령…….”
그랬다. 액(厄)자가 선명한 가면은 틀림없는 2)액막이 가면이었다. 가면의 이마에 새겨진 厄(액)이란 글자는 세상의 모든 재액(災厄)과 병고(病苦)를 불러들인다는 무서운 저주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언젠가 박두칠 영감이 액막이 인형의 염체와 관련된 얘기를 해준 적이 있었다. 원래 액막이 인형은 액운이 있는 집안에서 액운과 저주를 인형이 대신 가져가라는 좋은 의미로 사용된 것이다.
그런데 그런 액막이 인형을 남을 저주하는 데 이용한 사람들이 있었다. 즉, 미워하는 사람의 얼굴을 닮은 인형을 만들고 그 얼굴에 액막이 가면을 씌우면 모든 액이 인형 얼굴을 닮은 사람에게 간다는 것이다. 실로 무시무시한 저주가 아닐 수 없다.
심지어는 저주의 당사자에게 액막이 인형이라고 속여 곁에 두게 하기도 했다. 즉, 저주의 당사자는 인형의 가면 아래 자신을 닮은 또 하나의 얼굴이 있다는 걸 모른 채 자신을 저주하는 인형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 저주는 한층 깊어지고 가공할 힘을 발휘한다.
문제는 그런 액막이 인형 중 저주에 성공해 사악한 기운으로 충만한 인형을 불태워 없애지 않고 무당들이 주술을 걸어 악귀로 재차 이용했다는 점이다. 악귀가 된 액막이 인형은 주술을 건 사람의 명령에 따라 꼭두각시처럼 움직인다. 주술에 사용되어 사람을 해친 액막이 인형은 오랜 세월 악의 기운을 축적해 결국 염체와 같은 독자적인 생명력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박 영감의 말이 옳다면 지금 눈앞에 있는 이 인형이 바로 그 염체인 셈이다.
인간들의 저주스럽고 악한 마음으로만 이루어진 액막이 인형의 염체!
박 영감은 그것과 맞닥트리는 순간은 퇴마사에게도 두려운 경험이라고 말했다. 그 얘기를 떠올리며 인형의 염체를 보니 인형이 이전보다 훨씬 무시무시해 보였다. 그저 닿기만 해도 전염병처럼 인간의 온갖 끔찍한 저주와 원한이 한꺼번에 넘어올 것 같은 두려움이 일었다.
선일은 폭마술을 쓰기 위해 황급히 자세를 가다듬었다. 엄지와 검지, 약지 두 손가락의 끝을 붙였고 나머지는 깍지를 끼는 수형(手形)을 급하게 만들었다. 그는 검지와 약지에 대운기(大運氣)를 모으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코앞에서 마음까지 들여다보는 것 같은 액막이 인형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쉽게 집중할 수가 없었다. 정신은 흐트러지고 기운은 평소처럼 집약되지 않았다.
액(厄)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가면이 서서히 선일의 코앞으로 밀고 들어왔다. 코를 찌르는 피비린내와 함께 바늘처럼 날카로운 살기가 온몸을 콕콕 찌르며 파고들었다. 선일은 고통과 두려움으로 신음을 흘렸고 기운을 모으지도 못한 채 허겁지겁 폭마술의 주문을 외웠다.
“폭마술염 화염신 퇴악마귀 부생혼무!(爆魔術炎 華炎神 退惡魔鬼 不生魂無)”
하지만 영적인 기운을 담지 못한 주문은 맥없이 허공에 흩어지고 말았다. 주문은 아무런 위력도 발휘하지 못했다. 인형의 염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렸다. 마치 어린아이의 목소리 같았다. 어쩌면 저주당한 아이의 영도 염체와 함께 공존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순간 갑자기 예리한 칼이 피부를 가르는 것 같은 끔찍한 통증이 느껴졌다.
“아악!”
선일은 비명을 질렀다. 누군가 몸 안으로 손을 넣어 내장을 움켜쥐고 비트는 것 같은 끔찍한 고통이었다. 선일은 흐느끼며 몸을 뒤틀었다. 코에서 피가 흘러나왔고 입에선 고통을 참지 못한 울음과 비명이 연신 새나왔다.
그때였다. 진희의 집 대문이 열렸고 여자의 소름끼치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선일은 흐릿한 의식 속에 그쪽을 돌아보다 소스라치게 놀랐다. 대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다름 아닌 진희의 아빠였다. 진희 아빠가 여자처럼 깔깔거리며 액막이 인형을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순간 염체가 선일에게서 멀어졌고 그 덕에 압박이 조금 느슨해졌다. 아마 조금만 더 고통이 가해졌다면 생명을 부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몸을 움직여보려 했지만 전신이 마비된 것처럼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이젠 수정과 진희 가족을 걱정해야 할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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