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나이트> 보다 잘 나가는
싱가포르 국민 영화
지금 싱가포르에서 가장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영화는 <다크 나이트>나 <헬보이 2> 혹은 <미이라 3>가 아니다. 바로 잭 네오의 <Money No Enough 2>이다. 나는 솔직히 잭 네오의 영화를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이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가는 것을 좀 망설였다. 그리고 싱가포르인이 아니라면 그의 영화를 충분히 즐기기 힘들다는 것은 사실이다. 어쨌든 나는 이 영화를 보았다. 영화는 역시 내게는 그저 그랬지만 소위 영화의 ‘로컬리티’라는 것을 생각하게는 해주었다.
우리는 ‘로컬’과 ‘글로벌’이라는 용어를 그냥 사용한다. 이 두 용어의 개념을 두고 많은 학자들이 논문을 썼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런 것들은 신경 쓰지 말기로 하자. 과연 어떤 영화가 ‘로컬적이’고 혹은 ‘글로벌적이다’라고 말할 때 그것은 어디에 근거를 두는 것일까? 할리우드 영화들은 모두 글로벌한가? 글로벌한 성격을 갖추려면 어떤 요소들을 갖추어야 할까? 이런 물음에 대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어찌되었든 잭 네오가 만들고 있는 싱가포르 영화들이 로컬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보인다. 그의 영화는 싱가포르에서만 소비될 수 있다. 그의 영화에는 외국인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전에도 말했지만 같은 싱가포르 영화로 에릭 쿠의 영화들은 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고 수출되기도 한다. 이것은 왜 그런 것일까? 에릭 쿠의 영화는 글로벌한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가?
결국 로컬리티라는 것은 외국인이 이해하기 힘든 장벽을 말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잭 네오의 영화는 말 그대로 로컬영화일 것이다. <Money No Enough>란 영화는 원래 1998년에 제작되어 싱가포르 박스 오피스의 흥행 기록을 세웠다. 이 때 잭 네오는 시나리오를 썼고 배우로 연기를 했다. 그리고 10년이 지나 자신이 직접 속편을 찍었다. 주연 배우들은 그대로 나오지만 설정은 많이 바뀌었다. 잭 네오는 지금 싱가포르에서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싶어 한다. 그러나 항상 그렇듯이 그의 영화는 정신이 없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인가 보다.
영화는 CG를 동원해서 현재 싱가포르인들의 삶 그리고 정부에 대한 언급을 한다. 싱가포르에는 ERP 시스템이라는 것이 있다. 도로 위에 세워져 있는 기계장치는 일종의 혼잡통행료를 징수하는 시스템이다. 싱가포르의 모든 차량은 의무적으로 기계장치를 부착해서 자동적으로 혼잡통행료를 징수해야만 한다. 또한 누군가 차를 몰고 어디에 갔는지도 기록이 남는다. 정부로서는 매우 효율적으로 시민들의 돈을 거두어들이면서 일종의 주민통제 시스템을 운영하는 것이다. 이례적으로 이번 영화에서 잭 네오는 이런 정부의 행태에 대해 풍자를 한다. 물론 이런 것 또한 싱가포르인이 아니라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잘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의 특징을 하나 더 들자면 노골적인 간접광고들이 있다. 이런 장면이 있다. 영화 속의 둘째 아들 집에 모든 가족들이 모여 식사를 한다. 그런데 누군가 벽에 걸린 에어컨을 들여다본다. 카메라는 그 에어컨을 보여주는데 그것의 상표는 미쯔비시이다. 이것은 바로 잭 네오가 광고모델을 하는 브랜드이다. 또 큰 아들이 가는 은행은 싱가포르의 OCBC은행이다. 싱가포르 텔레비전에서 볼 수 있는 웬만한 브랜드의 상품들은 이 영화 속에서 총집합한다. 물론 그것들 중에는 싱가포르에서만 볼 수 있는 것들도 있다. 이것 또한 로컬리티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현지인들의 전통과 삶을 반영한 코미디
