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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액막이
찬수의 집은 아들만 둘이었고 그가 첫째였다. 부모님은 두 분 모두 의사로 아버지는 그 분야에서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저명한 흉부외과전문의였고 어머니는 마취과전문의였다. 의사부부의 아들이 귀신을 본다고 하니 부모 입장에선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부모님에게 처음으로 그 얘기를 했을 때 그에게 돌아온 건 정신과치료였다.
찬수는 별 도움도 되지 않는 정신과치료를 반년이나 받아야 했다. 게다가 그 사실이 학교에 알려지는 바람에 이상한 아이로 소문이 나 심한 따돌림까지 받았다. 철저하게 고립된 채 망자뿐 아니라 친구들이 가하는 공포에 무방비로 노출되었던 어린 시절. 아무도 도와줄 수 없던 그 끔찍한 시절을 되돌아보는 건 지금도 견디기 힘든 일이다. 이후 찬수는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만나기 전까지 부모님이든 누구에게든 한 번도 자신의 비밀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아직도 부모님은 어쩌다 집에 들르는 그에게 의심스런 눈초리로 묻곤 한다.
“혹시 요즘도 그것들이 보이니?”
대학에 입학하면서 찬수는 부모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집을 나와 독립했다. 늘 탐색하는 것 같은 부모님의 눈초리도 견디기 힘들었고 그와 달리 뛰어난 학업성적을 보이는 동생과 끊임없이 비교당하는 것도 싫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견디기 힘들었던 건 보이는 걸 보이지 않는 것처럼 행동해야만 한다는 사실이었다. 망자들은 이제 그에게 두려운 존재인 동시에 연민의 대상이기도 했다.
찬수는 두려움과 설렘을 안고 오늘 레테를 찾아올 망자를 기다렸다. 11시가 조금 넘어섰을 때 누군가 카페로 들어섰다. 영이 들어섰다면 풍경소리가 들려야 할 텐데 현실의 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뜻밖의 사람이 입구에 서 있었다. 앞으로 이곳에서 일을 돕기로 했다는 숙희였다. 낮에 잠깐 눈인사를 나누긴 했는데 이 시간에 그녀가 여긴 왜 나타난 것일까.
찬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숙희는 예의 그 수줍고 자신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찬수의 앞으로 걸어왔다. 숙희가 뭐라고 말을 했는데 소리가 너무 작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예? 뭐라고 했는지 소리가…….”
그녀의 목소리가 조금 커졌다.
“그냥 인사한 거예요.”
“아, 예. 근데 이 시간에 여긴 어쩐 일로…… 수정이도 없는데.”
“알고 있어요.”
찬수가 말했다.
“일단 좀 앉으세요.”
“저기…….”
“예?”
“지금…… 카페 문 닫으면 안 되나요?”
“카페 문을요? 아직 모르나 본데 지금 이 시간에는 좀 특별한 손님들이 카페를 찾아와요. 수정이한테 이런 얘기도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알아요. 귀신들이 찾아온다는 거.”
“예, 맞아요. 그래서 문을 닫을 수가 없어요. 문을 닫아야만 하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귀신만 찾아오는 거 아니잖아요. 귀신을 보는 사람들, 그래서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상담을 받을 수 있다고 하던데.”
“예, 물론 그렇죠. 근데 누가 상담을……?”
이전의 수줍어하던 모습과 달리 숙희가 찬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꽂히는 것 같은 강렬한 눈빛이었다. 그제야 수정이 숙희도 영을 본다고 말했던 기억이 났다. 찬수는 난처한 기분으로 카페 문을 닫고 돌아와 앉았다.
“예. 어떤 고민이 있는지 말해보세요.”
“앞으로 오빠라고 불러도 돼요?”
찬수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오빠도 앞으로 말 놓고 ‘숙희’라고 불러주세요.”
“그게 편하다면…… 그렇게 해.”
숙희의 얼굴이 금방 밝아졌고 목소리도 한층 커졌다.
“고마워요, 찬수 오빠!”
“근데 상담하고 싶다는 게 뭐니?”
“상담을 하려면 피상담자에 대해 먼저 알아봐야죠. 먼저 저에 대해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세요.”
숙희가 이전의 수줍어하던 이미지와 너무 다른 모습을 보이자 찬수는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찬수가 머뭇거리자 숙희가 당돌하게 말했다.
“전 찬수 오빠에 대해 잘 알아요.”
“나에 대해서? 어떻게?”
“실은 찬수 오빠가 운영하던 동호회 회원이었거든요.”
“그게 정말이야? 아니, 내가 여기 있는 거 알고 온 거야?”
숙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대신 수정이한테는 제가 찬수 오빠 알고 있었다는 거 비밀로 해주세요.”
“그건 왜?”
“그냥요. 또 궁금한 거 없어요?”
찬수가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왠지 내가 상담을 받는 것 같네.”
“수정이 정말 괜찮죠? 얼굴도 예쁘고 초능력도 있는데다 소설까지 잘 써서 돈도 많이 벌고. 처음에 수정이 봤을 때는 세상이 참 불공평하다고 생각했어요. 난 수정이보다 나은 게 하나도 없거든요.”
“왜 그렇게 생각해? 네게도 영을 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잖아. 그건 수정이가 갖지 못한 능력인데.”
갑자기 숙희의 음성이 싸늘해지고 딱딱해졌다.
