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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분노 혹은 조롱 그리고 피곤

* 영화의 줄거리나 장면 설명 같은 건 이 글에 없다. 아래는 리뷰라기보다 영화를 본 뒤의 거친 단상에 가깝다.

빌리 와일더의 후기작을 보노라면 ‘살아남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와일더는 이미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전성기에 걸작들을 쏟아냈지만, 그를 기억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가 나온 건 1959년이었다. 그리고 이듬해에 발표한 <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로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을 휩쓸었다. 이렇듯, 와일더가 자기만의 코미디를 끝까지 밀어붙이던 시기는 할리우드 장르영화의 고전기가 스러지고 있을 즈음이었다. 장르의 선배들이 더 이상 영화를 만들지 못하고, 아메리칸 뉴 시네마의 기운이 싹트는 시점에서 꿋꿋하게 자기 영역을 지키던 와일더의 심경은 어떠했을까?

<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 이후에 나온 와일더의 영화들은 이전 작품들에 비해 명성이 덜한 게 사실이나, <하나 둘 셋>, <당신에게 오늘 밤을>, <포춘 쿠키>, <아반티!> 등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파토스는 시대의 황량함과 작가의 쓸쓸함을 반영한다. 그러므로 그들 작품의 큰 웃음은 기실 큰 슬픔을 동반하기에 이른다. 만약 그들 작품을 보며 웃기만 했다면, 당신은 인생을 좀 더 살아보거나, 최소한 영화를 한 번 더 볼 일이다.

말머리가 길었다. 반복하자면, 류승완의 신작 <다찌마라 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이하 <다찌마와 리>)는 ‘살아남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다찌마와 리>가 단지 우습기만 한 영화가 아닌 건 그래서다. 2008년 여름, 한국영화의 제작현장은 바람이 할퀴고 지나간 황야와 같다. 어떻게든 영화를 만들려고 여기저기를 찔러보는 감독에게 돌아오는 답변은 ‘노’이기 일쑤고, 현장을 지켜야 할 프로듀서는 집에서 쉬고 있으며, 보조 스탭들이 돈벌이를 찾아 떠나버린(아유, 영악한 것들!) 자리에서 스탭들은 갈 길을 잃은 지 오래다(주변부에서 일하는 홍보사나 매체들이야 말할 것도 없다). 한국영화판이 이 지경에 이른 원인을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방증하고 사라지려는 지금, 우리 앞에 막 도착한 <다찌마와 리>는 ‘그래도 전투는 계속된다.’고 외치는 목소리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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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로베르 브레송은 ‘영화 만들기, 그것은 전쟁에 필적한다. 목숨을 건 대전투를 앞두고 군사전략을 짜듯이 작품을 준비하자.’고 쓴 바 있다. 사실 <다찌마와 리>는 치밀한 전략에 바탕을 둔 작품이 아니며, 무조건 수작으로 치켜세울 만한 작품도 아니다. 그러나 <다찌마와 리>는 전쟁과도 같은 상황, 지옥과도 같은 상황을 걷고 있는 자가 전쟁에서 이기고 지옥에서 헤어나기 위해, 그러니까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길을 보여준다. 류승완의 전략은 단 하나, ‘계속 걸어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다찌마와 리>의 ‘존재감과 중요성’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을 훌쩍 뛰어넘는다.

