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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위해 산다.

2007년 가을, 정병길의 전작 단편 <락큰롤에 있어 중요한 것 세 가지>(2006)를 뒤늦게 보았다. 독립영화와 다큐멘터리에 대한 몹쓸 선입견을 박살내기에 충분한 작품이었는데, 진짜인지 가짜인지 헷갈리는 내용들을 거칠게 이어붙인 영화를 본 첫 느낌은 ‘재미있다’였다. 영화를 본 뒤 나는 ‘일본의 록밴드 ‘기타 울프’의 한국 방문에 맞춰 만들어진 기상천외한 단편이다. 진위를 판단하기 힘든 이야기와 기타 울프의 기행이 일부러 싸구려 행색을 띤 영상과 어우러져 보는 재미가 만만찮다.’라는 짤막한 감상문을 적어놓았다. 그러나 감독의 이름은 잊고 있었다. 오늘, <우린 액션배우다>가 상영되기 전 보도자료의 감독 필모를 뒤적이던 내 눈에 <락큰롤에 있어 중요한 것 세 가지>라는 제목이 들어왔다. 아! 그의 이름이 정병길이었구나. 나는 미안했다.

<우린 액션배우다>의 시시덕대는 도입부는 <락큰롤에 있어 중요한 것 세 가지>(와 영화의 가짜 메이킹)의 즐거운 분위기를 그대로 가져온 듯했다. 감독의 엉뚱한 전력이 코믹한 페이크 다큐멘터리처럼 구구절절 나열되자, 그가 비슷한 영화를 재탕한 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나는 곧 <우린 액션배우다>가 전혀 다른 다큐멘터리임을 알아차렸다. <우린 액션배우다>는 한국영화계의 액션 사단 ‘서울액션스쿨’에 8기로 입학한 사람들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감독 자신이 8기 동기생 중 한명이었으니 영화의 유다른 살가움은 말할 필요도 없다.

영화의 제목에는 그럴듯하게 ‘액션배우’란 타이틀이 붙어 있지만, 등장인물들은 ‘스턴트맨’이란 이름으로 더 익숙한 존재들이다. 몸값 비싼 배우들이 차마 연기하지 못하는 부분을 대신 연기하면서도 스크린 위에 얼굴 한 번 제대로 내비치지 못하는 배우가 그들이다. 그런데 고난이도 액션 연기와 전문가로서의 스턴트맨을 묘사할 줄 알았던 영화는 소박한 인물들이 영위하는 다양한 삶의 양상 쪽으로 카메라를 서서히 돌린다. 액션에 몸을 던진 사람들에 관한 영화를 계획했던 정병길조차 중반부 이후 영화의 전개방향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영화의 신비함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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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에 입학한 36명 중 영화가 시작할 때 스턴트맨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서너 명이 다이고, 그나마 그 수는 영화가 마칠 때쯤 달랑 1명으로 줄어든다. 애초에 외모나 자질 면에서 번지르르함과 거리가 멀었던 그들은 맨땅에 헤딩하듯이 세상과 부딪히며 산다. 아무리 남성적인 투지로 무장한 그들이라고 고통이 달게 느껴질 리 없다. 그러나 그들은 하고 싶고 좋아하는 일에 도전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주인공 권귀덕의 말대로 그들은 “눈 질끈 감고” 행동하는 사람들이다. 현대인에게 몸은 오로지 보이기 위한 대상일 뿐, 그 기능을 점차 상실하고 있는 지금, <우린 액션배우다>의 주인공들은 ‘움직이는 몸'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 우리에게 깨우친다. <우린 액션배우다>의 진정한 의미는 여기에 있다. 영화는 ‘21세기의 주변부를 몸으로 살고 있는 한국 이십대들의 초상’을 아무 장식 없이 보여준다.

그런 솔직함 덕분일까, 매끈한 촬영과 편집을 기대하기 힘든 영화임에도 영화 내내 웃음과 눈물의 리듬이 멈추질 않는다. 예를 들면 이런 장면. 주인공 중 한 명인 곽진석의 어머니는 극중 아들이 죽는 장면을 떠올리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스크린에서 아들의 얼굴을 처음으로 보았던 어머니의 심정은 그랬단다. 한데 바로 다음 장면에선 진석의 어린 조카가 “삼촌, 제발 죽지 마”라며 울먹인다. 웃음 짓던 나는 어느새 울고 있었다. 그러한 ‘순수 에너지’가 영화를 가득 채우고 있으니 영화의 만듦새를 따질 겨를이 없다. 물론 일부 연출된 장면이 없지는 않겠으나, 꾸밈없는 사람들의 선명한 이야기가 뿜어내는 가공할 힘 앞에선 섣부른 저항을 포기해야 할 정도다.