“그건 달라요. 수정이의 사이코메트리 능력은 말 그대로 초능력이지만 내가 귀신을 보는 건 초능력이 아니라 그냥 저주받은 운명일 뿐이에요! 오빠도 그렇지 않아요?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는 그 무시무시한 존재들과 마주칠 때마다 끔찍하고 무섭지 않았어요?”
“어릴 때는 그랬지만 지금은 달라.”
“하긴 뭐. 나도 가끔은 그들이 필요할 때가 있어요.”
“필요하다고?”
“너무 외롭고 쓸쓸해서 귀신하고라도 얘기하고픈 심정 아세요? 혹시 수정이가 저에 대해서 무슨 말하지 않았나요?”
“아니, 전혀.”
“하긴 수정이처럼 잘나가는 애가 나 같은 애를 그렇게 신경 써서 챙겨줄 리 없죠.”
“무슨 소리야. 수정인 그런 사람 아니야.”
“네, 알아요. 좋은 애죠. 그러니까 나 같은 애를 여기서 일할 수 있게 해줬죠. 수정이하고 저하고 같은 학교인 거 아시죠? 그것도 모르나? 뭐, 상관없어요. 말하자면 수정이하고 전 학교에선 친군데 여기선 사장님과 종업원이에요. 수정이가 제 월급을 주니까 잘 보여야 하고. 웃기죠?”
예상치 못한 숙희의 말에 찬수는 당황스러워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몰랐다.
“저기, 그렇게 불편하면 수정이한테 얘기하고 여기 말고 다른 곳을 알아보는 게 좋을 거 같은데? 둘 사이를 잘 모르지만 괜히 이런 것들 때문에 친구끼리 의가 상하면 그렇잖아.”
찬수의 말에 숙희의 눈빛이 금방 달라졌다. 숙희는 금방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펄쩍 뛰며 평소의 작은 목소리가 진짜일까 싶게 큰소리로 말했다. 심지어 그녀는 더듬거리기까지 하며 자신의 얘기를 부인했다.
“방금 내가 무슨 얘기를 한 거야? 실수였어요! 정말이에요. 방금 제가 했던 얘기들은 전부 잊어주세요! 수정이가 얼마나 좋은 앤데. 수정이가 아니었으면 전 지금쯤 이 세상 사람이 아닐지도 몰라요. 수정이는 제 생명의 은인이라구요!”
그녀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제발 부탁이에요. 지금 제가 했던 얘기 절대로 수정이한테는 하지 마세요. 알았죠?”
찬수는 얼떨떨한 심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숙희가 상기된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럼 이만 가볼게요. 참, 오늘 제가 여기 왔었던 얘기도 하지 말고, 찬수 오빠 이전부터 알고 있었단 얘기도 하지 마세요. 알았죠?”
찬수는 의아한 기분으로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숙희가 인사를 하며 말했다.
“그럼 내일 낮에 봬요.”
숙희가 서둘러 카페를 나갔다. 묘한 느낌이었다. 숙희는 정서적으로 불안해 보였다. 수정에 대한 질투와 미움 따위의 감정들이 서로 뒤섞여 있는데 그들이 제각각 극단적인 것 같아 앞으로가 걱정스러웠다. 숙희 말대로라면 수정이 생명의 은인이란 얘긴데 왜 그런 친구를 미워하는 것일까. 잠깐 얘기를 나눴을 뿐인데 숙희는 이상할 정도로 비밀스런 구석이 많았다. 무엇보다 찬수는 오늘 숙희가 자신을 찾아온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10
수정은 안방 구석 깊숙한 어둠 속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손에는 돌아가신 한기영 신부가 생전에 지녔던 묵주가 들려 있었다. 한기영 신부는 수정의 외삼촌이었다. 수정은 초등학교 때 사고로 아빠를 잃어 외갓집에서 컸다. 당시 엄마의 오빠였던 한 신부는 수정의 엄마에게도 수정에게도 정신적인 힘이 되어주었다. 특히 수정에게 한 신부는 단순한 외삼촌 이상이었다. 한 신부 덕에 수정은 한때 수녀가 될 생각도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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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액막이 (11)
(일러스트: 이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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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디따재밌어요 ㅎㅎ
근데 10회의 이야기는 어떠케 이어지게 되는지 ㅠㅠ 아 궁금해
으 갈증나요 ㅋㅋ 숙희는 또 왜 그럴까요? 무언가 얼키고 설킨... 그런데 넘 재미있는 ㅎㅎ 담편 기대할께요
어쩐지 다음편에는 수정이랑 숙희 이야기가 풀릴 것 같네요~
사실 기다리고 있던 건 한밤중에 찾아오는 원혼의 정체이긴 하지만
너무 빨리 이야기가 끝나면 재미없잖아요ㅎㅎ
,아뉘... 오늘은 그 원한이 서린 영의 정체가 궁금했었는데..
이렇게 궁금증을 순식간에 바꿔주시네요 ㅎㅎ
숙희의 다중인격은...
또 수정, 찬수와 어떻게 엮이는건가요?
아...
작가님 너무 얄궂습니다..
이렇게 애.독.자.들의 애간장을 녹이다뇨!! ㅎㅎ
등장인물간에 또 하나의 엉켜있는 사슬이 기대됩니다!!
흥미진진이란 표현이 딱입니다..
다음 이야기 계속 궁금한데... 월 수 금의 압박 -_-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