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기 다른 두 거장의 최신 작품
일본 현지 관람기
장마가 서서히 끝나고 섭씨 30도를 넘나드는 한여름이 시작된 일본의 7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이후 6년 만에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오리지널’ 작품인 <벼랑 위의 포뇨>가 개봉되었다(<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원작이 따로 있음). 그리고 얼마 후 8월에는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최신작 <스카이 크롤러>가 일본 극장가에 등장했다. 8월 중순을 넘긴 지금 두 영화의 흥행 실적은 엇갈리고 있다. 부동의 1위는 언제나 그렇듯 <벼랑 위의 포뇨>가 지키고 있고 <스카이 크롤러>는 9위를 달리고 있다. 물론 두 작품은 관객 대상층이 완전 다르기 때문에 흥행 성적만으로 영화를 평가할 수는 없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으로 말하자면 일본 최고의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그가 만든 작품이 일본에서 흥행 1위를 놓친 적이 거의 없다. 개봉했다하면 무조건 1위. 그 작품은 일본 최고의 흥행실적을 올린다. 늘 가족이 다함께 볼 수 있는 가족영화를 만들어 왔고 모든 연령층이 소화할 수 있는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반면 오시이 마모루 감독은 항상 자신만의 뚜렷한 세계관을 가지고 독특한 작품을 만들어 왔다. 일반인은 이해할 수 없는 대사와 스토리. 원작이 있는 작품을 가져와 자신만의 언어로 해석하는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렇게 상반된 두 감독의 작품이 이번 베니스 국제영화제 경쟁부분에 나란히 초대받았다.
우선 <벼랑 위의 포뇨>는 철저한 가족 영화다. 조용한 바닷가 마을에 살고 있는 소년 소스케가 우연히 물가로 밀려온 물고기 포뇨를 구하게 되고 그런 포뇨는 소스케와 함께 있고 싶어 인간이 되기를 갈망하는 스토리다. 간단하면서도 감동을 줄 수 있는 스토리가 <벼랑 위의 포뇨>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작품을 제작함에 있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한 가지 원칙을 정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CG를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만 작업해 작품을 완성한다는 것이었다. 애니메이션이란 사람이 손으로 그려 그림에 생명을 부여할 때 진정한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 것이다. 실제로 <벼랑 위의 포뇨>는 CG로 만들어진 장면이 한 컷도 등장하지 않는다. 물론 채색과 촬영은 현대 제작 환경에 맞게 디지털로 이루어졌지만 그림 자체는 모두 사람이 그려냈다.
미야자키 감독의 이런 집념은 영화의 첫 장면에서부터 빛을 발휘한다. 포뇨가 살고 있는 바다 속 풍경이 펼쳐지는 12초간의 컷을 CG를 이용하지 않고 온전히 손으로만 그려낸 것이다. 수십 종류의 물고기와 해초의 움직임이 시작부터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다. 과거 셀로 작업을 하던 시절에는 6매 이상의 셀을 겹쳐 촬영할 수 없었기 때문에 불가능했지만 지금은 컴퓨터로 촬영하기 때문에 아무리 많은 그림을 그려도 아무 문제없이 겹쳐 촬영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최대한 활용한 것이다.
이 12초간의 컷을 위해 사용한 동화매수가 무려 1,300장이 넘는다고 한다. 필자 본인이 애니메이션을 공부하고 있기 때문에 잘 아는데 이렇게 복잡한 장면을 자연스러우면서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는 감독은 미야자키 감독 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 외에도 포뇨가 바다 위를 질주하는 장면과 거대한 물고기가 바다로 떨어지는 장면 등이 나오는데, 이런 장면 역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지휘 하에서 만들어진 예술 작품이라 하겠다.
<벼랑 위의 포뇨>는 우리나라에서도 개봉할 것이 당연하니 많은 사람들이 보러 갈 것이다. 다만 이제는 60세를 훌쩍 넘긴 할아버지가 그림 콘티 완성 시한에 쫓겨 가며 작품을 만든 탓인지 스토리가 과거 작품에 비해 느슨한 느낌이 들었다. 또한 스튜디오 지브리의 최대 난관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이후의 준비는 아직도 요원한 것일까? 그림을 그릴 수 없을 때까지 어린이들을 위한 작품을 만들겠다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열정에만 기대기에는 더 이상 무리인 것 같다.
