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호감 여고생들에 의한 피칠갑 호러
(스포일러가 있습니다만, 영화의 반전은 공식보도자료에도 그대로 노출되어 있습니다.)
같은 반 학생인 달리, 주영, 연우는 늦은 밤 버스를 기다리면서 잡담을 하고 있습니다. 대화 소재는 왕따 당하는 동급생 선희. 이야기를 하다보니 세 사람 모두 선희와 관련된 흉악스러운 기억이 있습니다. 게다가 그 이야기들은 모두 정상적인 것과 거리가 멀죠. 슬슬 관객들은 이들에게 뭔가 끔찍한 일이 일어났고 그들이 아직 그걸 기억해내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물론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텅텅 빈 버스 정류장 역시 그리 정상적인 공간은 아니죠.
<버스를 타다>는 절대로 만들어질 리가 없는 <여고괴담> 영화입니다. 적어도 오기민 PD가 기획을 하는 한 이런 식의 영화는 나올 리가 없겠죠. 영화는 십대소녀들의 내면을 깊이 팔 생각도 없고 교육 시스템에 대한 비판을 할 생각도 없습니다. 그냥 비정상적으로 짧게 줄인 교복을 입은 십대 여자애들을 주인공으로 피칠갑 단편 영화를 만들고 싶은 것뿐이죠. 후반부에 반전이 제시되는 스토리 역시 별로 안 중요합니다. 이들은 모두 비주얼의 재료예요.
스토리나 캐릭터만 따라가다보면 우울해집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아이들은 정말 관심 주고 싶지 않은 애들이에요. 십대 이성애자 여자아이 스테레오타입의 끔찍한 점만 골라서 모아놨죠. 이들은 대부분 잔인하고 치졸한 험담꾼들입니다. 소외된 소녀 선희도 특별히 나을 건 없죠. 전 소외당하는 십대 캐릭터들에 늘 기계적으로 관대한 편이지만 선희의 경우는 정말 신경 끄고 싶습니다. 재수없는 애들이 더 재수없는 애에게 발목이 잡힌 겁니다.
피칠갑 호러 영화로서 영화는 꽤 많은 걸 해내고 있습니다. 현실세계와 악몽 사이의 모호한 지점에 적절하게 자리를 잡고 잡아 심리적 폭력과 피투성이 폭력 모두를 꽤 눈에 들어오는 스타일로 그려내고 있지요. 위에서 언급한 캐릭터들의 재수없음도 여기서 자기 역할을 한다고 해야겠어요. 물론 여기에도 한계는 있습니다. 아무리 능숙하게 호러 장면을 연출해도 진부한 내러티브와 아이디어에게 발목을 잡힐 수밖에 없다는 거죠. 반전의 가벼움을 고려하면 영화의 후반 장면은 지나치게 짧으며 특수효과나 표현의 창의성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저에겐 이 영화가 독립적인 작품보다는 그냥 기교 과시용 쇼케이스처럼 보입니다.
기타등등
1. 네이버 단편 영화관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2. <장화, 홍련>의 음악을 쓰고 있더군요. 물론 합법적일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전 기존 영화음악 재활용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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