익히 알려진 대로, <다찌마와 리>는 류승완의 야심작 <야차>가 거꾸러진 곳에서 싹튼 프로젝트다. 류승완으로선 억울했을 것이다. 2000년을 전후해 쏟아져 나온 한국영화들 사이에서 류승완의 영화는 꽤나 독특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 박찬욱과 홍상수로 대표되는 지적인 영화군에 속하기엔 뭔가 어색하고, 수백만을 우습게 불러 모았던 정체불명의 영화들과도 궤를 달리하는 작품들이 그의 필모그래피를 채워왔다. 돌이켜보았을 때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은, 그의 영화가 과장된 채 증식하던 한국영화들과는 사뭇 다른 노선을 걸어왔다는 점이다. 한쪽에선 영화자본으로 다양한 영화적 시도를 거듭하는 감독들이 있었고, 다른 한쪽에선 영화자본을 소모적으로 탕진하는 감독들이 있었지만, 류승완은 기이할 정도로 방향을 틀지 않았다. 때론 <피도 눈물도 없이>처럼 작가적인 시도를 펼치다 실패한 경우도 있었으나(아이러니하게도 나의 베스트 류승완 영화다), 그의 작품은 대게 액션과 드라마의 기본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액션과 드라마의 결합’이라는 영화적 특성은 그에게 빛이면서 그림자였다. 그의 영화가 언제나 일정 이상의 성공을 거두는 데는 한국적인 액션과 밑바닥 드라마가 큰 힘으로 작용했음을 부인하기란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70, 80년대 영화에 기원을 둔 그의 액션은 단순히 할리우드와 홍콩의 영화를 탐한다는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신파의 정서가 과잉으로 흐르는 그의 드라마는 그를 작가로 인정하는 데 걸림돌이 되곤 했다. 다섯 편이 넘는 장편영화를 쉴 새 없이 만들어왔으며 나름대로 성공을 거둔 감독이 왜 발목을 잡혀야 하는가, 액션장르로 일가를 이뤘고 앞으로도 이룰 감독을 왜 장인으로 온전하게 인식하지 않는가. 류승완의 분노는 그렇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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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완의 영화가 가장 아름다운 건 액션으로 축조된 장면이 순수한 희열을 뿜어내는 순간이고, 류승완의 영화가 가장 감동적인 건 대사를 제거한 몸과 표정이 침묵의 가치를 발견하는 순간이다. 그런데 말이다, 다시 마을로 돌아온 배드 보이, 류승완은 신작 <다찌마와 리>에서 의도적으로 순수한 아름다움과 침묵의 감동으로부터 이탈한다. 그뿐 아니라 인터넷 단편 <다찌마와 리>의 캠피함이 극장용 패러디코미디로 증폭되기를 바라는 관객의 바람마저 저버린다. 류승완은 그의 영화에 대한 모든 기대를 조롱하고 비웃는다.

<다찌마와 리>는 불균질한 작품이다. 분명 <다찌마와 리>의 초반부는 스파이, 액션, 코미디, 멜로 장르를 뒤섞은 잡다한 패러디영화를 표방한 듯이 보인다. 그렇지만 심수봉의 <그때 그사람>을 배경으로 주인공과 마적단이 한판 대결을 벌인 다음, 영화는 서부극과 무술영화로 빠져 한참을 보내다, 종래엔 표현주의 무대에서 한판 누아르 혹은 스릴러를 거창하게 펼치며 정점에 오른다. 거듭 말하지만, <다찌마와 리>는 단순한 패러디영화가 아니며, 이종 장르를 뒤섞은 그저 그런 혼성장르의 영화도 아니다. 대사와 연기는 유치함에 이르기 직전에 절묘하게 멈추고, 각각의 장르 부분은 독립된 단편영화처럼 전체영화의 호흡과 시간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며, 숨겨진 비의를 뽐내는 현대영화의 취향을 뒤집어엎으려는 듯이 모든 것을 드러내고 이야기하고 행동하고 폭발시킨다. <다찌마와 리>는 그 어떤 이름의 장르로도 설명할 수 없는 류승완식 영화인 것이다.

<다찌마와 리>를 정의하기 힘든 기이한 영화로 만드는 것은 바로 류승완의 자세다. 연출가는 이야기를 만들거나 스탭들과 영화를 직조하기에 앞서 자기 자신을 연출하는 사람이다. 류승완은 작금의 한국영화의 토양에 분노하고, 익숙함과 진부함과 조악함을 조롱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손쓰지 못하는 현실의 무게에 답답하고 피곤했던 것 같다. 그런 그의 자세는 영화를 갈 데까지 끌고 가본다. 페르난도 아라발의 작품 제목을 인용하자면, 류승완은 ‘미친 말을 탄 것처럼 달린다.’ 폭주하는 말이 일으킨 바람결 속에서 나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 정도면 웃을 테요? 한국적 액션이 과연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오? 미친 말에 오른 자의 심정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소?” 나는 그 목소리에 어떻게 반응할지, 당황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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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영화를 보는 데 있어 감독의 마음까지 헤아릴 필요는 없다. 그러나 모든 것이 범람하고 인위적이고 자연스럽지 못한, 그래서 진실보다 거짓으로 치장된 것처럼 보이는 <다찌마와 리>를 제대로 통과하려면 류승완의 마음 쪽으로 우회해야만 한다는 걸 깨달았다. 류승완은 <다찌마와 리> 안에서 현실의 거짓들을 무더기로 보여줌과 동시에 그 모든 것들을 내던지고 소진하면서 진실을 향해 접근했다. 누군가는 영화에서 거짓만을 볼 것이고, 누군가는 드물게 각자의 진실을 대면하는 기회를 잡을 것이다. 어쨌거나, 류승완의 말대로 진짜 화두는 액션이 아니라 진실이라는 걸 기억하길 바란다.