가족 영화 <포뇨>, 청소년 대상의 <스카이 크롤러>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최신작 <스카이 크롤러>. 모처럼 오시이 마모루 감독이 전뇌 공간에서 탈출했다. 대신에 끝없이 펼쳐져 있는 창공을 마음껏 누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벼랑 위의 포뇨>와 <스카이 크롤러>는 서로 대칭을 이루고 있는 작품인 것 같다. 바다를 배경으로 한 작품과 하늘을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말이다. 원래 하늘이라고 하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선점한 분야인데 이번엔 오시이 마모루 감독이 도전했다고 봐야할까?
하지만 전체적인 느낌은 굉장히 달랐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하늘을 연출함에 있어 감성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오시이 마모루 감독은 사실적이다. 오시이 마모루 감독은 디지털 기술을 십분 활용해 영상을 창조하기 때문에 언제나 실사를 능가하는 화면을 만들어 왔다. <스카이 크롤러>로 예외는 아니다. 캐릭터의 움직임 하나하나 뿐 아니라 주인공인 쿠사나기 스이토가 테이블 위에 와인 잔을 놓을 때 울리는 소리의 잔향이나 질감까지 완벽하게 재현하고 있다. 작품을 만듦에 있어 영상과 함께 음향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오시이 마모루 감독이기에 당연한 것이지만 화면 속에 등장하는 세세한 음향까지 놓치지 않고 표현하는 그의 집요함에는 두 손 들었다.
그의 인터뷰 중에서 왜 사운드 작업을 일본에서 하지 않고 굳이 미국에 있는 스카이워커 사운드에서 하냐고 묻자, 오시미 마모루 감독은 그쪽이 훨씬 다양한 종류의 음향 소스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걸 봤다. <스카이 크롤러>의 주 무대인 하늘은 감독이 가장 심혈을 기울인 부분이다. 스탭 전원을 이끌고 폴란드, 아일랜드 등지를 여행하며 자신이 원하는 하늘과 무대를 스탭들이 직접 체험하고 느끼기를 원했다. 영화를 감상하는 내내 아일랜드에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의도가 적어도 필자에게는 성공했다. 이런 감독의 집요함이 실사를 능가하는 애니메이션 탄생의 비결일 것이다. 쉽게 말해 웰메이드 애니메이션이라고 보면 된다.
이런 것들을 떠나 <스카이 크롤러>는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작품 중에서 가장 감상하기에 편하다. <이노센스>처럼 복잡하고 어려운 대사를 외치지도 않고 무엇보다 작품이 전반적으로 차분하다. <신세게 에반게리온>의 감독인 안노 히데아키가 처음으로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작품을 보며 "졸지 않았다!"라고 말할 정도다.
그러나 결코 이 작품을 만만하게 봐서는 안 된다. 아무 생각 없이 화면을 보고 있다가는 화면 속에 숨겨져 있는 복선이나 핵심을 놓치는 우를 범하기 쉽다. 그래서 등장하는 인물의 버릇이나 소품 등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완전한 평화를 실현한 세계에서 어른들이 만들어낸 ‘쇼로써의 전쟁’. 그곳에서 전쟁을 하고 있는 사춘기 때의 모습을 한 채 영원한 삶을 살고 있는 킬드레(Killdre)들. 오시이 마모루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일본에서 전쟁이나 고통 없이 그저 시간을 소비하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만들었다. 작품에 등장하는 킬드레들은 바로 현대 일본의 젊은이들을 투영하고 있는 것이다. 킬드레들에게 ‘삶의 의미’란 무엇일까? 오시미 마모루 감독은 젊은이들에게 대답을 원하는 것 같다.
문제는 <스카이 크롤러>가 과연 한국 개봉이 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세계 지향적인 작품이라고는 하지만 한국 시장의 특성과 관객 성향을 봤을 때 결코 흥행할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된다. 일반 관객들이 <스카이 크롤러>를 재미있다고 받아들이기엔 엔터테인먼트적 요소가 부족하다. 게다가 흡연 장면이 많이 등장하는 관계로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을 받을 것 같다. 그래도 만약 개봉을 한다면 꼭 극장에서 보길 권한다. 일반 가정에는 제 아무리 블루레이라 해도 극장만큼의 영상과 사운드를 즐길 수 없으니 말이다.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두 감독의 작품이 어떤 평가를 받을지 모르겠지만 작품의 성향만큼이나 관객들의 지지도 갈릴 것이다. 두 작품 모두 좋은 결과를 기대하며 더불어 한국 개봉도 실현되길 바란다.