<락큰롤에 있어 중요한 것 세 가지>에서 ‘기타 울프’가 일러주는 세 가지는 ‘가오, 근성, 그리고 액션’이었다. 시사회 전, 거무튀튀한 얼굴에 검은 양복을 걸친 배우들을 보면서 참 낯설었는데, 영화를 마친 뒤엔 그들에게서 ‘가오, 근성, 그리고 액션’이 빛나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멈추지 않고 달리는 사람은 아름다운 법이다. 인사를 나누는 자리에서 다섯 배우들은 입을 모아 ‘현실에 충실하며 산다.’고 말했다. 정작 Grass Roots의 <Let's Live for Today>를 들으며 자란 한국의 30, 40, 50대는 항상 미래를 걱정하며 살아왔는데 말이다. 미래는 현실에 충실한 자의 것이건만 왜 그들은 모르는 채 통과했을꼬. 어쩌면 미래에 대한 걱정은 인간의 사치일지도 모른다. 걱정해도 해결되지 않을 미래에 얽매여 사는 사람들은 현실의 기쁨을 누리고 현실 위에서 경주하는 방법을 터득할 일이다.

★★★☆


관련 리뷰

2008/08/20 - [개봉작 / 예정작] - 우린 액션배우다 (2008) by DJUNA
 

Posted by ibuti

익스트림무비 추천 도서

세 번의 영화, 다섯 번의 드라마로 만들어져 기록적인 흥행을 올린 일본 추리소설 사상 불후의 걸작. 명탐정 긴다이치 코스케의 대활약을 그린 요코미조 세이시의 <이누가미 일족>은 막대한 유산 상속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연쇄 살인의 음모를 박진감 넘치게 그린 작품으로, 추리 소설 팬이라면 필견의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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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Beatmania의 느낌

    Tracked from emptyframe's me2DAY 2008/08/21 02:03  삭제

    우린 액션배우다. by DJUNA. "영화는 ‘21세기의 주변부를 몸으로 살고 있는 한국 이십대들의 초상’을 아무 장식 없이 보여준다." 지난 뇩 아시안영화제때 꼭 챙겨볼려고 했었는데, 왜 안봤더라?

  2. Subject: link의 생각

    Tracked from link's me2DAY 2008/08/22 19:48  삭제

    우린 액션 배우다

  3. Subject: 우린 액션배우다

    Tracked from [puRiaE] 2008/08/30 10:23  삭제

    액션배우는 힘든거에요. 정도의 메시지 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어떠한 직업군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영화나 다큐멘터리 들은 우울한 이야기들을 잔뜩 늘어놓고 관심 좀 .. 굽신굽신 같은 분위기를 보여줍니다만, 이 영화는 유쾌하게 풀어내면서도 힘든점을 착실히 이야기 하는 것을 가장 큰 매력으로 뽑을 수 있겠습니다. 낄낄 거리며 웃을 수 있게 하지만, 마음속에선 안타까움을 자리잡게 하는거죠. 짝패의 과감하고 처절한 액션을 좋아하면서도, 놈놈놈의 온몸으로 보여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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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평이 아주 후하네요..
    보고 싶어지빈다.. 다큐는 좀 그런데..
    익스트림 커뮤니티 분위기도 보니 물건 나온듯 해서...
    개봉하면 꼭 봐야겠습니다..

    • ibuti 2008/08/21 01:56

      다큐멘터리에 대한 편견이 있는 분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영화입니다. 관객 3만 명이 손익분기점이라고 하더군요. 3만 명을 훌쩍 넘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2. 꼭 봅니다ㅋㅋㅋㅋㅋ

  3. 커뮤니티 가보니 호응이 장난아니던데...
    흑... 시사회 신청할걸 그랬나봐요..
    개봉하면 봐야겠습니다...

    • ibuti 2008/08/21 01:58

      시사회 신청을 안하셨나보네요. 음, 실수하셨어요. ㅎㅎ
      시사회 반응이 꽤 좋다고 합니다. 여기저기서 시사가 진행 중이던데 한번 알아보시길.

  4. 티엘린 2008/08/21 12:46

    떠글 시사회때 갔어야 하는데 ㅠㅠ
    신청해놓고 야근땜시 못갔더만 더후회되네요..
    극장가서 꼭 봐야겠네요..

  5. 이지영 2008/08/22 22:26

    이거 맥스무비에서 시사회당첨되서 홍대상상마당으로 댕겨왔습니다.
    와우......
    정말 꼭ㄲ꼬 제에발 성공했으면 하는영화 ㅠ 감독님말대로
    만명만넘어도 좋겠습니다 ㅠ 개봉하면 저도 돈내고 또보러갈겁니다.
    제게 여러방면으로 정말 많은것을 깨닫게해준영화..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