전편에서 친구로 나왔던 세 명의 주연배우들은 이번에는 형제로 나온다. 큰형은 노모를 모시고 살고 있다. 둘째는 싱가포르에서 가장 돈을 잘 벌 수 있는 방법인 콘도미니엄(개인 소유의 비싼 아파트를 말한다)의 재건축(En-Bloc이라고 한다) 사업을 한다. 막내는 건강보조식품의 다단계 사업을 하고 있다. 막내는 큰형을 다단계 아니 네트워크 마케팅에 끌어들인다. 매니저를 시켜주겠다고 하면서. 이것을 하기 위해 큰 아들은 나이든 노모에게서 돈을 빌린다. 여기까지 말하면, 아니 잭 네오의 영화를 한 편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이후에 영화가 어떻게 전개될 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그 세 아들들의 비즈니스는 잘 되지 않는다. 그런 후에 영화는 급속히 신파적인 내용으로 바뀐다. 병든 노모와 아들 그리고 며느리들 사이의 갈등을 보이는 가족드라마로 변신하는 것이다. 잭 네오는 항상 이런 식이다. 하나의 주제로 영화를 끝까지 끌고 갈 자신도 능력도 없어서 그런지 몰라도, 몇 편의 영화를 뒤섞어 놓는 것 같은 구성을 취한다. 이 역시 한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어쨌든 그의 영화는 현재 싱가포르인들의 삶을 반영한다. 싱가포르 사회는 매우 모던해 보이지만, 주류를 이루는 중국인들은 전통에 얽매여 있다. 잭 네오 영화에는 꼭 점쟁이 비슷한 사람에게 달려가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또 누군가는 사채업자(Loan Shark)에게 돈을 빌리고 갚지 못해서 고통을 당한다. 그리고 장례식이 자주 나오는데 그 분위기는 한국의 장례식과 비슷하다. 둘째 아들의 며느리는 게타이 무대의 가수였고, 집안 형편이 안 좋아지자 다시 무대로 컴백해 돈을 번다. 바로 로이스탕 탄의 <881>에서 보았던 그 임시 가설무대이다. 아직도 이런 무대가 동네 공터에 세워지고 공연을 한다는 것이 신기하게 보일 뿐이다.
물론 영화는 어머니의 희생과 큰 사랑으로 막을 내린다. 늙고 병든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지만, 어머니의 사랑은 해피엔딩을 가져온다. 다시 가족들이 화합하는 것이다. 싱가포르 영화답게 영화 속의 대사는 영어, 만다린, 호키엔 등이 말 그대로 난무한다. 영어 자막에 의존해서 영화를 보아야 하는 나와 같은 외국인은 속사포처럼 이어지는 그 대사들을 모두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영어자막을 통해 대사를 이해했다고 하더라도 다른 싱가포르인들처럼 웃을 수는 없다. 이것 또한 로컬리티의 장벽이다.
싱가포르 ‘국민’ 영화인 이 영화를 두고 작품성을 따지고 내러티브의 혼란함을 비판하는 것은 부질없어 보인다. 이 영화는 외국인들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아예 로컬과 글로벌을 따지는 것부터 소용없는 짓처럼 보인다. 하긴 현실은 그런 것이 아닐까. 그저 자기가 편한 대로 뭐든 갖다 붙이면 되는 것이다. (나는 못 보았지만) <놈놈놈>을 ‘만주웨스턴’이라고 갖다 붙이면 되는 것 아닌가. 내가 하는 것이 뭐든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우기면 그만이다. 방송사의 사장을 쫓아내는 행위는 한편에게는 언론탄압이지만 다른 한편에게는 언론정상화이다. 다 그런 것이다. 현실에서는 누가 더 힘이 세고 약한가, 이것만이 문제가 된다.