21세기의 도래와 함께 한국영화는 폭발과 부침을 경험했으며, 2008년은 <쉬리>라는 한국형 블록버스터가 제작된 지 거의 10년이 되는 해다. 그 10년의 굴곡이 필연적으로 잉태한 결과물인 <다찌마와 리>는 아마도 이상한 연대기를 마감하는 작품일지도 모른다(그렇다면 대척점에 있는 영화는 김성수의 <무사>가 아닐는지).

★★★☆


관련 특집
2008/08/13 - [기획 / 특집/익스트림 피플] - '다찌마와 리' 류승완 감독 인터뷰

관련 리뷰
2008/08/09 - [개봉작 / 예정작] - 다찌마와 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2008) by DJUNA

Posted by ibuti

익스트림무비 추천 도서

세 번의 영화, 다섯 번의 드라마로 만들어져 기록적인 흥행을 올린 일본 추리소설 사상 불후의 걸작. 명탐정 긴다이치 코스케의 대활약을 그린 요코미조 세이시의 <이누가미 일족>은 막대한 유산 상속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연쇄 살인의 음모를 박진감 넘치게 그린 작품으로, 추리 소설 팬이라면 필견의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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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Beatmania의 느낌

    Tracked from emptyframe's me2DAY 2008/08/15 03:50  삭제

    다찌마와 리 단상. "액션장르로 일가를 이뤘고 앞으로도 이룰 감독을 왜 장인으로 온전하게 인식하지 않는가. 류승완의 분노는 그렇게 시작된다." 그의 영화들은 속말로 "2프로가 부족"한듯 보여 안타깝다. 언제나 다음은 대박액션명작을 완성할것이라고 기대하게 만든다.

  2. Subject: [웹툰]다찌마와 리.....푸허허 호방하다 호방해

    Tracked from 만통쩜넷_블로그 2008/08/16 11:12  삭제

    임원희 멋지다 둘이보다 하나가 웃다 죽어도 모르겠다.음악이 너무 귀를 즐겁게 했는데뮤비를 보니 더 흥겹네요. 궁금증 하나?외투 타고 총격전을 벌이는 스키장은 어디?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어찌되었든 기대는 하게 됩니다. 류승완 감독의 팬으로서 말이죠. 사실 놈한테 호되게 당한 것도 있어서 더더욱 그런 듯..

  2. 충무로의 새로운 발견이죠^^

  3. 글에는 전혀 공감이 가지않지만 보는 시각은 다양할수 있겠죠

    꽤 재미있는 영화였지만 쉽게 추천을 할만한 영화는 아니네요

    하지만 액션 장면은 한국 영화중 최고입니다

    놈놈놈 같은 영화와는 상대가 안되는 군요

  4. '다찌마와 리' 글에 '놈놈놈'이 자주 언급되는군요
    개인적으로 두 영화를 편가르기 하는 것 같아 꽤나 당혹스럽습니다
    다찌마와 리나 놈놈놈이나 둘 다 취향 많이 타고 감독의 성향이 물씬 풍기는
    영화인 건 마찬가지입니다 (김지운 감독이 이번엔 좀 덜하긴 하지만...)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예산의 규모와 배급의 상황이겠죠
    뭐, 여기서부터 두 영화가 각기 다른 길을 간다는 건 부인할 수 없겠군요
    하지만 두 영화가 과연 대척점을 이루는 영화들일까요?

  5. 놈3는 기가막혀요.. 기본 재미는 주겠지라고 생각햇는데..
    다찌마와리는 재미있었네요.. 아무 생각없이 보라길래
    머리 비웠더니.. 많이 웃었습니다.. 조금씩 늘어지는 부분도 있긴 했지만요..
    글 잘 읽었습니다...

  6. 아고몽 2008/08/15 22:43

    리뷰가 어려웠어요... ㅎㅎㅎ

  7. 다찌마와리~예상보다재밌었어요~
    기대를 많이 안했다면 거짓말이겠네요~솔직히 요즘들어
    한국영화보단 외국영화를 먼저 고르게 되는데~기대감으로 선택한
    영화가 바로 다찌마와였지요~
    정말 생각보다~좋았어요~맘껏 웃을수도 있었구요~

  8. 저도 리뷰가 너무 어렵네요 ㅠ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