2008/07/15 - [연재 코너/lachess의 일본서브컬쳐 탐방] - 일본 현지에서 본 '공각기동대 2.0'
관련 소식
2008/07/31 - [영화뉴스/애니메이션] - 미야자키 하야오 신작 베니스영화제 초청
2008/07/08 - [영화뉴스/애니메이션] - 미야자키 하야오, 자신의 신작에 대해 낙담?
2008/05/28 - [영화뉴스/애니메이션] - 미야자키 하야오 신작 애니 성우진 발표
2008/04/14 - [영화뉴스/애니메이션] - 미야자키 하야오의 신작, 7월 공개
2008/02/04 - [영화뉴스/애니메이션] - 다카하타 이사오, 10년만에 신작 애니 준비 중
2008/02/01 - [영화뉴스/애니메이션] - 스즈키 토시오, 지브리 스튜디오 사장직에서 퇴임
2007/12/04 - [영화뉴스/애니메이션] - 미야자키 하야오의 신작 애니메이션 주제가 발표
2007/06/21 - [영화뉴스/애니메이션] - 오시이 마모루 “미야자키 하야오를 능가하겠다”
2008/04/16 - [영화뉴스/애니메이션] - 오시이 마모루 신작 주연 성우진 발표
2008/02/27 - [영화뉴스/애니메이션] - 日, 오시이 마모루 신작 8월 공개 예정
2007/12/31 - [영화뉴스/영상매체] - 오시이 마모루의 '스카이 크롤러' 해설 DVD 발매
'연재 코너 > lachess의 일본서브컬쳐 탐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미야자키 하야오 vs. 오시이 마모루 (8) | 2008/08/18 |
|---|---|
| 일본 현지에서 본 '공각기동대 2.0' (34) | 2008/07/15 |
| 일본 열도를 흥분시킨 '인디아나 존스' (11) | 2008/07/02 |
| '은하철도999' 30주년 기념 전시회 (13) | 2008/06/05 |
| ZARD 사카이 이즈미 展을 보고... (5) | 2008/05/12 |
| 에반게리온 : 서, 한정판 DVD 열풍 (9) | 2008/05/02 |
|
익스트림무비 추천 도서 |
|
| 세 번의 영화, 다섯 번의 드라마로 만들어져 기록적인 흥행을 올린 일본 추리소설 사상 불후의 걸작. 명탐정 긴다이치 코스케의 대활약을 그린 요코미조 세이시의 <이누가미 일족>은 막대한 유산 상속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연쇄 살인의 음모를 박진감 넘치게 그린 작품으로, 추리 소설 팬이라면 필견의 소설이다. |
|


댓글을 달아 주세요
스카이크롤러에서의 주인공 이름도 쿠사나기군요.
어쨋거나 두 작품 다 한국개봉이 되길 바랍니다.
쿠사나기에 오시이 마모루 애완견...
왠지 공각하고 같은 세계관의 작품 같기도 하네요.^^
스카이 크롤러...반드시 한국 개봉이 되길 바랍니다만...엉엉.
에바 감독이란 사람은 공각기동대를 보면서도 졸았다는 말이군요. 흠;;;;;;
뭐, 농담이겠죠^^
지루하기로 따지면 '데스 앤 리버스'가 최강인데...ㅋ
흡연장면만으로 따지면 '콘스탄틴'도 18세 관람가 영화죠^^
(근데 이건 금연홍보영화라 적절한 예는 아니군요)
'조니 뎁'의 줄담배를 볼 수 있는 '나인스 게이트'도 15세 관람가!라죠^^;
흡연장면도 있지만.... 제가 본문에서는 안 썼는데
결정적으로 콜걸도 등장합니다..
흡연은 등급에 별 문제 안 주던 줄 알았었는데 -_-;;;;;;
애니메이션이니 좀 낮춰서 나오지 않을까요? 12세 정도라던가;;;;;
에바:서도 레이의 서비스씬도 나오는데 12세 였으니 -_-;;;;;
P.S.<신세'게' 에반게리온>? 신세'계' 에반게리온인가요?
확실히 에반게리온은 '저에겐' 신세계였습니다만 -_-;;;;;(재미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