잭 네오는 아마도 계속 자신만의 로컬영화를 찍을 것이다. 무모하게 글로벌을 지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는 현명한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역시 추상적인 개념이지만) 영화적 완성도에 좀 더 신경을 써보려는 노력을 하면 좋겠다. 나와 같은 외국인 관객들을 위해서, 비록 헛된 바람이겠지만 그런 생각을 해본다.
<Money No Enough 2> 공식 사이트 바로 가기
관련 리뷰
2008/07/10 - [기획 / 특집/칼럼] - 싱가포르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Just Follow Law'
2008/07/07 - [기획 / 특집/칼럼] - 싱가포르의 독특한 문화를 담은 '881'
2008/02/13 - [기획 / 특집/칼럼] - 싱가포르판 '조폭 마누라'를 아시나요?
'기획 / 특집 >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영화화된 대작 만화 '20세기 소년' (1) | 2008/09/05 |
|---|---|
| '고死'를 보는 두 가지 시선 (20) | 2008/09/01 |
| 영어가 뭐길래? '매드 어바웃 잉글리시!' (10) | 2008/09/01 |
| 진짜 재미있는 태국 호러! '4Bia' (12) | 2008/08/28 |
| 액션의 무아지경! '데스 레이스' (12) | 2008/08/25 |
| 싱가포르 최고의 인기작 'Money No Enough 2' (7) | 2008/08/12 |
| 니카츠 영화사의 100년을 돌아보다 (4) | 2008/08/10 |
| 태국식 호러 프랜차이즈 '악마의 기술 3' (8) | 2008/07/29 |
| [동영상] '스타 워즈: 클론 전쟁' 프리뷰 (2) | 2008/07/28 |
| 페이크 다큐멘터리의 세계 (8) | 2008/07/28 |
| 동시상영관을 기억하세요? (18) | 2008/07/27 |
|
익스트림무비 추천 도서 |
|
| 세 번의 영화, 다섯 번의 드라마로 만들어져 기록적인 흥행을 올린 일본 추리소설 사상 불후의 걸작. 명탐정 긴다이치 코스케의 대활약을 그린 요코미조 세이시의 <이누가미 일족>은 막대한 유산 상속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연쇄 살인의 음모를 박진감 넘치게 그린 작품으로, 추리 소설 팬이라면 필견의 소설이다. |
|


댓글을 달아 주세요
슬슬... 잭 네오란 사람이 익숙해지기 시작했습니다... =_=
싱가포르 동네의 이야기라니... 항상 신선하게 읽어있어요~
고맙습니다. 본의 아니게 잭 네오를 한국에 알리는 역할을 하게 되었네요. 자주 찾아주시길 바라겠습니다.
저도 류상욱님 글 읽으면서
잭 네오라는 감독이 슬슬 친숙해지는 기분입니다...^^
앗.. 저도 잭 네오라는 감독이 어느새 머리 속으로
영화를 본적이 없는데 이상하게 친숙해졌네요..
새로운 감독을 알게 되는 기쁨이 있네요..
극장 개봉이 되면 좋겠는데.. 요 영화는 아주 보고 싶어집니다
제 생각에 잭 네오 영화가 한국에 수입되기는 힘들 것 같네요. 수입되어 개봉이 된다고 해도 흥행이 되지 않을 테구요. 싱가포르 영화들을 모아서 상영하는 영화제 같은 이벤트가 있으면 상영이 될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류상욱님 덕분에 저도 영화 공부가...
국내에서 잭 네오 감독에 대해서 다룬 적은 없는것 같은데..? 그렇죠?
영화 매체로서 마땅히 해야할 일인것 같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꼭 잭 네오에 대해서 다루어야 할 의무는 없겠지만, 다양한 감독과 영화를 다루는 것이 매체의 할 도리라면, 싱가포르나 동남아 영화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한국영화계에 절실한 것이 다양한 관심이 아닌가 싶네요.